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24화>
항주가 최근 떠들썩하게 달아올랐다.
새로운 상단이 항주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본래 항주에 거대 규모의 상단들의 자리를 차지해 나가기 시작할 무렵, 단연 가장 큰 것은 백연상단과 거래를 하던, 신수객잔이었다.
백연상단과 신수객잔 사이에 큰 다툼이 있었다는 소문과 함께,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하게 퍼지기 시작했고, 그때 신수객잔이 백연상단의 신뢰도를 언급하며 거래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비어 버린 백연상단의 자리를 차지한 상단이 있었으니, 바로 ‘정천상단’이었다.
이 신생상단은 절강성에 있는 문파들과 후원계약을 맺으며 등장했는데, 문파들의 힘과 엄청난 자금력으로 순식간에 항주를 휘어잡기 시작했다.
‘이제부터인가?’
정천상단.
곽휘운은 나춘수에게 들었던 정천회가 운영하는 곳이라 확신했다.
정천상단이라는 이름은 둘째치고서, 백연상단과 신수객잔의 사이가 틀어졌을 때 나타났다는 것 때문에 그랬다.
너무나 절묘한 시기가 아닌가?
게다가 백연상단의 자리를 그들이 차지한 뒤로, 신수객잔이 날로 번창하고 있는데다가, 백연상단을 이용하는 이곳저곳에서 잡음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상황이 겹치자, 백연상단에서 있었던 신수객잔과의 간단한 소란이, 마치 백연상단이 먼저 칼을 들이민 상황으로 바뀌어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사람들은 믿지 않았겠지만, 이곳저곳에서 계속해서 문제들이 터져 나오니, 반신반의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곽휘운은 이것이 그들이 원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주 작은 틈이 벌어져 거대한 성이 무너지는 것이지.’
그들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일을 크게 만들 줄 아는 자들이었다.
거기에 무림맹이 공적으로 나설 상황을 만들지 않고, 교묘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확실히 까다로운 곳이었다.
곽휘운은 하필 자신이 항주에 내려오니, 이런 곳이 나타나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쩌면 이런 게 팔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이 팔자라면 모두 뛰어넘어 줘야지.’
무림맹을 나와서 최대한 평탄하게 지내려했지만, 그건 이제 힘들 것 같았다.
또 백리세가까지 다시금 세웠으니, 더욱 더 평탄하게 지낼 수는 없을 터였다.
“오늘부터는 모두 조금 고생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곽휘운은 객잔 식구들을 모두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현재 처한 상황과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 것인지에 대한 연설이었다.
“아무래도 위험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 분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앞으로의 여정은 분명 가시밭길이 될 것이니, 당연히 선택권을 줘야했다.
같이 갈지, 아니면 떠날지.
“오늘 저녁에 문을 열어 놓겠습니다. 언제든지 그 문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곽휘운은 하루 동안 시간을 두기로 했다.
지금 가라고 한다면 아마 아무도 나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계속 가실 분들은 내일 아침 이곳에 오시면 됩니다. 대신. 마음 단단히 먹고 오셔야 할 겁니다.”
그렇게 객잔 식구들은 각자의 처소로 흩어졌다.
곽휘운은 모두가 처소로 돌아간 것을 보고나서, 발걸음을 움직였다.
‘다들 남을까?’
남주학과 제갈중천은 남을 것이 확실했고, 황중식과 그의 가족들도 남을 것이 거의 확실했다.
확실치 않은 것은 춘삼, 추삼, 천종하 이 셋이었다.
그들에게 무림은 생소하면서도 위험한 곳일 터였다.
지금처럼 수련만 한다면 문제없겠지만, 필히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을 원할 수 있으니, 무조건 남아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절대로 강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걱정은 접어두고,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지 다시 한 번 더 정리하자.’
곽휘운은 처소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빈 책을 펴고, 붓을 들었다.
수없이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빈 책에 거침없이 생각들을 적어 나가는 곽휘운.
그렇게 거의 책 한 권을 다 쓰고 나서야, 곽휘운은 어느 정도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자. 일단 오늘은 나도 이만 잠을 청해 볼까.”
곽휘운도 오늘은 일찍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내일부터 다시 꽤나 바빠질 테니 말이다.
똑똑.
그때 누군가 곽휘운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객주님, 저예요.”
곽휘운을 찾아온 이는 다름 아닌 백리화였다.
“아, 예. 들어오십시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백리화가 들어왔다.
목욕을 마치고 온 것인지, 가벼운 옷차림에 머리가 약간 젖어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상의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예. 말씀해 보시지요.”
백리화가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앞으로 있을 객주님의 계획에 제가, 백리세가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요. 휘운객잔이, 객주님이 앞으로 나아가실 때 과연 제가…….”
백리화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은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게 반해 곽휘운은 너무나 대단한 사람이었다.
“백리 가주님.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절대로 걸림돌이 아닙니다. 아니, 제가 그렇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가주님. 저 믿으시죠?”
“……네. 믿어요.”
“그럼 됐습니다.”
곽휘운은 더없이 진중한 눈으로 백리화를 바라보았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맑고 깊은 두 눈.
