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3화>
다음 날 아침.
확실히 금화를 건넨 값을 하는 것인지, 이른 아침부터 객잔을 보수할 전문가들이 곽휘운을 찾아왔다.
“음…… 색상은 그대로 해 주시고, 멋진 구름 모양의 각인이 객잔 곳곳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름이라…… 알겠습니다.”
“여기 이걸로 술 한 잔씩들 하십시오.”
곽휘운은 은화를 몇 개 일하는 인부들에게 전해 주었다.
술값을 하라고 동화는 몇 번 받아봤어도, 은화를 받기는 처음인 인부들.
그들의 허리가 대번 반이 접혔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저희가 최고로 멋지게 해 놓을 터이니 염려 마십시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인부들의 품으로 들어가는 은화에 눈을 떼지 못하는 곽휘운.
마치 자식을 떠나보내는 듯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이런 곽휘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부들은 신나서 바로 작업에 착수했고, 곽휘운은 질끈 눈을 감고는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객잔에서 호위를 할 놈이 오는 날이니, 미리 마중을 나가기 위해서였다.
‘이제 생각해 보면, 너무 과분한 호위를 쓰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오늘 만나기로 한 놈은, 자청해서 객잔 호위를 하겠다는 놈이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열변을 토해내며 자신을 설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써먹을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는 놈이다.
그만큼의 능력은 있는 놈이었기에.
‘뭐, 이제와 무른다고 돌아갈 놈이 아니지.’
곽휘운이 아는 그 놈은 돌아가라고 그냥 돌아갈 인물이 아니다.
자신이 고용하겠다고 했으니,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곽휘운이 객잔에서 꽤 멀리까지 나왔을 때였다.
“곽! 대! 주! 니이이이임!!!”
주변을 떨어 울리는 커다란 목소리.
마치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아주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하나의 인영이 곽휘운의 눈에 들어왔다.
“곽대주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하아. 그래.”
어느새 곽휘운의 코앞에 나타난 인영.
피부는 희고, 얼굴선은 미려하다.
머리카락은 비단과 같이 부드럽고 윤기가 흐른다.
입술을 빨갛고, 두 눈은 호수와 같이 빛난다.
누가 보더라도 아름답다고 감탄할만한 미남자.
전 멸마대의 부대주이자, 무림제일미남 중 하나로 꼽히는 남주학이었다.
“대주님을 못 뵙는 지난 이틀은 정말 지옥과도…….”
“그만. 적당히 하라고 했지.”
남주학은 곽휘운이 임무 도중 구해 낸 놈이었는데, 그 날 이후로 곽휘운을 마치 연인처럼 따라다니며,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고 있었다.
곽휘운은 그런 남주학이 싫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한 번씩 부담스러울 때는 있다.
“그럼 이제부터 대주님과 제가 오순도순 지낼 곳은 어디에요?”
“따라와라.”
곽휘운 천천히 앞서 걸었고, 남주학은 그런 곽휘운의 옆에 딱 붙어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 항주가 이번에 저희가 접수할 곳이군요.”
“……우리가 파락호냐? 접수를 하게?”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나저나 무릎은 괜찮으세요? 제가 이번에 무릎에 좋다는 약을 하나 구해 왔는데.”
남주학은 말을 하면서 품에서 작은 목갑 하나를 꺼내었다.
딸칵.
화아아악.
목갑을 열자 안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소환단이 무릎에 좋다고?”
“그럼요. 소환단이 무릎에 그렇게 좋다더라고요.”
“이건 어디서 낫냐? 소림사에서 그냥 내주는 게 아닌데?”
소환단.
소림사에서 만드는 영약으로, 보통 사람은 구경도 못할 만큼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소림사에서 아무에게나 팔지도 않으며, 그 양도 많지가 않다.
물론 소림의 절세 영약인 대환단에 비하면 그래도 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무릎에 좋으라고 먹을 만큼 흔한 영약은 절대 아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꼭 대주님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어요.”
“다시 돌려드려라. 영약으로 나을 상처가 아니니까.”
“그냥 드세요. 대주님도 저희 아버지 아시잖아요?”
“으음.”
남주학은 천하에서 가장 돈이 많은 집안 중 하나라 불리는 금룡남가의 장남이다.
남주학을 구했던 임무에서 금룡남가의 가주인 남철학과도 안면을 텄고, 남철학은 남주학만큼이나 곽휘운을 아주 각별하게 생각했다. 부자가 성격까지 판박이다.
“일단 줘라. 다음에 먹으마.”
“꼭. 꼭, 드셔야 해요.”
“그래.”
곽휘운은 소환단이 든 목갑을 받아들고 일단 품에 넣었다.
지금 당장 먹을 생각은 없었다.
가지고 있다가 혹여 있을지 모를 상황에 요긴하게 쓸 생각이었다.
“자, 다 왔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객잔 앞에 도착했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객잔을 이리저리 고치고 색칠하고 있는 업자들 지켜보니, 아까보다 사람이 훨씬 늘어 있었다.
확실히 돈을 더 주어서 그런지, 엄청난 기세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속도면, 이틀이면 얼추 끝날 듯싶었다.
“여기가 대주님이 어린 시절을 보내신 곳…… 하악.”
“이상한 소리 내지 마라. 밥 맛 떨어지니까.”
“어린 시절의 대주님을 못 본 건 아마 죽어서도 한이 될 거예요.”
“지랄.”
곽휘운이 남주학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한 여인이 둘에게 다가왔다.
“여기가 휘운객잔 맞나요?”
* * *
곽휘운은 대번에 앞의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림하고 똑같군…… 아니, 그림보다 예쁘군.’
