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23화>
신수객잔.
항주에서 월영루 다음가는 객잔이 어디냐고 물을 때 자주 거론되는 곳 중 한 곳이다.
오로지 부호들만을 위한 객잔으로, 모든 것이 최고급으로 유지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신수객잔은 최고급의 물품을 구하기 위해, 항주 제일의 상단인 백연상단과 거래를 했다.
지금 상단에 와서 소리를 치고 있는 사람은 신수객잔 측의 사람이었다.
“완전히 못쓸 만큼 저품이 왔다고!”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희가…….”
“지금 우리가 잘못했다는 거요?”
백연상단의 상인은 난처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신수객잔으로 가는 물품은 값이 나가는 최고급 품목이기에 분명 몇 번이고 확인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저품으로 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인이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할 때, 위층에 있던 부총관과 곽휘운이 내려왔다.
부총관은 곧바로 상인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는 앞으로 나섰다.
“일단 저희 상단에서 갔다는 물품들을 다시 회수해 확인한 뒤, 새 물건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엉? 이미 그 쓰레기들은 다 버렸소만.”
“그렇다면 저희 측에서도 어떻게 조치해 드릴 수 없습니다.”
“뭐라! 그딴 걸 보내놓고 발뺌을 하시겠다! 하! 백연상단도 이제 한물갔군. 고작 눈앞의 욕심에 눈이 멀어 사기를 치고 말이야.”
신수객잔의 사람은 마치 백연상단이 사기를 친 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를 토해 내었다.
이에 백연상단 상인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들은 백연상단의 상인이란 것에 큰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을 다짜고짜 사기로 몰아가니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는가?
“계약서를 가져와 보여 드릴까요? 분명 계약서상에는 물건의 하자가 있을 때는 반드시 물건을 돌려받은 후 처리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종이 쪼가리로 우리에게 잘못을 떠넘기시겠다?”
“원리와 원칙대로 하는 것일 뿐입니다.”
조금의 동요도 없이 차분한 부총관의 대응.
곽휘운은 그냥 돌아갈까 했지만, 신수객잔의 사람 뒤에 서있는 두 명의 무인이 조금 걸려서 지켜보기로 했다.
신수객잔의 사람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온 이들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살기가 강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물건을 전부 바꿔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거요.”
“그럼 힘으로라도 움직이게 해 드리는 수밖에 없겠군요.”
부총관이 손짓하자 상단 곳곳에 포진해 있던 호위들이 다가왔다.
수많은 물건이 오가는 상단이다 보니, 재물을 노리는 자들이 꽤나 많았다.
그래서 백연상단의 호위들의 실력은 꽤나 괜찮은 수준이었다.
“백연상단이 이처럼 몰상식할 줄은 몰랐군. 잘못은 인정하지도 않고, 힘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다니.”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하는 신수객잔의 사람이었지만, 곽휘운은 찰나에 그의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보았다.
이건 분명 준비한 일이었다.
“밖으로 모셔다 드리십시오.”
백연상단의 호위들이 병장기를 뽑아들고 다가갔다.
물론 상해를 입히려는 것은 아니었고, 단순한 위협을 위해서였다.
“먼저 칼을 빼든 것은 분명 그쪽이요.”
신수객잔 사람의 목소리가 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던 두 명의 무인이 앞으로 나섰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하나는 더 컸는데, 큰 키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기다란 팔이었다.
특이한 무공을 익힌 것이 분명한 모양새였다.
“피를 보기 싫다면 이만 돌아가십시오.”
“…….”
“우리를 원망 마시오.”
신수객잔 측의 무인 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점점 더 짙은 살기만을 내뿜을 뿐이었다.
‘위험하다.’
곽휘운의 오랜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지금 저들은 위험했다.
휘익.
곧바로 곽휘운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신수객잔 측 무사들의 팔이 움직였다.
콱.
다행히도 백연상단의 호위들에게 공격이 닿기 전에 곽휘운이 먼저 도달했다.
곽휘운은 휘둘러지던 무인 둘의 팔을 각각 잡았는데, 생각보다 더 강한 힘이 느껴져서 조금 놀랐다.
‘흠. 이정도면 최소 일류 이상.’
일류 무인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그런데 그런 일류 무인 둘이 물건의 하자를 따지러 온 사람의 호위로 따라왔다?
아까의 미소도 그렇고, 뭔가 있었다.
‘거기에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수를 휘두르다니.’
지금 곽휘운이 이 팔을 막지 않았다면, 백연상단의 호위들은 필히 피를 보았을 터였다.
대낮부터 피를 보려고 한다?
거기에 일반인들도 많이 있는 이곳 상단에서?
‘객잔이 상단과 피를 보려고 한다라. 거기에 상대가 백연상단인데 말이지.’
객잔과 상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거기에 지금 신수객잔이 척을 지려는 상대는 항주제일상단이라 불리는 백연상단이다.
신수객잔이 신호문을 등에 업고 있다지만, 백연상단은 남궁세가를 등에 업고 있는 곳.
남궁세가와 신호문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세력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다들 진정하시고,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곽휘운은 신수객잔에 대한 의구심은 잠시 접어 두고 먼저 지금을 해결하기로 했다.
“음.”
“음.”
