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112화 (112/125)

# 112

고첨은 내용 중 두 번째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아귀진독은 눈웃음을 쳤다.

“공자께서 원하시는 경지는 이제껏 세상에 드러난 적이 없는 위대한 곳에 오름을 의미하지요. 그것은 거의 신의 경지에 육박한답니다. 만약 원치 않으신다면 수련 없이 모두가 놀랄 정도의 경지에 이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라면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지요.”

“아!”

고첨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정도라면 당연히 감수해야겠지. 하하하하하… 자고 이래 없던 영웅의 탄생이 될 테니까.”

아귀진독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중요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역시 공자님이십니다. 자, 그러면 여기 계약서에 손도장을 찍으시지요.”

“도장이 어디에 있나?”

“그저 손바닥을 활짝 펴서 종이 위에 누르시면 흔적이 남게 됩니다.”

“오호, 그거참 신기하군.”

미심쩍은 손놀림으로 종이에 대었다 떼니 놀랍게도 손의 지문과 손금이 명확히 계약서 위에 찍혀졌다.

그리고 이어 계약서는 핏빛 광채에 휩싸이면서 떠오르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첨으로는 그저 신비한 광경이었지만 실은 마계로 계약서가 전송되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아귀진독의 모습도 홀연히 바뀌기 시작했다.

눈부신 미모를 뿜어내던 여신의 모습에서 흉악하고 냄새나며 근육질을 지닌 악한으로 모습이 바뀐 것이다.

“헉!”

고첨은 이 돌연한 반응에 놀라 뒷걸음질쳤고, 아귀진독은 잔인한 미소를 풀풀 풍겨냈다.

“크크크크, 그동안 잘도 골탕먹였겠다. 이 망할 놈,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마!”

고첨은 일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밤과 낮으로 침대 위에서, 침대 아래에서, 탁자 위에서 벽에 기댄 채 사랑을 나누었던 여신이 사실은 저렇게 흉악한 놈이었다는 생각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만 같았다.

“크와악, 우웩~”

음식물들이 확인차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그렇지 않아도 분노에 몸을 떠는 아귀진독의 화를 돋우는 작용을 하기에 충분했다.

“네놈이 날 멸시하고 또다시 날 치욕스럽게 하는구나!”

아귀진독은 즉시 발을 날려 밟아대기 시작했다.

“요절을 내주마. 썅… 으가각. 죽어라~”

“왜 때리는 거냐! 이건 계약과 다르잖아!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어서 꺼져, 이놈아!”

고첨도 열이 받아 맞으면서도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에 그는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몸을 쇠처럼 단련시키는 훈련일 뿐이다. 너는 수련에 전념하기나 해라.”

고첨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이렇게 어이없게 천하제일고수가 되기 위한 수련이 시작된 것이다.

***

9. 천하제일고수가 되다

섬이었다. 하지만 어디에 존재하는 섬인지, 섬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오로지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뿐이었다.

고첨은 자신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지는 것을 보았고, 문득 눈을 떴을 때 안개와 같이 형체가 짙어지더니 외딴 섬에 놓인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직 수련의 나날이었다.

“이건 계약과 다르잖아. 당장 날 돌려보내라. 이건 사기야, 사기!”

이렇게 외쳐 보았지만 돌아온 건 비웃음과 폭력뿐이었다.

반항은 열흘도 지나지 않아 수그러들었고, 아귀진독의 계획에 맞춰 고첨은 천하제일고수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계약 내용대로 영약은 확실히 공급되었다. 아침이면 천년산삼 하나를 통째로 복용할 수 있었고, 잠들기 전에는 공청석유를 마셨다. 처음 천년산삼을 건네받았을 때만 해도 고첨은 뛸 듯이 기뻐했지만 영약의 쓰임을 깨닫고는 산삼이나 만년하수오, 공청석유 등을 복용하는 것이 죽기 보다 싫었다.

<영약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격렬히 힘을 소비할 필요가 있다.>

이 가르침에 의해 아침부터 밤까지 섬을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했다. 경공술을 익힌 것도 아닌 상태에서 오로지 힘껏 달리는 신체 단련이 거의 일 년가량 이어졌다. 덕분에 체력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다시피 좋아졌다.

섬세한 근육질 몸매가 되었고, 뽀얗던 살결은 구릿빛으로 강건하게 변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아귀진독하고만 지냈기에 계약 내용에 따라 여자를 공급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귀진독은 일 년여 동안의 신체 단련 후에 가능하다며 계속 미루어왔다.

