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78화 (78/125)
  • # 78

    “그러니까 형님과 아우의 도움이 필요하지, 그만한 힘 정도는 들어야 가능할까 말까라서.”

    “휘이익~”

    심온은 두 손을 깎지 끼고서 길게 휘파람을 불고는 말했다.

    “욕에 열쇠를 채운다. 캬아, 신기하도다.”

    ***(한 행 처리?)

    단계가 거듭될 수록 송추가 겪는 두통의 크기는 커져만 갔다.

    삼단계에 이르면서 열 조각으로 분산될 것만 같던 고통은 사단계에 이르러서는 백 조각으로 갈라지는 것만 같았고, 급기야 오단계에 이르러서는 머리가 활화산처럼 터져 버리는 줄 알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오단계가 마지막이라는 점이었다. 육단계, 칠단계가 없다는 것이 표현하기 힘든 오단계의 고통을 참아내는 힘이 되었다.

    송추는 오단계가 마쳐진 후 정신을 차리게 되면 과연 어깨 위에 목이 붙어 있는지에 대해 반드시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때와는 달리 거의 일주일 가량 깨어나지 못했다.

    ***

    송추가 깨어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심온은 굉운에게 몇 가지의 자잘한 고문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

    이호 또한 옆에서 ‘야, 좀 가르쳐 줘라. 애가 울라 그러잖아’라면서 힘을 보태자 굉운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답해주었다.

    제자를 순화시키는 일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 두 사람의 부탁이니 딱히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팔을 걷어 부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아무도 없는 창고로 가자.”

    왜 창고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심온은 그러려니 하고 따라 들어갔다.

    “너 정말 배우고 싶은 거냐?”

    굉운이 물었다.

    “당연하죠. 뼈마디를 꺾고 머리털을 뽑아버리는 방법들도 효과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수들에게나 적용할 수 있을 뿐이라서 말이죠.”

    실제로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들 정도면 분근착골수 정도라 해도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참아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들이 절정의 고수가 되기까지 수련한 것들은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고된 역경으로 이루어진 터라 인내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달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가 배운다고 해도 과연 이것을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구나.”

    “하하하하, 형님도 참. 저를 너무 순하게 보셨나 본데 저도 알고 보면 무지막지한 놈입니다. 하하하하.”

    “그게 아니다.”

    굉운의 목소리가 어느새 진지해졌기에 심온은 웃음기를 거두었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은 자신 또한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거든.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지.”

    “음, 그러니까 형님 말씀은 남의 눈에서 눈물나게 하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난다, 뭐 그런 뜻인 거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어지간해서는 뼈마디를 잘게 부수는 것이 더 낫기도 하단다. 어떠냐? 그래도 해볼 참이냐?”

    “그럼요.”

    심온은 망설일 게 뭐냐는 듯 흔쾌히 답했다.

    그러자 굉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다.

    “한번 맺은 약속은!”

    심온도 따라 일어나며 하늘을 향해 주먹을 쭉 뻗으며 응답했다.

    “취소할 수 없도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호기로운 웃음 속에 강호의 의가 드높이 솟구쳤다.

    그러나 잠시 후…….

    “으아아악, 취소요 취소, 이거 안 배울랍니다. 제발 그만요~”

    심온은 사색이 된 채 바닥에 엎드린 채 굉운을 향해 안타깝게 손을 내뻗었다.

    “이것은 방광급속완충이라고 한다. 고통을 잘 기억해 두거라.”

    심온의 고통에 찬 외침이 굉운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굉운은 태연히 ‘방광급속완충(膀胱急速完充)’이라는 고문술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고, 요체는 이러했다.

    인간의 몸은 7할 정도가 물로 이루어졌기에 그 물 가운데 아주 적은 양이라도 방광에 차게 된다면 방광이 감당하기 힘들게 되고 만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가득 찼으니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어디에다든 싸야 하는 데 문제는 한 번 소변을 봤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비워내면 또 다시 방광이 가득 차고, 비워내면 또 가득 차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 싸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아주 몸에 있는 물기란 물이 싸그리 빠져 나오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서는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 버리는 통에 중단하지 않을 시엔 아예 사람 자체가 모래처럼 푸석푸석해져 죽음을 맞게 된다.

    여기에 약간만 응용을 한다면 아예 오줌이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게 할 수도 있는데 이건 더욱 끔찍한 것으로 계속 방광은 부풀어 오르는데 나오질 않으니 급속히 팽창한 방광이 터지고 급기야 온몸의 물바다가 되어 끔찍하고 더러운 죽음을 맞고 마는 것이다.

