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자, 이제부터 어떤 과정을 통해 상상초월객에 이를 수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어서어서… 뭘 망설이는 거야.’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곧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대인께서 앞으로 익히시게 될 무공은 천상의 무공이자 악마의 무공입니다. 그것은 결코 간단히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대인이시라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이루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마신(魔神)’을 부르는 일입니다. 마신과 계약을 맺으셔야 합니다. 마신은 대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틀림없이 ‘영혼’을 원할 것입니다. 이때 망설이지 마십시오. 영혼을 가져간다고 하지만 그건 모두 얼마나 마음이 확고한지 떠보기 위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신을 부를 수 없다면 거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무엇보다 마음을 써야 할 일은 마신이 대인께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 방법을 말씀드리자면…….
고첨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그 나머지 내용까지 읽어나갔다. 거기에는 마신을 부르는 법과 마신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대처하는 방법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하하하하! 뭐,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나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자고, 천 년 묵은 나무의 뿌리보다 더 견고한 정신력의 소유자인데! 으하하하하하!”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온통 조롱만이 가득한 서신의 내용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주인 고첨을 모시고 달혼장에서 일한 지 오 년이 넘어가는 막봉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장원 내에서 길러지는 총 다섯 마리의 개 중 서쪽 담장 아래에 위치한 개집에서 주인 고첨이 개밥을 훔쳐 먹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고첨은 결단코 무슨 일이 있다 해도 개밥을 먹을 위인이 아니었다.
식사도 매일매일이 새로워야만 하고, 한 달 전에 먹었던 음식이 다시 나온다면 식탁을 걷어차 버리는 몰상식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흐뭇한 표정 아래 맛있게 개밥을 먹고 있지 않은가. 이 놀라운 광경에 개마저 어이가 없는지 미동도 없이 고첨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봉은 잠시 후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얼른 몸을 숨겼다.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개밥을 먹고 있는지 모르지만 혹여 기분이 안 좋아지게 될 때면 이번 일을 꼬투리 잡아 욕을 보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막봉이 몸을 숨기고 개마저 뻘쭘함을 금치 못할 때 고첨은 개밥의 남은 국물을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마셨다.
그는 지금 후흑문이 보내온 기밀 문서에 적힌 ‘마신을 부르는 방법’ 1단계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러했다.
―기쁜 마음으로 개밥을 열흘간 드십시오. 개밥은 반드시 개가 절반을 먹고 난 다음 절반을 먹어야만 유효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얼굴엔 미소를 잃어선 안됩니다. 혹시 누가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굳이 기억치 마십시오. 이 단계에서 중요한 점은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는 도저히 가까이할 수 없는 뚜렷한 구분이 있어 서로에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개는 사람과 가까우면서도 신을 볼 수 있기에 지극히 낮은 자가 되어 개밥을 먹게 되면 마신을 거리낌없이 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하여 고첨은 열흘간 하루 세끼를 꼬박 개밥을 먹었다. 입에서는 누린내가 나고 가끔씩 정체불명의 액체가 개국에 떠올라 토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상상초월객이 되기 위한 집념 하나로 미소를 띠고 참아냈다.
그사이 달혼장에서는 주인이 미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소리없이 퍼지기 시작했다.
기쁨으로 행하는 일은 시간이 빨리 가는 법이라 열흘은 쏜살같이 지났다.
2단계 과정은 좀 더 고난이도에 속했다. 이때에 이르러선 수군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야말로 해괴하기 짝이 없는 작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2단계가 펼쳐진 것이다.
―반드시 닭 피여야만 합니다. 아무거나 어때, 라는 심정으로 개나 소의 피를 사용하면 도리어 화를 입게 되실 터이니 명심하십시오. 먼저 큰 욕조 같은 곳에 닭 피를 가득 받아둡니다. 그 속에 벌거벗은 몸을 잠그고 한 시진을 머문 다음 미리 천장에 설치해 놓은 끈을 이용해 거기에 두 발을 묶어 거꾸로 매달려 계십시오. 시간은 두 시진입니다. 닭은 새벽을 여는 짐승입니다. 밤과 아침의 경계에 서 있지요. 그것은 마신을 초청하는 초대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닭 피에 젖어 매달리기는 총 육 일 동안 진행되어야 합니다.
