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18화 (18/203)

<휘운객잔 18화>

곽휘운은 우선 백리화에게 백화환영검과 수혼심공을 전해 주었다.

눈이 커지고, 손을 덜덜 떠는 백리화.

“제가 나름대로 만든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으니, 차차 백리 가주님께서 바꾸시면 됩니다.”

“흑흑…… 흐아앙!”

백리화가 대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간의 설움, 걱정, 고마움, 기쁨이 모두 담긴 울음이었다.

그렇게 백리화는 한참을 울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이 되었다.

“훌쩍…… 죄송해요. 갑자기 울어 버려서요.”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정말 객주님이 죽으라면 죽을게요.”

“하하. 그럴 일 없으니, 나중에 잘되면 갚으십시오.”

“네!”

모용혜는 품속에 소중히 무공서를 품었다.

일단 백리화는 무공서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고, 남은 춘삼, 추삼, 천종하는 따로 곽휘운이 불렀다.

“자 여러분들은 이제 처음 무공을 시작하시니 심법부터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네!”

다들 눈이 초롱초롱했다.

추삼, 춘삼은 언제나 꿈만 꾸던 무공을 배운다는 것에 신났고, 천종하는 황중식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제가 한 분씩 직접 길을 인도해 드릴 테니, 이 길을 외우시면 됩니다.”

곽휘운은 가르치다 보니, 그래도 다들 나름 재능이 없지는 않아서 속으로 만족했다.

이정도 재능이라면, 금방 실력들이 향상될 수 있을 터였다.

“와. 이게 내공 심법이란 거군요!”

“몸이 너무 개운해요.”

“다들 매일 일이 끝나고 이렇게 운기하시면 될 겁니다.”

셋은 개운해진 몸에 신기함을 느꼈고, 곽휘운은 그들에게 몇 가지 더 첨언을 해 준 뒤 백리화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리화가 어느 정도 무공을 이해했나 보기 위해서였다.

재능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나가고 있겠지만, 어딘가 막히는 부분이 있을 터였다.

똑똑.

곽휘운은 정중히 문을 두드렸다.

백리화는 세가의 가주이자, 젊은 여인이다.

함부로 문을 열수는 없었다.

“누구세요?”

“접니다.”

“아, 객주님. 들어오세요.”

드르륵.

문을 열자 안에서부터 나오는 지독한 냄새.

백리화는 모르는 듯했지만, 곽휘운에게는 분명히 느껴졌다.

‘탁기가 빠져 나왔군.’

완전한 운기를 마쳤을 때, 몸속에 쌓여 있던 탁기가 모두 빠져나오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동안 불완전한 내공심법을 익혔기에, 몸속의 탁기를 빼내지 못했었는데, 오늘 곽휘운이 전해 준 완성된 수혼심공을 익힘으로 탁기를 모두 빼내었다.

“성공적으로 수혼심공을 익히신 모양입니다.”

“네.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이런…….”

백리화는 계속해서 곽휘운에 대한 고마움과 그의 대단함을 말했다.

곽휘운은 그 모습이 괜히 귀여워서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자. 그럼 백리 가주님. 검법도 한번 펼쳐 보시겠습니까?”

“네! 안 그래도 검법도 모두 읽고 외워 두었거든요.”

곽휘운이 추삼 등을 가르치고 온 지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짧은 시간동안 수혼심공을 익혀 탁기를 빼내고, 검법을 모두 외웠다?

그렇다면 백리화는 천재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곽휘운은 백리화와 함께 연무장에 섰다.

“후아. 떨리네요.”

“처음이니,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네.”

스릉.

백리화가 검을 손에 쥐었다.

약간이지만 떨리던 백리화의 손끝이, 검을 움직이는 순간 안정을 찾았다.

- 백화환영검. 제 일초. 개화.

백리화의 검이 꽃이 피어나듯 화려하게 피어나며 주변을 장악해 나아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초식들.

곽휘운은 백리화의 초식이 계속될수록 곽휘운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갔다.

‘이런.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군.’

지금 눈앞에서 백화환영검을 펼치는 백리화의 재능은 곽휘운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하늘이 내린 무재가 있다면, 지금 눈앞의 백리화를 두고 하는 말일 터였다.

‘반쪽짜리 무공으로 주화입마에 걸리지도 않고, 착실히 실력을 쌓았다는 것에서 깨달았어야 했는데.’

완전하지 않은 무공을 익히고 있음에도, 큰 문제없었다는 것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다.

보통이라면 열에 아홉은 이상이 생겼을 문제인데 말이다.

‘조만간 무림에 백리세가가 화려한 신고식을 치루겠어.’

백리화의 재능이라면, 앞서 가 있던 다른 세가의 무인들을 따라잡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거기에 곽휘운이 조금만 도움을 준다면, 시간은 더욱 짧아질 것이고 말이다.

“후우.”

백리화의 검이 멈추었다.

모든 초식을 펼치고 난 백리화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처음 펼치는 검법이기에 엄청난 집중력을 소비했기 때문이었다.

“어…… 때요?”

“백리 가주님.”

“네…….”

뭔가 착 가라앉은 곽휘운의 목소리에 백리화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목소리의 풀이 죽었다.

“제가 지금까지 본 분 중에 가장 재능이 있는 분이십니다.”

“네?”

“금방 절정의 벽을 넘으실 수 있을 듯싶습니다.”

“에이. 그냥 솔직히 말해 주세요. 제가 무슨…….”

“정말입니다.”

백리화는 곽휘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조금의 거짓이 없는 진중한 두 눈.

백리화는 지금 곽휘운이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다.

