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그러나 이 저녁은 다른 때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야월루가 자랑하는 두 기녀와 한 사내가 피투성이 시체로 등장했고, 그 옆으로 무릎 꿇은 사내는 두려움에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네가 나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어머니를 납치한 것이냐? 왜? 왜 그랬냐는 말이다.”
울부짖는 사내의 목소리는 처절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모습에 혀가 잘려나간 갈평은 이루 형용하기 힘든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의 뇌리로 얼마 전 이 사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노인네 하나를 버려주시면 되외다.”
“어떤 노인장이오?”
“저기 앉아 있는 노파올시다.”
“뉘신지?”
“내 모친이오.”
당시 그는 속으로 ‘이런 패륜아!’라고 비웃었다.
“돈이 좀 더 필요하겠습니다만…….”
“드려야지요.”
어찌나 호탕하게 답하든지 그때 흠칫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던 작자가 이젠 눈앞에서 어머니를 외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슬픔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갈평은 온몸의 뼈와 살이 분리되는 것 같은 낯선 공포와 대면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간인지라 인파는 삽시간에 모여들어 그 주위를 빙 둘렀다.
시체와 피가 어우러진 섬뜩한 풍경이었지만 사람들은 경악하면서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크게 떴고, 뒤늦게 알고 온 사람들은 어떻게든 안쪽의 상황을 보려고 파고들었다.
“불쌍한 어머니였다. 가만히 두어도 얼마 살지 못하실 분을 통해 어찌 사람을 겁박하려 했단 말이냐. 어딘지 말해라! 어머니가 어디에 계신지 말하란 말이다!”
“어… 어…….”
갈평은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지만 이미 절반 가량 잘려 나간 혀는 뇌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뱉어내질 못했다.
“그래, 말해라, 어서 말해.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겠다. 그깟 돈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냐.”
“어…….”
그가 바싹 귀를 가져다 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곳이란 말이지.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 어떻게 했느냔 말이다.”
사람들은 갈평이 혀가 잘려 나간 것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작은 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
“어머니가…….”
“어…….”
“산에……….”
“어…….”
“매장을 당하셨다고? 으아아아아악…….”
그는 머리를 움켜쥐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다가 옆에 기립하고 있던 무사의 허리춤에서 검을 빼내 내리찍기 시작했다.
“널 용서하지 않겠다. 널 지옥으로 보낼 테다. 으아아아아악~”
어머니를 잃은 한 사내의 분노가 정주(鄭州)를 뒤흔들었다.
하남성의 성도이기도 한 정주는 옥헌장(玉獻莊)의 참사에 대한 이야기로 들끓었다.
정주 한 복판에서 벌어진 피 튀기는 복수의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면서 거부하다가 몇 번씩 재촉을 받으면 당시 상황을 한숨 소리와 함께 들려주었다.
“너무 참혹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구먼. 당시 복수의 칼이 매섭긴 했지만 정작 참혹했던 건 그것이 아니었어. 치매에 걸린 노파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며 죽었을까 하는 것이지.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군. 아마 나라도 수천 번의 칼질로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을 게야.”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옥헌장의 장주가 그렇게 효심이 지극했다더군. 그가 이제껏 화를 낸 것을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그날의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던 게지. 부모를 잃은 아픔을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고.”
옥헌장의 장주 옥청정(玉淸淨)은 올해 마흔 하나로 후덕한 인상을 지닌 전형적인 대인의 풍모를 갖춘 자였다.
내전에 앉은 그의 얼굴은 창백하기 이를 데 없어, 그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휴, 어머니는 어찌 되셨을까요? 지금쯤 돌아가셨을까요?”
질문에 답한 것은 허공이었다.
“돌아가셨을 겁니다.”
“난 살인자 아니지요? 패륜아는 아닌 거지요?”
옥청정은 그렁그렁 당장에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요. 암흑쌍계의 잔악한 행동일 뿐 장주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맞아요. 그놈들의 짓이죠. 자, 그럼 이제 어머니의 시신을 거둬들여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하겠습니다.”
“혹시 여지껏 살아 계시다면 죽이지 마세요. 알아서 죽도록 기다려야합니다. 알겠죠?”
“명심하겠습니다.”
옥청정은 몸을 일으켜 창가를 통해 밖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고년 참 명도 길다. 명도 길어……. 크크크크크크…….”
어느새 한숨이 웃음이 되더니 옥청정의 검은 눈동자가 짙은 녹광으로 번들거렸다.