닭 피를 얻기 위해 오백여 마리의 닭을 잡았다. 더욱 효험을 높이기 위해 피에 몸을 담글 때는 잠수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는 피가 아래로 모아지면서 입으로 코로 들어가는 것이 곤혹스러웠지만 불굴의 의지를 소유한 자로서 꿋꿋이 견뎌냈다.
―여기까지 진행하셨다면 이젠 다 이루신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몸을 정결히 하신 후 손가락을 깨물어 다섯 장의 혈서를 쓰십시오. 내용은 모두 동일하게 ‘마신이여, 내 영혼을 팔아 당신과 거래하고 싶소’라고 적으시면 됩니다. 침실의 다섯 방향, 즉 동서남북에 네 장을 마지막 한 장은 천장에 붙여놓으십시오. 얼마 후 마신과 마주한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후후, 이번 건 간단하군.”
***
8. 난항을 거듭하는 계약
아귀진독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축하하는 인사말을 건넸다. 마계에서 늘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아귀진독에게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은 진정 축하할 일이었던 것이다.
아귀진독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얼마만의 초대란 말인가! 미친놈같이 개밥을 먹고 피를 뒤집어쓴 것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계약을 위해 부른 것이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이봐,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는 거야.”
“놓치지 마.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어.”
“너무 초조해할 필요 없어. 언제나 아쉬운 건 인간 녀석들이란 걸 잊어선 안 돼.”
태나지귀를 비롯한 여러 친우들이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아귀진독은 감격해 마지않았고, 이번 거래를 반드시 성사해 자랑스러운 마신이 되겠노라 다짐했다.
* * *
깊은 밤, 고첨은 웬일인지 숙면을 취할 수 없어 이리저리 뒤척였다. 혈서를 붙여놓은 지 벌써 나흘째인데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지만 굳이 초조해하진 않았다. 최소 열흘 정도는 기다릴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귀진독은 그만큼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나를 찾았느냐?”
고요한 음성, 하지만 영혼까지 울릴 듯한 지긋한 목소리에 고첨은 화들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침상에서 약 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 고고한 기상을 드러내는 노인이 서 있었다.
두터운 휘장 탓에 달빛마저 들어오지 않은 어두운 방 안이었지만 굳이 호롱불을 켜지 않아도 노인의 모습은 명확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백발을 곱게 다듬어 올린 머리, 정기가 흐르는 눈동자, 광채로 번뜩이는 얼굴,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내는 백의, 정녕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드는 모습이었다.
노인은 물론 아귀진독이었다. 그는 인간에게 나타날 때면 어떤 형상으로든 변할 수가 있었는데, 여러 고민 끝에 고고한 학과 같은 기상을 드러내는 신비한 노인의 모습을 하기로 정한 것이다. 조금은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공감이 가는 모습이랄 수 있었다.
“마신이십니까? 정말 오셨군요. 하하하하.”
조금은 경박스러운 기색으로 반가워하는 모습에 아귀진독은 순간 당황했다.
보통 이런 경우엔 얼어붙어서 말을 더듬거나 몸을 덜덜 떨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너무도 태연할 뿐 아니라 어딘가 조금은 건들거리는 듯도 보인 것이다.
그는 혹시 자신이 너무 오랜만에 인간과 대면하여 마신으로서의 자세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곧바로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너의 정성이 지극하여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느니라.”
“먼길을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지요.”
“인간에겐 먼길이라도 내겐 한 걸음도 되지 않을 뿐이다.”
이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아귀진독은 일이 술술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라고 밝혀진 것은 눈을 한 번 깜박이기도 전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너무 죄송스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무, 무슨 말이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아귀진독이 말을 더듬었다. 인간 앞에서 말을 더듬다니, 정녕 마신으로서의 체통이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전 그쪽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어르신은 그냥 돌아가 주시고, 그쪽 세계의 지휘권자에게 여신으로 보내달라고 해주십시오. 헤헤헤헤, 그동안 고생한 것이 가볍지 않은데 이왕이면 여신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귀진독은 할 말을 잃고 얼굴이 경직된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등이 벽에 닿는다 싶자 그대로 투과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고첨이 이런 식으로 배짱을 부린 것은 순전히 후흑문으로부터 받은 문서 내용 때문이었다.