“진심이시네요.”

“내일부터 조금 빠르게 진도를 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오늘은 깨끗이 씻고, 일찍 주무시길.”

백리화에게 인사를 하고, 곽휘운은 연무장을 벗어나 바로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이거, 내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어. 하하.”

곽휘운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계획했던 것들에 좋은 변수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항주제일.

이대로라면 멀지 않은 이야기가 될 터였다.

‘하지만 자만은 금물이지.’

하지만 아직 자만하기는 일렀다.

천수검문과의 일도 해결하지 못했고, 지금 항주에는 월영루라는 곳이 있다.

무려 남궁세가를 뒤에 업은 곳.

절대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거기에 또 다른 곳들도 많이 산적해 있겠지.’

향락의 도시라 불리는 항주인 만큼 수많은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터였다.

그곳에 갑자기 백리세가라는 신흥세력이 나타난 만큼 많은 견제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최고의 길이 쉽다면, 최고가 아니겠지.’

곽휘운이 최고에 집작하는 이유.

무림맹주와 최고가 되겠다고 이야기한 것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들은 모르는 그 만의 이유.

‘아버지가 계셨던 이곳 항주에서 최고가 되면, 나도 아버지도 인정해 줄까?’

곽휘운은 과연 누구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것일까?

‘나도 참 바보 같군.’

곽휘운은 자신의 바보 같음에 쓴웃음을 짓고는 잠에 들었다.

* * *

평소 문을 활짝 열어 두던 천수검문이 최근 며칠 동안 계속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천수검문이 새롭게 생겨난 객잔을 없애버리려다 실패했다는 소문이 항주에 돌기 시작했고, 천수검문이 그 복수를 하기 위해 문을 닫고 준비를 한다고 이야기가 돌았다.

“이제 곧 일이 시작된다.”

“알고 있소.”

천주룡은 눈앞에 있는 회의 연락책을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최근 휘운객잔을 건드렸다가 실패했기에 그랬다.

“그런데…… 객잔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계속해서 실패했다더군.”

“소빙룡이 있는 객잔이었소. 그가 생각보다 강했소.”

“…… 회의 무인 셋을 보내 주지. 일이 시작되기 전에 처리하도록.”

“!!”

천주룡은 연락책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동요했다.

회에서 무인을 보내 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천주룡이 전에 연락책에게 듣기로, 회의 무인들은 최소 일류 이상의 무인들이라 했다.

일류의 경지를 넘은 무인 셋이라면, 제 아무리 소빙룡이라도 어쩌지 못할 것이었다.

“알겠소. 깔끔하게 처리하겠소.”

“그럼.”

스슥.

연락책은 마치 연기처럼 자리에서 사라졌고, 천주룡도 곧바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객잔에 소빙룡말고도 다른 이들이 더 있다는 정보가 전해져 왔다.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면 회의 무인 셋 말고도 인원이 더 필요할 터였다.

“일장로와 혈우검에게 연락해 오라 해라.”

“예.”

현재 천수검문 최고의 전력인 둘이었다.

일장로는 천주룡 다음가는 천수검문의 무인이었고, 혈우검(血雨劍)은 천수검문이 데리고 있는 식객 중 가장 실력이 고강한 자였다.

이 둘과 회의 무인 셋이라면 그깟 객잔하나가 아니라, 다른 중소문파 하나쯤은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이었다.

‘회도 변수가 있는 것은 싫은 모양이군.’

아무래도 일이 시작되기 전에 최대한 변수를 제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선뜻 무인을 내주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조금 걱정은 드는군. 만에 하나 이번에도 실패를 한다면…….’

문파의 최대 전력을 잃는 것과 동시에, 회의 무인도 죽게 만드는 꼴이 된다.

그렇다면 자칫 회에서 쫓겨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럴 수는 없지.’

회에서 쫓겨나면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절대 실패는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일장로에게 그걸 줘야겠어.’

천주룡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준비해 두었던 것을 일장로에게 건네어 주기로 하였다.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얻은 것이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는 그것만 한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 * *

객잔 식구들의 무공 수련은 빠르게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다들 열의와 재능이 넘쳤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열의만큼 객잔 일에도 열의와 힘이 넘쳤다.

다들 무공을 익힘으로서 움직임도 빨라지고, 체력도 넘쳐흘렀다.

“여기 주문!”

“예.”

타닷.

점소이 춘삼이 빠른 발걸음으로 주문을 받으러 달려갔다.

“으헛!”

멀찍이 있던 춘삼이 순식간에 다가오자, 오히려 손님이 놀라 버렸다.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무얼 주문하시겠어요?”

“소, 소면하고 죽엽청 하나.”

“네!”

타닷.

왔던 것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춘삼.

지금 연휘객잔에서는 이런 모습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고, 주변에는 무림인들이 운영하는 객잔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

“백리 총관님도 많이 발전하셨습니다.”

“다 객주님 덕분이에요.”

당연 가장 발전을 한 것은 백리화였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조만간 남주학이나 제갈중천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곽휘운이 객잔 식구들의 실력 향상에 흡족해 하고 있을 때였다.

우당탕!

쾅!!!

객잔 일 층에서 강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무언가를 집어 던지는 소리였다.

곽휘운은 지체 없이 몸을 움직였다.

“죽고 싶지 않다면, 모두 꺼져라!”

객잔에 울려 퍼지는 거대한 외침.

휘운객잔에 있던 손님들은 그 소리에 하던 식사를 멈추고 재빠르게 밖으로 도망쳤다.

검을 들고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것을 보니 필시 큰 싸움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남의 객잔에서 무슨 소란이신지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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