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22화 (22/203)

<휘운객잔 22화>

휘운객잔은 이제 제법 항주에서 이름을 날리는 객잔이 되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름을 날린다는 건 꽤나 대단한 일.

‘흠. 이정도면 안정권에는 들어온 건가.’

곽휘운은 이제 객잔이 안정권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직 항주제일로 불리기에는 멀었다.

현재 휘운객잔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상인들이나 평범한 서민들이다.

이제는 그들 말고도 돈 있는 자들도 객잔에 오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항주 제일로 나아갈 수 있을 터였다.

“객주님. 잠시만요.”

곽휘운이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백리화가 곽휘운을 불렀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객잔의 다음을 의논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곽휘운은 백리화의 말에 밝게 미소 지었다.

지금 자신의 생각을 백리화도 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네. 지금 저희 객잔은 아무래도 서민층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는데, 이제는 부유층도 사로잡아야 할 때 인 것 같아서요.”

그렇게 백리화의 설명이 이어졌고, 곽휘운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백리화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아무래도 별채 중 몇 곳을 고급화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보통의 객잔은 고층의 객잔을 고급화 시킨다.

하지만 휘운객잔은 지금 고층으로 올릴 수가 없는 상태.

그렇다면 휘운객잔만의 강점인 별채를 고급화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식기부터 별채의 장식품, 거기에 술과 음식도 고급화를 해야 할 거예요.”

곽휘운은 백리화의 말대로 일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확실히 백리화는 총관으로 최고의 활약을 해 주고 있었다.

곽휘운은 속으로 백리화를 총관으로 뽑은 것이 자신이 스스로 한 선택 중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필요한 물품은 제가 백연상단에 말하겠습니다.”

“네. 저는 황 숙수님에게 요리에 대해 의논드릴게요.”

백리화는 황중식에게 고급 요리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주방으로 갔고, 곽휘운은 직접 백연상단에 가기 위해 객잔을 벗어났다.

저벅 저벅.

곽휘운은 날씨가 좋아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걸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했고, 대낮부터 싸우는 취객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음?’

그런데 그때 곽휘운의 시선이 한 명에게 고정되었다.

곽휘운이 항주에 와서 본 사람 중에 가장 강한 기운을 지닌 사람.

그 사람도 곽휘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둘 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네가 소빙룡인가?”

깔끔하게 빗은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미중년.

약간 구릿빛 피부 또한 그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무영검객을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곽휘운은 한 번에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채었다.

최근 곽휘운은 천통문에 많은 금액을 내고, 항주에 있는 문파와 객잔에 대한 정보를 구매했다.

당연히 청송객잔에 대한 내용도 있었고, 그중에 무영검객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곽휘운은 무림맹에 있을 때 무영검객의 인상착의에 대해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이 무영검객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맞나보군.”

“예. 맞습니다.”

잠시 중단된 대화.

그 짧은 사이 둘의 몸에서 나온 기세가 서로 충돌했다.

전혀 양보 없는 팽팽한 기세.

“흠. 젊은이라고 방심했다간 큰일 나겠어.”

무영검객은 곽휘운의 기세에 속으로 사뭇 놀랐다.

그도 무림에 발을 담근 무인이니, 젊은 무인 중 가장 강한 이들을 무림오룡이라 부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 중 신룡이라 불리는 남궁천제를 제외하고는 솔직히 아직 애송이라 생각한 무영검객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생각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소빙룡은 절대 애송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객잔에 찾아가는 길이었는데, 이렇게 길에서 만날 줄은 몰랐군.”

“음…… 그렇다면 저는 오늘 운이 좋은 날인가 봅니다. 이렇게 중간에서 만나 뵈었으니 말입니다.”

곽휘운은 무영검객을 객잔 밖에서 만난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객잔 안에서 무영검객 같은 무인과 만나는 것은 여러모로 객잔에 좋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겁니까?”

“조금 봐두려고 했거든.”

“보신 소감은 어떠십니까?”

“글쎄……”

찰칵.

아주 찰나의 순간 무영검객의 검집에서 소리가 났다.

캉.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쁘지 않군.”

“하하. 감사합니다.”

방금 전 무영검객이 일검을 날렸고, 그것을 곽휘운이 받아쳤다.

웬만한 무인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쾌속한 검격을 찰나의 시간 서로 주고받은 것이다.

