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25화>
다음 날 아침.
휘운객잔에는 모든 식구들이 모두 나타났다.
“그럼 모두 남으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물론이죠!”
“네!”
다들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곽휘운은 이런 눈빛이라면,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자 일단 오늘 장사를 시작해 보죠.”
휘운객잔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쉼 없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요즘에는 주변에 사는 부호들도 종종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새롭게 단장한 별채 때문에 그랬다.
백연상단에서 보내온 물건들로 단장한 별채는 확실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고, 황중식과 천종하는 고관대작들이 먹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음식을 만들어 냈다.
조금씩이지만 항주의 부호들에게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조만간 청송객잔이나 신수객잔과 비등해지겠어요.”
백리화가 보기에 지금 휘운객잔의 위상은 청송객잔 바로 아래 정도는 되었다.
주변 평판도 나쁘지 않았고, 그만큼 매출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처럼만 가면, 두 객잔을 따라잡는 것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다른 곳들의 견제를 막느냐예요.”
아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견제가 들어올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견제 말이다.
항주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객잔이 이름을 날렸지만, 오래지 못해 사라지는 이유가 바로 이 견제 때문이었다.
신수객잔 등 항주에서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는 객잔들이 뒤에 업고 있는 거대한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나서면, 웬만한 객잔들은 당연히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기 마련이었다.
거기에 지금 휘운객잔은 이미 신수객잔, 청송객잔과 적대관계라 해도 부족하지 않은 상황.
“그들이 할 수 있는 견제를 최대한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곽휘운은 그간 경험이 있을 백리화에게 물어 그들이 할 만한 수작들을 들었다.
‘흠. 대부분 처리할 수 있겠어.’
아무리 교묘하게 움직인다 해도, 결국 무림인들은 힘으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곽휘운이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곽휘운은 그 정도 자신은 있었다.
“감사합니다. 백리 총관님 이제…….”
곽휘운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
객잔 밖에서 꽤나 많은 기운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운들.
좋은 목적을 가지고 나타난 이들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는군. 총관님, 손님들은 모두 대피시켜 주시고, 식구들도 객잔 안에서 기다리라고 해 주십시오.”
“네.”
백리화는 곽휘운의 말에 무언가를 느끼고,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곽휘운은 남주학과 제갈중천을 불렀다.
“너희 둘이면 충분하지?”
“물론이죠!”
“당연하오.”
곽휘운은 둘에게 이번 일을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은 객잔 식구들을 보호하며, 이 싸움을 지켜보게끔 할 생각이었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일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말이다.
척. 척. 척.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는 대낮.
이런 대낮에 이렇게 많은 무인들이 객잔을 둘러싸고 위협한다?
보통이라면 당장이라도 관군들이 나섰을 일이었다.
하지만 관군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관에도 연줄이 있나보군.’
필히 관에 연줄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긴 오히려 없는 것이 이상했다.
‘그나저나. 아무래도 객잔 평판에 영향이 가겠군.’
지금 이 싸움은 이기든 지든 손해인 싸움이었다.
이렇게 무인들이 단체로 싸움을 벌이는 곳에 별로 오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이 상황을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가만히 놔두었다가는 평판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객잔이 사라질 테니까.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
“넵!”
“알겠소.”
휘운객잔을 둘러싼 수십 명의 무인.
그들은 모두 평범한 흑의를 입고 있어 어디 소속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 중 두 명이 얼굴에 동색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곽휘운은 저번에 천수검문을 향해 가던 길에 만났던 철가면의 무인들이 떠올랐다.
‘정천회의 인물은 모두 가면을 쓰나보군.’
철과면과 동가면.
아마 저 가면의 재질이 회 내부에서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일 터였다.
동가면이라면 철가면보다 위에 있는 자들일 확률이 높았다.
실제로 느껴지는 기운도 더 강했으니 말이다.
“무슨 일로 오셨소?”
제갈중천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러자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
제갈중천은 앞으로 나서면서 주변에 설치해 둔 환영진을 발동 시켰다.
아무래도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너무나 많았으니, 객잔을 위해서라도 가릴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객잔을 둘러싼 무인들은 일순 바꾼 풍경에 약간 놀라는 듯 했으나, 금방 다시 안정을 찾았다.
이 모습만 보더라도 이들이 얼마나 잘 수련된 무인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기에 소빙룡이 있나?”
동가면을 쓴 이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목소리에 힘이 가득했다.
“객주님 말이오? 당연히 계시오.”
“그럼 어서 불러와라. 그럼 너희는 깔끔하게 죽여 주마.”
“객주님이 당신 같은 자들을 처리하라고 우리를 고용한 것이니, 객주님은 모셔올 수 없소.”
“그럼. 너희를 지금 죽이면 되겠군.”
동가면이 고개를 끄덕하자, 주변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진법이 있는 것을 뻔히 보고도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너무 안일한 것 아니오?”
“끄아악!”
“크허억!”
흑의를 입은 무인들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말이다.
“환영진인가!”
“뭐, 간단한 환영진이오.”
수준 있는 무인을 순식간에 저리 만들어 버리는 환영진이 간단한 것일 리 없었다.
실제로 지금 휘운객잔과 백리세가 주변에 펼쳐져 있는 환영진은 굉장히 복잡한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아무나 파훼를 할 수도 없는 아주 고등의 진법이었다.
