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13화 (13/203)

<휘운객잔 13화>

백리화는 곽휘운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뭐. 재미난 이야기는 없을 겁니다. 그저 맹에서 내려온 임무를 수행하고, 마두들을 죽이는 일만 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하다가 멸마대에 들어가셨나요?”

“어린 치기였을 겁니다. 나와 아버지를 버리고 간 어머니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말입니다.”

순간 곽휘운의 눈에서 분노, 슬픔, 그리움이란 감정이 동시에 나타났다.

백리화는 그 눈을 보고는 어머니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를 두고 무작정 무림맹을 찾아갔고, 거기서 무공을 처음 배워 멸마대에 들어갔습니다.”

곽휘운은 담담하게 멸마대에 들어갔던 순간부터의 이야기를 하였고, 백리화는 말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경청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점원이 다시금 돌아왔다.

“여기 어울리실 만한 옷을 추려서 가져왔습니다.”

딱 보아도 화려해 보이는 옷들.

곽휘운이 지금까지 입어본 적 없는 옷들이었다.

“자자. 객주님 하나씩 입어 보실까요?”

“정말 해야 합니까?”

“당연하죠.”

곽휘운은 떠밀리듯 한쪽 구석에 가서 차례차례 옷을 갈아입어보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백리화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역시 객주님은 미남이시네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니요. 이건 사실이에요. 그쵸?”

“네.”

옆에 있던 점원도 백리화의 말에 동의해 주었다.

점원이 보기에도 곽휘운은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자자, 이제 마지막이에요.”

“후. 알겠습니다.”

곽휘운은 마지막 남은 그나마 조금은 수수해 보이는 백의로 갈아입었다.

“어머. 이게 딱 이시네요.”

“잘 어울리십니다.”

화려한 옷들도 잘 어울렸지만, 수수하고 단정한 옷이 훨씬 잘 어울리는 곽휘운이었다.

그 반증으로 백리화와 점원은 지금 곽휘운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걸로 주세요.”

“아, 제가 값을…….”

“아니요. 이건 제가 사 드릴게요.”

백리화가 얼른 돈을 지불했다.

곽휘운에게 받기만 했으니, 작은 것이지만 옷이라도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곽휘운은 그대로 옷을 입은 채로 백리화와 포목점을 빠져나왔다.

“백의는 오랜만에 입는 것 같습니다.”

“잘 어울리시네요. 앞으로 그 흑의랑 같이 번갈아 입으시면 될 것 같아요.”

“저도 이렇게 입고, 객잔에 나와 있어야 합니까?”

“뭐, 그건 객주님 마음이시죠. 하지만 나와 계시면 분명 손님이 더 많아질 거예요.”

객잔에 대한 이야기와 건물들이 모두 지어졌을 때, 백리세가를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걸었다.

이야기에 열중해서인지 금방 백리세가 앞에 당도했다.

“이 옷 감사히 잘 입겠습니다.”

“호호. 네. 그럼 내일 봬요.”

인사를 서로 나누고는 백리세가 앞에서 헤어졌다.

곽휘운은 백리화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는, 갑자기 빠르게 신형을 움직였다.

탓.

목적지는 백리세가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

숲 속에는 세 명의 인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소빙룡이란 놈이냐?”

“맞습니다.”

* * *

천주룡은 흑살대가 손도 써 보지 못하고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돌아왔다는 보고에 눈을 치떴다.

“뭐라? 흑살대가 상처 하나 내지도 못했다고?”

“예.”

“소빙룡이 그 정도로 강한가?”

“오룡 중 한 명이니, 필히 숨겨 둔 수가 많을 것입니다.”

흑살대라면 웬만한 무인들은 소리 소문 없이 죽일 수 있었다.

그렇게 훈련시킨 이들이고,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없었다.

소빙룡을 죽일 수는 없을지 몰라도, 큰 상처는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흑살대로 적당히 위협을 가해 간을 보려했는데, 완전히 실패해 버렸다.

“식객 중 절강삼악이랑 탈혼창을 보내라.”

“예.”

천수검문의 식객들은 천주룡이 부탁한 일을 거절할 수 없다.

그걸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식객을 받는 것이니 말이다.

지금 천수검문에 있는 식객들 중 가장 실력이 좋은 이들이 절강삼악과 탈혼창이었다.

절강삼악은 꽤나 많은 악행을 일삼고 다니는 자들이었지만, 천주룡에게 패배하고 개심하여 천수검문의 식객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고, 탈혼창 또한 천주룡에게 패배하고 자진해서 천수검문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이라면, 소빙룡이라도 쉽사리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회에서는 무슨 연락이 없었나?”

“조만간 사람을 보내온다 했습니다.”

“사람을?”

“예. 아무래도 조만간 일을 시작할 것 같습니다.”

천주룡은 일이 시작될 것이란 말에 눈을 빛내었다.

회는 철저히 그 모습을 숨기고 일을 진행한다.

분명 항주에도 회에 가입된 곳이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철저한 점조직이기에 서로가 회에 가입되어 있는지 모르는 실정이다.

하지만 일이 시작된다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그때가 되면 회의 힘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회의 연락책이라는 자가 보여 준 힘은 정말 엄청났지.’

어느 날 의문의 남자가 천주룡을 찾아왔다.

그는 힘을 줄 테니, ‘회’라는 곳에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당연히 천주룡은 당연히 개소리라 생각해 그를 쫓아내려 하였다.

하지만.

그자가 보여 준 단 일 수를 보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단 일 수에 문도 열 명과 내 검이 동강 날 줄이야.’

