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그러나 제아무리 무림 각대 문파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곤 해도 정녕 기가 막힌 것은 소림이었다. 도대체 소림이 어떤 곳인가. 무림의 태산북두이며, 어느 곳이든 소림이라면 한 발 양보하는 것이 거의 관례화 되다시피 했다. 설혹 분란이 일어 격전이 벌어지더라도 지엽적인 대결만을 원할 뿐, 소림사 전체를 끌어들이려는 수작은 누구도 부리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무림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 겁도 없이 소림방장을 지목하여 비무를 신청하고 있는 것이다.
현 소림방장 공청(空靑)은 즉시 여기에 대한 대책을 강구코자 수뇌부를 불러 모으고 회의를 열었다. 단순히 무시할 수 없는 건 역시나 다단궁의 세력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아 보였던 것이다.
“내 생전 다단궁이라는 곳은 들어본 적이 없소. 이 패악질은 그동안 소림의 힘에 굴복 당한 악한 무리들이 힘을 모아 작당한 것일게요. 아마 적어도 십여 곳 이상의 세력이 뭉쳤을 것이라고 보외다. 방장께선 결코 이번 일을 대충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소이다.”
가장 먼저 열변을 토한 것은 현 소림방장의 사형인 공각(空殼)이었다. 그는 성격이 불같고 사악한 무리를 철저히 응징하는 것으로 이름이 드높아 살불(殺佛)이란 별호가 붙을 정도였다. 정상대로라면 원래 그가 소림방장에 올라야 마땅했지만 그가 소림방장이 되기엔 살심이 너무 짙다하여 대신 그의 사제인 공청이 방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공청은 무공에 있어서는 공각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불심(佛心)이 강하고 매사 진중하여 방장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
“여러 방면으로 대비책을 마련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경각주 공공(空空)이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공청은 최대한 여러 의견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다단궁은 들어본 적도 없는 문파입니다. 혹여 드러나지 않았다 해도 그 위세가 감히 소림사에 허튼소리를 할 정도로 대단한 문파는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뿐이지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
나한전주 공인(空因)이 잠시 끼어들었다.
“그렇지요. 그들의 죄를 추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 사 내부에 혹시 문제를 일으킨 제자는 없는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음, 좋은 지적이오.”
공청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다른 의견도 말씀해 주시구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라 했으니 개방에도 도움을 요청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방도 소림을 외면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사대금강 중 한 명인 광유(光裕)의 말이었다.
그 뒤로도 여러 의견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표현만 다를 뿐 이미 나왔던 내용과 중복되는 내용들이었다.
방장 공청이 회의의 내용을 정리했다.
“소림사는 이제껏 어떤 외압이나 협박도 굴하지 않았으며, 사악한 무리를 응징하는데 있어서도 머뭇거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강한 힘이 있다고 하여 힘으로 덮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 내부에 혹여 문제가 있었는지를 점검하는 한편, 개방을 비롯한 강호 동도들의 도움을 받아 다단궁을 상세히 파악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 강호인들의 이목이 소림사로 집중된 지금은 다른 어느 때보다 단결을 요하는 시기라 할 수 있으니 마음을 하나로 모아 불심으로 극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끝으로 불호를 외침에 따라 모두가 함께 입을 모아 불호를 따라했다.
큰 문제 없이 해결될 것처럼 보이던 다단궁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난관에 봉착했다.
소림은 방장의 지시에 따라 곧바로 내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대략 다단궁과 문제를 일으켰을 만한 시기를 참작하여 그 시기에 강호에 머물렀던 제자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캐나간 것이다. 백여 명 가량의 제자들이 물망에 올랐는데 문제는 그중 이십 명 가량이 강호에서 소림의 명예를 거스르는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실로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기에 소림방장을 비롯한 수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사 방식에 대해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에 엉뚱한 결과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확실한 정보통에 의하자면 그대가 강호에서 행한 일이 소림의 제자다운 모습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정녕 사실이더냐?
이와 같은 질문에 걸려든 이가 스무 명이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눈을 부라리는 것만으로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틀림없이 감찰승들이 몰래 감시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용서를 구하는 것이 낫겠다고 여긴 것이리라.
그 내용들을 듣자하니 가지각색이었다.
