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2화>
곽휘운은 무림맹을 나오자마자, 바로 항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무림맹에 들어가지 전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던 곳이 항주였다.
‘숙수와 객잔 호위무사는 미리 구했으니 되었고, 총관이랑 점소이만 구하면 되겠어.’
곽휘운이 앞으로 객잔을 어떻게 꾸려갈까 고민하는 동안 어느새 객잔 앞에 도착했다.
어린 나이에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뛰쳐나왔던 객잔.
이렇게 다시 돌아오니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음? 뭐지 저 사람들은?’
그런데 객잔 앞에 일단의 무리들이 몰려 있었다.
칠흑같이 검은 옷을 입고 검을 찬 무리와 푸른색 옷을 걸친 무리.
‘뭐지? 객잔이 닫은 지 한참 되었는데.’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수년간을 방치해 둔 객잔이다.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을 일이 없었다.
“아이고, 장 객주님 걱정 마십시오. 몇 년 동안 개미새끼 하나 얼씬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래도 주인이 있다는 것 아닌가?”
“혹시 주인이 나타나도 저희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저희 천수검문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검은 옷을 입은 무리는 천수검문의 문도들이었고, 푸른 옷을 입은 무리는 청송객잔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오랫동안 버려진 객잔을 거래하는 중이었다.
“알겠네. 그럼 내가 천 문주님에게 내일 돈을 드리지.”
“어이쿠. 감사합니다. 역시 장 객주님입니다.”
“나는 이만 가보겠네. 내일 다시 보지.”
“예예.”
장 객주라 불린 인물과 함께 청송객잔의 사람들이 자리를 떠났고, 객잔 앞에는 천수검문의 문도들만 남았다.
곽휘운은 저들의 대화를 다 듣고, 그들에게 이곳이 주인이 있는 곳임을 알리기 위해 다가갔다.
“이 객잔은 주인이 있는 곳입니다.”
“응? 뭐?”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천주호.
그는 천수검문의 문주 천주룡의 동생으로, 이 항주에서 손꼽히는 문파인 천수검문의 문주인 형의 힘을 바탕으로 대외적인 일을 책임지는 일을 했다.
오늘은 천수검문의 관리지역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객잔을 팔아버리기 위해 직접 나온 참이었다.
“이 객잔은 주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벌써 몇 년이나 버려져 있던 곳이다. 주인은 이미 죽고 없을 터.”
“제가 왔으니 이제 주인이 있는 곳입니다.”
곽휘운은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었다.
스르륵.
“자. 되었습니까?”
종이의 정체는 곽휘운이 이 객잔의 주인이라는 증명서였다.
“뭐, 뭣?”
천주호의 두 눈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방금 막 거래를 성사했다.
꽤나 거금이 오가는 거래이기에, 이렇게 주인이 나타나면 곤란했다.
“이제 와서 주인 행세라니. 쯧. 돈을 조금 챙겨 줄 테니, 그거 이리 내고 가라.”
“아니요. 돈은 필요 없으니, 이만 여기서 비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검을 찬 것을 보니 무인인 것 같은데, 괜히 허세 부리지 말고, 좋게 말로 할 때 그냥 한 푼이라도 받고 가.”
천주호는 오히려 대담하게 협박을 했다.
거금이 목전인데, 주인이 나타났다고 포기하기는 아깝지 않은가?
천수검문의 힘을 이용하면, 저런 애송이 같은 무인하나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스릉.
천주호가 주변에 있던 무인들에게 눈짓을 하자 다들 검을 빼들었다.
“자. 귀찮게 하지 말고 지금 결정해. 한 푼이라도 받을래? 아니면 죽을래?”
곽휘운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천주호와 천수검문의 문도들을 바라보았다.
‘참.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아.’
무림맹이나, 이곳 항주나 똑같다.
뒷배경이 마치 자신의 힘인 양 으스대며,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억누르려 한다.
오히려 피해 다니면, 사람을 호구로 보고 더 극성맞아진다.
