<휘운객잔 26화>
제갈중천의 상대는 굵은 목소리의 가면인.
그는 탄탄한 체격과 그에 걸맞은 커다란 도를 허리춤에 메고 있었다.
“그쪽이나 조심하시오.”
스릉.
가면인의 거대한 도가 뽑혀 나왔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의 거대한 도.
그걸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는 가면인은 확실히 보통은 아닌 듯싶었다.
“건방진 놈의 목을 베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
콰아아!
주변을 장악하는 강렬한 기운.
물론 제갈중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쿵.
묵직한 전각음과 함께 달려드는 가면인.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객잔 식구들은 절로 오금이 저렸다.
제갈중천도 그와 동시에 한 발짝 앞으로 내딛으며 주먹을 뻗었다.
쾅!
강렬한 충돌 음과 함께 가면인이 도를 붙잡고 뒤로 쭉 밀려나갔다.
가면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두 눈에서 당황이 느껴지고 있었다.
분명 그저 가벼워 보이는 일 권이었는데, 터무니없는 위력이었다.
“재주는 있나보군!”
“재주는 많은 편이라고 듣소.”
이상한 말투로 한마디도지지 않는 제갈중천.
가면인은 이를 악물고, 다시금 제갈중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형한 기세.
일류를 넘어선 자들만이 뿜어낸다는 강기였다.
가면인의 도 만큼 거대한 강기가 제갈중천을 갈라버리려는 듯 날아왔다.
“힘으로 나오신다면, 저도 힘으로 가는 수밖에. 후읍.”
제갈중천이 제대로 자세를 잡고 힘을 한곳으로 모았다.
고오오오.
옷이 펄럭일 정도의 엄청난 내공이 제갈중천의 손에 모였다.
- 거력금강권. 제 삼초. 파천.
쾅.
그대로 가면인의 강기를 부셔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가면인에게 쇄도하는 제갈중천의 권격.
가면인은 권격을 막기 위해 재빠르게 도를 휘둘렀다.
쩌적.
하지만 제갈중천의 권격에 담긴 힘이 너무 강했던 탓일까?
가면인의 도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가면인이 채 다시 자세를 잡기 전.
“그래서 싸구려는 좋지 않은 것이오.”
가면인의 바로 턱밑에서 들려오는 제갈중천의 목소리.
가면인은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재빠르게 도를 회수해 공격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 거력금강권. 제 일초. 붕산(崩山).
퍼버버버벅.
엄청난 속도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권격.
가면인은 이 권격을 그대로 몸으로 맞았다.
“크허억!”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고는 그대로 곤죽이 되어 바닥에 쓰러진 가면인.
몸의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중천과 주학이는 이곳을 서둘러 정리하고, 이들을 원래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라.”
“네.”
“알겠소.”
남주학과 제갈중천은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런 것이 일상이었다.
무림맹 멸마대는 그런 곳이었으니까.
남주학은 주위에 있는 시신을 치우고, 제갈중천은 그들의 옷가지와 얼굴 등을 세세히 조사하고 있었다.
이 조사가 끝나고, 몇 가지 정보만 더 찾아보면, 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어떠십니까? 이것이 무림이란 곳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입니다.”
곽휘운은 말없이 서있는 남은 객잔 식구들을 보며 물었다.
물론 황중식과 팽현옥은 이런 싸움을 많이 보았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지만, 다른 식구들은 달랐다.
춘삼, 추삼, 천종하는 말할 것도 없고, 백리화와 황혜린도 이런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없을 터였다.
피가 터져 나오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싸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지 모르나, 무림인에게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곽휘운은 오늘 다시 이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이 무림이란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어차피 오늘 장사는 틀린 것 같으니, 다들 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객잔 식구들을 돌려보낸 뒤, 곽휘운도 곧바로 제갈중천과 남주학을 도왔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 될 때 쯤 제갈중천이 무언 갈 발견한 듯 곽휘운에게 다가왔다.
“이것 좀 보시오. 무리 중에 한 명이 가지고 있던 것인데, 아무래도 신호문의 것 같소.”
제갈중천이 곽휘운에게 보여 준 것은 작은 패였다.
등에 날개를 날고 있는 호랑이가 음각된 철패.
확실히 이 절강성에서 등에 날개를 단 호랑이를 쓰는 곳은 신호문 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쓰러트린 자가, 아무래도 거풍도인 것 같소.”
곽휘운이 알기로 거풍도는 신호문의 장로 중 한사람이었다.
그런 자가 동색 가면을 쓰고 자신을 죽이겠다며 나타난 것이다.
‘백연상단에서의 일로 이 정도까지 복수를 할 건 아니지. 그렇다면 내가 정천회라는 곳에 찍혔다는 소리군.’
백연상단에서의 마찰이 이렇게 무인들을 대동하고 올 정도는 아니다.
그것도 저렇게 가면을 쓴 채로 말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 아닌가?
정천회였다.
“그런데 이렇게 대낮에 쳐들어왔다?”
“어지간히도 객주를 빨리 정리해 버리고 싶었던 것 같소.”
“하하. 그것 참 곤란하군.”
“아마. 이 항주의 이곳저곳이 정천회의 손에 넘어간 것 같소. 그러니 이렇듯 대담하게 나오는 것이고 말이오.”
곽휘운은 제갈정천의 말에 동의했다.
관군이 오지 않은 것도 그렇고, 주변에 이곳을 지켜보는 눈들도 쫙 깔려 있었다.