―마신이 올 때 주의할 점은 절대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언뜻 생각할 때 아쉬운 쪽은 인간인 듯하나 실은 마신의 갈급함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신의 정신 상태가 멀쩡하다면 뭐가 아쉽다고 찾아오겠습니까. 그 앞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이되 비굴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개 마신의 등장은 흉악하거나 음습한 남자의 형상이고, 간혹 노인의 모습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인께서 기다리셔야 할 존재는 아름다운 여신입니다. 여신이 아니라면 단호히 거절하십시오. 결국 그쪽에서는 대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여신이 와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중요합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씀을 아시는지요. 사랑에는 그뿐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는 힘이 있습니다. 여신이 오거든 대인께서는 함께 잠자리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십시오. 그렇게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놓으면 훗날 불리한 여건에 처하더라도 여신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잠자리를 끝까지 거부할 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하시면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이 모든 내용들이 심온의 비웃음이었으나 뜻밖에도 진정 눈앞에 마신이 등장하였던 터라 고첨은 후흑문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조만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여신이 올 때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의 잔털까지 흥분으로 솟구쳤다.
이 모든 일은 정작 안내자가 된 심온으로선 꿈에도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
고첨이 미소를 가득 짓고 있을 때, 마계로 복귀한 아귀진독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뒤집히는 상태로 돌기 일보 직전이었다.
“으아아아~ 개호로자식을 봤나. 으아아아악!”
그의 친구들의 위로와 격려가 이어졌다.
“마수걸이라도 생각해. 고비만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탄탄대로일 걸세.”
“차라리 밋밋한 녀석들보단 낫지. 당장은 괴로워도 훗날을 생각하면 제대로 걸린 거야.”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 그만두면 안 돼. 끝까지 가야 하네.”
“본때를 보여줘야 해! 우리에게 좌절은 없어. 알겠지?”
이번 일은 전례에 없던 인간 유형이었던지라 마계에서도 대단한 화젯거리가 되었다.
심지어 극존마저 아귀진독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마계의 모든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계의 명예를 위해 놈의 영혼을 반드시 취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알겠느냐?”
거의 명령이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아귀진독은 마계의 명예가 자신의 두 어깨에 걸쳐진 것에 부담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젠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까짓 여자의 모습으로 변장하는 것이 뭐가 어렵겠어. 같이 자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아귀진독은 대단한 착각을 하며 마음을 다졌다.
***
다음날 밤.
고첨의 침실에 안개처럼 나타난 아귀진독은 순간 흠칫하고 말았다.
곳곳에 붉은 초들이 빛을 뿜어내고, 지난밤에는 맡을 수 없었던 향기가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첨이 침대 위에서 벌거벗은 채로 한쪽 손으로 머리를 괴고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불안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 새끼 왜 옷을 벗고 있는 거야?’
아귀진독으로는 불안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고첨이 별빛이 찰랑이는 눈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옅게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그곳엔 붉은 초와 술병, 그리고 두 개의 잔이 곱게 놓여 있었다.
아귀진독은 전혀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 탓에 기선이 제압당한 것이나 다름없어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그로선 이곳에 오기 전 고첨의 내실을 ‘미리 보기’ 해두지 않은 것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고첨은 두 개의 잔에 술을 채워 그중 하나를 아귀진독에게 내밀었다.
“그대의 아름다움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진탕되는구려. 정녕 인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오. 자, 오늘밤을 위해 함께 건배합시다.”
오늘밤을 위해서라는 말이 걸리긴 했으나 아귀진독은 어떻게든 고첨의 영혼을 앗아야 했기에 뇌쇄적인 미소로 잔을 부딪쳤다.
“만나뵙게 되어 저도 기쁘기 그지없군요.”
아귀진독이 꾸민 상태는 숨이 멎을 정도의 아름다움 용모에 그림처럼 매끈하게 이어지는 몸매, 붉게 빛나는 의상, 그리고 각종 장신구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