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5화 (5/203)

<휘운객잔 5화>

“저런 놈들은 그냥 콱 목을 따 버려야 하는데!”

“그러면 객잔이 더러워지지 않느냐?”

“사람을 그냥 막 죽이면 우리가 마두들이랑 다를 게 뭐냐? 들어가서 먹던 밥이나 마저 먹자.”

“그래도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저놈들 또 저러고 다닐 거라구요.”

곽휘운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남주학이 얼른 따라 앉았다.

밖에서 부산스럽게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가 조금 잦아들 때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들어오십시오.”

드르륵.

곽휘운은 이 점소이가 말했던 관리인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조금 전 보았던 현소월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옷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이 하늘하늘 하고, 옷에서 빛이 날 것만 같이 화려한 옷.

게다가 손에는 작은 현악기까지 들려있었다.

“조금 전에는 경황이 없어 감사의 인사를 바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명월루의 총관 현소월이 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어이쿠. 그러지 마십시오.”

곽휘운은 허리를 숙이는 현소월을 일으켜 세웠다.

가볍게 빚을 하나 만들려던 것이지, 이런 인사를 받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감사의 의미로 제가 딱히 드릴 것은 없고…… 부끄럽지만 예전에 조금 갈고 닦은 기예를 보여 드릴까 합니다.”

현소월은 이 명월루의 총관이 되기 전, 기녀로 지낸 경력이 있었다.

그 당시에 항주 최고의 기녀라 불리기도 했었다.

당연히 조금 갈고 닦은 기예는 아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하는 것이라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거절치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거절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저도 좋아요.”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바로 현소월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디리링.

가볍게 시작된 연주는 점점 빨라지다가 다시 잔잔해지는 화려한 변주를 보여 주었다.

현악기로 연주를 하는 현소월은 그대로 선녀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처럼 아름다웠고, 그녀의 연주는 듣는 이의 마음을 홀릴 만큼 매혹적이었다.

“후우. 끝났습니다.”

짝짝짝.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절로 박수가 나왔다.

“대단하십니다.”

“와! 북경에 가셔도 손에 꼽힐 정도이실 것 같은데요?”

곽휘운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현소월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했다.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좋아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혹시 추가금을 더 내야하는 건 아니겠지요?”

“호호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드신 음식 값도 받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이런 귀한 연주를 들었는데, 겨우 취객 한 명 쫓아냈다고, 음식까지 공짜로 먹을 수는 없습니다.”

“은인들을 이대로 보낸다면, 항주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결국 음식 값도 받지 않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그때 백리화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 백리 총관님 오셨습니까?”

“네. 어?”

백리화는 곽휘운과 남주학에게 인사를 하다가, 옆에 있는 현소월을 바라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월이 네가 왜 나와 있어?”

“그러는 너는 왜?”

백리화와 현소월은 오랜 친구사이였다.

백리화가 객잔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도 현소월 때문이었다.

백리화는 총관인 현소월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의아했고, 현소월은 새로운 객잔에서 총관으로 일한다는 백리화가 이곳에 있는 것이 의아했다.

“나는 객주님의 초대로 식사를 하려고 왔지.”

“아! 그럼 네가 새로 일한다는 객잔의 객주님이…….”

현소월은 곽휘운을 다시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제가 휘운객잔의 객주인 곽휘운입니다.”

“저는 호위인 남주학이에요!”

곽휘운, 남주학, 백리화, 현소월은 서로 이런저런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쳤으니, 명월루를 떠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현소월은 배웅을 하겠다며 따라 나왔다.

“현 총관님.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소월. 이만 갈게.”

작별의 인사를 할 때.

현소월이 곽휘운을 잠깐 불러 세웠다.

“아. 곽 객주님 잠시 만요.”

그러더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녹색 옥으로 장식된 작은 노리개였다.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답례품입니다. 꼭 간직해 주십시오.”

“예? 아닙니다. 이런 걸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건 거절하는 것이 예의가 아닙니다.”

“일단 받겠습니다.”

곽휘운은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뭔가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현소월의 분위기에 노리개를 받아서 품에 넣었다.

그제야 웃는 현소월.

그 모습을 보는 백리화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백리화는 저 노리개가 어떤 의미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꼭 뵙겠습니다.”

“예. 건강하십시오.”

완전히 명월루를 떠난 세 사람.

중간 갈림길에서 서로 헤어지기 직전.

곽휘운이 백리화에게 목갑을 하나 내밀었다.

“이거 선물입니다.”

“예?”

“영양단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곽휘운이 건넨 것은 영양단이 아닌, 남주학이 주었던 소환단이었다.

백리화는 받지 않겠다고 손사래 쳤지만, 곽휘운이 꼭 받아달라는 소리에 결국 받았다.