“딱 한 잔을 마셨을 뿐입니다. 죽엽청이 과연 얼마나 독한지 너무도 궁금했으니까요.”
“저는 불심을 발휘하여 못된 것들은 박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술이란 술은 다 먹어치울까라는 생각을 하였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중에 지닌 돈이 부족하여 뜻을 이루진 못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호리병에 든 것이 술인지도 모르고 마셨을 뿐입니다.”
이상은 술에 관해 문제를 일으킨 이들의 말이었고, 다음은 폭력을 행사한 이들이 용서를 구했다.
“그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너희는 맛좋은 술도 마시지 못하고, 평생 여자도 사귀질 못하니 고자와 다를 것이 없다는 말에 참을 수 없게 되어 손을 쓰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무리 우리가 승려의 신분이라곤 해도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이 객잔에서 소란만 피우며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을 핍박하지 않았다면 저는 굳이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런 대로 이해할 만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녀는 춘약을 복용한 상태였습니다. 가만 두면 혈맥이 팽창하여 끝내 죽음에 이를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지요. 저는 잠시 망설였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이 중요하다고 배웠기에 전 제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입니다. 삼십 년 동안 곱게 간직한 동정이지만 그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녕 저는 욕정에 이끌린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그녀는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았으며, 이미 나이는 사십대 중반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동정을 지키기 위해 그냥 지나쳤다면 비록 음계를 범하진 않았을지라도 실상은 살인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는 당한 것뿐입니다. 설마 하니 마음씨 좋게 생긴 할머니가 음약을 사용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것은 독이 아니라 내력으로도 막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할머니는 벌거벗은 상태로 쭈글거리는 젓을 마구 흔들며 제게 달려들었습니다. 전 그때 이미 이성을 상실한 상태라 달리 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이 마쳐진 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주 중에 몸뚱어리 시주가 최고인 게야. 내 비록 늙어 맛이 좀 떨어져도 이해해 줘’ 그러면서 제 민머리를 사랑스럽게 만지작거리는데, 화가 난다고 일장에 쳐죽일 수도 없지 않습니까. 할머니는 이왕 이렇게 된 것 확실히 시주를 하겠다면서 그날 밤을 꼬박 세웠지요.”
이런 내용들이 주르르 흘러나오자 소림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이 중 하나라도 다단궁과 문제가 얽혀 있는 것이라면 다단궁이 과연 소란을 떨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한 개방이 다단궁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거의 백지에 가까운 대답을 보내온 것이다.
―개방은 전 중원에 흩어져 있는 개방도를 동원하여 이번 다단궁 사건에 대해 조사하였습니다. 은밀하면서도 방대한 탐색이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 할 듯합니다. 현재까지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마치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춘 신룡과도 같이 철저히 은신하고 있어 도무지 정체를 알아낼 방도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소림의 상심이 적지 않을 것이나 개방 또한 이번 일로 인해 매우 큰 충격을 받았음을 알아주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은 전국 각지에 나붙은 방은 다단궁에 속한 자들이 붙인 것이 아니라 여러 단체에 몇 사람이 의뢰하여 붙이도록 하청을 준 것이기에 추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과 다시 한 번 도움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하는 내용이 이어지고 글이 마쳐졌다.
서신을 읽은 소림방장 공청은 멍한 얼굴로 초점 잃은 눈이 되고 말았다. 가장 최악의 사태, 즉 칠월 초하룻날 항산의 선인봉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곧바로 수뇌부들 사이에서도 현 상태가 알려졌고, 왈가왈부 여러 말들이 오갔다.
“이번 일은 애초에 아무것도 아닌데 우리가 너무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두면 사그라지지 않겠습니까?”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바람을 간과했다간 나중엔 광풍을 맞게 될 지도 모릅니다. 아미타불!”
“우리 소림은 다단궁을 떠나서 많은 부분 돌이켜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강호에 나갔다 돌아온 제자들이 여러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명성에 먹칠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강호인들은 우리 뒤에서 연신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는 법이지요. 각대 문파들도 저마다 안고 있는 흠이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것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문제점들을 마냥 방치하는 것은 아니며 안에서 서서히 바르게 수정해 나가지 않겠습니까. 지나친 자책은 도리어 소림사의 존립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다단궁의 제안을 거부하기도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들이 어떤 식의 폭로를 할 지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힘으로 억압할 수도 없는 일이고 말입니다.”
