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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9화 (9/203)

<휘운객잔 9화>

객잔의 밤.

낮보다 더 많은 손님이 모여들었고, 주방에 있는 황중식은 쉴 틈도 없이 요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응? 겨우 이정도가지고 그럴 필요 없네. 그렇게 늙지는 않았어.”

“하하. 알겠습니다.”

황중식에게 이정도 크기의 객잔을 혼자 맡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예전에는 훨씬 더 큰 곳을 거의 혼자 도맡아 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어떤가? 첫 날의 소감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첫날은 잘 모르는 게 맞지. 하하.”

황중식은 많은 객주들을 보아 왔다.

당연히 처음 객주가 되어 객잔을 연 객주들도 있었다.

그들도 모두 지금의 곽휘운처럼 첫날에는 뭐가 뭔지 잘 몰랐다.

아마 조금 시간이 흐르면, 느끼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제 슬슬 문을 닫을 시간이지?”

“예.”

“좋아. 그럼 첫 날이니 다들 모여서 식사나 하자고 하게. 내가 솜씨 좀 부려 볼 테니.”

“예. 알겠습니다.”

곽휘운은 점이들과 남주호에게 황중식의 말을 전해 두고, 위층에 있는 백리화를 찾아 올라갔다.

몇 개의 방이 사람들로 들어찼다.

백리화는 그들에게 이리저리 안내를 해 주고, 빈 방들을 주기적으로 오가며 침구를 확인하고 정리하고 있었다.

“백리 총관님.”

“아. 네. 객주님.”

백리화는 이제 위층 정리를 마치고, 일 층으로 내려갈 참이었다.

총관이라는 직책인 만큼 객실만 맡을 수는 없었다.

식사를 하는 일 층까지 모두 맡아야 했다.

“황 숙수님께서 오늘 문을 닫는 시간에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시는데 어떠십니까?”

“알겠어요. 첫 날이니 당연히 참여해야죠.”

오늘은 첫 날이니 당연히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이 좋았다.

“백리 총관님 힘드시진 않습니까?”

“이걸로 힘들다고 하면, 돈을 받을 자격이 없는 거죠.”

“힘들면 조금 쉬면서 하셔도 됩니다.”

“알겠어요. 하지만 이것도 수련의 일부라 생각하면 조금도 힘들지 않아요.”

백리화는 객잔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이 수련의 연장선이라 생각했다.

움직이는 것 하나 하나가 모두 수련이었다.

“그럼. 제가 수련법 하나 알려 드릴까요?”

“예?”

“움직이면서 할 수 있는 수련법인데, 원하신다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가르쳐 주세요.”

백리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르쳐달라고 했다.

곽휘운이 엄청난 고수라는 것도 알았고, 지금 백리화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배울 수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었다.

물론 곽휘운이 얼마나 고수인지는 모르는 백리화였지만, 아까 전에 보여 준 모습만으로도 곽휘운이 고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인맥도 넓고, 돈도 많고, 무공도 고강한 사람이 고작 객잔이나 한다니?’

백리화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지만, 금방 머릿속에서 털어내었다.

도망치지 않기로 하지 않았는가?

“간단한 것이니 지금 바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네.”

손님이 없는 빈 객실.

곽휘운은 차근차근 걸음을 옮기며, 내공을 움직이는 법을 백리화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요?”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곽휘운은 백리화의 등에 손을 대었다.

“어맛.”

백리화의 등을 타고 흘러 들어가는 곽휘운의 기운.

아주 시원한 느낌의 기운이었다.

“이 길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곽휘운의 시원한 기운이 백리화의 몸속을 이리저리 움직였고, 백리화는 그 길을 머릿속에 기억했다.

“자. 다시 해 보십시오.”

“네.”

곽휘운이 알려 준 대로 기운을 움직이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백리화.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작은 객실을 한 바퀴 돌았는데, 벌써 등에 땀이 한줄기 흘러 내렸다.

“잘하셨습니다. 역시 백리 총관님은 재능이 있으십니다.”

“그럴 리가요.”

“아니요. 정말입니다. 분명 금방 성취를 보실 겁니다.”

백리화는 가만히 곽휘운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도 한 점의 거짓이 없는 두 눈.

그리고 더 없이 진중하기까지 하다.

“이만 내려가서 식사 하실까요?”

“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먼저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곽휘운.

백리화는 그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물론 방금 곽휘운이 가르쳐 준 대로 움직이며 말이다.

“객주님. 총관님 여기요!”

벌써 거하게 한 상이 차려져 있었고, 객잔 식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정말 맛있어 보입니다.”

“맛은 내가 보장할 테니 어서 먹지.”

객주인 곽휘운이 첫 젓갈을 뜨는 것으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도란도란 이야기가 오가는 저녁 식사.

가볍게 술도 한두 잔 오가고, 딱 기분 좋을 취기가 올라올 때 자리를 파했다.

점소이들은 곧바로 자신들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갔고, 황중식은 오늘은 빈 객실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백리화.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밤이 늦었으니,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저도 무인인걸요.”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거기에 음식도 이렇게 많이 챙겼으니 같이 가시지요.”

