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염병할.”
그러나 사실 놀란 건 점소이가 아니라 그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점소이를 깔보고 있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마음 바탕에 깔리긴 했어도 보통 사람들은 결코 내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송추가 점소이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욕을 하자 모두들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린 놈이 배워 먹질 못했군.’
‘쯧쯧,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으니…….’
‘점소이 춘길이가 평소 늘 웃는 낯이어서 그렇지, 인상 쓰면 꽤 무서운 얼굴이고, 화가 나면 앞뒤 가리지 않는 사람인데 이거 소란 좀 나겠구먼.’
점소이를 잘 알고 있는 단골손님 장표는 영락없이 어린 녀석이 점소이에게 크게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 일 전만 해도 삼십대 초반의 사내가 이유없이 행패를 부리다가 춘길이에게 일장연설을 듣고 이어 멱살을 잡혀서는 내동댕이쳐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이유없는 행패에 대해서는 제대로 성격을 드러내는 춘길이었다. 그러나 정당한 내용으로 따지는 손님에게는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어쩔 줄 몰라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풍찬객점을 이용하기를 즐겨했다.
예상대로 점소이 춘길은 즉시 몸을 돌렸다.
그러나 예상이 들어맞은 건 거기까지였다.
“네네, 손님이 많아서 즉시 대령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럼 넉넉히 기다려 주십시오.”
어찌된 일인지 점소이 춘길이 잔뜩 쫄은 기색으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끌어다가 변명이랍시고 늘어놓자, 이내 주변의 앉아 있던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야? 뭘 잘못 먹은 건가? 아니면 내가 애초에 말을 잘못 들은 거야?’
‘아니, 설마 저 어린 녀석이 대단한 고수라고 된단 말인가. 어느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면 기세만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고 하던데 이미 그 경지에 든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들로 유추해 보나 제대로 이것이다, 싶은 것은 없었다. 그만큼 송추의 욕의 경지는 무공으로 비유하자면 거의 화경에 이를 정도요, 내공으로 치자면 노화순청, 반박귀진에 이른 것이라. 그 조절 여하에 따라 점소이 한 사람에게, 혹은 모두에게 적용하는 범위를 조정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른 것이었다.
주변인들이 작게 소곤거리는 말이 모아져서 거친 모기떼들이 우는 것처럼 들리자, 송추는 의자 뒤로 몸을 깊이 젖히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씨발놈들, 밥 처먹으러 온 건지, 앵알거리러 온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 하여간 씨바라.”
송추는 천하욕설대회의 우승자다.
그러나 사실 욕의 현란함으로 치자면 개장수 문추나 욕쟁이 할매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송추가 쟁쟁한 욕의 고수들을 물리치고 우뚝 서서 최고의 욕쟁이에 올라선 데는 욕설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욕설의 깊이, 욕설의 파괴력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무공에 있어서도 초식이 크고 현란한 것들은 누가 보기에도 대단해 보이고 심지어 아름답다고 느껴지기도 하나 막상 목숨을 건 대결을 하는 입장에 선다면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진정한 무공은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 요점이 있는 것이지, 얼마나 보기 좋으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낸 것 같은 것임에도 이층에서 옹알거리면서 송추를 씹어대던 이들은 순간 먹던 음식이 덜컥 하고 걸려 모두 급성 소화불량에 빠지고 말았다.
흔히 말하는 급체에 걸린 까닭에 사람들은 저마다 배를 쓰다듬고, 곧바로 식은땀을 삐질거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송추의 욕은 일순간 영혼을 충격으로 빠뜨려 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 하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따지는 이가 없었다.
잠시 후, 점소이가 지극 정성으로 오리탕을 내놓자, 송추는 기다렸다는 듯 쩝쩝 소리를 내며 맛있게 식사를 하였는데 이층에서 음식을 들고 있는 자는 오직 송추 한 사람 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배를 어루만지면서 약간이라도 식사를 해보려고 했으나 끝내 쓰게 웃으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객점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되자, 이층에는 오로지 송추만이 자리하고 있는 있는 셈이라서 송추는 자신이 마치 이층 전체를 예약한 것 같은 기분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씹새끼들 사라지니까 넓고 좋잖아. 하하하하.”
