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113화 (113/125)

# 113

고첨은 사색이 되어 뒤걸음질쳤다. 석 달에 한 번씩 찾아온다면 이삼 년을 넘기지 못해 수명이 다하고 말 것 같았다. 여인들은 즐거움이 아니라 악몽이요, 공포 그 자체였다.

“전 이제 필요없습니다. 최강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정력을 보존하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무슨 말을 해도 피할 순 없다, 계약은 계약이니까.”

고첨은 다리가 풀리면서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여인들이 떠나고 한 달을 누워 있었다. 그럼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흐물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여인들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까?”

아귀진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들은 온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여인들이 오는 시간을 임시로 뒤로 미룰 수 있다. 지금부터 일 년 뒤까지 미루고 그때부터 다시 삼 개월 단위로 찾아오게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겠느냐?”

고첨은 그나마 당장 두 달 뒤에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일 년 동안 너는 여인들을 상대하기 위한 새로운 무공 수련에 돌입할 수 있다. 십이성에 이르게 되면 백 명이 아니라 오백 명, 천 명이라도 전혀 몸이 상하지 않을 것이다.”

고첨의 눈이 번쩍 떠졌다.

몸만 상하지 않는다면 여인들은 공포가 아니라 예전처럼 즐거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훗날 최강의 무공을 익히고 강호에 나가게 될 때 뭇 강호의 미녀들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절륜한 정력으로 수없이 많은 처와 첩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쁨이 용솟음쳤다.

“최선을 다해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큰절을 올리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너는 철사장(鐵砂掌)이라는 무공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어깨너머로 들은 기억이 납니다. 뜨겁게 달군 가마솥에 쇠 구슬과 모래를 집어넣고 손을 넣었다 뺏다를 반복하여 손을 강철처럼 단련하는 것이 아닌지요?”

“맞다. 손을 쇳덩이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것으로 철사장을 익히면 맨손으로 쇠를 뚫고 바위를 부술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지니게 된다. 네가 익히게 될 무공은 철사장과 매우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손이 아니라 네 물건을 그와 같이 단련한다는 점이다. 이름은 철사봉(鐵砂棒)이라고 한다.”

“네?!”

고첨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지만 이미 언약이 맺어진 후였다.

철사장의 수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뜨겁게 달군 모래에 손을 집어넣지는 않는다.

큰 포대 자루에 쌀이나 곡류를 담아두고 그 속에 수도로 찌르기 연습을 한다. 그 뒤에는 미지근한 약물에 손을 담가 근육의 피로를 풀고 여독이 머물지 않도록 하면서 점점 강도를 높인다.

곡류에 익숙해진 뒤에는 모래로 단련하는데, 이때도 불에 달군 모래는 사용하지 않는다. 불에 달구어진 모래는 적어도 이삼 개월 정도가 지나야 하고 일 년여가 지났을 때는 단련의 정도를 살펴 쇠 구슬로 대체하기도 하는 것이다.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섬에 울려 퍼졌다. 당연히 고첨이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밧줄에 묶여 있었는데 두 팔과 두 다리를 각기 앞뒤로 쭉 뻗은 상태로 엎드린 자세로 결박되어져 있었다.

그의 등 쪽으로 밧줄이 기둥에 매달렸는데 몇 개의 받침대를 지나 밧줄의 끝은 아귀진독의 손아귀에 쥐어진 상태였다.

아귀진독이 밧줄을 풀면 몸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 아래 넓게 깔려진 모래 통에 고첨의 물건이 닿게 되는 식이었다. 모래 통 아래는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있음은 물론이다.

“크아아아악!”

고첨의 물건은 화상을 입은 상태로 뜨거운 모래를 파고들기를 반복했다.

“참아야 해. 지금의 고난은 훗날 거대한 성취감으로 돌아올 테니까. 강호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무림 역사상 지독한 음녀들을 물리치지 못해 좌절한 영웅이 한둘이더냐. 여자의 품에서 녹아나 큰 뜻을 행하기도 전에 한 줌 이슬이 된 이들의 뒤를 밟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

아귀진독은 침착한 설명과 함께 그날 하루종일 단련시켰고, 고첨은 기절했다가 깨어났다가를 반복하면서 지옥을 맛보았다.

철사봉 수련은 첫날부터 강도 높게 이루어진 만큼 이후의 수련의 양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모래에 꽂아 넣는 것은 한 달 만에 끝내고 이어진 것은 벌겋게 달구어진 쇠 구슬이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이글거리는 쇠 구슬이라 고첨은 미친 듯이 절규하며 그만두겠다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마신에게 있어서 그런 몸짓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크아아아악~”

철사봉 수련은 대단한 성과로 나타났다. 고첨의 물건은 육 개월이 되면서는 쇠처럼 단단해졌고 크기도 원래의 세 배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고첨에겐 대단히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무 느낌도 없잖습니까?”