그리고 이 객잔을 저들에게 고이 넘길 생각도 없고 말이다.
“얼마나 줄 겁니까?”
그래도 곽휘운은 일단 얼마를 줄지나 들어보려 했다.
물론 팔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자, 은화 하나다. 받던가, 아니면 죽던가 해라.”
곽휘운의 앞으로 던져지는 은화 하나.
객잔의 가격으로는 아주 턱없는 금액.
곽휘운은 씨익 미소 지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우승열패. 참 좋은 말이지 않습니까?”
“무슨 개소리냐?”
“당신들이 힘의 논리를 가져온다면, 저도 힘의 논리를 보여 드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사아아악.
갑자기 주변을 장악하는 엄청난 한기.
천주호와 천수검문의 무인들은 갑작스러운 한기에 몸을 덜덜 떨며, 뜨악한 눈으로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기운 만으로 한기를 느끼게 만든다?
특수한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면, 최소 절정을 넘었다는 소리이다.
‘그럴 리가 없지. 분명 뭔가 수를 쓴 것일 터.’
천주호는 곽휘운이 분명 뭔가 술수를 부린 것이라 생각했다.
저런 젊은 나이에 절정을 넘은 무인은 온 무림을 뒤져도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런데 그런 자가 객잔이나 하려고 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사술이다! 내공을 끌어올리고, 정신을 집중해라!”
천주호는 문도들에게 소리치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보통 사술이라면, 내공을 끌어올린다면 쉽게 풀릴 것이다.
하지만.
“무, 무슨!”
내공을 아무리 끌어올려도 사라지지 않는 한기.
게다가 주변을 보니, 잡초들에 살짝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오늘은 첫날이니, 이쯤하고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만. 다음에 또 나타나시면……. 그때는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곽휘운은 내뿜던 기운을 거두어 들였다.
그러자 씻은 듯이 사라진 한기.
천주호와 문도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천주호는 겁에 질린 티를 내지 않으려 큰소리쳤다.
“네, 네놈! 우리가 어디의 문도인 줄 아느냐?”
“제가 알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는 대 천수검문의 문도이다! 보복이 두렵지도 않느냐!”
“대 천수검문? 처음 들어 보는 곳입니다. 남궁세가나 무당파라면 모를까.”
물론 곽휘운은 정말로 천수검문이라는 곳을 처음 들어보았다.
“오늘은 이만 물러간다만, 조만간 크게 후회할 거다!”
“배웅은 않겠습니다.”
“돌아가자!”
천주호는 문도들을 이끌고 빠르게 곽휘운에게서 멀어졌다.
‘분명 다시 오겠지. 뭐, 그때는……..’
곽휘운은 멀리 사라져가는 그들을 잠깐 바라보다가 객잔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이익.
기름칠을 하지 않아 거칠은 마찰음을 내며 열리는 문.
그리고 안에서는 먼지가 피어올랐다.
“후우. 너무 오래 비워 뒀지.”
뽀얀 먼지와 곳곳에 쳐져 있는 거미줄.
하지만 곽휘운이 어릴 때 있던 객잔과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탁자의 위치도, 의자의 개수도 말이다.
“참……. 그냥 아버지 말대로 객잔이나 물려받아 살 걸. 무슨 인정을 받겠다고…….”
그냥 처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며, 객잔을 운영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난 일을 후회해 봐야 나만 슬프지. 자. 그만 정신 차리고, 청소부터 하자.”
곽휘운은 객잔 구석에 보관되어 있는 청소도구를 꺼내었다.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이 쳐져 있었지만, 쓰기에는 문제 없어보였다.
“빠르게 끝내볼까.”
곽휘운은 아까 천주호들을 상대할 때보다 많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의 발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손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춤추기 시작했다.
* * *
청소는 금방 끝났다.
곽휘운은 말끔해진 객잔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정말 이런 성취감은 오랜만이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우선 총관부터 찾아야겠군.”
