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1화>
휘운객잔은 이미 항주 바닥에 소문이 꽤나 퍼져서, 식사 때만 되면 사람들이 넘쳐났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환상적인 맛의 음식이 나온다고 소문이 났다.
“주학이 주변은 언제나 여자 손님들로 넘치는군.”
남주학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변은 오로지 여자 손님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남주학이 무림맹에 있을 때도, 그의 얼굴을 보겠다고 담을 넘어 오는 여인도 있었으니 말이다.
“남 호위님이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눈치싸움이 장난 아니래요. 심지어는 돈을 받고 팔기도 한다더라고요.”
위층 정리를 끝낸 백리화가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곽휘운에게 자신이 들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남 호위님이 아예 객잔의 얼굴이 되면, 아마 순식간에 항주에서 제일 바쁜 객잔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네……?”
백리화는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에, 곽휘운이 좋다고 하자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백리화도 무인이기에 잘 알지만, 무인들은 저렇게 얼굴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남주학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는 게, 지금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완전 무표정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한 표정.
딱 봐도 지금 상황이 못마땅한 표정이지 않은가?
“주학아. 잠깐 이리로.”
“네에~”
곽휘운이 부르자, 신나서 달려오는 남주학.
백리화가 보기에 남주학은 마치 귀여운 강아지 같았다.
곽휘운이 부르면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달려오는.
“드디어 네가 아주 잘 할 수 있는 임무를 주려고 한다.”
“오오. 드디어 저도 번듯한 일을 하는 군요. 뭐죠? 가서 그 천수검문인지 하는 놈들을 쓸어버리고 올까요?”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오오!!”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곽휘운을 바라보는 남주학.
그 눈에 언뜻 보이는 충성심은,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네가 휘운객잔의 얼굴마담이 좀 되어야겠다.”
“네?”
남주학은 곽휘운의 말을 이해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객잔 정중앙에 서 있어라.”
“객주님! 제가 구경 당하는 거 안 좋아하시는 거 아시잖아요!”
“부탁하마. 대신 네가 원하는 걸 내가 들어주도록 하마.”
“!!”
곽휘운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대번에 남주학의 표정이 변했다.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두 눈.
곽휘운은 그 눈을 보고는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싶었다.
“그 말 꼭 지키세요.”
“물론이지. 네가 잘하면, 원하는 걸 하나 더 들어주마.”
곽휘운은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했다.
남주학이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주든 두 개 들어주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흐흐흐. 좋아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남주학은 쏜살같이 자신이 머무르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금 나타난 남주학.
“와…….”
누군가의 탄성과 함께 객잔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남주학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도 똑같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음 역시.”
곽휘운도 지금 남주학의 모습에 새삼 감탄을 했다.
머리카락은 아주 말끔하게 정리해 뒤로 질끈 묶었고, 얼굴에 난 잔 수염은 깔끔하게 정리했다.
작정하고 꾸미고 나온 남주학의 외모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와! 남 호위님 정말 미남이시네요.”
외모를 따지지 않는 백리화였기에, 그냥 아주 잘생긴 사람이구나라고 속으로 생각만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남주학의 모습은 백리화마저 조금은 가슴이 떨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객주님. 제가 원하는 거 꼭 들어주셔야 해요.”
“그래.”
남주학이 객잔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고 섰고, 그 중심으로 다시금 치열한 자리싸움이 시작되었다.
“비켜! 내 자리야!”
“내가 먼저 왔거든?”
점점 과격해질 조짐이 보이는 자리싸움.
그때 남주학이 움직였다.
“소저들. 이곳은 객잔이니 싸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이 사이좋게 같이 합석하신다면 제가 굉장히 기쁠 것 같습니다.”
살짝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하는 남주학.
그 위력은 실로 놀라웠다.
“네……. 그럴게요.”
“아이참. 저희가 언제 싸웠다고요. 호호호.”
방금 전까지 눈을 치켜뜨고 서로 싸우던 둘이 금방 얌전해졌다.
게다가 얼굴에는 붉은 홍조까지 띄우면서 부끄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남 호위님 한두 번 해 보신 솜씨가 아닌데요?”
“임무 중에 주학이가 미남계를 써야 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멸마대의 임무는 가릴 것 없이 다양했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중 미남계가 필요한 임무가 가끔씩 있었고, 그때마다 남주학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남주학이 보이는 모습은 철저히 훈련된 미남계였다.
“객주님은 안 해 보셨나요?”
“…… 안 해 봤습니다.”
“흐으음. 해 보신 것 같은데요?”
“저는 주학이 대신 호위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곽휘운.
백리화는 그런 곽휘운의 뒷모습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분명 해 보셨네. 반응이 재밌다니까.’
무공도 뛰어나고, 웬만한 일은 차분하게 넘기는 곽휘운이지만. 이런 질문에는 익숙하지 않은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고는 한다.
백리화는 그런 곽휘운에게 사람냄새가 느껴져서 좋았다.
‘객주님도 꾸미면 남 호위님 못지않을 것 같은데…….’
객잔을 잘 둘러보면, 남주학 말고 곽휘운을 흘끔거리는 여인들도 많았다.