***
11. 사연 깊은 노파
신중산(新中山)은 신밀(新密)과 중모(中牟) 지역의 중간 지점으로 예로부터 귀한 난(蘭)이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알려져 난을 캐는 이들에겐 황금밭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산삼이나 귀한 난초의 경우는 단순히 안력(眼力)이 좋다거나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서 쉽게 발견하거나 캘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느 누구도 경솔하게 장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많은 이들이 제각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가며 산을 뒤지고 있으나 산은 깊고 또한 넓어 기화이초들은 침입자들로부터 적당히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신중산의 깊은 숲 속으로 한 노인이 성큼거리며 나아갔다.
노인의 옷차림은 일견 평범해 보였으나 한편으로는 기이한 점이 없지 않았다.
수수하고 정갈한 가운데 묘하게도 더럽혀지거나 어디 한군데 흙이 묻어난 부분이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산행을 하다 보면 필수적으로 등과 겨드랑이 쪽으로 땀에 흠뻑 젖어 있어야 마땅한 부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펄럭이고 있는 것이 아예 땀을 흘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기이한 것은 비단 옷에 관한 부분만은 아니었다.
노인의 걸음걸이는 가볍고 표홀하기 이를 데 없어 마치 나비가 꽃과 꽃 사이를 노니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한없이 깊은 산속으로 향하던 청수한 노인의 걸음이 멈춘 것은 깊은 숲과는 하등 어울리지 않은 한 노파를 발견하고 나서였다.
노파 또한 노인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그 자리에 멈추시오.”
노인이 소리쳐 외쳤지만 노파의 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노파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손을 들어 노인을 가리켰다.
“내가 잡았지. 오빠, 이젠 오빠가 술래야.”
노인의 얼굴로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다 늙은 여자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오빠라고 하는 것은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으며, 멈추라고 하는데도 멈추지 않은 발걸음에 문득 눈에 띤 표란(飄蘭)이 참혹하게 일그러졌을 것을 생각하니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이 상황을 정리해 보자면, 미친 노파가 표란을 짓밟다,라는 정도가 될 터였다.
길게 한숨을 내쉬려던 노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곧바로 노파의 몸이 아련히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노인은 어느새 그 곁에 다가가 쓰러지려는 노파의 몸을 붙들었다. 몸이 무너지면서 발이 떼졌고 그 틈에 발아래 깔렸던 표란의 망가진 모습이 얼핏 보였지만 이제 더 이상 거기에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음, 다행히 큰 이상은 없군. 한데 어찌 이런 곳에…….’
맥을 짚어보니 크게 몸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산속을 헤매면서 제대로 먹지를 못한 것이 원인이겠지 싶었다. 그보다 큰 문제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이었고, 다시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파가 어찌 이 깊은 산을 헤매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길에는 생난(生蘭)을 구할 운명이었나 보군.’
옥헌장이 버린 노파를 구한 이 노인은 후흑문의 장로 중 한 명인 노공이었다. 백미도인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후흑문 내에서 꽃과 식물들을 돌보는 일을 낙으로 삼고 있었으며 일 년에 두어 차례 밖으로 나와 기화이초를 구하곤 했는데 이번 길에서는 살아 있는 인간의 난을 구한 것이다.
노공은 막힌 어혈을 추나법을 시전해 풀어주고, 간단히 혈도를 자극해 몸의 각 장기들이 적게라도 기능을 유지하도록 만든 후 빠른 속도로 산을 빠져나왔다.
그는 노망난 할망구를 달고 문(門)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산 아랫마을에 이르면 마땅히 노파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 것이고 바로 인계해 준 후 다시 산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혹여 노파를 알아보는 이가 하나도 없는 경우엔 썩 내키진 않지만 관에 맡겨 놓을 작정이었다.
“으으으, 이상해, 너무 이상해. 나무들이 어딜 저리 빨리 가는 걸까? 산꼭대기에 급한 모임이라도 있는 걸까?”
하루를 꼬박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산을 헤맸던 노파는 노공의 응급처치덕분에 잠시 후 노공의 등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치매는 매우 깊어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인지 능력이 현격히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 까닭에 지금도 노공의 빠른 경공에 의해 달려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보이는 나무와 각종 식물들이 무슨 급한 일이라도 벌어져 회의를 하러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빠, 가만히 있지 말고 우리도 나무들 따라가 보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야.”
노공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굳이 어떤 형태의 연민이나 동정은 없었다. 세상에는 이 노파 외에 치매에 걸려 고생하는 노인이 한둘은 아닌 것이고, 그들 하나 하나를 다 걱정해 주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오빠, 왜 가만히 있어? 좀 움직여 봐. 움직여 보래두.”
