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20화 (20/203)

<휘운객잔 20화>

곽휘운은 재빨리 그곳으로 몸을 날렸지만, 상대방도 곽휘운이 움직이는 것을 눈치 챘는지 도망치기 시작했다.

곽휘운은 최대한 빠르게 달렸지만, 도망자가 조금 더 빨랐다.

역시나 망가진 무릎이 문제였다.

예전이었다면 놓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생각보다 더 골치 아파지겠어.”

물론 저들의 말을 모두 믿을 수도 없고, 아직까지 크게 움직이고 있지는 않으니 확언할 수는 없지만, 곽휘운의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저들은 상당히 위험한 곳이라고 말이다.

* * *

팔비(八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자신을 따라오는 소빙룡을 피해 달아났다.

‘천주룡이 쓸데없는 말을 지껄였군,’

그의 임무는 천주룡의 감시.

혹여 천주룡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 즉각 회에 알리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생각보다 일이 커져버렸다.

천주룡이 회의 존재를 알리는 말을 해 버렸고, 폭뢰까지 터져버려 천수검문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소빙룡.’

폭뢰의 지근거리에 있었으면서, 별다른 피해조차 받지 않은 모습으로, 곧바로 자신을 발견해 따라 오려했다.

나름 은신에 일가견이 있는 팔비였는데, 그것을 알아챈 것이다.

‘일단 회에 보고부터.’

소빙룡이 더 이상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팔비는 곧바로 회에 연락을 보내었다.

* * *

천수검문이 망했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온 항주에 퍼졌다.

항간에는 그들이 폭뢰를 비밀리에 제조하다가 사고가 일어나, 갑작스럽게 문주인 천주룡과 문파의 핵심전력들이 죽어서 망한 것으로 소문이 퍼졌다.

‘소문이 지나치게 빠르고 자세하게 퍼졌군.’

다른 이야기나 의문을 가지지 못할 만큼 소문이 빠르고 자세하게 퍼졌다.

곽휘운은 당연히 회라는 곳에서 의도적으로 꼬리를 자르기 위해 소문을 만들어 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이리저리 들쑤시면, 오히려 깊게 숨거나, 목에 칼을 들이밀겠지.’

곽휘운은 지금은 그저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객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그때 백리화가 곽휘운에게 손님이 찾아왔다며 불렀다.

‘손님?’

지금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은 없었다.

곽휘운은 혹시나 회라는 곳에서 찾아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몸을 움직였다.

“오라버니!”

하지만 곽휘운의 걱정과는 달리, 찾아온 이는 회의 사람이 아니었다.

곽휘운에게 꽤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황 소저 오셨습니까.”

“그렇게 말고, 혜린이라 불러 달라니까요.”

“혜린아. 곽 대주님 불편하게 하지 말라하지 않았느냐.”

곽휘운을 찾아온 사람은 황중식의 부인인 팽현옥과 딸인 황혜린이었다.

객잔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모일 만큼 아름다운 모습의 모녀.

팽현옥은 중년의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숙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고, 황혜린은 그야말로 싱그러운 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황혜린은 북경에 있을 때 북경오화(北京五花)라 불릴 정도였으니 말은 다했다.

“이제 왔느냐!”

“아버지!”

황중식도 부인과 딸이 왔다는 소식에 주방에서 잠시 나와 얼굴을 비추었다.

황중식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시금 주방으로 돌아갔고, 팽현옥과 황혜린도 앞으로 백리세가에서 같이 지낼 터이니 다른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백리화와 황혜린이 인사를 나눌 차례.

“안녕하세요. 백리화라 합니다.”

“호호. 안녕하세요. 황혜린이라 해요.”

황혜린은 백리화를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했다.

“흐음…… 오라버니랑 무슨 사이세요?”

“네?”

다짜고짜 백리화에게 곽휘운과 무슨 사이냐고 묻는 황혜린.

백리화는 그 질문에 뭐라 답할지 몰라 어버버했다.

“황 소저. 백리 총관님과 저는 친구사이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말이죠?”

“네.”

“그럼 다행이고요.”

곽휘운의 말에 황혜린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백리화는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저는 어디서 일하면 될까요?”

“예? 황 소저는 굳이 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요. 오라버니 옆에 계속 있으려면, 저도 객잔에서 뭐라도 일 해야죠.”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면 말하는 황혜린.

곽휘운은 살짝 이마를 짚었다.

곽휘운에게 황혜린은 꽤나 대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곽휘운이 이미 몇 차례 그녀의 마음을 거절했지만, 황혜린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곽휘운에게 다가왔다.

“일을 하시겠다면, 침모 일을 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침모요? 좋아요! 해 볼게요.”

곽휘운이 뭐라 대답할까 고민할 때, 백리화가 대신 해결책을 제시했다.

최근 휘운객잔이 입소문을 타면서, 꽤나 바빠진 상황이었다.

백리화가 총관의 업무와 함께 침모의 업무까지 보느라 꽤나 바빴는데, 황혜린이 침모의 업무를 한다면 훨씬 일이 수월해질 터였다.