“자. 그럼 이제 두 분만 남으신 것 같은데. 바로 시작하시겠소?”
“어린놈이 입만 살았구나.”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또 다른 동가면이 말을 꺼내었다.
마치 쇠를 긁는 듯 아주 거친 목소리.
그리고 그런 목소리만큼 특이한 것이 있다면, 굽어 있는 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덩치가 있음에도 키가 커보이지는 않았다.
“야. 그냥 나 먼저 간다.”
“싸움에도 예의와 격식이 필요한 것이거늘…….”
“그런 게 어디 있냐?”
스슥.
남주학의 신형이 사라짐과 동시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가면을 쓴 이들도 두 명이니 한 명씩 상대하기로 암묵적인 규칙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주학과 제갈중천의 자존심싸움도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상대를 쓰러트리냐에 대한 싸움.
“우리를 아주 물로 보는군.”
동가면을 쓴 두 명도 바로 몸을 움직였다.
그들은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해 전해 들어 알고 있었기에, 일말의 방심도 하지 않고 있었다.
미면귀 남주학과 괴력권 제갈중천.
분명 젊은 무인들이었지만, 그들의 무명은 진짜였다.
방심하다가는 그대로 당할 터였다.
스으으.
사라졌던 남주학의 신형이 다시금 나타났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이상했다.
마치 뿌연 안개가 낀 듯 흐릿하게 보이는 남주학의 신형.
허리가 굽은 곱추 가면의 무인은 남주학의 신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펑!
정확히 맞은 듯했지만, 들려온 소리가 조금 이상했다.
마치 허공에서 터진 듯한 소리.
아니나 다를까, 남주학의 신형이 곱추 가면인의 바로 뒤에 다시 나타났다.
“놈!”
하지만 곱추 가면인도 자신의 공격이 실패한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단단히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수많은 권격을 남주학에게 쏟아내었다.
남주학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무공을 쓴다는 것을 알았기에, 도망칠 곳조차 없게 할 심산이었다.
퍼버버버벙!
하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허공을 때리는 곱추 가면인의 공격.
남주학의 신형은 오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느려서는 벌레 한 마리 못 잡으신다구요.”
촤악!
남주학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곱추 가면인의 다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 중 곽휘운 말고는 방금 남주학의 공격을 제대로 본 이가 없었다.
“저게 주학이의 독문무공인 귀혼신공의 힘입니다. 보이지 않겠지만, 잘 봐두시기 바랍니다.”
곽휘운은 자신이 말하고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데, 잘 보라니.
하지만 남주학의 무공인 귀혼신공은 그런 무공이었다.
마치 귀신이 된 것처럼 신묘하게 움직이며, 상대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희롱하는 무공.
귀혼신공은 오래전 무림에 위명을 떨쳤던 귀혼수라의 무공으로, 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남주학의 청에 금룡남가의 재력을 동원해서 구한 무공이었다.
엄청난 금액이 들었지만, 그만한 값을 하는 무공이었고, 거기에 수많은 영약까지 섭취하니, 순식간에 뛰어난 성취를 보일 수 있었다.
물론 피나는 노력도 있었지만 말이다.
“크윽. 이놈이!”
퍼펑! 펑! 펑! 펑!
사방으로 엄청난 수의 권격을 내뿜는 곱추 가면인.
마구잡이로 뻗는 것 같아도, 그 안에는 강대한 힘이 담겨 있었다.
단 한 방만 허용해도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공격이었다.
- 귀혼신공. 제 이초. 잠영(潛影).
스르륵.
남주학의 신형이 마치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수없이 많은 곱추 가면인의 권격이 남주학이 있던 곳을 타격했지만, 그 어디서도 남주학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 이번에는 어디냐!”
곱주 가면인은 몸의 감각을 최대한 날카롭게 가다듬어 팔방을 감시했다.
필히 공격할 때는 모습을 드러낼 테니 말이다.
‘자. 와라.’
아직 보여 주지 않은 수가 있는 곱추 가면인.
모습만 보인다면, 필히 이길 수 있었다.
푸욱.
그런데 곱추 가면인의 가슴팍에서 느닷없이 검이 튀어나왔다.
“억……?”
곱추 가면인은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분명 온몸의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검이 가슴팍을 뚫을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에이, 그렇게 쉽게 파훼당할 무공이었으면, 제가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죠.”
귀혼신공에 왜 신공이란 이름이 붙었겠는가?
제 아무리 감각을 날카롭게 세운다고 해도, 귀혼신공의 틈을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 나는 벌써 끝냈다!”
“흠. 늦는군. 나는 이미 끝을 냈다네.”
“엉?”
남주학은 자신이 제갈중천보다 빨리 끝냈음을 자신했는데, 그것이 무참히 깨져버렸다.
제갈중천의 옆을 보니 완전히 곤죽이 되어버린 가면인이 있었다.
“무식한 놈.”
남주학이 보기에 제갈중천의 무공은 정말 무식할 정도로 극강이었다.
상대가 멀쩡한 것을 본적이 없었다.
정말 싸우기 싫은 상대 중 하나였다.
처참히 구겨진 가면인을 보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이 갔다.
“무식하다니. 그저 저자가 너무 약했던 것뿐이네.”
“내 도에 자비란 없으니 조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