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7화 (7/203)

<휘운객잔 7화>

백리화도 당연히 소환단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소림사에서 만들며, 절대로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 다고 알려진 영단.

“왜, 왜 저에게…….”

“내공이 늘면, 몸이 건강해지고, 몸이 건강해지면, 일을 열심히 하실 것 아닙니까?”

“…….”

백리화는 뭐라 말을 하지 않고, 뚫어지게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제가 이거 먹고 몰래 도망가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셨어요?”

“그럼 저희 인연은 거기서 끝이었겠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과분한 선물이에요.”

“소환단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싸다고 생각합니다.”

백리화는 곽휘운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다.

소환단을 선물이라면서 이제 막 만난 사람에게 주는 사람이 도대체 이 중원 땅에 얼마나 될까?

아마 열을 넘지 않을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백리화는 곽휘운에게 허리를 반으로 접어서 인사를 했다.

곽휘운이 어떤 사람이건, 자신에게 귀하디귀한 소환단을 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소환단에 대한 보답으로 백리화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사밖에 없었다.

“저보다 주학이에게 고맙다고 해 주시면 됩니다. 그걸 가져온 건 그녀석이니까요.”

그때 저 멀리서 짐을 한가득 들고 오는 남주학과 황중식이 보였다.

“주방에 가져다 놓게.”

“네에.”

남주학은 황중식의 짐까지 받아들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상당히 무게가 나가 보이는 짐을 아무렇지 않게 한손으로 들고 사라지는 남주학.

백리화는 남주학도 역시나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긴, 이미 얼굴부터 범상치 않게 잘생기기는 했다.

“응? 이 분은 누구신가?”

“아. 여기 이분은 객잔에 총관으로 오신 백리화 소저입니다.”

“안녕하세요. 백리화라 합니다.”

“아. 그렇군. 나는 숙수로 있을 황중식이라 하네. 잘 부탁하지.”

황중식이란 이름을 들은 백리화는 골똘히 생각에 사로잡혔다.

분명 백리화가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쳐가는 하나의 이름.

“북경제일숙수 황중식……?”

“뭐, 옛날 일이지만, 그렇게 불렸던 때가 있었지.”

“헉!”

백리화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백리화도 총관 경험이 있는 만큼, 중원의 유명한 숙수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이 들려온 이름 중 하나가 바로 ‘황중식’이라는 이름이었다.

황제가 있는 북경에서 가장 뛰어난 솜씨로 이름을 날리던 숙수.

고관대작과 황가의 핏줄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요리 실력하나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다.

그런 전무후무한 인물이 지금 백리화의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

“저, 저…….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 허명에 예를 갖출 필요는 없네. 나는 그냥 요리나 하는 숙수이니 평범하게 대해 주게.”

“네, 네!”

백리화는 이번에는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숙수로 섭외했냐는 눈빛으로 말이다.

“황 숙수님과는 작은 인연이 있습니다.”

“작은 인연이요……?”

“곽 대주가 내 딸아이와 부인의 목숨을 구해 주었네.”

북경제일숙수의 가족의 생명을 구한 것이 작은 인연이란 말인가?

소환단을 선물로 주고, 북경제일숙수의 가족을 구해낸 이력이 있다.

백리화는 곽휘운의 정체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황 숙수님만 오신 겁니까?”

“아, 가족들은 천천히 오기로 했네, 나만 먼저 온 것이고.”

황중식이 항주에서 일을 하는 만큼, 당연히 그의 가족들도 이사를 해야 했다.

황중식은 일정에 맞추기 위해 먼저 출발했고, 가족들은 북경에 있는 것들을 정리한 후에 항주로 오기로 했다.

“그럼. 황 소저도 오겠군요.”

“흘흘. 당연하지.”

곽휘운은 황중식의 딸이 온다는 이야기에 이마를 짚었다.

그녀는 곽휘운이 감당하기에 조금 벅찬(?)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사람은 다 구해진 건가?”

“이제 점소이만 구하면 됩니다.”

“점소이는 제가 아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을 불러도 될까요?”

“좋습니다. 저야 환영입니다.”

백리화와 인연이 있는 점소이들.

그들은 이미 백리화에게 검증을 받은 아이들 일테니, 곽휘운 입장에서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다 되었군 그래. 그런데 물건을 받아오는 상단은 어디로 했나?”

황중식의 물음.

객잔에 여러 가지 물품들을 납품할 상단을 어디로 했는지가 중요했다.

그들이 주는 물품의 질이 객잔의 질을 결정하니 말이다.

항주에 수많은 상단들이 있는 만큼, 어떤 상단을 구했는지 궁금했다.

“백연상단으로 했습니다.”

“좋은 곳으로 했군.”

“백연상단이요?!”

백리화는 또다시 뜨악하고 놀라고 말았다.

보통 객잔을 열 때 상단과의 계약은 한참 미리 하니, 곽휘운이 당연히 상단과 계약을 했을 것이라 생각해 묻지 않고 있었는데, 백연상단과 계약했을 줄은 몰랐다.

백연상단.

항주 최고의 상단이 어디냐고 묻는 다면, 열에 아홉은 백연상단을 말할 것이다.

백연상단은 많은 곳과는 거래하지 않았지만, 항주에서 최고로 불리는 곳들은 전부 백연상단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

백연상단은 절대로 아무하고나 거래를 하지 않는다.

그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항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입지를 가져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백연상단과 거래를 한다니?

그것도 이제 막 문을 연 객잔이?

“백연상단과도 연이 있으세요?”

“하하. 예. 조금 있습니다.”

곽휘운은 백연상단의 상단주와도 인연이 있었다.