“황 소저. 하실 수 있겠습니까?”

“네. 할 수 있어요.”

곽휘운은 눈빛으로 백리화에게 잘 부탁한다는 표시를 보내었고, 백리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혜린을 데리고 바로 객실로 이동했다.

“일단 제가 하는 것을 보신 후에 따라하시면 됩니다.”

“네. 총관님.”

백리화는 옆에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바라보는 황혜린에게 설명과 함께 침모가 어떤일을 하는지를 보여 주었고, 황혜린은 금방금방 일을 배워 나갔다.

처음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일을 잘 해내었다.

“이 정도면 바로 침모 일을 맡겨도 되겠어요.”

“헤헤. 열심히 할게요.”

백리화는 밝은 웃음을 짓는 황혜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밝고, 귀여운 모습까지 가지고 있는 황혜린.

자신이 남자라면 분명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황혜린은 분명 곽휘운을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으시겠지…….’

불현 듯 백리화의 머릿속을 잠식하는 생각.

백리화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내, 내가 객주님을 어떻게……’

이미 차고 넘치게 도움만 받고 있었다.

그런데 가진 것 하나 없이, 마음을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럼 나중에 자신이 백리세가의 어엿한 가주가 되면 괜찮은 것일까?

‘미쳤나 봐! 내가 무슨 생각을!’

백리화는 이런 자신의 생각을 들킬까, 얼른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썼다.

하지만 지우려한다고 지워지겠는가?

오히려 더욱 큰 망상이 가득 차올랐고, 백리화의 얼굴이 조금은 붉게 달아올랐다.

“저…… 총관님? 괜찮으세요?”

“네? 네? 아, 네. 괜찮아요.”

백리화는 황혜린의 말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 일을 하는 중에 이런 잡념에 빠지다니.

백리화는 정신을 차리고, 황혜린에게 침모 일 말고도 객잔에 대한 이런저런 사항들을 알려 주었다.

그렇게 백리화의 설명이 끝나갈 때 즈음 곽휘운이 나타났다.

“어떻습니까? 황 소저. 하실 수 있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제가 설마 이런 것도 못할까 봐요?”

“하하. 물론 황 소저는 잘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곽휘운은 이번에는 백리화를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으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예. 생각 이상으로 잘하셔서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백리 총관님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곽휘운은 정말로 백리화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를 총관으로 들였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의 객잔이 되지는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백리 세가로 돌아가면, 무공 수련을 한다고 했죠?”

황혜린은 곽휘운과 백리화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중간에서 맥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백리화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곽휘운과의 관계는 별개였다.

“저도 같이 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황 소저.”

곽휘운은 황혜린이 같이 무공 수련을 하는 것을 당연히 환영했다.

그녀는 꽤나 상승의 경지까지 무공을 익혔으니,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총관님은 백리 세가의 가주님이라 하셨으니까, 무공을 익히셨겠네요?”

“네.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열심히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따가 저랑 대련 한번 어떠세요?”

“예?”

황혜린의 갑작스러운 대련 신청.

이 갑작스러운 대련 신청에 백리화는 황혜린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백리화는 지금까지 한 번도 대련을 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황 소저. 백리 총관님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대련을 하기에는 조금 이른 듯합니다.”

곽휘운이 백리화 대신 황혜린의 대련 신청을 무마하고 나섰다.

백리화는 이제 막 제대로 된 무공에 첫걸음을 내딛은 상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지만, 오랜 시간 제대로 무공을 수련해 온 황혜린의 상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오라버니, 대련을 하면서 오히려 얻는 게 더 많지 않을까요?”

“…… 흠.”

황혜린의 말처럼 대련을 하다보면, 혼자 수련할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방금도 말했듯 지금은 둘의 실력차이가 너무 심했다.

황혜린이 적절하게 완급 조절을 한다면 문제없겠지만, 아직까지 능숙하게 완급을 조절할 정도의 실력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혹시나 큰 부상으로 이어질지도 몰라, 곽휘운이 고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요. 대련해요. 안 그래도 저도 한번 누군가와 대련을 해 보고 싶었어요.”

곽휘운이 어찌해야할까 고심할 때, 백리화가 황혜린과의 대련을 하겠다고 나섰다.

“흠. 그럼 대련을 하는 것으로 하지요. 단! 무기는 연습용 목검만 사용하는 것으로 하고, 제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네.”

곽휘운은 이정도면, 혹시나 하는 상황이 닥쳐도 큰일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객주님! 황 숙수님이 식사하시래요!”

“그래. 알았다.”

그때, 밑에서 식사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곽휘운과 백리화, 황혜린은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일 층으로 내려갔다.

점심이 조금 지나,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

객잔 식구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거기에 팽현옥과 황혜린까지 더해졌다.

이렇게 모이고 보니 꽤나 인원이 많아진 객잔이었다.

‘이제부터는 내실을 다져야겠어.’

곽휘운은 이제는 인원을 늘리기 보다는, 내실을 단단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수검문의 뒤에 있던 회라는 곳이 나타났으니,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는 속부터 단단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풍파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백리화와 황혜린의 대련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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