    지금 심온이 당하고 있는 것이 방광급속완충의 응용편으로 방광이 가득한데 오줌이 나오질 않아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으으으윽… 제발, 이제 그만…….”

    본래 절정의 고수정도면 생리적인 육체의 작용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금 심온은 내력을 동원해도 도무지 제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힘을 쓸수록 고통스러워 고통과 당혹에 미칠 지경이었다.

    “제… 제발… 이러다 방광이…… 터져 버리겠습니다.”

    “아함… 이거 슬슬 졸려오네. 한 숨 때리는 게 좋겠지.”

    굉운은 벌러덩 누워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하고는 휘파람을 불더니 정말로 잠을 자는지 고요해졌다.

    “이런 개새… 끼… 증말 죽을 것 같단 말이다…….”

    이를 바드득 갈고 몸을 부들거리면서 심온은 굼벵이마냥 아주 느리게 굉운이 누워 있는 곳을 향해 기었다. 눈과 얼굴이 온통 붉게 변한 상태에서 일각 동안 고작 반 장도 전진하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잠시 후, 문득 잠에서 깨어난 굉운이 옆을 보다가 심온을 발견하고는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 여기까지 왔냐?”

    심온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굉운의 옷깃을 붙잡을 수 있을 정도까지 이르렀고, 어떻게든 붙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놈 무서운 놈일세.”

    그러더니 좀 더 멀리 떨어져서는 다시금 피곤한 듯 눈을 감아버렸다.

    심온은 입술을 부들거리면서 눈에서는 독기를 내뿜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장애도 그저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늘 낙천적인 사고를 지닌 심온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도무지 희망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솔직히 몰려오는 하복부의 통증은 몸의 일부가 맨 정신으로 뜯겨 나가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고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엔 방광이 터질 것이고, 대수술을 받게 될 것이며, 여차하면 죽을 것이고, 잘된다고 해도 평생 병신이란 소리를 들으며 살아갈 것 같았다.

    일이 잘못되어도 통증왕은 처연한 표정을 짓고는 ‘그래서 내가 고문술을 직접 경험해 볼 필요는 없다고 만류했건만 굳이 체험해 보겠다고 해서… 흑흑… 세상에 오늘처럼 슬픈 날이 어디 있을까!’라는 말이면 아무런 곤란도 겪지 않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절망이 해일처럼 온 정신을 잠식해 들어갔다.

    쾅!

    꼭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거칠게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이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심온의 얼굴로 희망이, 굉운의 얼굴엔 긴장이 서렸다.

    이호는 바닥에 엎드린 채 부들거리는 심온을 보고, 이어 굉운을 보며 일갈했다.

    “무슨 짓이냐?”

    ‘살았다.’

    심온은 무너진 동굴의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 사람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처럼 사숙이 멋있어 보인 적이 없었다.

    “나를 따돌리고 너 혼자 재미를 보고 있었단 말이냐? 못돼먹은 놈 같으니!”

    빛은 일장춘몽처럼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심온은 어둠의 나락으로 더욱 깊이 추락하면서 짐승처럼 신음을 발했다.

    “이 녀석이 하도 보채서 형님을 부를 여유가 없었지 뭡니까?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어서 자리잡으십쇼.”

    “항문압박공도 할거지?”

    “체험은 방광급속완충으로 충분합니다.”

    “좀 약하지 않냐?”

    “허허허허…….”

    보채는 이호를 보며 굉운은 어이가 없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호는 구세주가 아니라 더 지독한 악당이었다. 부르르 떨고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심온의 귀는 열려 있는 터라 아까까지 죽이고 싶도록 밉던 굉운이 선한 사람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일단 굉운의 자제로 인해 심온은 항문압박공(肛門壓迫功)을 당하지 않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방광급속완충보다 한 단계 높은 고강도 고문술로 원리는 비슷했지만 위력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방광급속완충이 몸 안의 수분을 뽑아내는 것이라면 항문압박공은 몸 안의 노폐물을 한꺼번에 끄집어내어 항문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싸도 싸도 계속 나오는 덩어리들의 행진 앞에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통증왕 굉운의 자랑이었다.

    “이제 자리를 옮기죠.”

    얼마간 더 지켜본 뒤 굉운이 심온을 옆구리에 끼고 말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뒷산이 좋겠다.”

    “가시죠.”

