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111화 (111/125)
  • # 111

    단 일각이라도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거래하고 싶을 정도로 지독한 유혹이 주변에 넘실거릴 정도였다. 그렇기에 아귀진독으로서는 고첨이 얼마나 구체적인 요구를 하려 하는지까지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이것이 바로 운명적 인연이 아닌가 싶소. 어제는 사실 얼마나 실망이 컸는지 모를 거외다. 어디서 구르다 온 늙은이인지 칙칙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 나타나서는 영혼 어쩌고 하는데 곁에 몽둥이만 있었다면 백오십팔 대 정도를 패버렸을 거외다. 그놈을 다시 보지 않은 것이 기쁘기 그지없는데 오늘 당신처럼 미의 화신을 보게 되니 내 마음은 하늘을 나는 것 같소이다.”

    아귀진독은 그 늙은이가 바로 자신인지라 잠시 흠칫하며 몸을 떨었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미소를 띠었다.

    고첨은 여신이 특별히 말이 많지 않고 연신 수줍은 미소만 띠고 있자, 자신감이 부쩍 커졌다.

    ‘역시 후흑문은 대단하구나. 어찌 이런 영적인 문제에까지 정확히 답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세상에 후흑문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은 진정 거짓이 아니로구나.’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자신의 꿈은 천하제일고수가 되는 것이며, 세상에 가득한 악을 물리치고 위대한 정도의 인물이 되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험한 길일지라도 끝내 이기고 굳건히 서겠노라고 말하며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이에 아귀진독은 마음으로야 당장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겉으론 신뢰를 가득 담은 눈빛으로 응해주었다.

    이때 둘의 만남의 광경은 마계의 모든 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천화경을 통해 생생히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각자 떨어진 상태로도 관찰이 가능했지만 이번 경우엔 특별히 극존의 지시로 함께 관람이 이루어졌고, 모두들 한마음으로 아귀진독을 응원하고 있었다.

    “근데 저 녀석은 왜 옷을 벗고 있는 거야? 누가 설명해 주지 않겠어?”

    “거창한 이유가 있을 리 없잖아. 저놈은 그냥 변태 중 하나일 뿐이라구.”

    “혹시 저 녀석 아귀진독에게 사귀자고 수작을 걸려는 건 아니겠지? 그럼 정말 골때리는데.”

    “어쩐지 저 멍청이는 그런 말을 할 것 같은걸.”

    “저 녀석 아까부터 물건이 하늘로 솟아 있는데,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

    “나도 봤어. 하지만 그냥 난 못 본 것으로 하고 싶어.”

    “으윽, 저 녀석 이야기하면서 탁자 아래에서 자꾸 만지작거리고 있어. 미치겠다.”

    “내가 저놈 닭 피 뒤집어쓰고 매달려 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

    “난감하군.”

    모두의 얼굴엔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입장이 제대로 바뀐 셈이었다. 이제껏 마신을 앞에 두고 저렇게 뻔뻔한 수작을 부리는 놈은 처음이었기에 그 누구도 안타까워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마계의 뜨거운 시선 속에서 고첨의 이야기는 이제 어느덧 핵심부로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우리의 이 만남을 단순한 거래로 생각하고 싶지 않소. 그대가 볼 때 내가 어떻소?”

    “공자님 같은 분과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정말이오?”

    “제 어찌 허튼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님은 특별하십니다.”

    고첨은 순간 감동에 젖어 몸을 일으키면서 덥석 아귀진독의 손을 붙들었다. 몸을 세우자 그의 솟구친 물건이 탁자 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낭자, 그럼 우리가 더 이상 뭘 망설일 필요가 있겠소. 자, 어서 침상에 오릅시다.”

    아귀진독은 이렇게까지 대책없는 놈일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에 그저 놀라 입만 벌릴 뿐 아무 소리도 내뱉지 못했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소이다. 내가 이끌어가겠소. 그대는 보아하니 경험이 없는 듯하구려.”

    탁자를 돌아 아귀진독의 허리를 감싸며 뻔뻔스럽게 내뱉는 말에 마계는 얼어붙고 말았다.

    마계 역사상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저, 저 개새끼!”

    극존이 신음하듯 욕을 내뱉었고, 그 뒤로 여러 마신들이 분노했다.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당장 요절을 내야 합니다!”

    “어서 명을 내려주십시오. 제가 당장 내려가서 때려죽이고 오겠습니다!”

    “더 이상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마계의 역사에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건 아귀진독에겐 고문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돌아오라고 해야 합니다!”

