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82화 (82/125)
  • # 82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바로 더 이상 욕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며 대법인가 뭔가를 시전했던 자칭 사부라는 인간에 대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그 새끼가 뭔가 수작을 부린 거로군.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 머리에 뭔가 이상한 짓거리를 해놓은 것이 분명해. 아! 그 씨발할 넘이었어. 개자식, 대법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내 머리통에다가 작은 종을 넣어놓은 거야.”

    정신을 잃고 있었을 당시 틀림없이 머리를 째서 종을 심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송추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머리에서 종소리가 날 수 있겠는가.

    “으아아악, 개자식. 어떻게 그럴 수가. 어떻게 사람 머리를 갈라서 종을 넣어놓는단 말이냐.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 내 너에게 진정한 욕설제왕의 힘을 보여주리라.”

    이를 악물고 울분을 토하던 송추는 그로부터 채 일각이 되기도 전에 다시금 공포의 종소리를 들었다.

    뎅! 뎅! 뎅…….

    “헉! 또?”

    그 물음에 대답하듯 곧바로 발작이 시작되었다. 다시금 머리에서는 지진이 일어났고, 바닥을 뒹굴면서 생지렁이 춤판이 벌어졌다.

    “으아아아아악……. 그만, 그만~”

    송추의 외침은 고통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비명이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서 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으아아아아악……. 제발 날 살려줘… 내 머리에서 종소리가 울려~ 으아아아악!”

    구경꾼들은 귀신같이 빠르게 모였다. 아까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듯 경쟁이 치열했고, 사람 숫자도 훨씬 더 많아졌다.

    아까 보고 또 다시 본 사람들은 처음 봤을 때보다는 훨씬 충격이 덜했지만 재미는 더 있다고 느꼈고, 새로 본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다시 보기 힘든 이 지랄을 생생하게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대단하군.”

    “내 전에도 사람이 발작하는 걸 여러 번 보았지만 이번만큼 격렬한 것은 처음인걸.”

    “아예 뒤틀릴 때는 몸이 붕 뜨는데 체공 시간이 꽤나 길구만.”

    “저 정도면 발작치고는 이미 경지에 들었다고 봐야지.”

    “진짜 지랄하고 있네.”

    “어어어… 저기들 보시오. 거품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은데.”

    “어, 어디 말이오? 오라, 게거품 나오기 시작하고! 아싸!”

    두 번째 구경온 이들은 이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탓에 각자 소감과 기대를 서로 나누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송추는 지렁이 꿈틀거림에 이어 느닷없이 몸을 일으키고는 벽에 머리를 부딪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쿠웅~

    객점 전체가 울리고, 먼지가 풀썩하니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이 벽에 머리를 박아대던 송추가 다시금 팔다리를 현란하게 놀리면서 발작을 일으켰다.

    그러다 한순간 갑자기 시간이 정지한 듯 송추의 몸이 멎었다.

    이때 송추는 드러누운 채 양팔과 양다리를 마구 흔들고 있다가 뚝 멈춘 탓에 모양새는 참으로 수습하기 곤란한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송추는 천장을 바라보던 눈을 눈동자만 돌려 활짝 열린 문을 넘어들어 오다시피 하면서 구경하는 뭇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시 천장으로 눈을 돌리고서는 이내 눈을 감았다.

    그러자 주인장은 눈치 빠르게 사람들에게 손짓하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

    그제야 손과 발을 내린 송추는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이것으로 세 번째 발작이다.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는지 확실히 알아야 했다.

    만약 다시 한 번 이 객방에서 발작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을 한다면 그때는 정말 미쳐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욕으로 승화한다고 해도 그건 한계가 있었다.

    방 안 가득 악취가 진동했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 일단 이곳을 벗어나자. 지미 씨바, 조용한 곳에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송추는 즉시 몸을 씻고, 점소이를 불러 여벌의 옷을 가져오라고 시킨 후, 객방을 나섰다.

    “염병할 지긋지긋한 방아, 이젠 영영 안녕이다. 에라이, 퉤아아악~”

    송추는 문을 닫기 전 방을 향해 가래침을 뱉으면서 거칠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이곳은 일, 이층이 식당으로 쓰이고 삼층이 객방으로 쓰이는 곳이라 송추는 복도와 난간을 지나 계단을 따라 내려오려 막 첫 번째 걸음을 뗐다.

    한데 바로 그 순간에 어이없게도 종소리가 났다.

    뎅! 뎅! 뎅!

    어김없이 세 번의 종소리였다.

    ‘뭐야? 왜 그래? 또 이러면 어떡해?’

    “안 돼~!”

    그러나 그때부터 그의 몸은 그의 뜻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꼬이면서 그대로 계단을 우당탕탕 구르더니 중간에 꺽이는 부분에 이르러 멈췄다가 다시 난리를 치고는 이층으로 굴러 떨어졌다.

