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그건 너무 복잡해서 인간의 언어나 수학 개념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네. 제대로 설명하려면 적어도 삼천오백칠십이 일은 족히 걸리거든. 그것도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설명만 했을 경우지. 다 무시하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비효과와 관련이 있다네. 자네도 알지?”
추자운도 알고 있었다.
미국의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가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 주에 발생한 토네이도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발표한 것이 나비효과가 알려지게 된 시작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가 나중에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제가 과거로 가는 것이 미래의 변화에 가장 작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건가요?”
“그렇지, 역시 똑똑하군.”
“키키키킥.”
자운은 자신도 모르게 키킥거렸다.
“믿지 못하겠지?”
“하하, 당연하죠. 만약에 아저씨라면 이런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어요?”
“뭐,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만한 내용은 아니지.”
“자, 그럼 이제 증거를 보여주셔야 할 차례인가요?”
“증거? 음, 뭐 귀찮긴 하지만 노력해 봄세.”
자운이 턱을 매만지다 바다를 보고 기막힌 생각을 떠올렸다.
‘크크, 천사라 이거지? 이왕이면 무지막지한 것으로 해볼까?’
“바다를 갈라보세요. 푸하하하하! 이건 너무 심했나?”
“바다? 뭐, 어렵진 않겠군.”
중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다를 가를 생각은 않고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럼 구경 잘하고 돌아가게. 나중에 내가 집으로 찾아감세.”
“이렇게 대충 꽁무니를 빼…… 크아아악~”
자운은 중년인을 따라 일어서다가 그만 눈이 튀어나오는 충격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쏴아아아~
바다가 갈라지고 만 것이다.
‘말도 안 돼.’
바다는 양쪽으로 갈라져 육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 마술인가요? 혹시 아저씨 데이빗 카퍼필드(미국의 유명한 마술사) 아니… 헉…….”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중년 노숙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 * *
“뉴스 속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 2시경 강릉 앞 바다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자료 화면 보시겠습니다.”
앵커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TV화면에 방송용 카메라가 아닌 일반 캠코더로 찍은 듯한 화면이 펼쳐졌다. 조금씩 흔들리긴 했지만 바다가 갈라진 광경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화면은 겨울 바다를 구경하던 관광객이 그 자리에서 캠코더로 찍은 영상입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정경훈 기자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정경훈 기자!”
“네, 여기는 강릉 앞바다입니다.”
“상황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네, 이미 자료 화면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저 놀랍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이 광경을 직접 촬영한 분을 모셔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화면에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나타났다.
“바다가 갈라졌던 상황이 어떠했는지 들려주시겠습니까?”
“이거 생방송으로 나가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잠깐만요, 화장 좀 하구요.”
“아니, 화장하지 않아도 굉장히 미인이십니다.”
“호호호, 사람 볼 줄 아시네요.”
“흠흠, 보신 대로 설명 좀 부탁합니다.”
“네, 제 애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어요. 저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캠코더 액정 화면을 보면서 바다를 찍고 있었구요. 처음에는 저도 제 눈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사실이었어요. 얼마나 흥분이 되던지 그만 오줌을 저리고 말 정도였죠. 이건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예요, 서프라이즈. 기절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죠. 홍해의 기적이 이러했을까요? 사실 어제 애인이 제게 프로포즈를 했답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광경을 보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엄마, 나 지금 보고 있는 거야? 나 텔레비전에 나왔어. 캬악, 너무 좋은 거 있지.”
인터뷰가 지극히 사적으로 변해 버리자 현장 기자가 여인에게서 마이크를 뺏으려 했다.
“자, 됐습니다. 이제 그만…….”
그러나 여인은 마이크를 뺏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댔다. 기자와 여인이 마이크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두 사람이 바닥을 뒹굴었다.
황급히 화면이 방송국의 앵커를 잡았다.
“흠흠, 네, 정경훈 기자, 수고 많았습니다. 마이크가 망가지지 않았나 걱정이군요.”
* * *
그날 온통 뉴스는 강릉 앞바다의 기이한 현상을 외쳐 댔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곧바로 일산의 자취방으로 돌아온 자운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부들거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이건 꿈이야, 꿈일 뿐이라구.’
꿈을 떠올리자 문득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가 생각났다.