    마계가 통째로 뒤집어질 정도로 수많은 원성이 쏟아졌고, 얼마 후 극존이 무거운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처음 욕을 했을 때에 비해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지켜보도록 한다. 이것은 아귀진독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일이다. 설혹 잠자리를 갖는다고 해도 반드시 수치스럽다고 할 것까지는 없다. 아니, 반대로 이 일로 인해 마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다. 수치와 모욕을 참아가면서까지 영혼을 탈취할 수 있다면 아귀진독은 마계의 새로운 귀감으로 떠오를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 않으나 우리는 아귀진독을 응원해야만 한다.”

    근엄한 극존의 선언에 마신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만약 아귀진독이 수치를 감당하고 끝내 영혼을 탈취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마신으로서 인간의 농락을 당한다는 것을 견뎌내기란 지옥의 불에서 미소 지을 수 있을 정도의 강인한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고첨이 허리를 붙들고 침상 쪽으로 당기려는 행동을 취하자 아귀진독은 당황스러운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황급히 말했다.

    “지금 이 뜻은 무엇인지요?”

    “하하하하, 정말 모른단 말이오? 참으로 순수하구려. 남녀가 서로 뜻이 통하고 서로 사랑하게 되면 당연히 치러야 할 일이 아니겠소. 아무 염려 하지 마시오. 내 극락을 보여 드리리다.”

    어찌 아귀진독이 이 수작의 뜻을 모르겠는가.

    “저는 마신이옵니다. 어찌 인간과 남녀의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영혼을 팔아 천하제일고수의 무공을 얻는 것을 소원하시는 것이고, 또 그때가 되면 뭇 천하의 미녀들이 공자 앞에 줄을 설 터이니 지금은 자중하시길 바랍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 아니겠소. 자자, 빼지 말고 어서 기쁨의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고첨은 은근히 곁에 달라붙어 자신의 물건을 아귀진독의 몸에 부벼대면서 이야기를 하였기에 아귀진독으로서는 당장에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 극존의 당부가 떠올라 사사로이 행할 수가 없었다.

    “마계의 명예를 위해 놈의 영혼을 반드시 취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알겠느냐?”

    ‘으으… 어찌하여 내게 이런 시련이 닥친단 말인가!’

    아귀진독은 몸을 찔러대는 고첨의 물건에 몸서리를 치면서 대응 방안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분주했다.

    “공자, 작은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먼 미래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하하하, 말도 참 예쁘게 하는구려. 하지만 내 마음은 확고하다오. 만약 그대가 내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영혼이고 뭣이고 다 없던 것으로 하고 말겠소.”

    단호하게 내뱉는 말에 아귀진독은 잠시 벙찐 표정이 되어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는 식으로 바라봤다.

    “하하하하하, 그렇다고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내가 더 곤란해지잖소. 자자, 이리로 오시오.”

    아귀진독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혼동스러웠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이런 거래의 기회가 찾아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극존의 당부도 무시할 순 없는 일.

    아귀진독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고첨은 그것을 ‘긍정’으로 해석하였다.

    여자들은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기에 여신일지라도 특별히 다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마지못해 이끌려 침상에 누여진 아귀진독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윽고 고첨의 입술이 서서히 다가오자 아귀진독은 눈을 꼭 감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흘린 것은 아귀진독만은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천화경을 통해 지켜보는 모든 마신들도 울분을 참지 못하여 눈물을 쏟았다.

    그들 중 몇은 아귀진독의 이름을 외쳐 대면서 안타까워했다.

    극존은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입술을 부르르 떠는 것이 이미 운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점점 장면은 진해지고,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진한 남녀 관계에 마계는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그 탓에 지상에는 비가 쏟아졌다.

    오로지 기쁨에 들뜬 건 고첨뿐으로 그는 수십 가지 체위를 번갈아가면서 신바람을 냈다.

    “오오! 죽인다, 죽여!”

    자정을 약간 넘긴 때부터 시작된 남녀 간의 밤운동은 새벽닭이 울고 급기야 해가 솟구쳐서야 끝이 났다.

    대충 몸을 준 이후 계약을 체결하려고 했던 아귀진독의 계획은 실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아침에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고첨은 정력을 극심히 소비한 탓에 몸을 흔들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잠이 들었기에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

    아귀진독은 처연한 몸을 이끌고 마계로 돌아가려다 이내 주저앉았다. 그들은 모두 위로의 말을 건네겠지만 그것조차 괴로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일단 이곳에서 고첨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약속대로 계약을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계는 헤어나지 못할 만큼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극존을 비롯한 모두는 지난밤의 영상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남녀가 뒤엉키며 뜨거운 밤을 보낸 것은 틀림없이 흥분될 만한 일이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흥분하는 이는 없었다.