“감사합니다.”

남주학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객잔에 남겨두고, 곽휘운과 백리화가 걸음을 옮겼다.

희미하게 빛나는 초승달과 별 몇 개만 하늘에 떠있는 어두운 밤.

하지만 그것도 항주라 그런지 나름 운치가 있었다.

“밤에 걷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밤에는 밤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좋습니다.”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는 백리화와 곽휘운.

누가 본다면 서로 연인사이로 오해할 법한 모습이었다.

“백리 총관님의 꿈은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다시 백리세가를 일으키는 거예요. 객주님의 꿈은 어떻게 되세요?”

“휘운객잔을 항주제일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객주님 주위에는 좋은 분들이 많으니까요.”

“하하. 그건 백리 총관님도 포함입니까?”

“……솔직히 제가 아니라 다른 더 뛰어난 사람이 총관으로 있다면, 훨씬 빠르게 그 꿈을 이루실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백리 총관님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백리화는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누군가에게 이런 칭찬을 듣는 것이 얼마만인지 몰랐다.

“백리 총관님은 조금 더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백리 총관님의 꿈이라는 백리세가의 부흥은 꼭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는 백리 총관님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가, 감사해요.”

사삭.

스슥.

그때 갑자기 주변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내는 소리와 차이가 없을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곽휘운은 바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총관님 잠시만.”

스릉.

곽휘운은 곧바로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는 백리화를 자신의 바로 뒤로 위치하게 했다.

“나오십시오.”

스스슥.

곽휘운의 말에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솟아 올라왔다.

완전히 곽휘운을 포위한 형태.

누가보아도 그들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나타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살.”

누군가의 말에 일제히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조금 짧은 검.

보통 살수들이 많이 이용하는 검의 형태였다.

“제 뒤에 꼭 붙어 계십시오.”

“네.”

휘이잉.

순식간에 사방을 잠식하는 엄청난 한기.

그리고 곽휘운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 휘운검법. 제이 초. 참(斬).

곽휘운은 싸움을 길게 할 생각이 없었다.

저들은 명백한 살의를 가지고 공격해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손속에 자비를 둘 필요가 없다.

피핏.

한기를 뚫고 곽휘운에게 달려들던 이들에게서 작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제일 앞쪽에 달려들던 이들의 몸이 그대로 동강이 났다.

피 한 방울 나오지 않고 마치 통나무처럼 잘려진 몸통.

곽휘운의 한기에 피가 꽁꽁 얼어붙어 흐르지 않는 것이었다.

“!!”

“!!”

백리화도 그림자들도 모두 놀랐다.

곽휘운의 검이 움직이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그런데 달려들던 이들이 그대로 반으로 갈려 죽었다.

“살.”

주춤하던 그림자들이 명령에 다시금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모두 몸이 동강이 나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마치 곽휘운의 주변에 다가가면 알아서 몸이 갈라지는 듯 했다.

“퇴!”

그림자들은 자신들이 곽휘운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느꼈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도망쳤다.

곽휘운은 따라갈까 했지만, 백리화도 있고, 다리도 예전 같지 않으니 포기했다.

“백리 총관님 괜찮으십니까?”

“예? 아, 네. 괜찮아요…….”

백리화는 방금 본 곽휘운의 무위에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곽휘운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 무위.

확실한 것은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뿐이었다.

“흐음……. 생각보다 집요한 자들이군. 조치가 필요하겠어.”

곽휘운은 천수검문이 생각보다 집요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이 싸움은 둘 중 하나가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소빙룡이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이리 공격한 걸 보면 말이지.’

곽휘운은 자신과 남주학은 걱정하지 않았지만, 다른 객잔 식구들의 안전이 걱정 되었다.

아무래도 생각한 계획을 조금 빨리 실행할 필요가 있을 듯싶었다.

“조금 흉이 있었지만, 일단 계속 가시죠.”

그렇게 방금 전 싸움을 뒤로한 채 계속 걸음을 옮겼고, 백리세가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 여기에요.”

무언가 부끄러워하는 듯한 백리화의 말.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백리세가는 세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모습이었다.

단출한 집 한 채.

문 위에 있는 ‘백리세가’라 쓰여진 현판만이 이곳이 백리세가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 * *

백리세가.

과거 천하오대세가라 불렸던 검의 명가.

불세출의 고수인 검황 백리정천이 세운 곳으로, 전성기 때는 천하제일검가라 불리는 남궁세가와 비해서도 밀리지 않는 성세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백리세가의 몰락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직계에게만 구두로 전해지던 백리세가의 무공이 갑작스러운 가주의 죽음으로 모두 전해지지 못한 채 절전되고 말았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가 내부에서 배신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와 그간의 성세가 무색하게 순식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백리세가가 몰락해 비워진 자리를 사마세가가 새로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백리세가에 대한 흔적은 무림에서 빠르게 지워져 갔다.

“무인이라면 언제나 칼 끝 위에 사는 것이라 배웠으니, 그런 일에 겁을 먹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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