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81화 (81/125)

# 81

가끔 청년 무사도 꿈에 등장하곤 했는데 광대옷을 입고 알록달록 분장을 한 모습으로 어떻게든 웃겨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꿈속에서도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늦게 만큼 일어난 송추는 아침으로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고는 이내 점소이를 불렀다. 아침은 간소하게 방 안에서 먹을 작정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문 열렸어. 어서 들어와.”

“무엇을 도와드릴깝쇼?”

“음, 간단히 아침식사를 할 생각인데 뭐가 좋을까?”

“저희 객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아침 식사가 있답니다. 일명 두부완밥이라고 부릅지요. 밥에 연한 두부를 으깨고 간장으로 맛을 낸 것인데 그 속에 비싼 전복과 송이버섯, 각종 야채가 곁들여져서 영양뿐 아니라 아침 식으로 위에 부담도 주지 않는 답니다.”

“흠, 그래 그걸로 하지 뭐.”

“그런데 한가지 흠이라면 가격이 좀 쎈 것이 흠입지요.”

온갖 죄송스러운 표정을 곁들였지만 그 말뜻은 ‘이거 비싼 건데 너 돈은 확실히 가지고 있는 거냐?’라는 것이어서 이제껏 욕 한마디 없이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가던 송추는 울컥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어찌 이렇듯 대 놓고 깔본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가진 돈은 한 푼도 없는 송추였다. 어제 저녁에 먹은 음식값부터 숙박비, 그리고 아침식사까지 어느 것 하나 낼 돈이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송추가 분노에 타오른 것은 원래부터 송추는 단 한 번도 돈을 내고 밥을 먹어보거나 숙박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컷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난 뒤에는 바람이 살랑이는 것처럼 한마디를 뱉어내면 그만이었다.

“달아놔라, 씨발놈아!”

이 말이면 거의 십중팔구는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며 유유히 나가는 송추의 뒷모습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러나 만일 음식 맛이 형편없거나 숙박 시설이 거친 산야나 다를 바가 없다면 좀 더 욕은 구체적으로 퍼부어진다.

“개새끼야, 이것도 음식이라고 내놨냐? 거기다 잠자리는 오죽 불편해야지. 망할 새끼, 이러고도 돈을 받아 처먹는다면 네 종자는 개 종자다. 알았어?”

이 욕이 나가게 되면 객점 주인이나 점소이들은 허리를 구십도 각도로 꺾어 인사를 하고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밖에서 손을 흔들어주곤 했었다.

그러니 굳이 귀찮게 돈을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지금 송추가 화가 난 것은 돈에 관한 질문도 질문이지만 자신이 그만큼 돈이 없어 보이는 인간이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송추의 눈이 치켜떠지고 입술이 꿈틀거리자, 점소이가 주춤 두 걸음 물러났다.

이미 어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욕을 들을 때마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었다.

끝내 송추의 입이 열렸다.

“이런 썅! 야 이 호로 새끼야. 니가 바로 점소인가 점돌인가 하는 개자식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게 돈이 있냐고 물을 수 있는 것이냐? 이 뇌를 꺼내 호박으로 바꾸어도 시원찮을 놈아!”

쏟아지는 독설 앞에 점소이는 비틀거리면서 뒷걸음질로 간신히 방을 나섰고, 휘청거리면서 겨우 주방 앞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는 잠시나마 자신의 뇌가 정녕 짙은 노란 색의 호박으로 바뀌는 착각에 빠져 서글픈 표정을 짓다가 간신히 제정신을 수습했다.

점소이는 주방을 향해 연신 빨리 좀 만들 수 없겠냐고 다그쳤고, 주방에서는 주방 나름대로 음식이 그렇게 말같이 빨리 만들어지냐고 고함을 질렀다.

“제발 사람 하나 살린다는 셈치고 좀 서둘러 주십시오.”

음식 늦게 갖고 왔다고 욕을 한 번 더 먹게 되면 평생 동안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어찌어찌 음식이 나오고 서둘러 큰 쟁반을 들고 걸음을 재촉하여 송추의 문 앞에 이르렀다.

“아침 식사가 마련되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는지요?”

혹여나 화를 돋을까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점소이는 화가 단단히 났나보다라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여 문을 사이에 두고 있어 보이지도 않을 텐데도 더욱 저자세로 머리를 조아렸다.

“조금 늦게 준비되었습니다. 대인께서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더 머뭇거린다는 것도 큰 실례가 될 것 같아 점소이는 슬며시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헉!”