    창고를 나선 두 사람은 날듯이 신나게 발을 놀렸다. 하지만 심온은 복부가 움푹 눌려진 채라서 더욱 큰 고통 속에 빠졌고, 너무 큰 통증이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런 세 사람의 행보를 후흑문도들은 보면서도 그저 태평스러울 따름이었다. 이호가 함께 있는데다 원래부터 심온이 해온 일들이 기이하고 괴상한 일들이라 지금 이 순간 심온이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뒷산에 올라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굉운은 심온을 내려놓기 무섭게 빠른 속도로 혈도를 짚어나갔다.

    이호는 무슨 까닭에선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고, 점혈을 마친 굉운 또한 끝내기가 무섭게 껑충 솟구쳐 이호 옆에 내려앉아 흥분에 찬 얼굴로 심온을 주시했다.

    “휴우~”

    심온은 아랫배를 압박하던 방광의 팽창감이 급격히 사그라드는 느낌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한숨은 단숨에 경악으로 바뀌고 말았다.

    고통이 사라진 대신 아랫도리가 척척하게 젖어드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오줌을 가리지 못했던 때가 언제였나 까마득하기만 한 심온은 힘을 주어 멈춰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둑과 같이 하염없이 빠져나올 뿐 멈출 수가 없었다.

    주변이 삽시간에 물로 흥건해져 버렸다.

    심온은 끌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신형을 솟구쳤다.

    “둘 다 죽여버리겠다.”

    사숙이고 형님이고 다 필요없었다. 저런 새끼들은 살려둘 가치가 없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심온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꼭 고문술을 배우겠노라고 다짐했던 말들은 잊어버리고 흉포하게 달려들었다.

    공중으로 솟구친 중에도 소변은 줄줄거리며 흘러내려 비참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크아아악~”

    한 마리의 괴수가 된 심온은 연신 줄줄거리며 쫓았고, 이호와 굉운은 죽어라고 달아나며 뒷산을 맴돌았다.

    한쪽은 하염없이 물을 흘리며 쫓고, 또 다른 한쪽은 웃음을 흘리며 쫓기는 형국이 멈춘 것은 거의 두 시진이 지난 뒤였다. 극심한 탈수증에 빠진 심온이 짚단마냥 힘없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몸 안의 수분이 콸콸 흘러나온 것이니 정녕 두 시진을 버틴 것만도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장난이 좀 심했나?”

    이호가 은근히 조심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솔직히 심온의 몸이 걱정돼서라기보다는 깨어나서 지랄 염병할 것이 겁나서 하는 소리였다.

    “흐흐흐, 형님 겁이 덜컥 나나보죠?”

    “이 자식이 아주 성질 부리면 아주 더럽거든.”

    “염려마십시오. 이 아우가 아무 문제없이 처리할 테니까.”

    굉운은 장담을 하고는 심온을 응급조치하고는 등덜미의 옷자락을 붙들고 산을 내려갔다.

    작은 산의 나무와 풀들은 갑작스런 수분 공급에 만족해하면서 가득 고인 물들을 빨아들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심온이 정신을 차린 것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였다.

    급격하고 과다한 탈수 증세와 방광의 통증, 게다가 정신적인 상처가 결코 작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었다.

    “통증왕 이 새끼 어딨어?”

    심온이 눈을 뜨자마자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뱉어낸 말이었다.

    “여기있다.”

    분노가 사그라질 때까지 멀리 달아나 있을 줄 알았던 굉운이 침상 옆 의자에 앉아 태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심온으로서는 기가 차지도 않았다.

    “이 새끼, 너 이럴 수 있어?”

    “날 치면 네가 약속을 깨는 것이 된다. 네가 제안한 고문법도 없는 것이 되고.”

    심온은 멱살을 틀어쥐고, 당장 한 대 칠 듯 주먹을 쳐들었으나 날릴 수가 없었다. 만약에 굉운이 ‘날 치면 넌 죽는다’란 식으로 말했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어제 당한 잊을 수 없는 고통은 그야말로 아무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한 것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차마 때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으으으으…….”

    “내 분명히 말하지 않았더냐.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말이다. 네가 체험해 보지 못한 고통을 어찌 다른 사람에게 준단 말이냐. 차마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보진 않더라도 단 한 가지만이라도 직접 느껴본다면 결코 아무에게나 통증을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똑바로 쳐다보며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하는 말에 심온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멱살을 쥐었던 손을 풀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다. 오늘과 내일 몸을 살피도록 해라. 모레부터 네게 두 가지 고문술을 가르쳐 주도록 하마. 잘 참았다.”

    굉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진중함으로 말하고는 방을 나섰다. 억지로 꾸민다고 꾸며지는 표정이나 말투가 결코 아니었다.

    심온은 어쩌면 이 모습이야말로 통증왕의 숨겨진 진정한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의 달인이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또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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