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7화>
‘호오.’
곽휘운은 서무제의 만천구검을 보고 눈에서 이채를 띠었다.
저 정도의 수준이면, 남주학이나 제갈중천과 비슷했다.
“구룡난무(九龍亂舞)!”
서무제의 아홉 개의 검영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곽휘운을 압박해 왔다.
검들의 어지러운 움직임은 상대의 시선을 빼앗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무인들에게 통용되는 것이었고, 곽휘운에게는 소용없었다.
“막.”
주변을 감싼 하얀 구름이 순식간에 곽휘운의 주위를 휘감아 버리더니, 서무제의 검영을 모두 지워 버렸다.
“구뢰쇄악(九雷碎惡)!”
서무제의 검영이 다시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엄청난 속도로 곽휘운을 향해 쏘아져 갔다.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쏘아지는 아홉 개의 검영은 막기 까다로워 보였다.
- 휘운검법. 제 삼초. 압.
“압(壓).”
곽휘운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고, 그에 따라 하얀 구름들도 움직였다.
그리고 곽휘운에게 쇄도하던 서무제의 검영들이 그대로 무언가에 짓눌린 듯 바닥에 쳐 박혔다.
“허!”
서무제가 놀랍다는 눈빛으로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방금 서무제 자신이 만든 검영이 일순간 엄청난 기의 압력에 짓눌려 목표에 다가가지 못하고 그대로 힘을 잃었다.
압도적인 내공의 차이 없이는 힘든 일이었다.
“무림에 자네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전부를 물으신다면, 정말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몸담았다던 무림맹에서 꼽아보면 얼마나 있나?”
“……셋이 있습니다.”
“하하…… 하하하하하!!!”
서무제는 곽휘운의 대답에 크게 웃었다.
서무제도 무림맹이 어떤 곳이며, 강한 무인이 얼마나 많은 곳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거인에게 덤볐구나.’
저토록 젊은 나이에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무인.
지금 서무제에 눈에는 곽휘운이 거인처럼 보였다.
서무제는 무림이란 곳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조정에서 거인이라 불리는 자신도, 무림에 나오면 그저 평범한 무인들 중 한 명일뿐이다.
그래서 서무제는 무림을 동경하고, 재미있어 했다.
“종종 놀러옴세.”
“언제든 환영입니다.”
서무제는 그 길로 바로 휘운객잔을 벗어났다.
“후우.”
곽휘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저런 높은 신분을 상대하는 것은 힘들었다.
차라리 마두와 싸우는 게 훨씬 속편했다.
“잘하셨어요. 성주님이 금화를 내고 가셨어요. 이건 이 객잔이 마음에 든다는 표시거든요.”
백리화의 말처럼 서무제는 마음에 드는 객잔에는 금화를, 마음에 들지 않는 객잔에는 은화를 주고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서무제가 금화를 내었다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는 표시.
이 소문 하나만으로도 휘운객잔은 항주에서 이름이 더 날 터였다.
“여기 객주님이 누구시죠?”
그때 젊은 청년 한 명이 객잔으로 들어와 곽휘운을 찾았다.
아직 서무제의 방문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제가 객주입니다만.”
“안녕하십니까. 천종하라 합니다.”
곽휘운은 갑작스러웠지만, 일단은 천종하라는 청년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참 이래저래 일이 많은 하루라 생각되었다.
“예. 곽휘운이라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십니까?”
“저를 이 객잔의 보조 숙수로 일하게 해 주십시오.”
“예?”
느닷없이 찾아와서, 갑자기 보조 숙수로 일하게 해 달라는 천종하.
곽휘운은 똑바로 천종하를 바라보았다.
꽤나 큰 키에 탄탄해 보이는 몸.
그리고 무엇에도 굴하지 않을 것처럼 굳게 빛나는 두 눈.
확실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보조 숙수를 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숙수님의 권한입니다. 숙수님에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곽휘운은 곧바로 황중식을 찾아갔다.
지금은 밀려 있는 주문이 없기에, 주방을 이리저리 정리하고 있던 황중식은 곽휘운의 말을 듣고, 주방을 빠져나와 천종하의 앞에 섰다.
