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90화 (90/125)

# 90

그들이 간절히 염원하던 것이 이제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삼각은 세 개의 꼭지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위로 하나, 좌우로 각기 하나씩. 예로부터 삼(三)이란 숫자는 완성체를 의미하고 있지요. 중앙으로부터 정확히 같은 지점에 존재하는 꼭지점들은 서로 연결되어 면을 이룹니다. 꼭지점은 날카롭고 또한 극히 작아 공격과 방어가 요긴합니다. 면은 약해보이나 두 개의 꼭지점이 함께 지탱할 뿐 아니라 면의 반대편에 또 다른 꼭지점이 받쳐 주니 굳건히 버틸 수 있게 됩니다. 삼각은 서 있을 때는 굳건하고 회전하며 나아갈 땐 위협적입니다. 그뿐 아니라…….”

백 장로의 삼각원리는 상당히 길게 이어져 오후 마지막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설명에 대부분은 감탄하였고, 또 몇몇은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머리를 안타깝게 쥐어박았다. 원리강론이 앞으로 이틀 더 이어진다고 하니 앞으로 더욱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따로 떨어진 자리에서 담유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심온에게 물었다.

“도대체 뭔 소립니까? 삼각 원리라니? 알아들으셨어요?”

“흠, 그러니까 삼각은 위대하다는 말이지.”

“오라, 위대하다?”

“잘 들어. 그러니까 삼각은 세 꼭지점이 있어. 그리고 막강하지. 알겠어?”

“아, 그러니까 어쩌구 저쩌구해서 이렇게 저렇게 되는 거군요?”

“맞아. 이제 좀 알아듣는군.”

담유설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심온도 응답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둘 다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삼각 원리강론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나흘째 되는 날 다단궁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교육을 맡은 이는 여전히 백 장로였다.

“오늘부터는 다단궁의 실질적인 무학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을 터득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각자 깨달음의 크기에 따라 생활의 유익에서부터 천문학적인 이익에 이르기까지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자, 먼저 다단궁의 구조에 대해 이해해 보도록 합시다. 언제나 삼각형을 잊어선 안 됩니다. 가장 맨 위쪽의 꼭지점은 다단궁주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점점 넓어져 가는 그 아래는 팔장로들의 위치며, 그 밑으로 십이대주들이 자리합니다. 그리고 중간 정도쯤에 바로 여러분들이 대주들 아래로 들어가게 됩니다. 삼각형으로 봤을 때 지금 여러분들은 중간 정도에 해당하지만 훗날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삼각형이 거대해지면 여러분의 위치는 당연히 위로 올라가 있게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 모두는 무슨 소리인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여러분들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다단궁에 들어오도록 유도하십시오. 각자가 끌어 모은 사람들은 삼각형에서 각자 자기 아래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끌어주어야 할 동생과 같습니다. 자, 그럼 그 동생들은 가만히 있을까요? 맞습니다. 그들 또한 그 밑에 동생들을 두게 될 겁니다. 또 그들이 동생을 두고 계속 한없이 이어지게 되면 나중에는 여러분들 밑으로 도무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위대한 사명은 시작됩니다. 여러분들은 간단히 몇 가지 물건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분들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판매하여 얻어지는 이익 중 5할은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동생들이 물건을 팔아 얻은 이익 중 2할이 여러분에게 자동적으로 할당됩니다. 또 그 아래 동생들이 얻은 이익에서도 1할 가량이 할당됩니다. 그렇게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면서 이익이 자신에게 떨어지게 되니 그야말로 부자가 되는 것은 한순간의 일인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다단궁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다단계(多段階)의 신비입니다.”

잠시 교육관이 술렁였다.

그들 중 몇몇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또 어떤 이들은 대단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자자, 지금 이 시간은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잠잠해지자 백 장로는 말을 이어갔다.

“방금 이야기 한 내용은 한 가지 예를 든 것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삼각형의 신비, 다단계의 신비는 수만 가지에 응용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천하무적이 되는 것도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강호에 내로라하는 자에게 비무를 신청하십시오. 그때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동생들을 대거 데리고 가는 겁니다. 그리곤 실제 비무가 행해지기 전 마치 실수한 듯 장력을 동생들에게 날리는 시늉을 하는 겁니다. 그럼 동생들은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쓰러지는 것이지요.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기겁을 하고 말 것입니다. 하하하,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지요.”

백 장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속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거 뭐야? 우리가 고작 사기나 치자고 여기 온 거야?”

“이런 망할 놈들. 난 당장 그만두겠어.”

