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6화>
그렇게 계약이 마무리되었고, 장구영은 마차를 타고 다시 돌아갔다.
짐을 모두 정리를 끝내자 해가 완전히 기울어 버렸다.
“내가 식사를 준비할 테니, 기다리고 있게.”
“감사합니다. 황 숙수님.”
황중식은 휘운객잔에서 몇 가지 식재료를 가져와 음식을 만들기 위해, 백리세가의 주방으로 향했다.
황중식을 돕기 위해 제갈중천이 같이 주방으로 향했고, 남은 인원들은 식탁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자. 이제부터는 객잔의 영업이 끝나면, 백리 가주님이랑, 추삼, 춘삼은 저에게 무공을 배우셔야 합니다.”
“네.”
“넵!”
“넵!”
힘차게 대답하는 셋.
백리화는 무공을 어느 정도 익혔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점소이인 추삼과 춘삼은 아예 무공이란 것을 모르고 말이다.
기초부터 곽휘운이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식사 나왔소.”
제갈중천의 말에 모두 부지런히 움직여 음식을 날라서 식탁에 가져다 놓았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양.
다들 열심히 손을 놀려 배가 터질 만큼 집어 먹고, 각자의 방으로 몸을 옮겼다.
곽휘운과 백리화만 빼고 말이다.
“백리 가주님. 어떠십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정말로 너무 행복해요.”
“하하.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어쩌면 이게 꿈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백리화가 꿈에서만 꾸었던 일들이 갑자기 일어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가주님 혹시 백리세가의 무공이 남은 것이 있습니까?”
“딱 두 권 남았는데, 그것들도 절반은 소실되어 있어서요.”
백리세가의 무공 중 남은 무공은 단 두 개.
검법 하나와 내공심법 하나.
하지만 그것마저도 반은 소실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백리화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곽휘운이 준 소환단으로 내공이 늘었지만, 그걸 제대로 사용할 무공이 없었다.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되죠!”
물론 곽휘운은 어느 정도 백리세가에 맞는 무공을 생각해두었다.
하지만 백리세가의 무공이 있다면, 그걸 바탕으로 무공을 만드는 것이 훨씬 나을 터였다.
백리화는 가주전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무공서 두 권을 챙겨 왔다.
뒤 쪽이 찢어져 있는 두 권의 무공서.
“이, 이거에요.”
백리화는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백리세가에 남은 무공이 반쪽짜리 무공 단 두 권뿐이라 생각하니 말이다.
“흠.”
곽휘운은 백리화가 건네준 무공서를 바로 읽어보았다.
‘백화환영검(百花幻影劍)’과 ‘수혼심공(修魂心功)’.
분명 한때 백리세가를 대표하는 무공들이었다.
‘제일 중요한 뒷부분만 누군가 찢어갔군.’
누군가 일부러 찢은 흔적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앞부분만으로도 형태를 알 수는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금 무공을 복원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듯싶었다.
“좋은 무공들입니다. 내일부터 수련을 시작할 테니,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십시오.”
“아. 네!”
곽휘운도 백리화도 각자의 방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 * *
다음 날 아침.
휘운객잔은 아침부터 활기차게 문을 열었다.
다들 한 곳에 모여사니, 확실히 모든 것들이 빨라졌다.
“어서 오세요!”
점소이인 추삼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오는 일단의 무리.
모두 병장기를 소지한 것을 보니 무인들이었다.
“조용한 곳은 없나?”
“이번에 별채를 새로 지었는데, 그곳으로 모실까요?”
“좋지.”
보통이라면 별채는 숙박만을 위해 쓰지만, 백리화는 비어 있는 별채를 마치 방처럼 이용하자는 제안을 했고, 단체로 오거나 조용한 식사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별채를 제공하기로 했다.
추삼은 곧바로 무인들을 별채로 안내했다.
“여기입니다.”
“오. 좋군.”
무인들은 별채에 굉장히 만족해하며, 많은 양의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그렇게 몇 몇 무리들이 각각의 별채로 들어갔고, 혹시 있을지 모를 상화에 대비하여 별채 호위는 제갈중천이 맡았다.
“건물을 높이 짓는 것은 힘드니, 별채를 여러 채 만든 것이 도움이 되는군.”
이번에 전각들을 새로 지으면서, 곽휘운은 월영루처럼 높게 지을 수는 없으니, 별채를 여러 채 지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숙박을 위한 별채로만 생각했는데, 이처럼 이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확실히 백리화가 객잔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객주님. 빨리 옷 갈아입고 오세요.”
“네?”
백리화가 객잔을 둘러보고 있던 곽휘운에게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재촉을 했다.
“지금 중요한 분이 오실 거예요.”
“누구입니까?”
“절강성 성주님이요.”
“예?”
절강성의 성주라면 황족이라는 소리.
그런 사람이 객잔을 이용하기 위해 온다?
“어서요. 시간 없어요.”
곽휘운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객잔으로 돌아왔다.
그와 함께 저 멀리서 거대한 마차 하나가 객잔을 향해 다가왔다.
“성주님이 객잔에는 왜 오시는 겁니까?”
“절강성 성주님은 음식을 드시는 걸 좋아하셔서, 새로운 객잔이 문을 열면 꼭 이렇게 방문하세요.”
객잔 옆쪽에 마차를 세워두고, 마차에서 내리는 중년인 한 명.
그가 바로 절강성의 성주인 서무제였다.
장대한 기골에 선이 굵은 얼굴.
마치 한 마리의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갑옷이 아닌, 평범한 무복을 입은 호위병 둘이 서있었다.
