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뭔 일일까?”
“글쎄요.”
“어쩐지 우리도 어디론가 튀어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러게 말일세. 갑자기 허공에 붕 뜬 느낌이니, 원.”
그때까지도 여전히 지랄발광을 하고 있던 송추 또한 이러한 사람들의 일련의 움직임을 모두 보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불안하기도 했다.
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시간에 우르르 다시 몰려왔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자리를 떠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호와 굉운, 심온은 안력이 보통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지라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이들을 보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바로 알아차렸다.
“크크크크, 크카카카카카…….”
“흐흐흐, 푸하하하하하하.”
“뭐, 뭐지… 허허. 이거 참…….”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막을 도리도 없이 웃음은 허파를 열어젖히고 목구멍을 타고 입가에서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손에 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중이었던 것이다. 개중에는 더 빠르게 달려오려고 목마를 태우거나 안아 들고 오는 이들도 있었는데, 어쨌든 그들은 욕설이 얼마나 해로운지에 대해 가르쳐 주려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상황인즉 이랬다.
처음엔 그저 희한한 구경거리구나 했던 사람들이 천하욕설대회에서 우승한 자임을 알아차리고는 자녀들에게 산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번개같이 떠올렸던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백 번 천 번 욕을 해서는 안 된다, 욕을 하면 나쁜 아이다, 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직접 보고 나면 더 이상 따로 욕을 하지 말라고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부모들이었다.
“소명아, 잘 보거라. 저 사람이 바로 천하욕설대회에서 우승한 남자란다. 많지 않은 나이에 여러 나이든 사람들을 꺾고 중원천지를 제패한 사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냐? 하늘이 진노하여 벌을 내리고 있지 않느냐? 너 또한 앞으로는 항상 바른 말씨를 통해 하늘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소자, 아버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운천아, 어떤 것이 느껴지느냐?”
“옛 성현들의 말씀에는 욕은 독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소자는 그 말을 읽었을 때 성현들의 비유하심이 지나치다고 느꼈습니다만 오늘에서야 욕이 실로 지독한 독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러한 발광 현상은 오랜 시간 독을 품은 지네나 구렁이에게 물렸을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이 소자, 앞으로 욕을 입에 담지 않는 바른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착한 혜란이는 뭘 깨달았을까?”
“으아아아앙, 혜란이는 무서워요. 앞으론 절대 욕 같은 건 하지 않을게요. 어제 옆집에 사는 군보에게 개새끼라고 했는데 혜란이가 저렇게 되면 어쩌죠. 으아아아앙…….”
부모들과 자녀들의 대화는 그야말로 아름답기까지 한 참 교육의 정신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럴수록 발광체인 송추는 더욱 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우와아아악, 푸카치푸쳐펴… 씨바랄 새끼들, 어디서 염병을… 후라랄푸여푸촘… 하는 거냐? 모두 꺼지지… 그라라랄후푸브브… 못해!”
원래대로라면 송추의 발광은 진작 끝이 났을 상황이었다. 사실 주인장에게 욕을 퍼부은 것에 대한 발광 분량은 소진되었다. 그러나 그 뒤 굉운 등과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욕을 퍼붓는 바람에 발광은 하염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에서는 뜨거운 교육열이 불타오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뜨거운 분노의 욕설이 퍼부어지는 가운데 문득 심온은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형님, 잠깐.”
굉운을 향해 귀 좀 빌리자는 시늉을 하고는 가만히 소근거렸다. 충분히 희락동자 이호도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심온의 속삭임이 끝나자, 통증왕 굉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호는 킬킬거리면서 ‘교육열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가 있겠는걸’이라고 말하면서 좋아했다.
그 즉시 굉운이 군중들 뒤로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일 다경 정도가 지났을까.
느닷없이 괴성이 울려 퍼졌다.
“세상의 이목은 피할 수 있을 지 모르나 하늘의 눈은 벗어날 수 없도다. 죄인 송추는 하늘의 포박을 받들라.”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소리만 우렁차게 들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두려운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자녀들에게 하늘의 형벌이 내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르침을 위한 것일 뿐 어느 누구도 하늘에 관한 것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고막이 파르르 떨리는 와중에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외치는 자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자, 어쩌면 정말 하늘이 개입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 무서워요.”
“엄마, 집에 가고 싶어.”
“엄마, 나 오줌 마려워.”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들은 착하니까 괜찮아.”
“염려 말거라. 엄마가 지켜줄 테니까.”
아이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각기 부모의 품속으로 기어들어 갔고, 부모들은 두 팔으 자녀들을 꼭 껴안았다.