두 눈에 들어온 건 전혀 뜻밖의 광경이었다.

“과르르르르르르…….”

송추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게거품을 실감나게 물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하는 탓에 과르르르거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대인,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정신 좀 차려보십시오.”

점소이가 다가가 부축하고 앉히니 송추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 지 거품을 뱉어내고 숨을 몰아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변고가 일어난 것은 점소이에게 욕을 퍼부어 주고 점소이가 두려움에 찬 얼굴로 나가는 것을 의기양양하게 보고 난 직후였다.

뎅, 뎅, 뎅~

머리 속에서 종소리가 세 번 울려 퍼졌고, 그 이후,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그 고통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당한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어서 송추는 미친 듯이 비틀거리면서 집기를 부서뜨리다가 결국 거품까지 물게 된 것이었다.

“씨파, 이게 무슨 꼴이람…….”

아직 머리가 아프긴 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양손으로 머리를 싸매 쥐고 일어서는 송추였다.

“대인,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소인이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점소이는 방 안 탁자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기세였으나 송추는 번잡스럽게 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어서 손을 내저었다.

“야, 쌍놈의 새꺄! 괜히 성가시게 하지말고 가서 볼일이나 보도록 해라.”

기껏 생각해서 말을 해주었음에도 송추는 눈곱만큼도 고마워할 줄을 몰랐다. 그러나 더욱 특이한 건 ‘흥, 잘해줘도 지랄이군’이란 식의 반응을 보여야 마땅한 점소이는 더욱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송구스러운 표정이 가득할 따름이었다.

“소인,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전 물러갑니다.”

“이 새끼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아직도 안 간 거냐?”

서두르면서도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점소이가 나가자, 송추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주먹을 쥐고 퉁퉁 때려보고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종말의 징조인 거냐? 왜 난데없이 종소리가 들리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거야?”

몇 번 더 씨부려 준 다음에 송추는 아침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점소이가 꽤나 자랑스럽게 늘어놓은 대로 음식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아침 식사인 까닭에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양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속에서 울화통이 터진 까닭에 우왁스럽게 먹다보니 일각도 채 되지 않아 식사를 마쳤다.

그나마 뱃속이 든든해지니 머리가 아픈 것도 조금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어허, 잘 먹었다. 잡놈의 새끼들, 음식은 쫌 잘 만드누만. 하하하.”

뒤이어 꺼억, 하는 트림까지 뱉어낸 송추는 곧이어 벌어질 끔찍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때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뎅! 뎅! 뎅…….

다시금 울리는 세 번의 종소리.

순간 송추는 바짝 긴장한 낯빛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종을 들고 있는 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실은 종을 들고 있는 자가 가까이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송추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종소리가 실은 외부가 아닌 머리 속에서 울려난다는 것을 이미 그 자신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탓에 그의 의식이 작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도대체 이건 무슨 조화냐?’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의문을 가질 여유가 빠르게 사라졌다고 해야 옳았다.

“푸확~”

뱃속이 파도가 치듯 울렁거리면서 방금 전 먹었던 아침 식사가 고스란히 목구멍을 솟구쳐 불을 뿜듯이 뿜어졌다.

그와 동시에 머리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쩍, 쩌적… 쩌어억.

실제로 머리가 갈라지는 소리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송추는 그런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으아아악~”

머리가 산산이 부서지고 바스러져서 바닥에 우두둑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와 함께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엄습했다.

자신이 방금 전 토해낸 위액과 섞여 온갖 쉰 냄새와 역겨움의 결정체를 이루고 있는 토사물 위를 송추는 온몸을 휘저으면서 뒹굴었다.

“으아아악, 제발… 날 살려줘…….”

고함 소리가 얼마나 크고 요란했던지 점소이는 물론이고 객점의 주인장, 그리고 다른 방에 머물렀던 손님들까지 무슨 일인가 싶어 모조리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들어가 보아도 되겠습니까?”

주인장이 직접 문 밖에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으아아악……. 내 머리, 내 머리가 부서지고 있어. 으아아악…….”

대답 대신에 더욱 더 격렬한 비명이 들려오자, 주인은 안절부절못했고,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손님들이 앞다투어 주인장을 재촉했다.

“어서 문을 열지 않고 뭘 하는 게요?”

“이러다 사람이 다 죽은 뒤에야 들어가게 생겼소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소? 여기서 굳이 예를 들먹일 필요가 있단 말이오?”

“어서 문을 열어요, 어서요.”