“객주님.”

“네.”

“혹시 제가 더 놀랄 일이 남았을까요?”

“하하…… 모르겠습니다.”

“후우.”

백리화는 잠깐 마음을 다잡았다.

백리화가 평생 놀란 것보다 지금 더 놀라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곽휘운이라는 사람 때문에 말이다.

계속해서 너무 놀라 이제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과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도망칠 수는 없지.’

하지만 이대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이미 소환단도 받아먹었고, 어려움을 맞서 도망치는 것은 성격에 맞지도 않았다.

다그닥. 다그닥.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소리와 마차가 오는 소리.

하얀 연꽃이 새겨진 깃발을 펄럭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물건들이 오는 모양입니다.”

하얀 연꽃이 새겨진 깃발은 백연상단의 표식.

백연상단의 무리들은 객잔에 도착하자마자, 재빠르고 능숙하게 물건들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호오? 식재료가 훌륭하군. 이정도면 궁에 납품해도 되겠어.”

황중식은 백연상단이 가져온 식재료의 품질에 감탄을 했다.

식재료가 마음에 안 들면, 일일이 시장을 돌면서 구할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보였다.

“와. 이불 상태가 너무 좋아요.”

백리화는 객실에 쓸 이불을 먼저 확인했는데, 하나같이 최고급이었다.

게다가 휘운객잔에 맞게 구름 자수가 아주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다.

이런 품질의 물건들은 백리화도 처음 보았다.

“자, 이건 따로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곽휘운은 상인에게 따로 한보따리의 물건을 건네받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풀어헤쳤다.

곱게 개어져 있는 새 옷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위에 있는 옷을 집어, 주방에서 막 나오고 있는 남주학에게 던져주었다.

“주학아 이거 받아라.”

“이게 뭐에요?”

“네가 입을 근무복.”

남주학은 받자마자 곧바로 옷을 펼쳐보았다.

촤락.

부드럽게 펼쳐지는 푸른빛의 경장.

옷의 가슴팍에는 작은 구름 자수가 멋들어지게 들어가 있었다.

“와. 예쁘네요.”

“그치? 때 한 톨 묻히지 말고 입어라.”

“넵. 물론이죠.”

“자. 이건 백리 총관님 옷이고, 이건 황 숙수님 옷입니다.”

곽휘운은 백리화와 황중식에게도 옷을 건네었다.

백리화는 새하얀 흰색 옷이었고, 황중식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인 황색 옷이었다.

모두 가슴팍에 구름 자수가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촤라락.

옷을 펼쳐든 곽휘운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딱 좋아.”

백연상단에 각각이 입을 옷을 주문했을 때, 곽휘운이 말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양.

아주 깔끔한 흑색 경장.

가슴팍의 금색 구름 자수가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다.

“같은 것으로 한 벌씩 더 있으니, 일 하실 때 입으시면 좋겠습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색에다가 구름 자수로 통일성을 더한 근무복이었다.

물론 당연히 옷 재질은 최상급이었다.

“고맙네. 내 잘 입도록 하지.”

“감사해요. 깨끗하게 입을게요.”

* * *

태양이 밝게 빛나는 아침.

드디어 휘운객잔의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말씀하신대로 공사를 끝마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공사가 끝난 휘운객잔의 모습은 생각이상으로 괜찮았다.

예전의 낡고 오래된 모습은 오간데 없고, 고풍스러운 운치가 느껴지게 바뀌었다.

“백리 총관님. 이제 손님을 받아도 될까요?”

“네. 준비 끝났어요.”

이미 객실마다 침구 정리가 끝이 났고, 백리화가 알고 있는 점소이들도 출근했다.

황중식은 칼을 갈며 언제든 요리를 할 준비를 마쳤고, 남주학은 득의양양한 모양새로 객잔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준비는 끝났다.

“그럼. 바로 문을 열죠.”

스으윽.

얼마나 기름칠을 잘해 놓았는지,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리고 곽휘운은 직접 문 바로 위에 현판을 걸었다.

딸칵.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현판이 딱 맞게 걸렸다.

이로서 사람들에게 영업을 시작했음을 알렸다.

“흠. 뭔가 이상하네.”

알 수 없는 기분이 곽휘운의 온몸을 지배했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이 기분.

그렇지만 절대로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저는 이제 뭘 하면 됩니까?”

곽휘운이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객주님은 객주실에 계시다가, 제가 부를 때나, 중요한 손님이 오실 때만 나오시면 되요.”

“아, 그럼 할 일이 딱히 없는 거군요.”

“보통 객주님들은 다 그래요.”

곽휘운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굉장히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흠. 주학이랑 같이 객잔을 지키던 해야겠어.’

곽휘운은 객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문제가 없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제가 돌아다니는 것이 방해가 되지는 않겠지요?”

“이 객잔은 객주님 거니까, 마음대로 하시면 되요.”

백리화의 말처럼 이 객잔의 주인은 곽휘운이다.

곽휘운이 식탁에 누워 잠을 자던, 문을 닫아 버리던 곽휘운의 마음대로 해도 된다.

“여긴가? 새로 열었다는 곳이?”

“맞네. 휘운객잔이라 했으니까.”

객잔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리고 그때 드디어 객잔으로 몇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손님들인 것이다.

“어서 오세요!”

곧바로 점소이가 그들을 맞이하러 다가갔고, 능숙하게 손님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곽휘운은 그 모습을 조금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뭘로 드릴까요?”

“뭐가 맛있나?”

“저희 숙수님 말씀으로는…….”

그렇게 각자 주문을 받은 점소이들은 주방에 있는 황중식에게 요리를 전달했고, 금방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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