“오늘은 이만하고 가지.”

“가능하면 다음에는 뵙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자네가 항주에 있는 한 아마 다시 보게 될걸세.”

무영검객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고, 곽휘운은 잠깐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흐음…… 회라는 곳이 생각보다 더 큰가 보군.’

곽휘운은 무영검객이 천주룡이 말했던 회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청송객잔과 그리 좋은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영검객 쯤 되는 사람이 이렇게 직접 자신을 찾아올 정도로 악연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 뿐.

‘대놓고 경고하는 건가.’

무영검객을 통해 자신을 평가함과 동시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자신들은 무영검객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청송객잔이 회라는 곳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까지 말이지.’

저들이 이렇게 대놓고 움직인다는 것은 좋지 않았다.

조만간 무슨 일이 터져도 터질 터였다.

“후우. 일단 백연상단부터 가자.”

곽휘운은 일단 복잡해진 머릿속을 대충 정리한 뒤, 백연상단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들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 한 지금 어떻게 할 방법은 딱히 없었다.

“여긴가.”

곽휘운의 앞에 보이는 꽤나 거대한 전각.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수레와 마차가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항주 제일 상단이라 불리는 백연상단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곽휘운이 상단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상인 한 명이 다가왔다.

“필요한 물건을 의뢰할까 해서 왔습니다.”

“증표가 있으십니까?”

백연상단은 거래를 하는 곳에는 증표를 건네준다.

증표는 백연상단과 거래를 한다는 증거이자, 증표였다.

“여기 있습니다.”

당연히 곽휘운은 증표를 가지고 있었다.

곽휘운은 품에서 백금으로 만들어진 패를 하나 꺼내어 보여 주었다.

“배, 백금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곽휘운이 보여 준 패를 본 상인은 깜짝 놀라더니, 급하게 어디 론가로 몸을 움직였다.

백금표.

백연상단의 증표에는 몇 가지 등급이 있었는데, 백금표는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 등급의 증표였다.

방금 전 사라졌던 상인이 새로운 인물과 함께 나타났다.

보통의 상인들과는 다르게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청년.

보통의 직급이 아니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백연상단의 부총관 강운이라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휘운객잔의 곽휘운이라 합니다.

백연상단의 부총관.

청년의 나이를 생각하면 굉장히 높은 직급이었다.

이 거대한 상단의 부총관을 아무나 뽑지는 않을 것이고, 그런 자리에 저런 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이 출중하다는 뜻일 터였다.

“일단 위로 올라가서 이야기를 하시지요.”

“예.”

곽휘운은 부총관을 따라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백연상단의 상층부는 중요한 손님을 모시는 곳인 만큼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상단주님께서 지금 출타 중이시라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부총관은 곧바로 곽휘운이 찾아온 이유를 물었고, 곽휘운은 백리화와 이야기 나누었던 고급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에 걸맞은 것들을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금액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곽휘운은 이쪽 방면에는 지식이 없으니 대충 백리화에게 들은 가격의 열 배 정도를 챙겨서 왔다.

이왕 구매할 거 최상급으로 구매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황족이라도 모실 생각이십니까?”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이 절반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로도 충분히 차고 넘치실 겁니다.”

부총관은 곽휘운이 건넨 금액의 절반만 챙기고는 서류를 작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욕심을 과하게 부리지 않는 사람이군.’

곽휘운은 부총관을 바라보며, 왜 그가 부총관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백연상단은 눈앞의 이익만이 아닌 미래와 발전 가능성을 보는 곳이었다.

부총관은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여기 지장을 찍어 주시면 됩니다.”

곽휘운은 꼼꼼히 서류를 읽어보고는 지장을 찍었다.

“그럼. 보름 이내로 물건들을 휘운객잔으로 납품하겠습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부총관이었지만, 묘하게 그런 모습이 더 믿음이 갔다.

그렇게 곽휘운이 계약을 마치고 백연상단을 나가려고 할 때였다.

“제대로 된 물건이 오지 않았다니까!”

백연상단의 아래층에서 전각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신수객잔은 절강성에서 가장 힘이 강한 문파 중 하나로 꼽히는 신호문(神虎門)이 뒤에 있는 곳으로, 항주에 있는 객잔 중 가장 비싼 객잔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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