주인공은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현실의 각박함 대신 원하는 삶을 꿈을 통해 살게 해주는 회사와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자운은 창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두운 밤거리가 어서 오라는 듯 팔을 벌리고 있었다.
5층 높이! 제대로만 떨어진다면 죽을 수도 있다.
‘그래, 이건 꿈이야. 난 뛰어내릴 거야……. 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뛰어내릴 리가 없잖아.’
자운은 힘없이 창문을 닫았다.
그때 벨소리가 났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택뱁니다.”
‘택배? 이 밤에?’
자운은 얼른 시계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택배를 신청한 일도, 보낼 만한 사람도 생각나지 않았고, 더군다나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중에 택배가 배달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만요.”
문을 열자 택배 아저씨가 큰 상자 앞에서 영수증을 내밀었다.
“물건이 꽤 무겁네요.”
“한밤에 택배는 처음인걸요?”
“요즘은 경쟁이 치열해서 낮과 밤이 없답니다.”
자운은 사인을 하고는 택배 아저씨를 도와 물건을 안쪽으로 옮겼다.
“수고하십시오.”
자운은 문을 닫고 영수증을 살폈다. 발송지는 L.A였고, 발송인은 T.T라고 적혀 있었다.
“T.T? 뭐야, 이거.”
일단은 열어보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 박스를 뜯어냈다.
박스 윗부분이 개봉된 순간, 자운은 비명과 함께 뒤로 나뒹굴었다.
“크아악……!”
시체였다. 아니,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은 확실했다. 문제는 L.A에서 한국까지 살아 있는 채로 왔을 리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살아 있다고 해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부스럭.
“크아아악! 사람 살려!”
자운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튀어나갔다.
“어이, 이봐. 고정하라구. 날세. 벌써 나를 잊은 겐가?”
막 문을 닫으려던 자운이 어딘지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가룟 유다 천사, 아니, 노숙자 천사가 상자에서 머리를 빠꼼히 내민 채 웃고 있었다.
“노숙, 아니, 아니, 아저씨~”
“그래, 그래, 반가운 거 아니까 소리는 그만 지르게.”
중년인은 박스에서 나오더니 마치 자기 집인 양 냉장고 문을 열고 음료수를 꺼내 마셨다.
“나는 포도 쥬스가 제일 좋더라.”
“입대고 마시면 어떡합니까?”
“깨끗한 척하긴…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노숙자는 의자에 앉고는 발을 식탁 위에 멋들어지게 올려놓았다.
“혼자 살긴 딱 좋군.”
자운은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낮엔 바다를 갈라놓더니, 이젠 해괴망측한 방법으로 나타난 것이다.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수준 높은 특수효과였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저는 어디도 안 갑니다. 네버, 완존 네버! 아시겠어요?”
“어쩔 수 없네. 이미 결정 난 사항이라서 변경할 수가 없어.”
“도대체 누가 결정했단 말입니까? 이 일을 꾸민 작자가 누굽니까?”
“하하하하, 많이 발전했군, 많이 발전했어. 슬슬 대화가 되기 시작하는군.”
자운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저는 장단을 맞춰주는 것뿐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것은 불변입니다.”
“맘대로 생각하게.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나와 대화를 나눌 시간은 오늘밤과 내일 아침 떠나기 직전뿐이네. 그러니 최대한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을 걸세.”
“내일 아침이라구요?”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자운은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동해 바다는 망설임없이 갈라져 버렸다. 텔레비전에서는 거의 미친 듯이 바다가 갈라진 화면을 내보내며 해양 전문가들과 신학자들까지 나와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T.V가 돌아버렸을 리는 없기에 내일 아침에 터미네이터가 되어 무림에 가 있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자, 잠깐요. 좋습니다. 제가 믿는 것도 아니고, 갈 마음도 없지만 일단 들어나 보죠.”
중년인이 포도 쥬스를 한 모금 들이킨 후 말했다.
“좋은 자셀세.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래, 이 미션이 발생한 원인부터 설명하는 것이 좋겠군.”
중년인의 눈이 한순간 아련해졌다. 자운은 문득 그 눈빛 속에서 우주가 보이는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다. 어이없게도 은하수와 수많은 별들, 그 광활함이 고스란히 보이는 것이다.
‘기가 막히는구나.’