자신이 천통문에서 선택했던 총관 겸 침모이다.
크고 반짝이는 눈망울이 인상적인 미인이었다.
“예. 맞습니다.”
“그럼. 객주님 되시나요?”
“예.”
“처음 뵙겠습니다. 백리화라 해요.”
“곽휘운이라 합니다.”
백리화.
곽휘운이 천통문에서 구입한 정보에 의하면, 백리라는 성이 알려 주듯 그녀는 전 천하오대세가 중 한 곳이었던 백리세가의 혈육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무너져버린 백리세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객잔의 점소이부터 일을 시작해 객잔의 총관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로, 항주에서 손에 꼽는 객잔의 총관으로 있었지만, 그곳 객주와의 마찰로 인해 객잔을 나왔다고 쓰여 있었다.
‘백리세가의 여식이 객잔 일을 한다라.’
곽휘운은 백리화가 명문이라 불리던, 백리세가의 자제라는 것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다른 후보들은 모두 상인이나, 객주의 자제들이었다.
하지만 백리화는 객잔과 전혀 관련이 없는 무림세가의 자제였다.
이 특이한 이력이 가장 눈에 들어와 곽휘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백리세가라…….’
곽휘운은 백리화가 백리세가의 자제라는 것을 보고는 떠올린 계획이 하나 있었다.
그녀가 곽휘운의 생각에 부합하는 사람이라면, 시도해 볼 만한 계획이었다.
“저는 이틀 뒤에 오실 줄 알았는데…….”
“제가 일할지도 모르는 곳이니까, 미리 봐두려고 왔어요.”
“어떠십니까?”
“객잔의 위치는 나쁘지 않고, 크기도 너무 크지도 않고 딱 적당하다고 하네요. 그리고 객주님도 ‘지금은’ 괜찮은 분이신 것 같고요.”
“처음 보시고, 제가 괜찮은지 아실 수 있습니까?”
“객주님도, 옆에 계신 분도 눈에 탁함이 없으니까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호오?’
곽휘운은 백리화의 눈을 다시금 제대로 바라보았다.
그저 크고 반짝이는 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자세히 보니 알 수 없는 현기가 서려 있었다.
‘혜안을 타고 났군.’
가끔씩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었다.
그것을 혜안이라 불렀는데, 지금 백리화가 그 혜안을 타고난 듯싶었다.
아마 그래서 금방 총관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간 것일 테고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기 곽대……”
“객주님이라 불러라.”
“곽…… 객주님의 오른팔이자, 영혼의 운명공동체인 남주학이라 해요.”
“반가워요.”
“후우. 이쪽은 객잔 호위를 할 친구입니다.”
“아, 그럼 남호위님이라 부르면 되겠네요.”
“후후. 잘 부탁드려요. 백리총관님.”
남주학과 백리화의 인사도 간단하게 끝이 났다.
처음 만나는 날이니, 이정도 인사면 충분했다.
“그럼. 저희 객잔에서 일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예. 그런데…….”
“예. 뭐 바라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일을 할 때 검을 차고 있어도 될까요?”
백리화의 허리춤에 메여져 있는 검 한 자루.
백리화는 총관이기 전에 무인이다.
무인에게 무기란 생명과도 같은 것.
곽휘운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배려 감사해요. 그리고 객잔 보수 하는 것에 제가 몇 가지를 바꿔도 될까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휘운객잔에서 일을 하기로 정한 백리화는 곧바로, 객잔을 보수하는 인부들에게 이런저런 사항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객잔에 대해서 더 잘 알 테니, 오히려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쪽이 경치가 좋으니, 창을 조금 더 크게 해 주시고, 저쪽은 밖이 보이지 않도록 아예 막아주세요. 그리고…….”
열성적으로 요구사항을 말하는 백리화.
그 모습에서 그녀의 진심이 조금은 느껴졌다.
곽휘운은 작게 미소 지었다.
‘조금 더 일이 빠르게 진행 될지도 모르겠어.’
곽휘운이 무림맹을 나올 때 무림맹주에게 ‘최고가 되겠다’고 한 것이 거짓은 아니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모든 수를 고려할 생각이었다.
우선 첫 단추는 아주 잘 끼운 것 같았다.
* * *
‘이 사람들은 어떻게 변할까?’
백리화는 업자들에게 이리저리 객잔 요구사항을 이야기해 둔 뒤, 조금 떨어져 있는 곽휘운과 남주학을 바라보았다.
분명 지금은 탁한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객잔이 커지고, 돈을 벌다 보면 탁한 감정이 생겨날 것이다.
전에 있던 객잔의 객주도 그랬으니까.
‘나는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돈만 잘 받으면 돼.’
백리화의 목적은 어차피 돈이다.
무너져버린 세가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
물론 아직도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거대 문파나 부잣집 공자님에게 혼인을 갈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문파의 부활이 아니라, 그대로 먹혀 버릴 터였다.
결국 혼자의 힘으로 스스로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오래갔으면 좋겠어.’
백리화는 그래도 저 사람들이 최대한 오랫동안 지금과 같은 마음을 유지해 주었으면 했다.
계속해서 객잔을 옮겨 다니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
그리고 저 둘은 백리화가 지금까지 보아 온 자들 중 가장 깨끗한 사람들이었다.
저 마음을 오랫동안 유지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단 걱정은 접어 두고, 객잔부터 키우자.’
객잔이 커져서 생기는 문제는 뒤로 밀어두어도 되었다.
지금은 이 객잔을 키워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을 키우는 것이 먼저였다.
“백리총관님 식사라도 같이 하시겠습니까? 아직 숙수님은 오시지 않았지만, 모처럼 이니 제가 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