이제 드디어 일 년의 세월이 지나자 고첨은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그의 상태는 매일 영약을 복용하고 또 단련하였기에 정력은 차고 넘칠 지경이었다. 새벽이면 자신도 모르게 몽정을 하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 주체를 못했다.

“오늘이다. 준비는 되었느냐?”

아귀진독의 물음에 고첨은 과장된 몸짓으로 포권을 취했다.

“준비라굽쇼. 준비는 일 년 전부터 되어 있었지요.”

“클클클, 멋지게 회포를 풀어보도록 해라.”

“뜯어말리지나 마십시오.”

“아무렴.”

고첨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한편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껏 아귀진독의 경우 여자에 대한 이야기만 꺼내려고 하면 과거 그가 여자의 모습으로 뜨겁게 밤을 불태웠던 아픈 추억 때문에 폭발할 듯 화를 냈었는데 오늘만큼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아귀진독이 여자 문제에 민감한 것은 팔 개월이 지날 무렵, 정욕을 참을 수 없게 된 고첨이 내뱉은 말 때문이었다.

“여자를 데려오지 않을 거면 당신이라도 여자의 몸으로 변하면 되잖아. 난 정말 참을 수가 없단 말이다!”

물론 이 말이 나온 뒤 먼지나게 얻어터진 것은 당연했다.

‘후훗, 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군.’

정오가 지날 무렵 고첨의 기다림은 결실을 보았다.

일 년여 동안 배 한 척 지나간 적이 없는 이곳에 저만큼 거대한 범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배는 위용도 당당히 섬으로 다가왔다.

고첨은 설레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물가로 달려가 손을 흔들었다.

수심 때문에 범선은 약 삼십여 장 밖에서 닻을 내렸다. 뱃머리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안력을 돋우어 살피니 윤곽이 서서히 잡혔다. 그동안 내공심법을 따로 익힌 것은 없었지만 절세의 영약을 꾸준히 복용한 탓에 그의 신체적 능력은 월등히 발전해 있는 상태였다.

“음? 노인이잖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백발에 흰 수염이 그득하였고, 마른 체구에 허리는 구부정하니 조금만 바람이 거칠게 불면 휙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제길, 영감의 꼬라지를 보니 어째 불안한걸. 할머니들을 데려왔으면 어쩌냐. 뭐, 그래도 아쉬운 대로 힘을 써야겠지만 일 년을 기다린 것치고는 너무 억울하잖아. 그냥 아귀진독한테 여자로 변신하고 있으라고 한 번 더 떼를 써볼까?”

실망스런 낯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노인이 오른손을 들더니 힘차게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와 함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뛰어내리며 필사적으로 헤엄쳐 오는 것이다.

고첨은 잠시 놀랐지만 엄청난 속도로 두 팔을 휘저으며 다가오는 이들이 여자들이라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야호~ 이거 대단한걸! 하하하하, 어서 오라. 어서 와… 내 그대들을 극락으로 보내주리다!”

여인들의 나이는 삼십대 초반 정도에서 오십대 후반 정도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육지에 먼저 닿은 여자 둘은 어깨가 떡 벌어지긴 했어도 얼굴은 곱상하게 생겼기에 고첨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두 여자를 맞았다.

여인들은 달려오는 중에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졌고, 고첨에게 이르렀을 때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물론 고첨 또한 그에 호응하듯 그녀들이 다가오기 전에 옷을 벗었고, 이윽고 셋은 합체했다.

“오냐, 내 힘을 보여주마. 으하하하하!”

얼마나 간절히 바라던 만남이었던가. 고첨은 여인들을 씹어먹기라도 할 듯 덤볐고, 여인들도 두 다리로 허리를 감거나 이로 어깨를 물어뜯으면서 정욕을 마음껏 불태웠다.

그 뒤로도 여인들은 계속해서 섬으로 올라왔다. 그녀들은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는지 고첨의 손가락 하나라도 붙들겠다는 의지로 달라붙었고, 잠시 후 고첨은 백여 명의 여자와 뒹구는 상태에 이르렀다.

뱃머리에 서 있던 노인은 입가에 미소를 띠더니 허공을 평지처럼 걸어 고첨과 백여 명의 여자들 위를 지나쳐 아귀진독의 곁에 이르렀다.

아귀진독이 손바닥을 들어 보이자 노인은 자신의 손바닥을 부딪쳤다.

“어서 오게. 여자들은 제대로 골랐군.”

“물론이지. 굶주린 것으로 치면 저 녀석 못지않은 여자들이야.”

노인의 형상을 한 이는 음부귀장(淫婦鬼帳)이었다. 그가 마계에서 맡고 있는 사명은 음욕으로 여자들을 미혹하는 것이었다.