그런데 한 성의 성주의 행차라기에는 지나치게 단출한 구성이었다.
호위병 두 명 말고는 수행하는 사람도 없었다.
“성주님을 뵙습니다.”
“성주님을 뵙습니다.”
객잔 안의 모든 이들이 성주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한 성의 성주라면, 황제의 피가 흐른다는 이야기.
이런 예를 갖추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하. 인사는 되었네. 다들 식사를 계속하게.”
호탕한 웃음을 흘리며, 사람들에게 식사를 계속하라고 말하는 서무제.
이 모습 하나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곽휘운이었다.
‘보통의 관리들과 다르게 소탈한 사람.’
물론 이 모습만으로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모습은 그랬다.
그리고 곽휘운은 서무제에게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무공을 익혔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서무제의 걸음걸이나 몸짓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무공을 상당한 수준으로 익혔다는 것을 말이다.
“자네가 이 객잔의 객주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서무제는 부리부리한 안광으로 곽휘운을 훑어보았다.
밑에서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젊은 무인들 중에서 손가락에 꼽는 실력을 지녔던 자였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런 자가 항주에서 객잔을 열었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해 서둘러 오는 길이었다.
거기에 더해 음식 맛도 항주 최고를 다툴 수준이라는 소리도 들었고 말이다.
“일단 식사를 하겠네. 자리를 안내해 주게나.”
“별채로 모시겠습니다.”
당연히 곽휘운이 직접 별채로 서무제를 안내했다.
“호오? 별채를 식사를 하는 곳으로 쓰다니, 괜찮군.”
“감사합니다.”
그때 백리화가 음식을 직접 들고 별채로 들어왔다.
순식간에 별채를 가득 채운 음식.
성주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황중식이 심혈을 기울여 요리한 음식들이다.
모습부터 향까지 정말 군침을 돌게 했다.
오죽하면 평소 음식에 별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던 곽휘운마저 꼭 먹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맛을 볼까.”
서무제는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바로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하하! 이게 정말 객잔에서 나오는 음식이란 말인가? 무전. 마차로 가 술을 가져와라.”
“예.”
서무제의 말에 옆에 서있던 호위병 한 명이 마차로 가서 술병 하나를 들고 왔다.
그리 특출나 보이지 않았지만, 병의 뚜껑을 여는 순간 그 생각은 없어졌다.
주변을 순식간에 휘어잡는 술향.
보통 술이 아니었다.
“좋은 음식에 좋은 술이 빠질 수는 없지. 자자. 너희들도 음식을 먹고, 객주도 거기 앉아서 음식을 먹게. 내가 술 한 잔 줌세.”
서무제의 말에 호위병들이 바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론 서무제를 완전히 보호하는 형태로 말이다.
곽휘운도 서무제가 가리킨 맞은편자리에 앉았다.
“자. 받게.”
“감사합니다.”
서무제는 곽휘운의 술잔에 술을 한잔 따라주었다.
쪼르륵.
“마시게.”
곽휘운은 바로 술을 입에 털어 넣었고, 눈이 대번에 커졌다.
지금까지 곽휘운이 맛본 적 없는 맛의 술.
혀끝에서부터 목을 넘어가 위장까지 깔끔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찾아오는 후끈한 주향.
하지만 전혀 역하지 않고, 오히려 달콤했다.
“어떤가? 좋은 술이지?”
“예. 제가 마셔본 술 중 최고입니다.”
“하하. 내가 직접 담근 것이네.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군.”
서무제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술도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술을 직접 담가 마셨다.
“내가 청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는가?”
계속해서 음식과 술을 하던 서무제가 입을 떼었다.
‘청?’
성주가 일개 객주에게 청을 할게 뭐가 있단 말인가?
곽휘운은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들어주기 곤란한 청이 아니길 바라면서 말이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듣기로 자네가 뛰어난 무인이었다고 들었네. 그래서 말인데……. 나와 대련을 한번 해 줄 수 없겠는가?”
“예?”
* * *
곽휘운은 갑자기 백리세가에 만들어 놓은 연무장에 서무제와 검을 들고 섰다.
서무제가 대련을 하자는 청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대련을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강약의 조절이었다.
자칫 성주를 다치게 한다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설렁설렁한다면, 성주의 성격상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봐주지 말고, 실력을 보여 주게. 내 팔 하나가 떨어져나가도 상관치 않겠네.”
“하하……. 알겠습니다.”
방금 서무제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평소 무림인들을 동경해 왔다.
그래서 그들의 무공을 보거나, 그들과 대련하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자신도 그들 못지않게 무공을 익혔고 말이다.
‘그래도 곤란하군.’
갑자기 절강성의 성주와 무공 대련이라니.
파란만장한 곽휘운의 인생 속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특이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자. 자네의 무공을 보여 주게!”
짙은 미소와 반짝이는 눈빛을 보여 주는 서무제.
지금 너무나 기대 된다는 모습이었다.
“후우. 가겠습니다.”
곽휘운은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오히려 더 크게 경을 칠 것이란 것을 서무제의 미소와 눈빛에서 느꼈다.
슈우우우욱.
주변을 감싸고도는 하얀 구름.
서무제는 이 구름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내공을 끌어올렸다.
서무제가 익힌 무공 ‘만천구검(滿天九劍)’.
하늘을 가득 채우는 아홉 개의 검이란 이름처럼 서무제의 주위에 아홉 개의 검영이 나타났다.
상당한 고수일 것이란 건 짐작했지만, 직접 보는 서무제의 무공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