    요란한 소리가 나자, 사람들은 일제히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거의 대부분이 숙박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시간이 점심때가 되려면 아직 여유가 있었기에 식사 손님이 별로 없는 것이 송추에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저거 또 지랄이다.”

    “어째 이번에는 밖에까지 나왔지?”

    “아까와는 다른데?”

    “그러게. 옷을 갈아입었는걸.”

    “발작없이 객점을 빠져나갔다면 하마터면 재미난 구경을 놓칠 뻔했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이 참 무심하군요.”

    송추의 발작은 앞서 그랬던 것처럼 오래지 않아 멈췄다.

    사람들은 머쓱한 시선을 돌려 머리를 긁어 보이기도 하고, 갖은 딴청을 부리기도 했지만 곁눈질로 혹시 또 무슨 지랄을 하나 힐끔거렸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아주 이상하게 꼬여 버린 송추로서는 그야말로 비상이 아닐 수 없었다.

    만일 이런 식으로 꾸준히―거의 일 다경 정도의 간격으로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으니―발작을 하게 된다면 한 달도 버티지 못해 끝내는 자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문제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짐작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뭔가 변화가 있을 만한 일이라곤 괴상한 세 놈이 펼친 사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법이란 것이 욕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했으니 어쩌면 이 증상은 욕을 하므로 인해 생긴 것일 가능성이 컸다.

    첫 번째 증상이었던 빈혈은 산에서 마음껏 욕의 함성을 지른 후에 나타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오늘 아침으로, 연속해서 욕을 뱉어낸 지 거의 일 다경 정도의 간격이 지나서 발작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송추는 이런 생각을 확신할 수 없었다.

    세상천지에 욕을 하면 발작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녕 그것이 가능하다면 차라리 참새가 봉황의 뜻을 헤아린다거나, 어린아이의 오줌발이 폭포를 능가하거나,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일이 더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송추는 머리를 감싸쥐고 주저앉은 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제길, 그래 일단 이곳을 벗어나고 보자. 어쩌면 이 객점이 나와 상극인 지도 모르잖은가.’

    처참한 몰골을 여러 사람에게 보인 것이 마음 아프긴 했지만 앞으로 다시 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분명히 만나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신나게 뒷담화를 까대겠지만 그래 봤자 그들만의 웃음일 뿐, 일평생 마주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씨발 그래도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송추는 어쩐지 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지려는 탓에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객점을 돈 한 푼 내지 않고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욕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크게 호흡을 고른 송추는 마음속의 미신을 떨쳐내고 일층으로 내려가 주인장 앞에 섰다.

    “야 이 개새끼야. 도대체가 음식은 음식대로, 잠자리는 잠자리대로 어디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이 망할 놈의 자식아, 이 따위로 장사하려거든 당장 집어 치워!”

    그때까지 구경나왔던 이들의 시선은 모조리 송추에게 이르러 있었기에 그들은 송추의 말을 한마디도 빠짐없이 듣게 되었다.

    욕의 기세가 사나워 차마 소리내어 말하진 못했지만 저마다 속으로는 한마디씩 중얼거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저 새낀 지가 뭘 잘했다고 지랄이야.’

    ‘어떻게 어린놈이 염치가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돈을 못 내겠다는 거야?’

    ‘설마 지랄한 것을 보여준 것으로 떼우려는 거냐?’

    ‘저런저런, 주인장한테 막말이라니. 어디 객점의 주인은 아무나 하나? 이런 저런 경험에 닳고닳은 사람에게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다니. 틀림없이 싸대기 한 대 맞고 징징거리겠지.’

    그러나 모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주인장은 송구스러움에 몸둘 바를 모른 채 연신 허리를 숙이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한 것이다.

    그는 아까까지만 해도 휘장에 묻은 오물로 휘장 세탁 비까지 받아내려 했었으나 송추가 정작 눈을 부라리고 욕을 하자 온갖 죄송한 감정이 쏟아져서 그만 돈에 관한 것은 모조리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다음부터는 똑바로 하고 살아라. 씨바랄… 카아악 퉤!”

    주인장의 발 아래 침을 뱉어준 송추는 거침없이 객점의 문을 나섰다.

    사람들은 이 어이없는 광경에 우르르 주인장에게 달려가 저마다 한마디씩 늘어놓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그냥 보내주시는 거죠?”

    “거의 손자뻘 되는 놈에게 욕을 얻어먹고 굽신거리면 어떡합니까?”

    “돈이라도 받으셔야죠. 음식값과 숙박비는 그렇다 쳐도 객방 안을 청소하려면 그것도 고역이 아니겠소이까?”