“꼭 오늘 안에 드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해버릴 겁니다.”

“네. 알겠어요. 감사히 잘 먹을게요.”

그렇게 백리화와 헤어진 곽휘운과 남주학.

백리화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주학이 바로 곽휘운에게 따져 물었다.

“객주님! 소환단을 그냥 주시면 어떻게 해요! 가지고 도망가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백리 총관님과 우리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지.”

소환단은 곽휘운이 백리화에게 던져 준 시험이다.

소환단을 먹고 나 몰라라 한다던가, 아니면 소환단을 팔아 버린다면 백리화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다.

하지만 백리화가 이 시험을 통과한다면, 조금 더 큰 계획을 실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 *

천수검문.

천수검 천주룡이 세운 문파로, 그 역사가 오래된 문파는 아니다.

하지만 절강성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인 천주룡을 평소 흠모하던 무인들과, 그와 인연이 있던 절강성의 강자들이 모여들면서 천수검문은 순식간에 절강성에서 손꼽히는 거대 문파가 되었다.

특히 천수검문은 식객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는데, 절강성에서 이름이 알려진 고수라면 아주 후한 대접을 하면서 식객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시오. 천주룡이라 하오.”

“안녕하시오. 광랑도 막철패라 하오.”

광랑도는 천수검문의 식객이 되기 위해 항주로 온 참이었다.

어제 저녁 조금 일이 있었지만, 그건 최대한 머릿속에서 지웠다.

상대가 소빙룡이었다면 어쩔 수 없다면서 말이다.

“막 대협이 저희 천수검문에 식객으로 오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그렇소.”

“저야 당연히 두 팔 벌려 환영하지만, 아시다시피 작은 검증을 거쳐야만 식객으로 들어오실 수 있소.”

천수검문의 식객이 되기 위해서는 천수검문에서 부탁하는 일 하나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의례였고, 솔직히 광랑도정도 되는 인물이 실패할 만한 일도 아니다.

“이번에 내 아우가 일을 하나 진행하는데, 거짓된 말로 사람을 속이고, 사술까지 부려 골치 아프게 하는 자가 있어서 말이오. 그자를 막 대협이 제 아우와 함께 가셔서 해결해 주셨으면 하오.”

“사술을 부리는 자라면 용서할 수가 없지. 당장 가서 처리하겠소.”

“역시 막 대협이 협의지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지금 보니 결코 과장이 아니구려. 오늘 저녁은 성대한 잔치를 준비해 두고 기다리고 있겠소.”

광랑도는 일을 길게 끌 필요도 없다 생각해 곧바로, 천수검문에 있는 천주호를 찾아갔다.

“문주님께서 같이 가서 일을 처리하라 하셨소.”

“오. 광랑도께서 같이 가시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식객으로 올 광랑도와 같이 연휘객잔에 대한 일을 처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준비하고 있던 천주호였다.

이미 부하들까지 모두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천주호가 앞장섰고, 그 뒤를 광랑도가 따랐다.

경공으로 빠르게 달리는 무리.

천주호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속도를 내었는데, 팔짱을 낀 채로 여유롭게 따라오는 광랑도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과연 광랑도의 명성이 헛된 건 아니구나.’

경공으로 모든 것을 판단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지금 광랑도를 보니, 그 객잔 주인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놈. 어떤 사술을 부린지는 모르겠지만, 광랑도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천주호는 어떻게 객잔 주인을 벌할까 고민하면서 휘운객잔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 * *

인부들이 많아서 일까?

휘운객잔의 보수는 벌써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물론 크게 바꿀 건 없었으니, 가능한 것일지도 몰랐다.

“이제 객잔 내부만 끝내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낮에는 문을 열 수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인부들을 이끄는 업자가 내일 아침까지 작업이 모두 끝날 것이라 장담했다.

곽휘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객잔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남주학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객주님. 황 숙수님은 언제 오신데요?”

“아마 오늘이면 도착하실 거다.”

“저는 백리 총관님이 황 숙수님을 보면 어떤 반응을 할까가 기대돼요. 흐흐.”

휘운객잔으로 오기로 한 황 숙수는 보통 인물이 아니다.

남주학은 아마 백리화가 본다면 꽤나 놀랄 것임을 확신했다.

“그보다 오늘은 백리 총관님이 오시지를 않네요.”

“소환단을 드셨다면, 운기를 하느라 정신없으실 거다.”

“아! 그렇겠네요.”

언제 소환단을 먹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먹었다면 지금쯤 소환단의 기운을 내공으로 만들기 위해 운기를 하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객주님 그런데 저기, 뭔가 시커먼 사람들이 몰려오는데요?”

