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114화 (114/125)

# 114

아귀진독의 말에 고첨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독이란 독은 모조리 섭렵했을 터인데 또 뭐가 남았단 말인가. 그러다 보니 불안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겪어온 독보다 더 지독한 독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 무섭다는 고독까지 견뎌내지 않았던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어서 인도하시지요.”

“좋은 자세다. 너는 반드시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다.”

이윽고 아귀진독이 인도한 곳에 이른 고첨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아귀진독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첨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사실 이 독에 대해서는 생략할까도 생각했으나 아까 너의 각오를 들으니 내가 너무 안일한 마음을 품었었다. 세상에 가장 지독한 독이라도 어찌 너를 해할 수 있겠느냐. 너는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저… 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고첨은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도망갈 태세를 갖추었다.

그때 아귀진독이 망설임없이 고첨을 번쩍 들더니 깊은 똥통으로 던져 버렸다.

푸욱!

고첨은 깊은 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빠지려고 합니다.”

그냥 머리만 내밀고 있는다면 그나마 참을 수 있으련만 수렁에 빠진 듯 몸이 자꾸 가라앉으려 하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잠수가 기본이다. 억지로 몸을 빼내려 하면 도리어 빨리 잠기게 되니 평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여라. 힘을 빼고 흐름에 몸을 맡기면 적당히 몸이 떠오르게 되었다가 가라앉았다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똥독의 수련은 이 개월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니 잘 버티도록 하여라.”

고첨은 그 말을 다 듣지도 못하고 끝내 머리가 잠기고 말았다. 코로 입으로 밀려들어 오려는 똥의 압박에, 더러운 공포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만약 이렇게 죽게 된다면 이보다 더 추악한 죽음은 없을 것이었기에 이를 악물었다.

‘난 살아남고야 말겠다! 세상에 군림할 그날을 보고야 말리다!’

“크아아악~”

그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내지르다가 쑤욱, 밀려드는 똥에 질식사할 뻔했다.

섬에서 생활한 지 어언 십 년이 흘렀다.

똥독을 끝으로 만독불침에 이른 고첨은 곧바로 천하를 굽어볼 신공을 연마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신공을 수련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세부적인 수련 항목들은 의외로 많았고, 그러다 보니 십 년이 훌쩍 지나 버린 것이었다.

그동안 그가 수련한 것들은 아래와 같았다.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오래도록 은신하기.

―고문 견뎌내기.

―천하제일고수에 합당한 여러 학문.

어느 것 하나 황당하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그때마다 왜 이따위 수련이 필요하냐고 외쳤지만 돌아온 대답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추고 있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기에 대해 아귀진독이 한 말은 이러했다.

“사람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강호에는 갖가지 인간 군상이 있게 마련이라, 측근에게 배반을 당할 수도 있고 암수에 당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한두 차례 어려운 상황이 닥치게 될 터인데 그때 가장 많이 겪게 되는 것이 바로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열심히 뛰어내리는 연습을 해두게 되면 반드시 유용하게 쓰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리하여 고첨은 그 높디높은 절벽에서 맨 몸으로 뛰어내리기를 반복했다.

내공을 익히거나 신법을 배운 바가 없이 떨어지는 것이니만큼 몸이 성할 리 만무했다.

처음 뛰어내리던 날 두 다리가 부러지고 허리가 꺾이는 중상을 입었고 약 삼 개월을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낫자마자 바로 또 뛰어내려 다시금 다리가 열 조각으로 부러졌다.

그렇게 뛰어내리고 부러지고 몸져눕고를 반복하길 수십여 차례, 장장 삼 년여에 걸쳐 절벽 뛰어내리기가 시행되었다.

그 다음 ‘오래도록 은신하기’는 인내에 관한 수련이었다. 물론 이제까지 수련한 것들 중 인내가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설명을 들은 고첨으로서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도 한 것이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되니 어려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서 두 다리를 오므리고 갇혀 있는 것은 처음 한 시진 정도까지는 참을 수 있었으나 이후로는 답답함에 미쳐 버릴 지경이 되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좁디좁은 틀은 천장이고 바닥이고 사면이 몸의 규격에 딱 맞춰진 상태라 오로지 그곳에서 한 자세로 지내야 하는 것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하루에 한 번씩 작은 구멍이 열리고 그곳을 통해 물과 식사가 떠 먹여졌다. 하지만 문제는 먹는 것이 아니라, 배출에 관한 것이었다.