그러나 시간이 시간인 만큼 빈자리는 곧바로 새로 들어온 손님들로 차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 무색해지는 지라 이층으로 올라오는 이들을 송추는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육십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 부부, 어딘가 정상적인 부부 사이가 아닌 불륜관계로 보이는 사십대 중반의 남녀, 그리고 검을 등에 매고 있는 한 사내와 두 명의 아리따운 여인이 바로 새로 올라온 손님들이었다.
그중 송추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두 여인 중 가까운 쪽에 앉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절세가인 정도는 아니어도 충분히 침이 흘러내릴 만큼은 아름다웠는데 그것보다 송추의 눈을 붙든 것은 그녀의 가슴이었다.
터질 듯한 가슴이란 말을 듣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이렇듯 그 말이 실감나게 하는 여인은 그야말로 송추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숨을 내쉴 때는 그나마 안심이 되는데 숨을 들여 마실 때는 윗옷이 우두둑 뜯어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다시 눈을 내려 허리를 살피니 허리는 또 어울리지 않게 가는 것이 도무지 어떻게 인간의 몸이 저토록 확실한 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크고 탱탱하게 자리한 엉덩이를 보고 있자니 울컥하고 코피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여인이 송추를 바라보았고, 송추 또한 시선을 의식하여 바라보다가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송추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고, 여인은 문득 벌레라도 발견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뭐야 저 사람? 기분 나뻐.”
그러나 송추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그저 생글거릴 따름이었다.
욕설의 달인인 만큼 어지간한 욕설이나 비판, 조롱 등은 그저 싱그러운 바람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동행 무사였다.
“이 무슨 무례한 짓이냐? 정녕 네가 제 명에 살기 싫은 모양이구나.”
어느새 뽑은 것인지 검끝은 송추의 목덜미에 놓인 상태였다.
송추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이 입을 쩝쩝 다시더니 자세를 바로 했다.
“밥이나 마저 먹을란다.”
내 복에 무슨 여자냐? 란 식의 한탄이 섞여 나오는 음성이었다.
당장 용서를 구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검사는 검을 거두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밥은 역시 마저 먹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서로 간에 아무 말이 없다가 변화가 인 것은 송추가 오리탕을 국물까지 다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송추는 걸음을 청년 무사에게로 옮기더니 큰 소리를 내질렀다.
“부럽다, 개새끼야~”
청년 무사가 막 음식을 떠 입으로 가져가던 순간 동작을 멈췄다.
찰나 이층은 엄청난 긴장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까는 단지 음흉한 눈으로 쳐다본 것만으로 검을 들이밀었음을 감안할 때 어깨 위의 물건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임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여인들의 반응은 조소가 가득 어려 넌 이제 죽었다, 정도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청년 무사의 이름이 독고강이었으며, 그는 이제 겨우 약관을 넘긴 터였으나 가문의 비전검법인 독고삼검을 능숙하게 펼칠 수 있어서 이미 보통의 무사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게다가 아까 송추가 당장이라도 코피를 쏟을 듯이 바라보았던 여인을 마음에 두고 있는 터였기에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도 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과 상상일 뿐이었다.
정작 욕을 얻어먹은 독고강은 수저를 중도에 멈춘 채로 자신도 모르게 짖고 말았다.
“왈! 왈!”
이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두 여인 중 한 명은 독고연으로 독고강의 동생이었고, 풍만한 몸을 지닌 여인은 소혜운으로 독고연과 절친하게 지내는 한 살 많은 언니였다.
소혜운은 평소 독고강이 잘 생긴 얼굴에 진지할 뿐 아니라 무공도 빼어나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개소리를 내자, 어안이 벙벙해져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독고연 또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녀가 알고 있는 오빠는 평소 부드러운 자리에서도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식사를 하는 중에 욕을 들은 것이 아니던가.
“오빠!”
그녀는 간단히 부르기만 했지만 사실 그 다음 말은 생략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쳤어?
그렇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왈왈 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정작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독고강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소리를 내고도 믿어지지가 않아 멍해져 버렸고, 동생이 오빠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말로 개처럼 짖은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는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도대체 나는 어쩌자고 개소리를 낸 거란 말이냐?’
독고강은 평소 무공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임기웅변을 발휘했지만 실생활, 즉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생활면에 있어서는 경직되어 있어서 잠시 갈등에 사로잡혔다.