아마 항주의 이곳저곳이 이미 정천회의 손에 있는 것일 터였다.
“중천. 진법을 모두 발동시켜 놓고, 백리세가를 지키고 있어라.”
“알겠소.”
“주학. 너도 마찬가지다.”
“네. 객주님!”
곽휘운은 명령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목적지는 청송객잔.
지금 신호문을 쳐들어가 봐야 어차피 오늘과 같은 일이 또 발생할 터였다.
그렇다면 가장 위에 있는 자를 찾아가는 것이 현명했다.
밑에서부터 잘라 나가다가는 언제 일이 끝날지 알 수 없을 테니.
‘정천회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십객이 어중이떠중이는 아니겠지.’
얼마 전 곽휘운이 만났던 무영검객.
그는 분명 청송객잔의 사람이었다.
십객 정도 되는 무인이라면, 정천회가 어떤 곳이든 신분이 낮을 리 없었다.
탓.
곽휘운은 금방 청송객잔의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월영루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만큼의 거대한 규모.
거기에 더해 주변에 수많은 전각이 새로 지어지고 있었다.
마치 곽휘운이 휘운객잔 뒤에 백리세가를 지은 것처럼 말이다.
“왔군.”
그때 때마침 곽휘운이 올 것이란 것을 알았다는 듯, 객잔 안에서 무영검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지금 객잔 안팎으로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곽휘운이 찾아 올 줄 알고, 기다렸다는 소리였다.
“혹시나 안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저도 혹여나 자리에 안 계시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물론 좋은 감정을 가지고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곽휘운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응대했다.
“이미 우리 정천회의 이름은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만 제안하겠네. 정천회에 들어올 생각 없나? 자네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텐데 말이야.”
“이제 어디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지긋지긋해서 말입니다.”
“자네도 현재 무림맹이 썩어 버린 곳이란 걸 알고 있지 않나. 우리와 함께 손을 잡고 한번 크게 도려내 보세나.”
곽휘운은 무영검객의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정천회의 목적을 알 것 같았다.
이들은 현재 무림맹을 뒤엎으려는 곳이었다.
“거절하겠습니다. 무림맹이 썩어 버린 것은 맞지만, 정천회가 깨끗한 곳이란 생각은 들지 않아서 말입니다.”
“우리도 대화로 해결한다면 좋겠지만, 어디 그들이 대화를 들어줄 사람들인가? 그러니 이렇게 준비를 하고 칼을 빼어들 수밖에 없었네.”
“썩은 부위만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많은 피가 흐를 겁니다.”
“정화를 위해서는 응당 피가 흘러야 하는 법이지.”
곽휘운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정천회는 정의를 내세우는 듯하지만 너무나 위험한 곳이었다.
“잘 생각하게. 이번에 새롭게 만든 식구들 걱정도 해야 하지 않겠나?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라네.”
이제는 회유에서 협박으로 넘어간 무영검객이었다.
곽휘운은 무영검객의 이 말에 얼굴에 진한 미소를 피웠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젊은 친구가 너무 실력을 과신하는군 그래. 어쩔 수 없지. 협상이 결렬 되었으니, 싸울 수밖에.”
무영검객과 곽휘운 사이에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순식간에 감돌기 시작했다.
투욱.
그때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무영검객과 곽휘운의 검이 움직였다.
카캉! 캉! 캉! 카캉!
허공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빠른 공방전이 지속되었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은 검과 검이 부딪쳐 만들어 내는 작은 불똥뿐이었다.
“자자. 몸 풀기는 끝났지? 제대로 가 보세.”
“그러지요.”
카앙!! 카앙!!
무영검객의 엄청난 연격이 계속해서 곽휘운을 향해 날아왔다.
마치 곽휘운이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한 연격.
하지만 곽휘운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무영검객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이번에 제가 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수비만 하던 곽휘운이 한 발짝을 앞으로 내딛으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방에 자욱이 퍼지는 구름.
무영검객은 본능적으로 이 구름이 위험함을 알아채고, 몸을 뒤로 빼려 했다.
하지만
“늦었습니다.”
- 휘운검법. 제 이초. 참.
카가강!
무영검객은 갑자기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간신히 공격을 막아냈다.
쾌검이라면 무림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인 무영검객이 지금 곽휘운의 공격을 따라잡기 힘들어 간신히 막 아내는 모양새였다.
‘이 무슨? 내가 가늠하지 못할 만큼 내력이 깊다는 건가?’
무영검객의 무공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검을 부딪친 상대의 내력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 무영검객이 얼마 전 곽휘운과 검을 맞부딪쳤을 때 가늠한 곽휘운의 실력은 분명 대단하기는 했어도, 결코 자신의 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몰아붙이며 맞부딪치는 곽휘운의 내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보다 월등한 내력을 가졌던가, 아니면 특수한 무공을 익혔다는 것.
‘이건 특수한 무공 때문이 아니다.’
특수한 무공이라면, 자신이 이렇게 밀리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남은 하나는 곽휘운이 자신보다 월등한 내력을 가졌다는 것뿐.
‘이런. 불공평한 세상이 있나.’
아직 한창 젊은 나이인 곽휘운이 자신보다 월등한 내력을 가졌다니.
무영검객은 속으로 쓰게 웃으며, 가진 내력을 모두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동안 먹은 칼밥 값은 보여 줘야지.’
무영검객의 주변에 일순 강한 바람이 휘돌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의 주변에 부는 바람은 보통 바람이 아닌, 극쾌의 검이 만들어 낸 검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