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4화 (4/203)

<휘운객잔 4화>

꽤나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해가 넘어가기 직전인 시간이 다가왔다.

“……네. 알겠어요.”

백리화는 조금 고민하다가 식사초대를 수락했다.

어떤 사람들인지 조금은 더 알 수 있는 기회이니 말이다.

“그럼 명월루에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저는 잠시 집에 들렀다가 가겠습니다.”

그렇게 백리화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곽휘운과 남주학은 명월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명월루.

현재 항주에서 가장 제일의 자리에 가까운 객잔이라 해도 무방한 곳이다.

거대한 두 개의 전각을 보유하고, 한쪽은 기루를, 한쪽은 객잔을 운영하는 곳.

항주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한 번은 가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명소였다.

“곽대…… 아니, 객주님. 저희가 눌러 버릴 곳을 미리 봐두러 가는 거예요?”

“아직 객잔 시작도 안했다. 그냥 얼마나 좋은 곳인가 보러 가는 것뿐이다.”

휘운객잔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

아직 채 해가 다 지지도 않았는데, 화려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전각 두 개가 보였다.

보는 사람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위용을 뽐내는 거대함.

과연 항주에서 제일로 불릴 만한 모습.

명월루에 비하면, 지금의 휘운객잔은 태양 앞의 반딧불이나 마찬가지였다.

‘흠. 마냥 쉽지는 않겠네.’

물론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벌써부터 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크기야 천천히 늘려나가면 되니 말이다.

곽휘운과 남주학이 명월루로 들어가자 점소이가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혹시 예약을 하셨는지요?”

보통의 객잔과는 다르게 객잔의 점소이는 모두 여인이었고, 거기에 모두 깔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명월루가 다른 객잔들과 차별을 두는 점이었다.

“아, 예약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몇 층에서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명월루가 다른 객잔들과 다른 차별 점이 또 있었는데, 바로 층에 따라 요리의 가격과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가장 저렴한 일 층부터 가장 비싼 오 층까지.

“오 층에서 하겠습니다.”

곽휘운은 미리 명월루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봤기에, 망설임 없이 오 층을 선택했다.

다른 곳도 유명했지만, 명월루의 진수를 맛보려면 오 층으로 가야 한다는 정보를 들어서였다.

“따라오시지요.”

점소이는 차분하게 곽휘운과 남주학을 객잔의 오 층으로 안내했다.

일 층, 이 층, 삼 층, 사 층, 오 층.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달라지는 주변의 광경.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오 층.

“도착했습니다. 창가 쪽 방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오 층은 각각의 방으로 되어 있는 구조.

지금은 사람이 많지는 않은 듯,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럼 방을 담당하는 이가 들어올 것입니다.”

“아, 밑에서 혹시 곽휘운을 찾는 분이 온다면, 이곳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예.”

드르륵.

“확실히 뭔가 대접을 받는 다는…….”

객잔을 안내해 준 이가 방을 나가고, 곽휘운이 남주학에게 얘기를 꺼내려는 찰나.

쾅!!

콰지직!!

옆쪽에서 커다란 굉음과 함께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들려오는 커다란 목소리.

“감히 이 광랑도 님의 손길을 거부해?”

* * *

옆에서 들려온 굉음에 명월루 오 층이 부산스러워졌다.

“아무래도 취객이 난동을 부리는 것 같은 데요?”

“그런 것 같다.”

곽휘운과 남주학은 소란에도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가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보자.”

“네에.”

보통이라면 객잔 측의 호위 무사들이 정리를 할 것이다.

곽휘운은 이런 돌발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방 밖으로 잠시 나왔다.

“겨우 객잔 호위나 하는 쥐새끼들이 나를 막으려 해?”

“잡아!”

“흥!”

콰가가각!

객잔 호위들이 난동을 피우는 취객을 제압하려 했지만, 오히려 힘에 밀려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크윽!”

“으윽!”

명월루의 호위들은 그래도 나름 뛰어난 실력을 지닌 무인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날뛰는 상대가 광랑도라는 것이었다.

광랑도(狂狼刀) 막철패.

그는 이곳 항주가 있는 절강성에서도 꽤나 유명한 고수였다.

명월루의 호위들이 상대하기에는 벅찬 고수였다.

“고상한척 깔끔 떨지 말고, 기녀를 대령해라!”

광랑도의 요구는 왜 기녀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냐는 것이었다.

명월루 초기에 정말 많이 있었던 소란이었다.

아무래도 옆에 기루를 같이 운영해서 그랬는데, 사실 명월루의 기루는 청루였다.

몸은 팔지 않고, 정말로 기예를 파는 기녀들이 일하는 곳.

하지만 으레 그렇듯 기루면 모두 몸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

광랑도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돈을 더 준다고 하시지 않느냐! 감히 광랑도 님의 말을 거역할 셈이냐? 고작 기루랑 객잔을 운영하는 주제에!”

아무래도 광랑도와 같이 온 듯한 다른 무인들이 광랑도를 추켜세우며, 자기들이 목소리를 세웠다.

“객잔의 총관을 맡고 있는 현소월입니다.”

그때 한 여인이 광랑도 일행의 앞에 나타나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녀는 이 명월루의 총관을 맡고 있는 현소월이었다.

호위들로는 막을 수 없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급하게 상황을 막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명월루의 기녀들은 몸을 팔지는 않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정말 죄송하고, 음식 값은 받지 않을 터이니, 이만 돌아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 객잔의 총관이라는 년도 이제 광랑도 님을 무시하는 것이냐? 고작 밥값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대령하라는 말이다!”