“흠. 뭐 쓸 만은 해 보인다만, 딱히 보조 숙수는 필요 없는데.”
지금 휘운객잔은 황중식 혼자서도 충분했다.
물론 앞으로 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필요 없었다.
“저는 꼭 숙수님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나 말인가?”
“예. 지난번에 숙수님의 요리를 맡보고 난 뒤, 마음을 굳혔습니다.”
천종하는 어릴 때부터 보조 숙수로 일했었고, 최근에는 객잔의 숙수일도 했었다.
그는 요리하는 것이 제일 행복했고, 자신의 요리를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지금 항주의 객잔들은 오로지 손님의 이목을 끌기 위한 요리와, 틀에 맞춘 듯한 요리만을 원할 뿐이었다.
이에 염증을 느끼던 천종하는 며칠 전 휘운객잔에 들러 요리를 맛보고는 너무나 놀랐다.
자신이 원하던 그 요리가 눈앞에 있었으니 말이다.
“곽 객주가 결정하게. 돈을 주는 건 곽 객주이니.”
결정권이 곽휘운에게 돌아왔다.
결국 객잔의 모든 결정은 객주인 곽휘운의 몫.
“좋습니다. 보조 숙수로 고용하겠습니다. 백리 총관님 문제없지요?”
“네. 문제없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천종하가 휘운객잔의 식구가 되었다.
백리화는 천종하에게 휘운객잔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과 백리세가에 대한 일을 일러주었다.
“아! 그럼 저도 무공을 배워야 합니까?”
“그건 강요는 아니에요. 천 숙수님이 선택하시면 되요.”
“내 밑에서 일하려면 배워라. 안 그러면 못 버틸 거다.”
“그럼 배우겠습니다.”
황중식이 무공을 배우라는 말에 천종하는 곧바로 무공을 배우는 것을 수락했다.
황중식도 무인처럼 사람을 죽이기 위해 무공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몸의 활력과 정신 수양을 위해 무공을 수련했다.
황중식이 혼자서 주방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무공이었다.
“저는 언제부터 일하면 되겠습니까?”
“짐을 모두 옮기신 뒤부터 시작하시면 되요.”
“바로 오겠습니다.”
천종하에게 짐이라고는 옷 몇 벌이 전부였다.
그걸 챙기는 데에는 채 일 다경도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천종하가 곧바로 짐을 챙기기 위해 객잔을 벗어났다.
“곽 객주, 정말로 굳이 보조 숙수는 필요 없네만.”
“아닙니다. 어차피 객잔은 계속해서 커질 테고, 백리세가의 주방까지 생각하면 한 명 더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의 휘운객잔은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다.
당연히 앞으로 더욱 더 커질 것이고, 그렇다면 그 전에 숙수를 늘려놓을 필요는 있었다.
황중식도 신이 아니니 분명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고, 혹여 그가 병치레를 할 때도 대비해야 하니 말이다.
“알겠네. 오면 바로 주방으로 오라고 하게.”
“예.”
황중식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고, 곽휘운은 백리화에게 객잔을 맡겨 두고 백리세가의 처소로 향했다.
무공을 손보기 위해서였다.
춘삼, 추삼, 천종하는 전혀 무공을 모르는 상태이니,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가르쳐야 할 터였다.
그들에게 다짜고짜 상승의 무공을 가르쳐 봐야 쓸모없을 테니 말이다.
‘백화환영검과 수혼심공.’
춘삼, 추삼, 천종하가 익힐 무공은 이것을 기반으로 한 심법을 만들 생각이었고, 백리화는 당연히 완전히 복원한 수혼심공을 줄 생각이었다.
‘어디보자…….’
반쪽짜리 무공들.
뒤쪽 부분이 전혀 없는 데다 곽휘운이 직접 본적도 없으니, 앞부분을 기반으로 완전히 새롭게 창안해야만했다.
‘수혼심공은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심공이군.’
곽휘운이 먼저 손을 댄 것은 수혼심공이었다.