주인장이 기다린 말들이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지만 혹시라도 안에서 장난을 친 것이거나 허락없이 문을 연 것에 대해 따지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할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방 안의 광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혹여 강도나 원한을 가진 사람이 창으로 침입하여 괴롭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였는데 펼쳐진 광경은 전혀 엉뚱하게도 온갖 토사물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발작 지경이라 모두들 뜨악하니 입을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다.

“으아아악~ 머리가, 머리가 갈라지고 있어… 제발 날 살려줘… 으아아악…….”

송추의 발작은 정말이지 눈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마치 비 오는 날 밖으로 나온 지렁이에게 소금을 뿌렸을 때, 지렁이가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것과 비슷해서 혹시 이것이 그저 막연한 발작이 아니라 지렁이 무공과 같은 특수한 무공을 익히는 과정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명은 갈수록 커지고, 지랄염병발광을 하는 통에 바닥의 토사물이 벽으로 튀고, 문 쪽으로 튀어 사람들의 옷에도 조금씩 오물이 묻었지만 구경 나온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몸을 돌리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침을 꿀꺽 삼키면서 구경하였는데 그의 머리 속에는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또 친구들에게 오늘의 이 구경거리를 어떻게 신나게 이야기해 줄 것인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송추의 지랄 발광이 어느 한 순간 멈춰졌다.

바닥에 엎드린 채로 중단된 터라 송추는 왼쪽 뺨을 척척한 바닥에 댄 채로 문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주인장, 점소이, 그리고 기타 등등의 사람들…….

참 집중력 넘치는 눈동자들이었다.

아무 말이 없는 가운데 그렇게 송추와 구경꾼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만치 뒤쪽에 어제 모욕을 안겨주었던 청년무사와 아리따운 두 명의 여인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집중력 넘치는 눈동자였으며,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검은 눈동자에 희열의 폭죽이 터지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송추는 입술을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아주 미세하게나마 구경꾼들이 슬쩍 뒤로 물러섰다.

송추가 잠시 자신의 몰골과 방 안의 정경을 둘러보았다. 그 다음 천천히 걸음을 옮겨 창 쪽으로 향하더니 휘장을 젖히고는 눈부시게 파고드는 아침 햇살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았다.

말없이 등을 보이고―등판에는 온갖 토사물로 붉으스름 하게 젖어 있었다―바깥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사나이의 고독이 짙게 우러났다.

사람들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하염없이 그런 송추의 등을 바라보았다.

물론 개중에 몇몇은 참지 못하고, 우엑, 우엑 거리면서 토하려는 걸 안간힘을 다해 참아내면서까지 자리를 지켰다.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뒷덜미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이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을 느낀 송추가 느릿하게 몸을 돌려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혼자 있고 싶소. 날 이해해 주시오.”

이때 송추의 목소리는 약간은 쉰 듯하면서도―그렇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러댔으니―낮게 가라앉아 무척이나 남자다운 음성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제야 마법에서 깨어난 사람들처럼 눈을 깜박이고 약간 흠칫 몸을 떨면서 분분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주인장과 점소이였는데 주인장과 점소이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바닥 청소비, 벽에 묻은 오물, 아까 휘장 걷으면서 또 손으로 묻혔지. 이 새끼 이거 다 보상 못하면 넌 죽는다.’

주인장의 생각이었고,

‘염병할 놈, 이거 내가 다 청소해야 하는 거잖아. 흐미…….’

그러나 지금 당장 이 비참한 몰골에 대고 보상 운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주인장이 문을 닫자, 송추는 그제야 차분히 이 상황을 돌아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미쳐 버린 것일까?

미쳤다고 쳐도 왜 곱게 미치지 못하고 이 지랄을 떤 것일까?

혹시 음식에 장난을 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어제 골탕을 먹었던 그 년놈들이 수작을 부린 것일지도…….

이 외에도 온갖 의문과 의심이 산봉우리처럼 솟구쳤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마음에 찰칵하고 걸려드는 것이 없이 그저 공허할 따름이었다.

“송추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천하에 두려움을 모르던 좆같던 니가 이 무슨 지랄 염병할 짓을 해버린 거냔 말이다. 이 추접한 새끼야. 이 꼬라지를 봐라. 이것이 정녕 사람의 짓이냐?”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붓던 송추는 문득 두 가지 내용이 떠올랐다.

하나는 머리 통증에 관한 것으로 비록 당시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으나 절벽에서 욕을 퍼부었을 때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빈혈 증상을 느끼고 죽을 뻔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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