그렇다. 별 짓을 다 해도 전혀 흥분이 되질 않는 것이다. 성감을 자극할 만한 신경이 모두 차단되어 자기 몸이 아닌 것 같았다.

“문제될 건 없다. 이제 너는 여자에 관한 한 무적이다. 널 상대하는 여자는 환장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아귀진독은 뿌듯해했다.

“제 말은 그게 아니잖습니까? 여자를 만족시키면 뭐 합니까? 여자가 환장을 하면 뭐 하냔 말입니다! 정작 내가 느끼지 못하고 환장을 못한다면 그건 노동일 뿐입니다!”

고첨은 육 개월의 고난의 끝이 참담한 결과로 나타나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후후후, 넌 아직 강호의 무서움을 전혀 모르는구나.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아귀진독의 말에서 일말의 희망은 읽을 수 있었으므로 고첨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그전보다 더욱 혹독한 철사봉 수련이 이어졌다.

고첨은 극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감각이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이를 악물고 단련에 힘썼다. 그러나 일 년이 되어도 아무 느낌도 얻을 수 없었다.

‘아, 나는 멀쩡해 보이지만 이제 고자나 다름이 없구나.’

여자들이 오기로 한 날이 되어 해변에 나가 기다리면서 고첨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렵지도, 설레지도 않았다. 몽둥이에 감각이 없는 것처럼 누가 오든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저 무뚝뚝한 표정으로 누워 막대기를 휘둘러 주면 여자들은 알아서 환호하고 괴성을 질러대다가 기절할 것이다. 철사봉을 수련하는 중에도 매일같이 공청석유와 산삼을 복용한 그다. 세상에 어떤 여인이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봉으로 땅을 팔 수도 있고, 나무를 팰 수도 있을 정도다. 쇳덩이로 강하게 내려쳐야 겨우 통증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 여인들의 연약한 피부는 말할 바도 아니었다.

드디어 저만치 범선이 모습을 드러냈고, 여인들이 작은 배를 타고 해변으로 다가왔다.

지난번처럼 바로 배에서 뛰어내려 미친 듯이 헤엄쳐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첨으로서는 의아한 광경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뭐야? 저게 다야?”

이번에는 극한의 수련도 있었던 만큼 오백여 명가량은 올 것으로 생각했고, 또 그 정도는 와야 혹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작은 배로 다가오는 여인들의 숫자는 고작 이십여 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쯧쯧, 실로 가소롭구나. 어서 와라. 본때를 보여주마.”

고첨은 일각(15분) 안에 끝내고 차라리 빨리 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장장 일 년여의 철사봉 수련 기간을 생각하면 일각도 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인들은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이 대부분이었고, 그중 한 여인은 가장 젊어보였는데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얼굴들은 결코 미녀라고 부를 수 없는 용모였고 몸매도 그다지 빼어난 구석이 없었기에 고첨으로서는 설레이는 감정 자체가 생겨나질 않았다.

배가 해변에 닿자, 여인들은 씩씩한 용사처럼 모래사장을 걸어왔다.

마치 전투를 하려는 듯 그녀들은 딱딱히 굳은 표정이었고, 발걸음이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여인들은 상의를 전혀 걸치지 않은 상태였고, 하의도 고작 천 조각 하나만을 두른 상태였는데 다가오는 중에 아래쪽을 가린 천을 뜯어내고는 우왁스럽게 고첨을 바닥에 눕혔다.

고첨은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별 염려는 하지 않았다.

평범해 보이진 않지만 막상 올라타 허리를 흔들고 나면 금방 축 처져서 흐물거리면서 내려올 것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그러나 그것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첫 번째 여인이 올라타고 결합된 순간이 되어서였다.

“커헉!”

자신의 물건은 삽 대신 땅을 팔 수도 있고, 도끼 대신 벌목을 할 수 있을 정도이건만 결합이 된 순간 마치 쇠 구멍에 끼어진 것처럼 엄청난 강도와 압박을 느낀 것이다. 이건 정녕 사람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대체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고첨은 어리둥절하여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와 같은 광경을 저만치 떨어져서 구경하고 있던 아귀진독과 음부귀장은 껄껄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고첨은 비로소 상황을 파악했다.

“철녀들을 이십여 명이나 데리고 오다니 놀랍군.”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철사봉을 익힌 사내를 상대하려면 철사혈을 익힌 여자라야만 상대할 수 있으니까. 결코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네.”