그자가 휘두른 일 검에 그를 쫓아내려던 문도 열과 홧김에 뽑아들었던 자신의 검이 잘렸다.

그자는 자신은 그저 회의 연락책일 뿐이고, 더 강한 자들이 회에는 널려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자가 선물이라며 준 검은 단약 하나.

그걸 먹고서는 천주룡은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회에 들어가기로 말이다.

‘내공이 순식간에 늘다니.’

단역을 먹자 내공이 순식간에 늘었다.

그리고 연락책은 공을 세울 때마다 이 단약을 주겠다고 했다.

무인이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일을 시작할 때 다시 알리고, 그만 나가봐.”

“예.”

천주룡의 집무실에서 부하가 빠져나갔고, 천주룡은 자신의 책상 가장 은밀한 곳에 있는 목갑을 하나 꺼내어 들었다.

딸칵.

목갑을 열자 보이는 아주 검은 단약 하나.

조금 더 내력이 쌓였을 때 먹기 위해 아껴둔 단약이다.

“일이 시작되기 전에 일단 먹어 둬야겠군.”

탁.

천주룡은 목갑을 닫은 뒤, 자신의 개인 연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곽휘운의 앞에 서있는 세 명의 인물.

절강삼악이었다.

그들은 절강성에서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만들 정도의 악행을 일삼던 자들이었지만, 천주룡의 힘을 보고는 그에 매료되어 천수검문에 식객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무림맹에 평생을 쫓겨 다닐 신세를 완전히 고쳤다.

“멸마대의 대주라면 언젠가는 만나기는 했겠군.”

“얼굴들을 보니, 절강삼악이신 것 같습니다.”

“하하. 우리가 멸마대의 대주에게 이름이 들어갈 정도로 꽤나 대단했던 모양이군.”

커다란 도를 든 자가 절강삼악의 첫째인 대악, 언월도를 든 자가 둘째인 잔악, 쌍월을 든 자가 셋째인 흉악이었다.

곽휘운이 멸마대에 있을 때, 절강성에서 나름 유명한 그들을 처리하라는 임무를 받았었다.

하지만 돌연 임무가 취소되었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었는데, 아무래도 저들이 천수검문에 들어가게 되면서 임무가 취소가 된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들에 대해 잊고 살았는데, 이렇게 다시금 눈앞에 그들이 나타나자 대번에 그때 보고받았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바로 정체를 알아맞힐 수 있었다.

“좋은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실 테고, 바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소빙룡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볼까나?”

각자의 무기를 쥐고 찰나의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곽휘운의 입가에 아주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모두가 잠잘 시간이니, 빨리 끝내겠습니다.”

“건방진 놈!”

절강삼악 셋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무림맹의 눈을 피해 도망치면서,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는 감을 가졌는데, 그 감이 지금 눈앞의 곽휘운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왔다.

“덕분에 수고는 덜겠습니다.”

절강삼악 셋이 펼치는 합격은 나름 그 위력이 출중했다.

천주룡 말고는 이 합격을 받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으니 말이다.

슈우우우욱.

그때 곽휘운을 중심으로 하얀 구름 같은 것이 휘돌기 시작했다.

휘돌던 구름은 넓게 퍼지면서 그대로 절강삼악을 집어 삼켰다.

- 휘운검법. 제 이초. 참.

서걱.

무언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 주변을 뒤덮은 구름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몸이 동강나있는 절강삼악 셋의 시체.

절단된 부분은 극한의 추위에 얼어붙은 듯 완전히 얼어 있었다.

이것이 진짜 휘운검법의 위력이었다.

“천수검문이라……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계속해서 이렇게 한단 말이지.”

곽휘운은 자신이 소빙룡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번 살수도 그렇고 천수검문이 이렇듯 계속해서 수를 쓴다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천수검문은 그래도 정도 문파로 분류된 곳인데, 무림맹에 몸담았던 자신을 이렇게 집요하게 죽이려고 하다니.

그저 거래를 망쳤다는 이유로 이러기에는 너무 과했다.

“대비를 더 단단히 해야겠어.”

뭔가 구린 냄새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무림맹을 나오기 전까지 들은 바로는, 최근 무림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고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이 암약하고, 꽤 많은 정도 문파들이 그 집단에 동조하고 있다고 말이다.

천수검문이 그 집단과 관계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의심해 볼 만했다.

‘이런, 또 직업병이 도졌군.’

자신은 이제 멸마대 대주가 아니고, 그저 객잔 주인일 뿐이다.

이 이상 나서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옳았다.

이런 일은 무림맹에게 맡기면 된다.

물론 이 이상 천수검문이 더 큰 일을 벌인다면, 그때는 조금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였다.

‘선을 넘으면…… 그때는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겠지.’

* * *

곽휘운이 자리를 비운 휘운객잔.

남주학과 제갈중천이 객잔 아래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넌 진법만 설치하고 갈 거지?”

“아니. 나도 여기에 계속 있을 것이네.”

“왜? 너는 필요 없어. 나랑 대주님만 있으면 되거든.”

“필요할 것이네. 자네같이 천방지축만 있으면 객주님이 얼마나 힘들어하시겠나?”

“뭐? 천방지축? 죽을래?”

“아직 죽기는 이른 나이일세.”

티격태격 싸우는 두 사람.

하지만 이건 두 사람이 우정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멸마대에 있을 때부터 둘은 언제나 이렇게 지내왔으니 말이다.

“음? 누군가가 이곳에 침입을 한 것 같네.”

지금은 손님을 받지 않는 야심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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