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8화>
점소이는 막힘없이 요리들을 말했고, 손님은 그 중 몇 가지를 골라 주문했다.
“허어. 냄새만으로도 배부르구만.”
“꿀꺽. 그러게 말일세.”
요리하는 냄새만으로도 사람들의 입에서 침을 고이게 만드는 황중식.
과연 괜히 북경제일이란 이름이 붙은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 요리 나왔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뚝딱 만들어져 나온 요리.
그런데 그 속도가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리 빨리 나온다고?”
“어, 어서 맛이나 보세.”
사람들은 엄청난 속도로 나온 요리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미 냄새에 홀려 재빠르게 젓가락을 움직였다.
쩝쩝.
“!!”
“!!”
음식을 한입 입에 넣은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이런 객잔에서 맛볼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맛.
사람들은 말없이 바쁘게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금세 바닥을 보이는 음식.
“한 그릇 더!”
“여기도!”
한 그릇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양.
사람들은 너도나도 음식을 더 주문하기 시작했다.
곽휘운은 그 모습에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멸마대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었다.
‘흐음. 좋아.’
아무래도 새로이 객잔이 문을 열었다는 소문이 항주에 돌았는지,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온 이들은 하나같이 눈을 크게 뜨며, 음식을 칭찬하기 바빴다.
그렇게 모여든 손님들로 어느새 북적이는 객잔.
첫 날에 이 정도라면, 꽤나 괜찮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꼭 이상한 놈들이 존재하는 법.
“어이! 이봐!”
“예.”
점소이를 불러 세우는 한 사내.
등에 기다란 창을 메고 있는 것을 보니, 무인인 듯싶었다.
“내 음식에서 벌레가 나왔다. 어떻게 할 거지?”
사내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거미 한 마리.
객잔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 왕왕 벌레 같은 것들이 음식에 빠지기도 했다.
점소이는 얼른 허리 숙여 사과를 한 뒤, 새 음식을 내오겠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얼른 새 음식을 내오겠습니다.”
“흥. 겨우 점소이가 사과한다고 이 ‘삼응창’님의 분이 풀리지가 않는다. 객주를 나오라 해라.”
삼응창(三鷹槍) 장추웅.
항주에서 나름 이름이 있는 무인으로, 창을 매처럼 날렵하게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다만 그에게 늘 따라다니는 추문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객잔을 돌아다니며, 갖은 누명을 씌워서 돈을 뜯어낸다는 것이었다.
항주에서 그에게 돈을 뜯긴 객잔이 열 손으로 세어도 부족할 정도이니 말은 다했다.
“예에? 하지만…….”
탕!
점소이가 객주를 부르는 것을 망설이자, 식탁을 거칠게 내려치는 삼응창.
일순간 객잔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자 슬쩍 웃는 삼응창.
그가 원하던 결과였다.
“벌레가 나와서 비위가 상했는데도, 그저 죄송하단 인사로 퉁을 치려고 해? 장사를 그렇게 한단 말이지?”
“그것이 아니라 분명 음식을 새로…….”
“닥쳐라! 제대로 사과를 받아야겠으니, 객주를 나오라고 해라. 그렇지 않으면 험한 꼴을 보게 될 테니까.”
이런 소란이 나면 객주가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이목이 집중된 만큼 객주는 일을 좋게 마무리 지으려고 할 터.
삼응창은 항상 이런 식으로 돈을 뜯어내었다.
스윽.
탓.
“제가 객주입니다.”
그때 객잔 한 편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곽휘운이 삼응창의 앞에 나타났다.
삼응창은 물론 객잔의 손님 누구도 곽휘운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는 갑자기 곽휘운이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였다.
“흠! 그래 객주양반 잘 나왔소. 내 음식에서 벌레가 나왔는데, 이걸 어떻게 하실 거요?”
삼응창은 잠깐 놀랐지만, 금방 가다듬고는 곽휘운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 다들 집중했다.
“음식에 벌레가 나왔다면, 응당 음식을 새로 해 드려야지요.”
“아니. 그건 당연한 것이고, 정중한 사과와 함께, 위로금도 줘야지.”
삼응창은 당당히 돈을 요구했다.
곽휘운은 잠시간 고민에 빠졌다.
지금 돈을 조금 주고 돌려보내면, 일은 해결 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자들이 많이 올 것이고, 그때마다 돈을 줘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흐음. 저 벌레도 소매에서 넣었으면서 뻔뻔하군.’
곽휘운은 삼응창이 소매에서 슬쩍 꺼내어 음식에 벌레를 넣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더 고민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은 보았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음식에 벌레가 나왔다면, 음식을 새로 해 드릴 수는 있지만, 돈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때 백리화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객잔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아서, 위층에서 객실을 점검하다가 급하게 내려오는 길이었다.
“넌 또 뭐냐?”
“객잔의 총관인 백리화입니다.”
“총관? 아주 객잔에 있는 놈들은 다 나오려나 보군.”
“저희 객잔의 음식에서 벌레가 나온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음식은 금방 숙수님께 말씀드려 새로 해 드리겠습니다.”
쿵!
삼응창은 등에 메어 있던 창을 꺼내어 바닥을 찍었다.
명백한 위협이었다.
하지만 백리화도 무인.
이런 것에 위축될 사람은 아니었다.
“돈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정 싫으시다면, 음식 값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아니. 내 시간을 이렇게 빼앗고, 기분을 아주 상하게 했으니 돈을 더 가져와야지.”
휘잉.
한 바퀴 창을 휘두르는 삼응창.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일제히 자리를 피했다.