남주학은 선이 곱고 미려한 미남이라면, 곽휘운은 선이 짙고 남자다운 미남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살짝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는 두 사람이 기대도 남을 것 같아보였다.
“객주님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시간은 됩니다만…….”
“그럼 저랑 같이 시장 좀 가주세요.”
“시장을요? 흠. 알겠습니다.”
곽휘운은 백리화가 왜 갑자기 시장을 가자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따라나서기로 했다.
백리화 혼자 시장을 돌아다니게 하기에는 조금 불안하기도 했고 말이다.
얼마 전 야습이 있었으니,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몰랐다.
“이놈!!! 이 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그때 객잔 밖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벌서부터 어떤 상황일지 떠오를 만큼 뻔한 대사.
객잔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일일지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이분은 대산문의 장로이신 흑철권 님이시다!”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일부러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소리를 높인 것이었다.
자신들 힘의 과시를 위해서.
“비리비리한 놈이 감히 흑철권 님이 지나가시는 길을 막아?”
“나를 밀치고 간 것은 당신들이지 않소이까?”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휘운객잔으로 식사를 하러 오던 대산문 무인들은 객잔 앞 쪽에 있던 사내를 옆으로 툭 밀쳤다.
대산문의 장로인 흑철권이 행차하는 앞길에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에 사내가 밀친 것을 사과하라고 하자, 오히려 대산문 무인이 큰 소리를 내면서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신들? 허! 이 어린놈이 감히!”
휘익!
대번에 뻗어나가는 주먹.
나름 힘이 실린 일 권이었다.
보통 사내라면 한 대 맞는 것만으로, 입에서 신물을 내뿜을 만한 위력.
턱.
그런데 너무나 가볍게 사내의 손에 잡혀 버렸다.
“억?”
주먹을 내뻗었던 대산문 문도의 입에서 절로 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름 강하게 내뻗은 주먹이었는데, 너무나 손쉽게 잡혀 버렸으니 당연했다.
“이, 이놈. 한 수가 있었구나!”
휘익!
대산문 문도는 방금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번에는 내공을 가득실어서 일 권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상대가 방금처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턱.
하지만 이번에도 똑같이 붙잡혀 버렸다.
조금의 미동 없는 표정과 자세.
대산문 문도는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사내가 생각보다 훨씬 고수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우리 대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셨소. 당신들도 그것을 알았으면 좋겠구려.”
툭.
사내가 잡고 있던 흑산문 문도를 그대로 살짝 밀었다.
“어어?”
쿠당탕!
살짝 민 것 같았는데, 흑산문 문도가 그대로 쭉 날아가 땅에 쳐 박혔다.
“젊은 놈이 꽤나 실력을 쌓았나 보구나.”
* * *
대산문 문도들을 헤치고 한명의 중년인이 나타났다.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딱 보아도 단단한 체격을 가진 모습이었다.
그가 바로 대산문의 장로 중 한명인 흑철권 하중진이었다.
대산문은 천수검문과 함께 절강성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는 곳으로, 그곳의 장로라면 절강성 어디에서도 대접받을 만한 고수란 소리였다.
“객주님 일이 커지기 전에 말려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상황을 지켜보던 백리화가 곽휘운에게 다가가 말했다.
객잔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니, 일이 더 커지기전에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것이 좋았다.
행여 객잔 앞에서 살인이라도 나는 날에는…….
“똑똑한 놈이니 알아서 잘 해결할 겁니다.”
“네? 아는 분이세요?”
“예. 제갈중천이라고, 예전에 참모를 했던 친구입니다.”
“아!”
백리화는 얼마 전에 곽휘운에게 곽휘운과 남주학이 무림맹 멸마대의 대주와 부대주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그럼 지금 저 사람도 멸마대 소속이구나.’
지금 저 앞에 서있는 사내가 멸마대의 참모였던 사람이라는 뜻.
백리화는 그래도 조금 마음이 불안했다.
흑철권에 대한 이야기는 백리화도 몇 차례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때려서, 곤죽을 내놓는 다고 들었다.
참모라면 아무래도 머리를 쓰는 직책이니, 무공 실력은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공 실력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리화의 생각을 읽은 듯한 곽휘운의 말.
백리화는 곽휘운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주 편안한 표정의 곽휘운.
그 표정을 보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백리화였지만, 그래도 완전히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대산문과 문제가 생기면, 앞으로 객잔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생길지 몰랐다.
게다가 객잔은 이미 천수검문과 문제가 있었다.
더 이상의 적을 두면 곤란해질 수 있었다.
“네 이름이나 들어보지. 이름이 뭐냐?”
“제갈중천이라 하오.”
“제갈……?”
흑철권은 제갈중천의 이름을 듣자마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갈이라는 성이 주는 압박이었다.
천하오대세가 중 한 곳인 제갈세가는, 절강성에서 이름 좀 날리는 대산문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제갈세가의 넷째 공자라고 하면 더 알아듣기 쉽겠소?”
“!!”
“!!”
그냥 제갈이라는 성씨를 쓰는 것만으로도 흑철권이 경거망동하지 못했는데, 직계 혈족인 사공자라면 이건 아주 문제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