    하찮게 여기던 인간 따위에게 농락당하는 동료의 모습에 짙은 패배감이 먹구름처럼 곳곳을 떠다녔다.

    그들은 하나같이 속히 계약이 이루어져 아귀진독이 복수할 수 있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그 간절함이 깨져 버리는 데는 불과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후 늦게 깨어난 고첨이 방으로 식사를 가져오라 시키고는 배를 채우자마자 아귀진독을 덮쳐 버린 것이다.

    아귀진독은 온몸이 벗겨진 채로 다시금 처절히 농락당했다. 고첨은 초절정의 미녀를 통해 정욕을 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였기에 비록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눕히고, 앉히고, 엎드리게 하고, 서게 하는 등 스스로 힘을 기울여 동작을 취하게 하고는 신바람을 내면서 몸을 굴려댔다.

    그렇게 하길 사흘이 지났고, 고첨은 새로운 요구를 해왔다.

    “이건 마치 나무토막을 붙들고 나 혼자 씨름을 하는 기분이니 도통 흥이 나지 않는구려. 계속 이럴 거면 아예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

    아귀진독은 당장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것은 우주의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므로 불가능했다. 그에겐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는데 이제 와서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가야 한다면 그전의 수고와 치욕이 물거품이 되니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귀진독은 이후 닷새에 걸쳐 온갖 교성을 질러대고, 허리를 흔들고, 열정적으로 반응하며 고첨을 기쁘게 해주었다.

    고첨은 비로소 만족하여 팔 일째 되는 날 밤, 한차례 뜨거운 폭풍 속을 지난 후 계약에 관해 말을 꺼냈다.

    이전까지 서로는 육체의 결합 중에 온갖 미사어구를 동원하여 사랑을 속삭였기 때문에 고첨으로서는 여신의 마음이 이미 자신을 떠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나의 그대여, 이제 때가 된 듯하오. 우리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가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소. 이제 나를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도록 해주시오.”

    아귀진독은 오랜 시련 끝에 결국 뜻을 이룰 수 있게 되자 감개가 무량했다. 감성에 젖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모습에 고첨은 진실한 뜻도 모르고 머리를 감싸주었다.

    “울지 마시오. 내 비록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고, 뭇 강호인들에게 영웅으로 군림하며, 초절정의 미녀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줄을 서 있다고 해도 그대를 버리진 않을 터이니 말이오.”

    아귀진독은 가소롭기 짝이 없었지만 아직은 마음을 놓을 단계가 아닌지라 슬픈 표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것이 시간을 지연하게 될 줄은 몰랐으리라.

    고첨이 아귀진독의 턱을 잡고는 서서히 입을 맞춰간 것이다. 혀가 밀고 들어오는 것이 꼭 뱀이 기어들어 오는 것 같았다. 아귀진독은 스스로를 책망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혀로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둘은 순식간에 벌거벗은 몸이 되어 뜨거운 절정으로 치달았다.

    때가 무르익어 계약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마계에서는 여기저기서 욕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저런 머저리 같은 놈, 뭐 하러 눈물을 흘리고 지랄이야!”

    “저거 혹시 정말 사랑에 빠진 것 아니야?”

    “우웩, 토할 것 같아!”

    “흐미, 징하다, 징해.”

    “아귀진독 저 친구 참 불쌍하다, 불쌍해…….”

    “너무 욕하지 말자. 녀석도 죽고 싶을 거 아니냐구.”

    “그걸 누가 몰라. 화가 나니까 그렇지.”

    주변의 수군거림에도 근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극존은 끝내 찝찝함을 견딜 수 없었는지 침을 수차례에 걸쳐 뱉어냈다.

    “크아아악, 퉤~”

    고첨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유리한 방향을 선점하려 노력했다. 이것은 아귀진독이나 마계의 뭇 마신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치밀함이었다.

    고첨의 요구 사항은 아래와 같았다.

    ―천하제일의 고수가 될 수 있도록 영약을 아끼지 않는다.

    ―최고의 비급을 준비한다.

    ―뜻을 이룰 때까지 살인은 하지 않겠다.

    ―무공을 익히는 동안에도 여자는 반드시 공급되어야 한다.

    ―만약 위의 내용 중 하나라도 이행되지 않을 시엔 계약은 무효가 된다.

    여기에 아귀진독은 당연하다고 응했고, 마계 측의 계약 내용도 밝혔다.

    ―천하제일고수의 조건으로 영혼에 대한 권리는 마계로 이전된다.

    ―다소나마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기 위한 의지를 버리지 말 것.

    ―더불어 마계는 끝까지 책임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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