백리화는 그 눈을 보고는 곽휘운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백리화가 봐 왔던 그 어느 눈보다 진실하였으니까.
“그나저나 백리 가주님은 걱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예?”
“지난번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 저는 그저!”
“하하. 농담입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쉬십시오.”
백리화가 허둥지둥하며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곽휘운은 그런 백리화의 뒷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다가, 다시금 자리에 누웠다.
“흐음. 향기가 좋군.”
백리화가 잠시 머문 곳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머물고 있었다.
곽휘운은 그 꽃향기와 함께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
정천상단.
항주의 중심부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정천상단의 건물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품질.
당연히 사람들이 혹할 만했다.
그런 정천상단 건물의 최상층.
그곳에는 지금 일단의 무리들이 앉아 있었다.
“이제 항주의 자금줄을 틀어쥐는 건 시간문제이니, 언제 회를 세상에 내세울지를 정해 봅세.”
“본거지는 이곳 절강성으로 정해진 것입니까?”
“회주께서 이곳으로 정하셨네.”
“음. 그렇다면 따르겠소.”
신수객잔의 객주, 신호문의 문주 등 이곳 항주에서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는 청송객잔에 있던 정천회의 항주 지부장인 노인이 앉아 있었다.
“청송객잔을 중심으로 내일부터 회의 본타를 건설할 걸세.”
“무림맹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게. 우리는 어디까지나 정도 문파이니.”
“예. 알겠습니다.”
“그보다, 아무래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확실히 정리해야 할 것이 있네.”
“월영루 말씀이십니까?”
“아니, 휘운객잔……. 그러니까 소빙룡을 처리해야 하네.”
백연상단과 월영루는 남궁세가가 뒤를 봐주는 곳.
그곳을 완전히 정리하는 것은 조금 더 준비가 필요했다.
남궁세가는 절대로 만만한 곳이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그전에 소빙룡과 휘운객잔은 확실히 정리를 해 두어야 했다.
그들은 분명 우환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지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 있던 여러 문파의 수장들이 서로 나서겠다고 소리를 높혔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점수를 따 두려는 심산이었다.
소빙룡 때문에 천수검문이 멸문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것은 분명 방심과 오만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제 아무리 소빙룡이 날고 기어봐야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이건 신호문이 처리해 주시게.”
“알겠습니다.”
지부장은 서로 자기가 나서겠다고 소리치는 이들은 무시한 채, 신호문의 문주를 향해 말했다.
그가 무영검객에게 들은 소빙룡의 실력은 상상이상.
그렇다면 어중이떠중이들을 보내봐야 천수검문과 같은 꼴이 날 것이었다.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신호문이 나서는 것이 맞았다.
그들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숨기고 있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회의 무인 하나와 단약을 보냄세.”
“감사합니다.”
무덤덤하게 대답을 하는 신호문의 문주였지만, 단약이라는 말에 눈빛이 잠깐 빛났다.
사실상 이들이 이렇게 회에 충성을 하는 이유는 단약 때문이었다.
한 알만 먹어도 순식간에 내공을 증진시켜주는 단약.
무림인이라면 그 누구나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것이었다.
“자. 오늘은 이만들 하고 자리를 파하지.”
“예.”
“예.”
무리들이 순차적으로 정천상단을 빠져나가고, 지부장과 신호문의 문주만 자리에 남았다.
“조심하는게 좋을 걸세. 호평이 보통 내기가 아니라고 평가했거든.”
“알겠습니다.”
그렇게 신호문의 문주까지 나가고, 방에는 지부장 혼자만 남았다.
“이보게 회주. 그렇게 숨지 말고 직접 나오는 게 어떤가.”
“하하. 어르신. 제가 아직 빛을 보기에는 수양이 부족합니다.”
“실없는 소리하긴.”
분명 지부장 혼자 있는 공간.
그런데 어디선가 호쾌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회주가 보기에 저 장기 말들이 얼마나 쓸모 있는 것 같은가?”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들도 모이면 나름 쓸 만할 겁니다.”
“어차피 단약에 취해 날아드는 것들일 뿐이네.”
“그런 단약으로 조종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존재들이지요.”
여전히 중년 목소리의 주인공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고, 지부장은 그저 밖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시작이군 그래. 이 썩어 버린 무림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한 발걸음이 말이야.”
“예. 그들에게 힘과 피로서 심판을 내려 줘야겠지요.”
일순간 사방 일대가 엄청난 살기로 잠식 되어졌다.
그 엄청난 살기에 방에 있던 나무가 그대로 죽어 버렸다.
“괜히 살기 내뿜어서 엄한 것들 죽이지나 말고, 마저 수련이나 하러 가게.”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그 뒤로 중년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지부장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정천상단을 벗어났다.
천천히 걷는 듯한 지부장이었지만, 그가 한걸음 걸을 때마다 수장씩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지부장이란 자가 범상치 않은 내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결국 모두가 하나의 장기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거늘…… 흘흘.”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은 지부장은 거처로 돌아와 무언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저녁에 돌아간 이 한 명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