    주인장은 다그치는 말을 들으면서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오. 다 내가 잘 못했소. 객점을 운영한다면 마땅히 음식이나 잠자리를 불편없이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손님이 저리도 불편해하시는데 가는 길에 노잣돈도 드리지 못해서 그저 송구스럽고 죄송할 따름이외다.”

    사람들은 뜨악해지고 말았고, 저만큼 태연하게 걸어가는 송추의 뒷모습을 신비스럽게 바라보았다.

    바로 그 시간, 한줄기 변화가 몰아닥쳤다.

    송추의 머리에서 다시금 종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종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더 빨라진 것으로 그가 욕을 내뱉고 고작 오십 걸음도 채 걷지 않았을 때였다.

    “허걱!”

    송추의 두 발이 저절로 솟구치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송추는 발작에 온몸을 맡기고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객점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와 순식간에 송추를 동그랗게 에워싸고는 삿대질을 해가면서 욕을 퍼부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하늘은 속일 수 없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이렷다. 다들 어렵게 돈을 벌어서 생활하건만 편히 먹고 자고는 돈을 떼먹고 가려니 어찌 하늘이 진노하시지 않겠느냐?”

    “아무렴, 천벌을 받은 게지.”

    “돈도 돈이지만 어린 녀석이 입만 열면 욕이니 당연한 보응이지.”

    객점 사람들이 빙 둘러 구경하는 통에 그 곁을 지나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고 바라보다가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뭔가가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첫 번째로 놀랐고, 이어 두 번째로는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에 경악했다.

    점점 구경꾼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더니 급기야 뒤쪽에서 안 보인다고 욕을 해대는 사람까지 등장할 지경이었다.

    그때 뒤로부터 세 사람이 무리 속을 미꾸라지가 진흙을 뚫고 지나듯 제일 앞쪽으로 빠져나왔다.

    세 사람은 아직도 부지런히 발광하는 송추를 보면서 각기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강호에 저렇게 빠르게 땅을 구르는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거늘 오늘 비로소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구나. 휴, 아직 나의 수행은 얼마나 더 많은 나날이 필요할까?”

    혼잣말처럼 읊조린 자는 통증왕 굉운이었다. 그의 눈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고, 발광하는 중에도 또렷하게 목소리를 들은 송추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야, 이 씨발 놈아, 도대체 내게 무슨… 우랄랄라. 수작을 부린 거냐? 어서… 푸다닥달… 원래대로 해놓지 않는다면… 푸르푸르르르. 네놈의 머리부터… 끄르릉촹촤… 발끝까지 잘근잘근 씹어서… 피웁트푸트… 숲의 거름이 되도록 해주겠다……. 쒸푸르르좡창…….”

    욕을 하는 와중에도 입이 급작스럽게 돌아가고, 두통이 머리를 깰 듯이 닥쳐왔기에 중간 중간 괴상한 소리를 뱉어냈다.

    이 굳건한 의지에 심온은 찬사를 보냈다.

    “저 와중에도 끝까지 자기가 할 말을 맺다니 정녕 보통 사람은 아니로세.”

    “그러니까 저놈이 제자로 삼는다고 했겠지. 어정쩡한 놈이라면 이렇게 했겠냐?”

    이호도 뭔가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광경을 놓치지 않고 보면서 송추는 또 다시 참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개 쌍놈의 새끼들아, …쒸푸르르좡창차… 날 어떻게 했길래… 우랄랄라. 이 꼬라지냐? 열 셀 동안 날… 끄르릉촹촤퉁트타… 원래대로 해놓지 않는다면… 랄나삐따파타… 죽어서도 네놈들을 쫓아다닐 것이다. 피웁트푸트파타파… 내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 악마에게 네놈들을… 우랄랄라. 죽여달라고 청부할 테니 각오해라.”

    그때 구경하는 무리 중 한 사람이 크게 외쳤다. 원래 군중들은 곁에 있는 이들과 작게 웅성거리는 통에 주변은 파리가 윙윙거리는 것 같은 소리로 가득했는데 그의 음성이 유달리 큰 탓에 모두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틀림없다. 저 사람은 얼마 전에 벌어진 천하욕설대회에서 우승한 젊은이다.”

    그 말에 일순 좌중은 시간이 정지하고 공기가 사라진 듯 극심히 고요해졌다. 그러다 몇몇이 정지된 시간 속으로 파고들었다.

    “맞다, 바로 그 녀석이야.”

    “정말이군. 어쩐지 욕을 들을 때 마음이 진탕되는 느낌이 들더라니.”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욕설자의 말로올시다!”

    그 외침에 사람들은 느닷없이 썰물이 빠져나가듯 흩어져 버렸다.

    남은 이들이라곤 희락동자 이호와 통증왕 굉운, 심온, 그리고 대여섯 명의 노인과 서너 명의 중년인이 전부였다.

    이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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