“더 이상 소란을 피우신다면, 관에다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제는 협박을 하려 들어! 이 년이!”

광랑도 일행의 팔이 올라갔다.

현소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미 내려쳐지고도 남을 시간임에도, 조금의 고통도 느낌도 없었다.

현소월은 살짝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보이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짜고짜 사람을 때리는 것은 좋지 못한 습관입니다.”

* * *

곽휘운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몸을 날렸다.

현소월이 명월루의 총관이라면, 빚을 하나 만들어 두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였다.

“어억!”

팔이 잡히자, 빼려고 안간힘을 쓰는 광랑도의 일행.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자, 눈을 끔뻑이며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놔, 놔라!”

“예.”

휙.

쿠당탕.

있는 힘껏 힘을 주다가 곽휘운이 갑자기 팔을 놓아버리니, 자기의 힘에 못 이겨 뒤로 넘어갔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허리춤의 검을 뽑으려했지만, 광랑도가 제지했다.

한 발짝 뒤에 서있던 광랑도가 앞으로 나섰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체격.

확실히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위축 들게 하는 모습이었다.

“네놈도 여기 호위인가?”

“호위는 아닙니다.”

“그럼 왜 나서지?”

“그냥 변덕이라고 해두죠.”

곽휘운은 그냥 변덕이라고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변덕으로 목숨을 걸어? 보아하니, 알량한 실력은 있는 것 같다만.”

“쉽게 목숨을 거는 놈은 아닙니다만.”

“흥.”

쉬익.

광랑도의 도가 갑자기 벼락처럼 움직였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곽휘운의 몸이 그대로 동강이 난 것처럼 보일 정도.

하지만.

“다짜고짜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행위라는 걸아십니까?”

“!!”

목소리와 함께 곽휘운은 광랑도의 바로 코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급하게 뒤로 두발 물러서는 광랑도.

얼굴에는 놀람의 감정이 가득했다.

언제 다가왔는지 기척조차 읽지 못했으니 말이다.

“발재주가 좋은 놈이군.”

“발재주라…… 하핫. 아직도 그 말을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곽휘운은 예전부터 발재주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무릎이 박살난 지금도 그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자. 이만들 돌아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내 일격을 피했다고 아주 기고만장하군.”

“그런가요?”

“오늘 이 광랑도님이 아주 제대로 교육해 주마.”

광랑도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세.

곽휘운은 그 기세를 보고는 입에 미소를 지었다.

“교육이라. 아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자. 총관님은 조금 떨어져 계십시오.”

“예? 아. 예.”

현소월은 지금 상황이 얼떨떨했지만, 곽휘운의 말을 따라 재빠르게 객잔 한편으로 물러섰다.

“흠. 객잔에 피해를 줄 수는 없고…….”

“뭐라? 이 놈! 보자보자 하니까!”

곽휘운의 말에 발끈하는 광랑도.

하지만 조금 전에 곽휘운이 보여 준 보법이 움직임이 아니었기에, 바로 나서지는 못하고 제자리에서 내공만 끌어올렸다.

스릉.

곽휘운이 허리춤의 검을 빼어 들었다.

“객주님! 오랜만에 그거 보여 주시는 건가요!”

“너는 다른 분들이 다치지 않게 잘 보호하고 있어라.”

“네에!”

그래도 명월루 오 층은 방 사이 간격도 넓고, 복도도 넓어서 다행이었다.

거기에 손님도 거의 없으니 더더욱 금상첨화였다.

“자, 네놈의 실력이나 한번 보자.”

광랑도는 무림의 선배로서 한 수 정도는 양보할 생각이었다.

주변에 보는 눈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사양 않겠습니다.”

곽휘운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 휘운검법. 제 일초. 파(破).

빠른 듯 느린 찌르기가 연속해서 공격해왔다.

캉. 캉. 캉. 캉. 캉.

광랑도는 크게 어렵지 않게 모든 공격을 막아 나갈 수 있었다.

‘발만 조금 빠른 놈이었나 보군.’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모든 공격이 막히고 있는데, 입가의 미소가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미친놈인가?’

쩌적.

“응?”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

광랑도는 금방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이 들고 있는 도에서 나는 소리였다.

“별로 좋은 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쩌저저적.

퍼석.

광랑도의 도가 어느새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고, 곽휘운이 강하게 내려치자 그대로 부셔져 버렸다.

“저게 무슨!”

“허억!”

광랑도의 일행들의 눈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고, 남주학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른 반응은 아니었다.

“소빙룡…….”

광랑도가 작게 중얼거렸다.

광랑도는 상대의 병기를 얼려서 부셔 버리는 무공을 쓰는 무인을 한 명 알고 있었다.

언제나 싸울 때 입가에 미소를 짓는 다고해서 붙은 별호 소빙룡(笑氷龍),

광랑도는 곽휘운의 미소와, 산산이 부셔진 자신의 도를 보고는 깨달았다.

눈앞의 사람이 소빙룡이라는 것을 말이다.

“교육, 계속 하실 겁니까?”

“……돌아간다!”

광랑도는 급하게 몸을 돌려 명월루를 빠져나갔다.

허겁지겁 그 뒤를 따르는 광랑도의 일행.

방금 전의 소요가 거짓이라도 되는 것처럼 삽시간에 조용해진 명월루.

“객주님이면 피 안 새어나오게 깔끔하게 그냥 쓱싹 하실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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