세상엔 음욕에 약한 자가 많았기에 그의 일은 매우 쉬운 편이었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아귀진독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고첨과의 계약 내용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현재 마계에서는 극존부터 모든 마신들이 고첨에 대한 분노에 들끓고 있었기에 아귀진독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입장이었다.

“저놈이 영약을 많이 먹어서 조금 걱정이 되는군. 여자들이 부족한 것 같은데… 백 명이라고 해봤자 열 명 정도로밖에는 여기지 않을 것 같거든.”

“흐흐흐. 염려 말게. 영약은 놈만 복용한 게 아니야. 저 여자들 하나하나마다 음기가 뼛속까지 스며든다는 혼음요근(渾淫妖根)을 일 년 동안 복용해 왔으니까 말이야.”

“혼음요근이라… 으하하하하! 그렇다면 안심해도 되겠군. 놈은 끝장이 나겠군.”

“그렇다니까. 흐흐흐.”

고첨과 백 명의 음녀들의 대결은 정녕 불꽃을 튀기는 것이었다. 공청석유와 산삼으로 다져진 정력은 절륜하기 짝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룻밤을 꼬박 새었어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더욱 힘이 솟구친다는 듯 모래사장에서 괴성을 지르면서 새로운 해가 솟고, 중천에 이르고, 서쪽으로 저물고 달과 별이 밤하늘에 나타나도록 대결의 양상은 처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은 여인들도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의 여인들은 얼굴에 생기가 돌며 새로운 힘을 충전받은 것처럼 활력에 넘쳤다.

개중에 나이가 오십 세를 넘긴 여인들이 피로를 호소했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음부귀장이 잠시 쉬는 틈에 하수오와 혼음요근을 복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기에 다시금 음기가 충만해져서 고첨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인들에게 뒤덮여 지낸 지 오 일째 되는 날, 이날 오전에 고첨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한참 허리를 격심히 움직이는데 쌍코피가 툭 하고 터져 주르르 흘러내린 것이다. 잠시 머리가 핑 돌면서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지만 잠시라도 쉴 시간은 없었다.

한 여인이 어느새 그의 코에 입을 대고는 코피를 남김없이 빨아먹으며 쉴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벌써 닷새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사랑을 해주지 않은 여자가 이십 명가량이나 남아 있었다. 그들은 구경만 하고 시작도 하지 않았기에 결코 고첨을 쉬게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첨이 지금 닷새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밤인지 낮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상태였고 오로지 여체의 숲에 갇혀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감조차 없이 정욕을 해소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코피가 터진 것은 몸이 경고 신호를 보낸 셈이다. 적당히 여기서 물러서야 한다고 알려왔지만 고첨은 수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다시 사흘이 지났다. 연신 코피가 쏟아지고 팔과 다리가 풀리면서 힘을 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여인들은 고첨을 놓아주지 않았다.

고첨의 상태는 손가락 하나도 까닥할 수 없었 지경이었지만 그녀들에게 중요한 것은 손가락이 아니었기에 그의 물건만 세워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고첨은 거의 실신 상태에서 여인들에게 농락당하면서 정력의 극심한 고갈 상태에 빠졌다.

그렇게 총 보름의 시간이 지나 여인들은 수줍은 미소를 짓고 떠났다.

“너무 멋졌어요. 다음엔 두 배로 즐겨요.”

“그대는 멋쟁이.”

“다시 올 때까지 정력을 모아두고 계셔요.”

“이런 기분 처음이야.”

물론 고첨은 반 기절 상태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듣지 못했다.

얼굴은 물론이고 몸 전체가 앙상해졌고, 눈에는 정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공청석유와 산삼을 통해 기력을 북돋우려 했지만 정기가 훼손당하였던 터라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몸살에 시달리고 자주 아팠다.

한 달이 지나자, 영약의 효험이 지극한 탓에 그나마 점점 회복되어 갔다.

고첨은 어설프게 시간을 끌다간 앞으로 더 험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귀진독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체력 단련은 일 년이면 된다 하셨으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무공 수련을 하고 싶습니다. 최강의 무공을 알려주십시오.”

아귀진독은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전혀 다른 말을 물어왔다.

“기분은 좋았느냐? 흥분이 지나친 것 같더니.”

“아, 그 말씀도 드리려 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무공 수련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여인들을 가까이 하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아귀진독은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웃었다.

‘무공 수련 좋아하시네.’

“그건 안 될 말이야. 계약은 이행되어야 하거든. 석 달 간격으로 여인들을 태운 배가 올 것이다. 만약 계약을 깬다면 너의 영혼은 곧바로 나에게 귀속된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헉! 석 달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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