곽휘운의 객잔은 총 삼 층에 별채가 하나 딸려있는 구조였다.
일 층은 식사를 하는 곳이었고, 이 층과 삼 층은 객실이었다.
보통 객잔 전체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사람이 총관이고, 객실만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침모다.
하지만 보통 크지 않은 객잔은 총관이 침모의 일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곽휘운의 객잔은 별채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크지 않은 축에 속했다.
그래서 총관만 한 명 구하면 되었다.
“사람을 찾는 데에는 ‘천통문’만한 곳이 없지.”
천통문.
주로 음지에서 활동하던 하오문이 양지로 나오면서 붙인 이름이다.
정보력에 관해서는 개방과 함께 무림 제일로 불리는 곳이었다.
천통문은 정보의 판매뿐 아니라, 인력 중개도 같이 겸했는데, 뛰어난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딱 맞는 인력을 소개해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물론 내는 금액에 따라 많은 오차가 있지만 말이다.
‘돈은 충분하니까.’
곽휘운은 금방 천통문을 찾아내었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곽휘운이 들어가자마자 천통문도가 나타나 인사를 해온다.
“사람을 좀 구하고 싶은데……”
“예예. 어떤 일을 시키실 겁니까?”
“객잔 총관 겸 침모 일을 할 사람입니다.”
“예. 그럼 계산을 해 주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곽휘운은 품에서 금화를 꺼내어 천통문도에게 건네주었다.
금화를 받아든 천통문도의 눈이 놀란 토끼마냥 커졌다.
“그, 금화를 내실 겁니까?”
“예. 그에 걸맞은 사람으로 소개해 주십시오.”
“따, 따라오십시오.”
사람을 고용하는데, 금화를 선뜻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천통문도는 재빨리 금화를 품안에 갈무리하고는, 곽휘운을 어디 론가로 안내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후보자들을 간추려 오겠습니다.”
“예.”
금화를 내서일까?
딱 봐도 고급스러운 느낌의 방에 안내되었다.
천통문도가 자리를 떠나고, 따뜻한 차 한 잔과 다과가 내어져왔다.
곽휘운은 조금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기다렸고, 채 반을 마시기 전에 다시금 천통문도가 돌아왔다.
“여기 금화 한 냥 값의 후보들입니다.”
건네어진 것은 세 장의 종이.
종이에는 세세한 정보와 초상화까지 그려져 있었다.
곽휘운은 천천히 세 장의 종이를 읽어 내려갔다.
“그들 중 한 명을 정하시면, 저희가 원하는 일자까지 보내겠습니다.”
“예.”
‘흐음.’
곽휘운은 고심이 되었다.
모두 쟁쟁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으로 해야겠어.’
조금 더 고심한 끝에 곽휘운은 한 명을 정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조금 특이한 이력에 이끌렸다.
“이 분으로 하겠습니다. 삼일 뒤에 오시라고 해 주십시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휘운객잔’으로 가시라고 하겠습니다.”
곽휘운은 오랜만에 듣는 객잔의 이름에 뭔가 가슴이 아릿했다.
휘운객잔.
곽휘운의 이름을 본 따서 지은 이름.
남의 입을 통해서 듣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객잔 보수를 좀 해야 하는데, 내일까지 전문가분들의 섭외가 가능할까요?”
곽휘운은 또 다시 금화를 건네었다.
조금 서둘러서라도 객잔을 다시금 열고 싶었다.
너무나도 오래 비워두었던 객잔.
조금이라도 빨리 여는 것이 아버지를 위한 속죄의 길이라 생각했다.
“예. 항주 최고의 전문가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천통문도는 곽휘운이 좀처럼 보기 힘든 큰 손임을 깨닫고, 열과 성을 다해서 대답했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천통문도는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고, 곽휘운은 그대로 천통문을 벗어났다.
아직은 그래도 하늘에 태양빛이 사라지지 않은 시간.
곽휘운은 쾌청한 하늘을 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객잔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하시는 형태라던가, 색상이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