소변은 싼 후에 마를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었지만 대변을 처리하는 것은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참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삼 일째가 되어 결국 덩어리들이 꾸역꾸역 기어나왔고, 잊고 싶었던 똥독의 추억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버틴 기간이 장장 석 달이었다. 외로움과 꿈틀거리고 싶은 욕망, 시원스럽게 배설하고 싶은 열망 속에서 보낸 처절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옷을 갈아입고 싶다는 소망과 목욕을 하고 싶다는 소망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온갖 고문을 당하였는데, 이유는 강인한 정신력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세월이 이 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 년 동안 여러 고상한 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물론 암기력은 뛰어나도 공부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고첨으로서는 고문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이 과정이 이루어지는 중에도 여인들의 습격은 여전해서 철의 여인들이 다녀가고 난 뒤에는 반드시 보름이나 한 달가량 피골이 상접한 채 바닥을 기어다녀야 했다.

고첨은 십 년의 세월이 지나 어느덧 서른 살을 바라보게 되자 초조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바라던 바는 젊은 나이에, 그러니까 적어도 이십오륙 세가량에는 강호에 나가 무림을 제패하고 칭송받으며 뭇 미녀들을 처첩으로 거두어 쾌락을 즐기며 사는 것이었다.

한데 지금 상황을 보니 신공은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고 엉뚱한 것들만 잔뜩 배우게 되니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하제일의 무공은 도대체 언제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 억지로 시간을 지연시키려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식이라면 여기서 관두지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상을 보이자, 아귀진독도 흠칫했다. 물론 그것은 흠칫하는 척이었다.

“음, 좋다. 이제 부수적인 내용은 거의 다 익혔으니 천하를 오시할 절세의 무공을 전수토록 하겠다. 그동안 십 년의 세월은 지금을 위한 것이었음을 명심하고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강호의 평안이 네 손에 달려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

의외로 확정적인 말이 떨어지자 고첨은 벅찬 감동에 휩싸여 눈물을 글썽였다.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찾고야 말겠습니다.”

아귀진독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였고, 둘은 감격스럽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널 믿는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서로 죽일 듯하던 관계가 삽시간에 화사하게 변해갔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고첨은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저,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는지요?”

“무엇이냐?”

“여신으로 변신한 다음에…….”

말을 줄였지만 그 다음 말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귀진독은 끌어안은 상태에서 무릎으로 복부를 가격했다.

“이런 썩을 놈을 봤나! 너 이 자식, 오늘 죽어봐라. 죽어~”

신공을 약속받은 십 년째 되는 날, 고첨은 거의 반 죽었다.

신공의 명칭은 상당히 길었다.

<만류귀종능광연환구구팔괘단월원형검법

(萬流歸宗凌光連環九九八掛斷月圓形劍法).>

고첨은 일단 이름은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이은 파괴력도 물론 마음에 들었다.

아귀진독은 이 검법의 위력을 이렇게 말했다.

“만류귀종능광연환구구팔괘단월원형검법을 상대할 무공은 세상에 없다. 삼성의 경지에 이르면 검을 뽑는 순간 산을 가를 수 있고, 바다를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가를 수 있게 된다. 오성에 이르면 단 한 번 그은 검격에 의해 도시를 가를 수 있다. 칠성의 경지에 이른 순간 검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다. 몸 자체가 검이니 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검을 든 것과 같은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 후 십성의 경지부터는 손도 필요치 않다. 마음을 기울이면 그 자체가 검이다. 살의가 이는 순간 모든 것이 파괴된다.”

고첨이 쾌재를 부른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이었다.

“이 만류귀종능광연환구구팔괘단월원형검법은 총 구십오만 육천칠백팔십구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하나를 완벽히 터득해 가면서 결국은 이것이 하나의 위대한 초식으로 결합되어지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십오만 육천칠백팔십구 초식을 온전히 익히고 깨우쳐야만 한다.”

쿠궁!

뭔가 암울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았다. 불안이 스멀거리면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때 만약 아귀진독의 위로의 말이 없었다면 고첨은 실신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동안 너는 혹독한 수련을 거쳤다. 그것에 비한다면 이 만류귀종능광연환구구팔괘단월원형검법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희망을 가져라. 넌 할 수 있다.”