‘그냥 당장 일어나 목을 날려 버릴까? 아니야, 아니야. 좋지 않아. 그럼 사람들이 왜 왈왈 짖었는지 물을 것 아닌가. 이건 맞지 않아.’
그는 어쩔 수 없이 연극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는 태연을 가장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은 넓은 마음을 지녀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문제는 목소리가 아닌 얼굴이었다.
웃는 것도 웃어본 사람이 잘 웃는 법이다. 웃는 근육이 따로 있고, 울 때 자주 쓰는 근육이 따로 있어서 잘 웃지 않는 사람이 웃으려 하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기묘한 표정이 되어버리고 마는데 지금 독고강의 표정이 영락없이 그 상태였다.
이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든지 그의 맞은편에 있던 독고연과 소혜운은 입술을 깨물며 바라보았고, 주변에 앉은 이들 또한 눈썹을 팔자 형태로 하고는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씹새끼, 역시 넌 마음이 넓구나. 그럼 난 이만 방으로 들어가마. 즐거운 시간 보내라.”
송추는 아주 절친한 친구인양 독고강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점소이를 불렀다.
등을 돌리고 걷는 것을 바라보면서 독고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즐거운 밤 보내.”
점소이의 안내로 방으로 향하던 송추가 그 소리를 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만 흔들며 말했다.
“씨팔새끼, 밥이나 마저 처먹어라. 하하하하, 마음 씀씀이가 곱기도 하지.”
이 수법은 그야말로 병 줬다, 약 줬다 하는 방법이었다.
무공 외의 방면에서는 사고방식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독고강은 온 정신이 울렁대면서 도무지 해법을 찾지 못했다.
욕설을 들으면서는 정녕 자신이 씨팔새끼가 된 듯했고, 마음 씀씀이가 곱기도 하지라는 말을 들을 때는 어쩐지 감격스러운 마음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어, 그래… 고마워.”
손까지 들어 흔드려는 것에 그만 화들짝 놀라 중도에 손을 내린 것이 그나마 다행스런 점이라 할 수 있었다.
송추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독고강은 힘없이 자리에 앉아서는 남은 음식을 마저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우유부단함을 탓하였고, 소혜운의 얼굴을 볼 수조차 없었다.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는 소혜운은 잔뜩 의심스러운 눈으로 독고강을 노려보았다.
평소 그는 근엄하기까지 하던 모습이었는데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처음 만난 욕쟁이와 반말을 해가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정녕 독고강인지 아니면 독고강의 인피면구를 쓴 부랑자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여동생 독고연은 또 독고연 나름대로 무슨 말로 수습해야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문 통에 그들 주위로는 오로지 깊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아래층 구석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서 이 광경을 몰래 살피던 이호와 굉운, 심온 일당은 참으로 기가 막힌 상황 앞에 멍해지고 말았다.
“제자 하나 아주 똑 부러진 놈 골랐구나.”
“크크크, 형님도 이젠 인정하시는군요.”
“나야 뭐 사실 욕설대회에서 우승하는 걸 보고 어느 정도 인정은 하고 있었지. 무공도 모르는 놈이 사람의 마음을 홀라당 뒤집어엎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냐.”
“크크, 다음 대의 통증왕으로 손색이 없을 겝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심온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근데 형님 정말 뭔가 변화가 나타나긴 나타나는 겁니까? 혹시 얼렁뚱땅 넘어가는 건 아니겠죠?”
“이제껏 기다려놓고 고새를 못 참고 닦달이냐? 다 모든 만물의 이치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 기다려라. 자꾸 보채면 너 확 방광급속완충을 시켜 버린다.”
심온이 의자째 옆으로 피하면서 입술을 내밀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정말 그땐 다 같이 죽는 겁니다.”
“이 자식 많이 컸네. 어디서 막말이야, 막말은.”
어느새 이호의 손이 심온의 뒤통수를 내갈겼다.
“아얏, 왜 때려요!”
“어쭈 반항하시겠다?”
이번에는 이호가 간지러움을 태우자, 심온이 마구 손을 휘저으면서 막아내느라 요란을 떨었고, 두 사람의 시끌벅적함을 보고 통증왕 굉운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 *
송추의 밤은 쾌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밤 미녀들 앞에서 청년무사를 통쾌하게 한방 먹인 후 잠이 들었던 터라 꿈속에서 두 미녀가 벌거벗은 채 시종을 들어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