저 멀리 경공을 펼치며 빠르게 객잔을 향해 다가오는 일련의 무리.

곽휘운은 첫날 만났던 천수검문 사람들임을 직감했다.

“썩 좋은 의도로 온건 아닐 테니, 조금 앞에 가서 맞이해야겠다.”

“제가 보기에도 좋은 의도로 오는 건 아닌 거 같네요.”

탓.

곽휘운과 남주학은 재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객잔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거기 멈추시길.”

곽휘운의 말에 객잔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 멈춘 천수검문의 무리.

무리의 맨 앞에는 지난번에 봤던 천주호가 서 있었다.

“제 발로 찾아왔구나. 덕분에 수고를 덜었다.”

거만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천주호.

천주호는 자신의 뒤에 있는 광랑도를 믿었다.

“어? 어제 객주님한테 꼴사납게 당한 사람도 있는데요?”

남주학은 천수검문의 무리에 섞여있던 광랑도를 정확히 발견해 내었다.

남주학의 말에 눈에 띠게 당황하는 광랑도.

‘이, 이런. 쓰펄.’

광랑도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까 머리를 굴렸다.

간단한 일인 줄 알았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소빙룡이 아닌가?

천수검문의 식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일을 처리해야 하지만, 어제 소빙룡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오늘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다.

“이보시오. 이건 조금 이야기가 다르지 않소!”

“뭐가 말입니까?”

광랑도는 급하게 천주호를 끌어다가 이야기를 했다.

“간단하게 사술을 부리는 자를 처리해 달라더니, 저자는 소빙룡이지 않소!”

“예?”

천주호는 고개를 획 돌려서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그도 소빙룡이 어떤 자인지는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있는 저 자가 그 소빙룡이란 말인가?

‘이런, 큰일 났군.’

그럼 지난번에 그 사술 같던 한기가 이해가 갔다.

상대가 소빙룡이라면, 일이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다고, 계약을 무를 수는 없는데…….’

이미 청송객잔에 돈을 받아버렸다.

이대로 안 된다고 하면, 받은 돈의 배로 물어내야 한다.

그랬다가는 자신은 형님의 눈 밖에 날 것이고, 천수검문에서 쫓겨날 지도 몰랐다.

“제게 기물이 하나 있는데, 이걸 쓰도록 하죠.”

천주호는 품안에 고이 모셔두었던 비도를 하나 꺼내었다.

아주 얇고, 가느다란 비도.

광랑도를 비도를 보자마자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혈사비!”

“쉿.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혈사비.

독으로 유명한 사천당가에서 만들었지만, 그 위험도가 너무나 높아 더 이상 만들기를 금지한 암기.

스치기라도 하면 온 몸의 피가 모두 굳어버려 서서히 사람을 죽인다는 암기였다.

천주호는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어렵사리 구한 혈사비였다.

솔직히 지금 쓰기에는 조금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거래를 성사시키면, 다시 비슷한 것으로 구비하면 된다.

“저희 둘이 합공을 할 때, 틈을 봐서 제가 몰래 출수하겠습니다.”

광랑도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광랑도가 바로 제일 앞으로 나섰다.

“어제는 내가 상태가 좋지 않아 본 실력의 삼분지 일도 못 보여 주었다. 오늘 제대로 한번 해 보자꾸나!”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며,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래야 혈사비를 던질 틈이 나올 테니 말이다.

“후우. 제가 다음에 오면 또 만나면 각오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곽휘운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휘이잉.

주변에 몰아치는 소름끼치는 한기.

천주호가 지난번에 느꼈었던 기운과는 차원이 달랐다.

쩌저적.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나마 천주호와 광랑도는 내공을 끌어올려 한기에 대항했지만, 같이 온 천수검문 문도들은 속수무책으로 몸을 떨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보내지 않을 테니 각오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흐, 흥! 우리도 그날처럼 물러날 생각은 없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공격도 해 보지 못한 채로 얼어 죽을 것만 같아 천주호가 먼저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광랑도도 몸을 움직였다.

- 천수검법. 제사 초. 천광탄(千光彈).

곽휘운의 좌측에서 천주호의 검이 엄청난 수의 검기를 쏟아 내었다.

- 거풍광랑도. 제이 초. 거풍참(巨風斬).

그리고 우측에서는 광랑도의 거대한 도격이 쇄도해 오고 있었다.

곽휘운의 양쪽에서 날아드는 천주호와 광랑도의 초식.

둘의 내공이 가득 담긴 공격.

당해 보지 않아도 상당한 위력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훗.”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절체절명의 상황같이 보였지만, 곽휘운은 웃었다.

- 휘운검법. 제사 초. 막(膜).

콰가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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