놀란 것은 비단 그들만은 아니었다.
발광을 하던 송추 또한 잠시 발작을 멈추고 눈을 희번덕거리다가 다시금 발광을 해댔다.
“내 널 데려가 끔찍한 형벌로 다스리리라.”
다시금 방향을 분간하기 힘든 음성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하늘을 두리번거릴 때, 모두의 시선 속으로 먹빛을 띤 형체가 떠올랐다. 그것이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인지, 아니면 독수리, 혹은 호랑이의 형상을 한 것인지는 명확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
단지 검은 색의 뭔가가 하늘에서 내려와 다시 공간에 검은 자취를 남기고 사라졌을 때는 중앙에 놓여 발광하던 욕설대회 우승자도 함께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전부였다.
“헉! 뭐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사자가 틀림없어.”
“욕을 너무 해대서 명이 급격히 단축된 것일게야.”
“업보로세, 업보.”
사람들은 저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가면서 이 모든 것이 하늘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아이들은 눈을 말똥거리면서 각기 부모에게 굳게 다짐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아버지!”
“왜 그러느냐?”
“앞으로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겠습니다.”
“허허허, 기쁘구나.”
“어머니!”
“왜, 아들?”
“욕을 하면 앞으로 제가 갭니다. 아차차… 취소요, 취소. 앞으론 절대 욕을 하지 않을게요.”
“그러렴. 욕이 아니고서도 세상은 충분히 돌아간단다.”
모두가 큰 교훈을 얻고, 숱한 다짐들이 이어질 때, 이호와 심온은 서로를 마주 보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
5. 개과천선
“대충 감이 오냐?”
한적한 소롯길에 내려진 송추는 울상이 되어 굉운을 바라봤다.
대충 감이 오냐니!
욕과 지랄발광 사이의 관계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이건 곧 송추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욕이 없는 세상, 송추에게 욕은 삶 자체였다. 밥이요, 간식이며, 물과 공기고, 심지어 여자친구였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 송추 또한 욕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몸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 욕만 하면 개지랄 발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야, 이 씨발놈아~ 으아아악… 가르르푸라라닥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욕을 내지르고는 여지없이 푸닥거렸다.
대법이 완전히 적용되기 전에는 욕과 발광 사이에 어느 정도 간격이 있었지만 지금은 제대로 무르익어 욕이 마쳐지자마자 발광이 나타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열두세 차례 가량 몸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다 발광이 멎었을 때, 송추는 허망한 눈동자로 땅바닥만 쳐다봤다.
또 다시 욕을 하면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어이! 여기들 있었구나.”
“생각보다는 얌전히 있네요.”
활기찬 목소리를 지르며 나타난 건 뒤따라온 이호와 심온이었다.
“아니, 벌써 지랄 한 번 했다.”
“오! 역시 형님의 제자답게 깡다구가 보통이 아니로군요. 어이, 욕쟁이 대왕, 욕 한 번 구수하게 쏟아내 보지?”
심온은 대놓고 도발했다.
송추는 매섭게 한번 쏘아보고 막 입을 벌려 욕을 뱉어내려다 입술을 깨물고 참아냈다. 누구 좋으라고 욕을 한단 말인가.
“와아, 이거 대단하네. 두 분 다 보셨어요? 방금 참아버렸네요.”
심온의 요란함에 굉운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네. 적응이 너무 빠른데?”
두 사람 앞에 송추는 ‘실험체’ 그 자체였다. 그러나 송추는 아무도 없을 때 마음껏 욕하고 발광할지언정 이들 앞에서 놀림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발광하는 모습을 보일쏘냐. 지금은 내가 참는다. 오늘의 서러움을 내 평생 잊지 않으마.’
눈에서 불을 뿜어내면서 참는 송추였다.
“이 싸가지없는 놈 호로 자식이 그렇게 대단하냐?”
이호였다. 이것은 불의의 일격과 같아서 간신히 진압된 산불이 다시금 세찬 바람에 의해 거세게 타오르는 것에 비견될 수 있었다. 욕 금단 증세였다. 이호의 욕설은 인내의 벽을 무너뜨리고 심장마저 떨리게 했다.
“이……. 씨발놈들!”
결국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고 만 송추는 즉시 ‘헉’이라고 한마디를 외친 후, 곧바로 발광 상태로 돌입했다.
“음, 중독이 꽤 심한데요?”
“그럴 만도 하지. 욕에 있어서는 이 녀석이 지존 아니냐?”