곽휘운이 손쉽게 팔을 막아내자, 처음으로 두 무인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는 빤히 곽휘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팔을 이렇게 손쉽게 막은 이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곽휘운이라 합니다.”
“소빙룡.”
“소빙룡.”
곽휘운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둘의 입에서는 동시에 말을 했다.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동시에 말하는 둘.
거기에 더해 생김새까지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
곽휘운은 절강성에서 활동하는 쌍둥이 무인에 대한 정보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쾌격쌍조(快擊雙客爪)이신가 보군요.”
쾌격쌍조.
신호문에 있는 무인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자들로, 그들의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쾌속무비한 조법이 장기였다.
신호문은 악행을 일삼지는 않지만, 그 손속이 너무 잔혹해서 정사중간의 문파로 분류하는 곳이었다.
그걸 반증하듯 쾌격쌍조의 방금 공격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건 신수객잔과 백연상단간의 일이오.”
쾌격쌍조가 뒤로 한걸음 물러나고, 다시금 신수객잔의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지금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서 일단의 소란이 나야 그가 맡은 임무를 다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 눈앞의 곽휘운 때문에 실패를 했으니,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실패는 아니지만…….’
백연상단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소기의 목적 정도는 달성한 것이었다.
‘더 날뛰기에는 소빙룡이 문제지.’
최근 위에서 소빙룡과 얽히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렇다면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맞았다.
“보는 눈이 많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각오를 해야 할 거요.”
휙.
신수객잔의 사람과 쾌격쌍조가 백연상단을 빠져나갔다.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지만, 다시금 백연상단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부총관이 곽휘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왔다.
그도 쾌격쌍조가 어떤 무인들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만약 곽휘운이 나서지 않았다면, 오늘 피를 보았을 터였다.
“그럼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곽휘운은 부총관이 답례를 하겠다는 것을 거절하고, 백연상단을 빠져나왔다.
방금 전의 일로 가 볼 곳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무림맹 지부에 가 봐야겠어.’
무림맹에 가는 것을 자제하려던 곽휘운이었지만, 그래도 한번은 가 볼 필요가 있을 듯싶었다.
회라는 곳이 너무나도 대담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 * *
무림맹 항주지부.
중원 천지에 수많은 지부를 가지고 있는 무림맹이었지만, 항주지부는 그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축에 속했다.
절강성에는 거대한 정도 문파가 없는 만큼, 사도 문파나 정사 중간의 문파들이 많이 산적해 있었고, 거기에 더해 수많은 자금이 움직이는 만큼,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었다.
그래서 무림맹 항주지부는 여타 지부들에 비해 규모도 크고, 속해 있는 무인들의 실력도 뛰어났다.
“내가 살다가 소빙룡을 이리 가까이서 볼 줄이야! 하하하!”
무림맹 항주지부의 지부장을 맡고 있는 홍매검(紅梅劍) 나춘수는 곽휘운을 보고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평소에도 호쾌한 성격으로 유명한 자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주변 평판도 꽤나 좋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호쾌한 성격보다 더 유명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의 검법이었다.
그가 화산파의 매화검수로 활동할 때 사람들이 그의 검법이 마치 붉은 매화를 떠올리게 할 만큼 강렬하고 화려하다고 해서 붙여 준 별호가 바로 홍매검이었다.
능히 절정을 넘어선 그의 실력은 무림맹에서도 소문이 날만큼 대단한 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자자. 일단 자리에 앉게.”
나춘수는 곽휘운을 자리에 앉으라 권하더니, 손수 차를 내왔다.
그렇게 차를 한 입 마시자, 나춘수가 곧바로 질문을 해 왔다.
“아마 ‘회’라는 곳 때문에 왔겠지?”
“예.”
곽휘운은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하긴 무림맹이 이렇게 대놓고 활동하는 세력을 모를 리 없었다.
무림맹이 이런 것도 모를 만큼 정보력이 없다면, 진즉에 무림은 사파나 마교의 손에 넘어갔을 테니까.
“우리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정확히 어떤 목적을 가진 세력인지를 알 수가 없네.”
무림맹은 회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현재로서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몇 차례 그들의 꼬리를 잡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무림맹이 내린 결론은 그들의 세력이 이미 무림 곳곳에 퍼져서 암약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암약하고 있는 곳에는 무림맹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대대적으로 그들을 공적으로 선포를 하고 싶어도, 그들이 지금까지 딱히 무슨 일을 벌이지는 않았기에 불가능했다.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네. 다만, 그들이 조만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것과……. 그곳의 이름이 ‘정천회’라는 것 정도네.”
곽휘운은 정확한 회의 이름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천회(正天會).
이름만 들어서는 정도의 길을 걷는 곳 같았다.
하지만 곽휘운은 이름과는 정반대의 느낌이 들었다.
‘썩 좋은 느낌은 아니군.’
오랜 시간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남들보다 조금은 감이 좋은 편인 곽휘운이었다.
그리고 그 감이란 것이 지금 경고를 보내어왔다.
정천회는 좋지 않다고 말이다.
“귀중한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게나.”
곽휘운은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더 이상 머물러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을 터였다.
그들의 이름을 알아냈다는 것 정도에서 만족해야 했다.
수없이 많은 상단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항주에서, 새로운 상단이 나타난 것이 뭐가 대단한 일이겠냐 싶겠지만, 이건 그 규모가 조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