듣고 보니 불끈 자신감이 솟았다. 얼마나 험한 역경을 뚫고 지금 이 자리에 섰던가. 뱀굴에 들어갔을 때, 똥통에서 잠수하고 있을 때, 철사봉을 익히느라 시뻘겋게 달아오른 쇠 구슬 사이에 몸을 밀어 넣을 때 등등 다시 하라고 한다면 죽기 보다 싫은 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하라고 하는 것은 좀 많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뿐이지 힘들 것은 없었다.

“힘이 납니다. 해보겠습니다.”

굳은 의지가 묻어나는 음성을 토해내자 아귀진독은 어깨를 두드리며 대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고첨은 사십오 세가 되었다.

어느덧 만류귀종능광연환구구팔괘단월원형검법을 익히기 시작한 지 십육 년이 흐른 것이다.

이때까지 고첨은 십일만 이천육백오십삼 초식까지 터득하였다. 이 초식은 ‘월세송허(月歲送虛)’이라는 이름을 지녔는데 검을 뽑아 들고 위로 열일곱 번 쳐올리고 순식간에 아래로 그어가는 동작이었다.

이 절세무적의 검법은 이름이 검법일 뿐 사실 그 속에 내공과 경공, 장법, 지법까지 포괄하고 있었기에 고첨의 무공 수위는 가히 놀라운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있었다.

만약 지금 당장에라도 무림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일 초식을 받아낼 수 있을 자는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귀진독은 고첨의 무위를 볼 때마다 깊은 시름을 섞어 한탄했다.

“좀 서둘러야만 해. 지금 이 정도로는 백대고수에도 들지 못한다. 더욱 정진하여라.”

계절이 바뀌길 수십여 차례, 고첨의 나이 오십칠 세가 되었다.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어느새 환갑을 바라볼 나이에 이른 것이다.

이때까지 고첨은 삼십육만 오천오백삼십구 초를 터득했다. 아직 갈 길은 멀고도 멀었다.

고첨은 멀리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쯤 강호에 나갈 수 있을까. 아! 꿈을 펼쳐 보고 싶건만…….”

콰과과광!

단 일 검이었다. 산봉우리를 겨냥하여 검을 뽑아 긋는 순간 봉우리는 깨끗하게 절단되어 무너져 내렸다.

고첨의 나이 칠십이 세.

그는 칠십이만 구천삼백오십팔 초식까지 연마하였고, 어느덧 만류귀종능광연환구구팔괘단월원형검법을 삼성까지 터득했다. 그러나 아직 이십여 만 초가 더 남아 있었다.

“아, 허무한 인생이여…….”

덧없이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니 자신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한탄이 절로 나왔다.

무공을 연마하는 것 외에 또 다른 괴로움은 여전히 석 달 간격으로 찾아오는 철의 여인들이었다. 그가 백발이 성성해진 것처럼 찾아오는 여인들도 이젠 다 늙고 쭈그렁텅한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거친 피부와 쭈글거리는 외모와 달리 힘은 여전하여 그녀들이 다녀가고 나면 최강의 신공을 수련하고 있는 그조차도 다리가 휘청거리고 한동안 거동을 못할 지경이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적이었지만 아귀진독의 말에 의하면 이제 고작 ‘강호 서열 이십팔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니 섬을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었다. 위로 이십칠 명이나 고수나 존재한다면 고생한 보람도 없이 맞아 죽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첨이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살아가는 동안 마계에서는 여간 흐뭇해 마지않았다.

아귀진독은 유명 인사가 되었고, 날마다 고첨을 바라보며 웃음의 재료로 삼았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막 팔십사만 오천육백삼십삼 초식을 달성하였을 때, 아귀진독이 찾아와 건넨 말이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이때 그의 나이 팔십오 세였다.

“좋지 않은 소식과 좋은 소식이 각각 하나씩 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나으니 좋지 않은 소식부터 듣죠.”

“무림에 천재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로 인해 너의 서열은 이십팔위에서 삼십구위로 떨어졌다.”

고첨의 안색이 검푸르게 변한 것은 당연했다.

“그럼 좋은 소식이란 무엇입니까?”

“앞으로 어떤 천재가 나온다 해도 너를 능가할 수 없도록 새로운 무공을 전수하기로 결정이 났다. 만류귀종능광연환구구팔괘단월원형검법을 다 익힌 후 총 이백만 초로 구성된 쾌활난로팔면혼공(快活爛路八面魂功)이라면 영원한 강자로 군림할 수 있게 된다. 어떠냐? 하하하하하.”

아귀진독이 호쾌하게 웃고 자리를 뜨자, 혼자 남게 된 고첨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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