엄청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데도 노파는 막무가내로 보채며 급기야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앞뒤로 흔들어대기까지 하자, 노공은 한숨을 내쉬면서 신법을 세웠다.
“어? 나무들이 멈췄네. 왜 그럴까? 내가 좋아서 그런 걸까? 나 보고 싶은 가봐. 그렇지 오빠?”
“나무들은…….”
노공은 설명을 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상세히 설명한다 한들 이해할 리 만무할 것이라는 것과 함께 그의 눈에 십 년 정도 되었을까 싶은 하수오가 띄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파를 내려놓고 하수오를 뽑아,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한 후 그녀에게 건넸다.
“드시오.”
“와! 맛있겠다.”
“맛은 없을 것이오. 약간 쌉쏘롬하겠지만 기력을 채워주기는 할거외다.”
노파는 이미 굶주릴 대로 굶주린 터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듯 하수오를 먹어치웠다. 워낙 맛나게 먹는지라 노공은 주변을 더 뒤져 하수오를 찾아냈다.
“근데 오빠 난 이제 밤에는 숨바꼭질 안 할래.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노파의 말에 하수오를 손질하던 노공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밤에?’
노파가 제정신이 아닌 까닭에 혼자 산을 쏘다니다가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던 노공은 마음에 턱하고 걸리는 것이 있어 편치 않았다.
간단히 추리해 보자면 그녀가 산에 온 것은 밤이었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버린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밤 이후 사람이라곤 못 보다가 자신을 처음 보고는 당시 버리고 간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짐작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버린 작자들은 아마도 떠나면서 노망난 노파를 희롱하면서 술래잡기를 하는 것이라고 킬킬거렸을 것이다.
‘이 노파는 겉모습만 봐서는 신상 내력이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건만 왜 이렇게까지 버려져야만 했을까. 아무리 생활이 어렵기로서니 노파가 먹는다면 얼마나 먹는다고 이리했단 말이냐.’
한편으로는 뒤치다꺼리하기가 힘들고 괴로워서였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과연 버린 후에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만 더욱 답답해졌다.
“오빠, 이거 너무 맛있다. 내가 뽀뽀해 줄게.”
입술을 쭉 내밀고 덤벼드는 노파의 모습에 노공은 마치 가공할 장력의 공격을 받는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몸을 피했다.
“뭐야? 이제 술래잡기 시작된 거야? 좋아. 알았어. 어디든 도망쳐 봐. 반드시 잡을 테니까.”
노파가 살짝 몸을 웅크리고 달려들 태세를 갖추며 하는 말에 노공은 웃지도 울지도 못한 얼굴로 바라볼 따름이었다.
산 아랫마을에 내려오면 어느 정도 노파의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느 누구도 노파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노공은 노파를 데리고 객점에 들러서는 따로 죽을 주문하여 속이 불편하지 않게끔 배려해 주었다. 허겁지겁 먹어대는 모양새를 보면서 노공은 자기 몫으로 마련된 오리탕에 손도 대지 못했다.
‘이거 정말 난감하기 이를 데 없구나. 이렇게 버려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음엔 관(官)에 맡겨둘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썩 내키지 않은 터였다.
이 지역에 연고가 없는 노파라면 관에서도 그다지 열성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노공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노파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송곳니가 빠져나간 자리가 휑하니 빈 이를 보자 노공은 막 국을 한 수저 뜨려다 그만 놓고 말았다.
객점을 나온 후 노공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로 탐문을 해보았다. 그냥 관에 맡기기에는 스스로가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 노파가 한 밤에 버려졌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어이구 다리 아프다. 다리 아퍼!”
산에서 내려올 때까지는 업고 온 것이었으나 산 아래서부터는 걷게 하였던 터라 노파는 이젠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는 듯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노공은 다그치려다 그런다고 노파가 들어먹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을 떠올리고는 약간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 앉도록 했다.
시끄럽게 떠들던 소리가 좀 가라앉은 듯싶자, 노공은 노파에게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했다. 알아듣지 못할 것이 뻔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참 인생이 허망하지요. 모두에게는 어린 시절과 힘이 넘치는 젊음의 때가 있었기 마련인데 마치 낙엽이 지듯 퇴락하고 마니 인생이 과연 다른 만물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는지. 댁이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내 도움은 여기까지밖에 안될 것 같소이다. 드넓은 세상천지에 가족을 찾기란 쉽지 않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