여기저기 서로 의견을 내는 소리에 방장 공청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방장이 된 후 처음으로 맞는 위기였다.
소림사 못지않게 강호의 반응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다단궁(多段宮)과 소림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었다.
주관심사는 다단궁에 대한 의문이었다.
“다단궁이 대체 뭐 하는 곳이야?”
“글쎄, 이제껏 보이지 않게 힘을 쌓아온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소림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겠어?”
“이 친구들아 사방에 붙은 방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다단궁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소림이 뭔가 구린 데가 있으니까 다단궁이란 작자들이 꼬투리를 잡고 늘어진 게지.”
“하지만 소림이 이번 일로 꿈쩍이나 할까? 어디 미친개가 짖냐는 식일 것 같은데.”
“그렇게 나온다면 더 소란을 떨 것 같은걸. 천하 각지에 방을 붙인 것만 봐도 놈들의 성깔이 보통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잖은가.”
“하긴 그렇기도 하지.”
다단궁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소문이 더해지면서 두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거의 최강의 무공을 지닌 자들로까지 묘사되기 시작했다.
“일전에 홍수가 나서 장강의 물이 범람하여 주변에 피해가 커지기 일보 직전에 수위가 갑자기 줄어든 일이 있었지 않은가.”
“그랬었지. 그런데 왜?”
“그게 다단궁주의 작품이라는 말이 있네.”
“설마, 사람이 신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무지막지한 일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껏 어떤 무림인도 그런 공능을 발휘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지.”
“그렇지 않아. 자네 삼매진화라고 들어보았나?”
“고수들이 열강의 기운을 손에 끌어내는 수법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삼매진화로 종이를 태울 수도 있고 물기 젖은 손도 쉽게 말릴 수 있다고 하더군. 그런데 말일세, 놀라지 말고 잘 듣게. 당시 다단궁주가 장강의 범람하는 물을 막은 방법이 바로 삼매진화라 하지 뭔가. 그는 기(氣)의 막을 펼쳐 물을 가두고는 순식간에 삼매진화를 쏟아내 물을 증발시켜 버렸던 거네.”
“설마, 자넨 그게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처음엔 나도 믿지 않았네. 하지만 그 아랫마을 사는 사람의 증언이 나온 것이 아니겠나. 그가 ‘고기들이 삶아진 채로 둥실둥실 떠밀려 온 것을 보았소. 그 양이 자그마치 천 마리는 족히 되었을 것이외다’라고 말했다지 뭔가.”
“어마어마하군.”
“그렇다네. 정작 걱정할 사람은 다단궁주가 아니라 소림사 방장인 게지. 가둬놓고 삼매진화만 펼친다고 생각해 보게. 그냥 확, 삶아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말이네.”
“생각만 해도 끔찍하이.”
이 정도의 대화는 사실 아주 흔하게 굴러다니는 이야기일 정도로 다단궁주에 관한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커져만 갔다. 심지어는 항산의 대격돌이 있게 되는 날, 항산은 통째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 때문에 항산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미리부터 이전을 해야 한다든지, 산에 머물고 있는 동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아주 진지하게 논의될 정도였다.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 양이 방대해져 감에 따라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것은 역시 소림이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다단궁주의 힘에 대한 소문을 믿지 않았지만 소문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정도만 되어도 엄청난 것인지라 마음 편히 잠자리에 들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또한 여러날 내부 회의를 거친 소림은 항산에서 다단궁주를 만나는 쪽으로 결론을 짓고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강호를 위진하는 소문을 일거에 잠재우고 소림의 위상을 드러내는 길은 정면 승부밖에 없다는 의견이 주종을 이룬 탓이었다.
마침내 칠월 초하룻날이 되었다. 산서성(山西省) 혼원현(渾源縣)에 위치한 항산은 중원 오악 중 하나로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지만 이날만큼은 그야말로 산에 심겨진 나무들보다 사람 숫자가 더 많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특히 선인봉 아래쪽으로 사십여 장 정도의 평지가 마련된 곳은 비무가 치러질 곳인 만큼 그 주변으로는 빼곡이 사람들로 들어차 몸을 돌리기도 여의치 않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