“어쩐지 너무 쉽게 잘 풀린다 싶었다. 내 인생이 그렇지.”

그때 교육장 안으로 세 명의 건장한 무사가 검을 차고 들어왔다. 그들은 말없이 검을 뽑아들고는 무섭게 좌중을 훑어보았다. 그건 영락없이 불만있는 사람은 나와라, 라고 말하는 것이어서 떠들썩하던 교육장은 급작스럽게 고요해졌다.

“자, 여러분들 실망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오늘부터는 여러분들이 이해할 때까지 다단계의 신비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여 뛰쳐나가려는 무리한 행동은 하지 말길 바랍니다. 형제들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하셔야 할 것은 여러분들이 각기 가족들에게 다단궁에 입궁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서한을 발송했다는 것입니다.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들뜬 목소리로 자랑하셨을 부모님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싶습니까? 단언하건데 그건 매우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잠시 혼돈스러운 것일 뿐입니다. 며칠 내로 여러분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자, 그럼 다시 교육을 시작하도록 할까요.”

모두는 분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지만 부모님들을 생각하자 각기 마음이 우울해졌다.

어렵게 돈을 모아 다단궁에 보내주었던 가족들, 그리고 입궁했다는 서신을 받고 기뻐했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심온과 담유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견디기 힘들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산공독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초식의 기묘함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도 있었지만 며칠만 참으면 되는데 괜히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에서 열흘째가 속히 돌아오길 바랐다.

그동안 교육은 계속 진행되었고, 기묘하게도 교육장은 활기로 가득찼다. 구호가 범람하고 희망이 넘실거렸다. 야간교육에 이어 철야교육까지 거의 세뇌에 가깝게 이어지는 다단계에 대한 설명에 대부분이 마음의 문을 열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만 것이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큰 영광을 안고 돌아가야 한다는 심리 또한 크게 한 몫을 한 셈이었다.

그래도 몇몇은 거부 반응을 보이고 계속해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하였는데 그들은 따로 면담을 한다는 명목으로 불려갔다가 하루나 이틀 뒤에 나타났다.

한데 하나같이 투철한 다단궁인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적극적인 자세가 된 지라 모두들 사실은 역시 괜찮은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들을 갖는 것 같았다.

그들이 만약 몸 어딘가에 시퍼런 멍 자국을 지니고 돌아왔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어디에도 억압을 받은 흔적은 보이지 않고 그들의 얼굴에도 그늘이 없었던 것이다.

산공독을 복용한 지 열흘째 되는 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담유설이 심온에게 걱정스런 낯빛으로 물었다.

“이상한데요. 왜 아직 기가 돌아오지 않죠?”

“그럴 리가. 나는 회복되고 있는 중인걸.”

“네?”

아무리 무공의 수준 차가 있다 해도 아예 기별이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혹시……. 아침 식사했어?”

“당연하죠. 아주 맛있던걸요.”

담유설은 여자답지 않게 배까지 두드리면서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얼굴은 휴지조각처럼 일그러졌다. 그제야 자신이 다시금 산공독을 복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열흘이 지난 것을 기점으로 다시금 무공을 감추고 들어온 자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산공독을 투입할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난 그정도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늘. 쯧쯧…….”

심온이 혀를 끌끌거리면서 저만치 걸어가 버리고 난 뒤에도 담유설은 검게 변한 낯빛으로 마냥 서 있을 따름이었다.

오전 첫 교육 시간이 한창일 때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심온이 눈을 뜨며 목을 좌우로 돌렸다. 비로소 완벽하게 내력을 회복한 것이다.

백 장로가 다단계 사업 활성화 방안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그 순간 심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밖으로 나갔다. 얼른 담유설도 그 뒤를 따른 것은 물론이었다.

백 장로와 모든 교육생들의 시선이 둘에게 향했고, 백 장로가 호통 쳤다.

“거기 두 사람 무슨 일인가?!”

심온은 막 문을 나서려다 뒤돌아서서 싸늘하게 뇌까렸다.

“그냥 하던 것 계속 해라.”

깨진 얼음조각처럼 차가운 말투였기에 백 장로는 곧바로 대노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니.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이 둘을 붙들어라.”

문밖으로 나간 심온은 용맹스럽게 달려드는 세 사람의 무인을 가볍게 점혈하고는 다단궁주가 머무는 처소로 이동했다. 무공을 회복한 이상 다단궁 전체가 덤빈다고 해도 그저 우스운 일이 될 뿐이었다.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이들이 여럿이었으나 일초지적도 되지 못하고 그대로 나뒹굴었다.