“녀석의 표정을 보니 꽤 놀란 모양이야.”

“이번 기회를 통해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나쁘진 않지.”

고첨은 정녕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실감했다. 무슨 짓을 해도 느낄 수 없었던 자신의 쇠몽둥이가 아려오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 여인들은 어떤 수련을 했기에… 철사혈이라고 했던가.’

그는 대충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자신이 나름대로 힘든 수련의 나날을 보냈다고 생각했건만 여인들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로부터 보름에 걸쳐 고첨은 처절한 육체의 향연을 지나 정력 고갈을 맞이하였다.

피골이 상접한 것은 물론이고 서 있을 힘조차 없어 이십여 일이나 빌빌거렸다.

그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난 고첨은 철사봉이 칠성가량의 성취에 이른 것만으로도 세상엔 상대할 여자가 없을 것이며, 흉내 낼 수 있는 사내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던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고 십이성을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자세를 보며 아귀진독은 만족스러워했다.

“지금이라도 깨달았다니 다행이다. 무림이란 그런 곳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저만치 뒤로 밀려나고 말지. 그러니 매 수련마다 불만을 품지 말고 극성으로 연마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자부하지 말아야 한다.”

“자만을 버리고 오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다. 오늘부터는 철사봉 수련과 병행하여 만독불침에 나아가도록 하겠다. 무림에는 온갖 독으로 무공을 무력화시키는 무리들이 많다. 내력이 강한 자는 어느 정도의 독성에는 꿈쩍도 하지 않기에 독을 쓰는 무리들은 내공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독을 연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그것을 막아내지 않고서는 결코 천하제일인이 될 수 없다.”

이제 이 년이 지났다. 고첨은 총 수련의 시간을 스스로 계산하길 오 년에서 육 년 정도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

일 년은 순수 체력 단련이었다. 이 년째는 철사봉 수련, 삼 년째를 맞는 지금부터는 독공을 연마하니 남은 이삼 년에는 절세의 신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부터 강호는 자신의 발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오 년 바짝 고생하고 평생을 군림천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왔다.

그러나 그의 희망 섞인 의지는 불과 몇 시진도 되지 않아 붕괴되는 상황이 이르렀다.

아귀진독이 만독불침을 위해 한 번 빠지면 혼자 힘으로는 결코 올라올 수 없는 깊이의 뱀굴에 집어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독을 떠나 수천의 뱀들을 깔아뭉개고, 또 뭉개지는 상황에 놓인 것 자체가 말로 할 수 없는 공포였다.

“으아아악~ 살려주세요… 만독불침 같은 것은 안 할랍니다! 제발 꺼내주세요. 으아아악~”

응답은 당연히 없었다. 도리어 외침은 뱀들을 자극해 거대한 이빨로 삼켜 버릴 것처럼 덤벼들게 할 따름이었다.

그곳에서 이틀가량 뱀에 물린 고첨은 몸이 퉁퉁 부은 상태로 혼절했다. 아직 죽지 않은 것은 그동안 공청석유와 천년산삼을 꾸준히 복용한 덕분에 어느 정도 정화 작용을 하였기 때문이다.

아귀진독은 고첨을 해독시키고 정신을 차리게 한 다음, 공청석유와 산삼을 버무린 밥을 배불리 먹게 하였다.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셨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솔직히 너무 놀랐습니다. 무섭기도 했구요.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첨이 불만과 함께 예를 갖춰 말하자, 아귀진독이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직 안 끝났다.”

그러고는 바로 뱀굴로 다시 밀어버렸다.

“으아아아악!”

뱀들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고, 얼굴부터 발끝까지 서로 물어뜯으려고 엉겨붙었다.

그중 몇 마리의 뱀들은 고첨의 몸을 물다가 죽음을 맞았는데, 그건 철사봉에 연마한 그의 물건을 물다가 충격을 받고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뱀굴 생활은 두 달 반을 맞아 끝을 맺었다.

그때부터는 뱀에게 물려도 아무렇지도 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만독불침의 수련이 끝난 건 아니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건 독전갈과 독지네였고, 각기 석 달과 두 달 반의 기간 동안 독의 면역력을 키웠다.

이후로는 주로 독을 지닌 식물들을 복용하는 과정을 한 달가량 거쳤는데, 고독(蠱毒)을 복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미 극독에 단련된 탓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음에도 잘 견뎌주었다. 이제 만독불침의 수련은 마지막 한 관문만을 남겨놓게 되었다. 이 관문을 지나면 세상에 무서워할 독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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