심온과 이호가 동시에 턱을 어루만지며 한마디씩 뱉어내자, 굉운이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이 녀석이 바로 내 제자입니다그려.”
심온과 이호가 벙찐 표정으로 굉운을 바라봤다.
“형님, 지금 자랑인 겁니까?”
“야, 너 정말 기쁜 것 같다.”
“기쁘다 마다요. 재밌지 않습니까?”
발광 중에도 들은 것은 다 듣고 있던 송추는 끌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발광 중에도 욕을 토해내는 통에 발광은 하염없이 이어졌다.
* * *
“송 공자 쪽의 소식은 없나?”
“아직입니다.”
“역시 무리겠지?”
“송 공자의 입에서 욕을 제거한다는 것은 차라리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이 쉽지 않겠는지요. 기대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렇지. 어떤 것들은 의지만으론 이룰 수 없으니까.”
“그래도 이번 천하 욕설 대회를 통해 욕설의 폐해를 많이 부각시킨 것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겠지.”
은하전장의 주인 은천협과 총관은 오늘 오전 나절만 해도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잠정적으로 송추에 대한 기대를 확실히 접은 상태였다. 이때까지는 정말이지 두 눈과 귀를 의심할 상황이 얼마 뒤에 펼쳐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이었다.
“어서들 오십시오.”
오후 늦게 귀빈실로 들어오는 이호와 굉운 일당을 마주하며 은천협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은천협으로서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접하는 목소리는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 그건 혹여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크게 미안해할 것을 염려하여 배려코자 하는 마음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반갑소이다. 은 장주.”
“잘 지내셨는지요.”
“너무 늦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호와 심온의 말까지는 그저 미소로 받던 은천협이 굉운의 말에는 의아한 눈빛이 되어 슬쩍 바라보았다.
‘늦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은천협은 ‘설마’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그러나 설마가 어쩌면 사람 잡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세 사람의 뒤로 새색시마냥 다소곳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송추를 본 뒤였다.
“제자야, 뭐 하고 서 있느냐? 어서 장주께 인사 올려야지.”
굉운의 채근에 송추가 즉시 한 걸음 나서더니 예를 갖춰 말했다.
“꼽추새끼, 그동안 잘 지냈냐? 씨발새끼, 몰골이 좀 상한 것 같은데… 뭐 고민 있냐?”
은천협의 예상 답안은 이것이었다.
“그동안 여러모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어린 날의 치기로 대인께 염려를 끼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은천협은 자신의 답이 오답이었음을 정식 판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그때는 총관도 막 들어오던 차였던 터라 그 또한 눈이 휘둥그레져서 걸음을 멈춘 채 굳어버리고 말았다.
장주가 할 말을 잃자, 심온이 나섰다.
“대은하전장의 장주께서 이런 일로 놀라시다뇨. 하하하, 일단 자리에들 앉으시지요.”
“그, 그러시지요.”
얼떨결에 주인과 손님의 역할이 바뀌는 대화가 오감도 감지하지 못한 채 은천협은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하하, 무얼 그리 놀라십니까? 약속은 천금과 같은 것인데 마땅히 지켜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그래도 이건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은천협은 은하전장의 주인이다. 그가 이제껏 가세를 확장하고 중원에 이름을 드높이기까지는 정녕 사람을 보는 눈 하나 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그는 욕설 대회를 통해 송추를 정의하길,
‘욕과 운명을 함께 한 자’ 혹은, ‘물고기가 물이 없이 살 수 없듯이 욕이 없는 세상에 송추는 살아갈 수 없다’였다.
진귀한 재물이 산처럼 쌓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미녀와의 혼인을 미끼로 삼는다 하여도 욕을 할 수 없다면 그까짓 것들 훌훌 털어버리고 자리를 뜰 인간이었다. 그런데 천재지변과 다를 바 없는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구나. 어찌 이런 천지개벽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은천협의 시선은 자리에 앉은 때로부터 단 한시도 송추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노려봄은 워낙 노골적이고 강렬해서 말을 걸지 않았음에도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이야. 가면을 쓴 게 분명해. 아무렴, 속임수가 아니고선 불가능하지’. 강호에는 인피면구라는 특수한 가면이 존재한다지 않던가.
“많이 놀라신 모양이군요. 원래 사람이란 날 때부터 악한 자는 없지요. 세상 어둠이 서서히 쌓여 언제가부터는 악을 악으로 여기지 못하고, 도리어 멋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제가 한 일이라곤 마음에 쌓인 어둠을 살짝 걷어낸 것뿐이랍니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