잠시 후 다단궁주의 처소에 든 심온은 문 앞을 지키는 녀석을 그대로 밀어 문을 박살 내며 들어가서는 복부를 연달아 강타하고는 점혈해 옆으로 밀어놓았다.

꽤 험악한 광경이었지만 다단궁주는 근엄한 자세로 태사의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너 좀 맞아야겠다.”

“허허허허, 이 무슨 해괴한 말인고. 형제여, 진정하게.”

“진정하지 못 한다면?”

“허허허, 아직 참된 고수를 만나지 못한 게지. 경거망동하였다간 곧바로 이렇게 되고 만다.”

다단궁주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손을 쭉 뻗었고 그 즉시 오른쪽 담이 와르르 무너졌다.

순간 심온과 그 옆에 섰던 담유설의 안색이 경악스럽게 변했다.

“헉, 이럴 수가 엄청나다…….”

심온의 놀람에 다단궁주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그의 얼굴은 똥 씹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라고 말할 줄 알았지? 이런 병신 육갑하네. 푸하하하.”

“저 녀석 의외로 순진한데요.”

심온과 담유설이 주고받는 말에 다단궁주는 울그락불그락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고얀놈, 정녕 네가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구나!”

심온이 씩 웃었다.

“한번 때려볼래?”

“크하하하, 오냐. 오늘 네놈에게 이날이 영원한 후회의 날이 되게 해주마.”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단궁주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는 엄청난 공중 부양이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는 없을 만큼 완벽했다. 정녕 그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때 심온은 담유설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담유설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단궁주를 지나쳐 그 뒤쪽 휘장으로 향했다. 다단궁주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약간 흔들리면서 담유설을 쫒았다.

휘장은 담유설에 의해 사정없이 제껴졌다.

그러자 그 뒤에서 세 사람이 밧줄을 힘겹게 붙들고 있는 것이 훤히 드러났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실로 다단궁주의 몸을 연결해 놓고 신호에 따라 잡아당겨 몸이 떠오르도록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구슬땀을 흘리며 붙들고 있던 세 사람은 정체가 드러나자 당황하여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고, 다단궁주의 몸은 그대로 의자에 부딪치고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황당한 상황에 심온은 너무 어처구니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넘어져 있는 다단궁주를 일으켜 세워 일단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해주었다.

“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한번 때려봐라.”

“안 된다. 너는 내게 맞으면 죽는다. 다단궁주로서 어찌 살생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널 죽일 순 없다.”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다단궁주였다.

짝!

심온이 뺨을 후려갈기자 다단궁주의 고개가 돌아가고 뺨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감히 네놈이!”

짝!

응답한 건 역시 손이었다. 이번엔 반대편 뺨이 붉게 물들었다.

“너 계속 이러면 죽는다.”

짝!

“어허! 이 고약한 놈을 봤나. 좋다. 내 건곤일기로 너를 가루로 만들어주마.”

다단궁주는 이내 마보를 취하면서 양손을 옆구리에 대고 아주 서서히 기를 모으는 자세를 취했다. 목에는 핏대가 서고, 눈은 충혈된 것이 전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한순간 그의 손이 뻗어나갔다.

“이얍!”

퍽!

그러나 그보다 빠른 것은 심온의 발이었다.

심온이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발을 들어 그의 두 개의 알이 존재하는 사타구니를 가격해 버린 것이다. 붉게 물들었던 다단궁주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버린 것은 순간적인 일이었다.

“날 어서 가루로 만들어봐.”

다단궁주는 기묘한 신음을 내뱉으면서 심온의 옷을 부여잡고 허물어졌다.

“흐으음… 흠…….”

“이 정도 가지고 무너지면 어떡해?”

“흐으음… 한… 번만… 봐… 주세요. 잘…… 못했습니다.”

심온은 다단궁주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우고는 뺨을 갈겨댔다.

짝, 짝, 짜악, 짝…….

“다 늙어서 왜 이렇게 사냐? 응, 왜 이렇게 살어?”

다단궁주의 몸뚱어리는 항문압박공과 방광급속충전에 거의 한 달 가깝게 혹사당했다. 통증왕이 들으면 뿌듯해할 정도로 신랄한 고문의 날들이 이어지는 동안 다단궁주는 인생의 모든 절망을 맛보았다.

이후 다단궁의 신종 사기수법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다단궁주는 전국 각지에 방을 붙여 용서를 빌며 지난날 어떤 식으로 속여왔고, 어떻게 강호인들을 기만하려 했는지를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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