“한 아이의 기도가 있었네. 별의 기운을 타고난 아이였지. 그 아이의 기도가 온 우주를 흔들었네. 아니, 발칵 뒤집어놓았다고 해야겠군. 그 후 하늘에서는 비상대책회의가 열렸고, 그 다음엔 자네가 선발된 거지.”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자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크크크, 그래, 솔직히 말이 좀 안 되지. 하지만 이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군. 낮에 만났을 때도 했던 말이지만 제대로 설명하려면.”
“삼천오백칠십이 일이 걸린단 말씀이지요?”
자운의 음성은 비비꼬여 있었다.
“역시 기억력이 좋군. 어쨌든 우리에겐 그만한 시간이 없으니 대충 그렇게만 알아두게.”
“어이가 없군요. 그럼 좋습니다. 저도 당장 기도를 드리겠어요. 저를 그냥 내버려 두라고 기도하겠어요. 저도 온 우주를 흔들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겠다구요.”
“뭐, 기도하는 거야 내가 말릴 일은 아니니 맘대로 하게. 하지만 어지간히 해서는 뼈가 녹고, 내장이 끊어질 만큼 간절히 기도하기는 힘들 걸세.”
자운은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뼈가 녹을 정도의 기도라.
‘설마 그 아이가…….’
중년인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그곳에 가면 내가 나타나 도울 수 없다는 걸 명심하게. 아무도 자넬 돕지 않아.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거지. 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언어를 습득해야 할 걸세. 그 다음은 힘도 길러야겠지?”
“아, 아니, 잠깐만요. 뭐, 아이템 같은 것 없나요? 레이저 총이라든지, 투명 옷이라든지, 하다 못해 기관총 같은 거라도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겐가, 아니면 판타지를 너무 많이 읽은 겐가? 그런 건 없어. 그저 이것뿐이라니까.”
중년인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러다 며칠만에 비명횡사하면요? 그렇게 무방비로 놔둘 참인가요?”
“염려 말게. 확신할 순 없지만 그리 쉽게 죽진 않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특별히 선발된 자네가 가자마자 죽기야 하겠나?”
“꽥~”
자운은 고함을 내질렀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죽는 것도 가능하단 말이군요. 이거 정말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중요한 일이라면서 일을 이따위로 진행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푸하하하, 그래도 겁이 나긴 나나 보군. 사실 특수 기능이 없다는 것은 그냥 해본 말이었네. 두 가지 능력을 받게 될 걸세. 충분히 힘을 가질 만한 능력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게.”
“뭡니까?”
“첫째는 시공을 초월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내공을 얻게 될 것이네. 차원의 힘이 일부 들어가는 것인데, 일부라곤 해도 어마어마하지.”
“둘째는요?”
자운은 짜증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질문을 하고 있는 자신이 싫어질 정도였다.
“둘째는 ‘사람의 눈은 마음의 창이다’라는 힘이네.”
“무슨 말씀이세요? 주문입니까?”
“주문? 하하하, 주문은 아닐세. 다 알려주면 재미없으니까 여기까지 하지. 가서 겪다 보면 알게 될 거네.”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어서 말씀해 보세요.”
“이제 뭐 할 말은 거의 다한 것 같군. 아침 일찍 떠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게.”
“자, 잠깐만요. 전 분명히 간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난 가봐야겠어.”
중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입구가 아닌 반대쪽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었다.
“자세히 이야기한다면서 왜 이렇게 일찍 가시는 겁니까?”
“가야 돼, 드라마할 시간이거든.”
“천사가 드라마도 봅니까?”
“요즘 재미 붙였어. 내일 보세.”
“날아가는 겁니까?”
중년인은 창문을 열고 다리 한 짝을 창틀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날아가긴…….”
그 말과 함께 노숙자가 훌쩍 몸을 날렸다.
자운은 깜짝 놀라 창밖을 바라보니 노숙자의 몸은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 대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구르더니 그대로 대자로 뻗어버렸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놀라 비명을 내지르며 가까이 다가갔다.
“뭐, 뭐지?”
자운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바다를 우습게 갈라 버린 능력에 비해 저 꼬락서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119를 부르려 할 때 중년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다리 한 짝을 절룩거리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자운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조용히 땀을 흘렸다.
‘미치겠다…….’
그러나 그냥 멍하니 이대로 아침을 맞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