“더 피해를 보기 전에 돈을 가져와!”
휙!
삼응창은 더 큰 위협을 가하기 위해 슬쩍 창을 출수했다.
목표는 백리화의 어깨.
살짝 피가 나면 사람들의 공포심이 올라가고, 그럼 알아서 돈을 가져다 바칠 것이다.
“앗!”
백리화가 최근에 내공이 늘었어도, 이런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할 수 있을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삼응창이 거의 백리화의 어깨에 도달했을 때였다.
“읏?”
삼응창이 허공에서 딱 멈춰 섰다.
“객잔 안에서 칼부림은 금지입니다. 그리고 객잔 식구를 건드리는 것은 절대 금지입니다.”
천천히 조곤조곤 들려오는 곽휘운의 목소리.
자세히 보니 곽휘운이 삼응창의 창끝을 손가락으로 딱 막고 있었다.
압도적인 실력차이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
삼응창은 지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음식 값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이, 이익!”
자신의 창을 회수한 삼응창은 고심했다.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자신의 면이 서지 않았고, 그렇다고 계속 날뛰기에는 눈앞의 상대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렇게 손님을 박대하면 분명 망할 거다.”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삼응창은 음식값을 받아들고는 뒤도 보지 않고, 휘운객잔을 빠져나갔다.
다시금 조용해진 객잔.
손님들은 다시금 음식 먹는 것에 집중했다.
그들도 나름 이런 광경을 많이 보아왔기에 익숙했다.
“개업 첫날부터 소란이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에게 술 한 병씩을 돌리겠습니다.”
“우오!”
“장사 잘하는구먼!”
“다음부턴 무조건 여기로 옴세!”
곽휘운은 통 크게 객잔에 있는 모든 손님들에게 술을 돌렸다.
첫날부터 불미스러운 일을 보였으니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 생각했다.
“저 잘한 것 맞습니까?”
“네. 잘하셨어요.”
백리화에게 잘했다는 말을 듣자, 조금은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쁜 곽휘운이었다.
“아니! 객주님. 객주님이 그렇게 처리하면 저는 뭐 하러 여기 있어요?”
한 편에서 상황을 지켜만 보던 남주학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자신이 맡은 임무가 저런 놈들을 혼내 주는 것인데, 그것을 곽휘운이 해버리니 자신이 할 일이 없었다.
“너는 할 일이 없을수록 좋은 거다. 그래야 객잔이 평화롭다는 거니까.”
“그건, 맞지만……”
곽휘운의 말처럼 남주학이 할 일이 없으면 없을수록 객잔 입장에서는 좋은 것이었다.
객잔 호위인 남주학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객잔에 소란이 없다는 것이니까.
“백리 총관님. 오늘이 첫날인데, 이 정도면 괜찮은 것 맞습니까?”
“네. 솔직히 생각 이상에요. 보통 이렇게 빨리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찾아오긴 힘들거든요.”
백리화의 말처럼 첫날부터 이렇게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일은 드물다.
처음 객잔의 문을 열어도 주변에 소문이 나려면 꽤나 시일이 걸린다.
그런데 휘운객잔은 객잔 문을 열자마자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많았다.
“아마도 객주님이 아시는 분들이 이래저래 힘쓰신 거겠죠.”
“그럴 것 같다.”
남주학의 말처럼 백연상단은 물론, 천통문 마저도 곽휘운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들이 아마도 주변에 휘운객잔에 대한 소문을 흘렸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저는 다시 올라가서 객실을 점검할게요. 저녁이 되면 숙박을 하러 오는 손님들이 있을 테니까요.”
“아 예.”
백리화는 다시금 객실이 있는 위에 층으로 올라갔고, 곽휘운과 남주학도 다시금 본래 자신들이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 * *
쾅!!!
천주룡의 집무실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라? 실패했다?”
“혀, 형님. 소빙룡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광랑도와 저희만으로는…….”
앞니가 빠진 천주호는 바람빠진 소리를 입에서 내면서도 천주룡에게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형이지만, 천주룡은 가족에게도 자비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문책을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변명을 다 동원해야 했다.
“후…… 항주에 소빙룡이 내려와 객잔을 한다?”
“예. 그렇습니다.”
“어이가 없군…… 알았다. 그만 나가봐라.”
“예. 예.”
천주호는 천주룡이 나가보라는 말에 얼른 집무실을 빠져 나왔다.
천주룡의 마음이 바뀌어, 징벌이 내려질지 모르니 말이다.
“후…….”
집무실에 홀로 남은 천주룡.
“이럴 때에 소빙룡이 항주에 왔다라…….”
천주룡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무림맹 소속의 무인이 지금 이 때에 갑자기 항주에 객잔을 하겠다며 내려왔다.
그저 우연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에게도 천수검문에게도, 그리고 ‘회’에게도 중요한 때였다.
사소한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한번 적당히 간을 봐야겠군.”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흑영.”
“예.”
천주룡만 있던 집무실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흑살대를 데리고 소빙룡을 죽여라.”
흑살대는 천주룡이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살수들이다.
후기지수 중에서 오룡이라 불리는 소빙룡이지만, 아직 젊은 무인.
흑살대는 능히 일류무인도 죽일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
“존명.”
스륵.
그림자가 다시금 사라졌고, 또 다시 천주룡 혼자만 남은 공간.
천주룡은 종이에 무엇을 열심히 쓰더니, 그것을 전서구에 묶어 어디 론가로 날려 보냈다.
“황 숙수님 죄송합니다. 보조 숙수를 금방 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