모든 문파가 마찬가지이겠지만, 무공을 배울 때 가장 처음 배우는 것이 심법이었다.
심법을 익혀야만 기를 느끼고, 기를 쌓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앞부분만 있었음에도 곽휘운은 수혼심공이 무엇에 중점을 둔 심법인지 알 수 있었다.
수혼심공은 뛰어난 안정성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내공의 흐름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둔 심법이었다.
‘보자…….’
곽휘운은 일단 수혼심공의 앞부분대로 구결을 운용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내공.
일정한 양의 내공이 일정한 흐름으로 온 몸을 타고 돌았다.
‘흠. 양이 너무 적군…… 거기에다 내공 또한 정순하지 못해.’
곽휘운은 곧바로 수혼심공의 문제점을 찾아내었다.
아무래도 찢겨진 뒷부분에 이걸 해결할 구결이 쓰여 있었을 터였다.
문제점을 알았으니, 이제 그 부분을 해결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건 이렇게…….’
곽휘운은 금방 수혼심공의 문제점을 해결해 내고, 멀쩡한 수혼심공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이제 내공심법을 완성했으니, 다음은 검법이었다.
곽휘운은 쉬지도 않고,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검법은 직접 움직이는 게 제일이지.’
곽휘운은 검을 들고 연무장으로 나갔다.
일단은 백화환영검의 형을 먼저 완성하기로 했다.
스으윽.
천천히 검을 움직이는 곽휘운.
백화환영검은 이름처럼 환(幻)에 중점을 둔 검법.
상대의 눈을 속이고, 감각마저 속이는 검법이다.
- 백화환영검. 제 일초. 개화(開花).
곽휘운의 검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사방을 에워쌌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려한 검의 움직임.
하지만 그 움직임이 오래가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었다.
“여기까지인가.”
백리화가 전해 준 백화환영검은 전반부 세 초식밖에 없었다.
뒤에 얼마나 많은 초식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검법의 흐름을 보건데 적어도 세 초식 이상 있었을 듯싶었다.
곽휘운은 세 가지 초식을 더 만들기로 했다.
너무 많은 초식은 오히려 수련을 힘들게만 할 뿐이니 말이다.
“조금 고민되는군.”
곽휘운은 내공심법과는 다르게 조금 고민이 되었다.
지금 곽휘운이 완성도를 너무 높게 끌어올린다면, 백리화가 배우기에 너무나 어려운 무공이 될 터였다.
백리화의 재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이 그랬다.
백리세가가 다시 부흥하기 위해서, 백리화나 다른 이들의 실력이 너무 늦게 오르는 것도 안 되니 말이다.
휘익.
곽휘운은 다시 검을 천천히 움직여 나갔다.
전반부 세 초식에서 이어져 나가는 검법.
환에 중점을 둔 무공이니 만큼, 다양한 변화를 보여 주며 허공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이 정도라면 괜찮은 것 같군.”
곽휘운은 이번에는 수혼심공과 함께 백화환영검을 펼쳤다.
휘이이익.
곽휘운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푸르른 꽃이 피어나 사방을 수놓기 시작했다.
누군가 본다면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아름다운 모습.
곽휘운의 검이 멈추었고, 사방을 수놓던 꽃들이 꽃잎이 되어 흩날리며 사라졌다.
“후.”
곽휘운은 속으로 나름 만족했다.
심공과 검법까지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반나절.
아무리 앞부분의 구결이 존재하는 무공이었다고 해도, 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곽휘운은 지금의 모든 구결을 새로운 서책에 그대로 적어 놓았다.
그리고 지금 완성한 수혼심공과 백화환영검을 바탕으로 한 무공도 새롭게 써 내려갔다.
‘이름은 십화환검(十花幻劍), 연혼심공(練魂心功) 정도로 하면 되겠지.’
이 정도로 부르면 될 듯싶었다.
곽휘운은 완성된 무공서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어둠이 사방에 깔린 시간.
멀리서 객잔의 문을 닫고 돌아오는 이들이 보였다.
일행에는 천종하도 포함되어 있었다.
“딱 맞춰 오시는군요.”
“이,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