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77화 (77/125)

# 77

욕설대회에 참가하여 선전했던 중풍 노인 문철귀를 향해 속으로 얼마나 많이 비웃었던가. ‘씨발새끼, 늙어 곱게 뒤질 것이지 여기까지 나와서 뭔 지랄이야, 크크크’거리면서 말이다.

‘아, 씨파,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대체 나는 뭘 잘 못 먹었기에 이런 괴상한 놈에게 걸리는 불행에 빠져 버린 거지?’

생각은 다시금 뇌리로 파고든 음성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자, 이제 두 눈을 감고 마음의 눈을 떠라. 몸의 변화에 정신을 집중하여라. 그리고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내 허락이 있을 때까지 절대 입을 벌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입을 벌려 기가 새나간다면 그때는 참혹한 모습의 너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염병할, 지금 겁주냐? 다 알아들었어, 개새끼야.”

자, 이제 시작이다.

굉운의 양손이 송추의 등에 닿았고, 그와 동시에 이호와 심온도 한 손씩을 뻗어 굉운의 등에 대고 내력을 불어넣었다.

순간적으로 송추는 묵직한 망치로 등을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 속에 빠져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하지만 머리 속을 울리는 강력한 외침 ‘명심해라’라는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충격은 곧 수그러들었다. 마치 바닷가에 들어가 있을 때 잔잔한 물결이 등을 규칙적으로 미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차츰 머리가 몽롱해지는 기분이 되었다. 온몸이 나른해지고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온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변화가 인 것은 단지 그것뿐이 아니었다. 송추는 눈을 감고 있어 자신의 몸 밖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만약 볼 수 있었다면 그 신비스러운 광경에 감탄하고서는 이에 걸맞은 욕을 내뱉고 말았을 것이다.

그의 몸 주위로는 초록빛이 맺혀 있었다. 그 빛이 나오는 건 그의 코와 귀에서였다. 마치 초록 안개의 고향이라도 된 듯 계속해서 뿜어져 나와 그의 온몸을 막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뒤쪽에서 내력을 지원하고 있던 이호와 심온은 도대체 굉운이 어떤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나 초록 연무를 통해 지금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충분히 짐작했다.

‘이 녀석 정말 뭔가를 할 모양이네.’

‘이거 기대되는 걸.’

굉운의 대법 시전은 약 반 시진이 조금 못 되어서 끝을 맺었다.

굉운이 송추의 등에서 손을 떼어냈을 때, 송추는 초록빛에 감싸인 상태 그대로 옆으로 허물어졌다.

굉운은 송추를 똑바로 눕혀놓았고, 곧바로 좌법을 한 채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이호와 심온도 운기행공을 통해 소모된 내력을 추슬렀다.

거의 일 할에 이르는 내력이 소모된 까닭에 거의 한 시진에 이르는 동안의 운기를 통해 회복한 후, 굉운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송추의 몸을 성심을 다해 주물렀다.

한쪽 귀퉁이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이호가 작게 심온에게 속삭였다.

“내 생각인데 이건 아마도 녀석의 속임수가 아닐까 싶다.”

“왜요?”

“생각해 봐라. 지가 아무리 통증왕이라고 해도 어떻게 욕쟁이를 공손하게 만들 수 있겠냐? 두들겨 패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협박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내력을 통해 심성을 바꾼다는 것은 사형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가능할 리가 없단 말이다. 이건 틀림없이 저놈이 제자 녀석에게 강한 내력을 전수해 주려는 수작인 거야.”

“음, 정말 그렇다면 제대로 뒤통수 맞는 거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래도 여기서 그만두는 게 낫겠다. 계속했다간 내력을 다 빨리고 말 거야.”

“그럼 뭘 망설이세요. 조치를 취해야죠.”

“염려 마라. 내게 다 생각이 있어. 다시 대법을 시전할 때 역으로 내력을 빨아들이는 거다.”

“흡성마공인가요? 사숙이 그걸 안단 말입니까?”

“아니, 몰라.”

“크크크.”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냐. 저 녀석을 산채로 씹어 먹는 거야. 그러면 그 속에 깃든 힘을 섭취할 수 있겠지.”

“하아, 그건 꽤 마음에 드는데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젠 인육식에 이르자 가만히 굉운이 중얼거렸다.

“형님, 다 들려요.”

***(한 행 처리?)

정갈한 침대 위에서 송추가 깨어난 것은 꼬박 하루가 지난 뒤였다. 송추는 마치 말술을 마시고 고꾸라진 사람처럼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려 몸을 일으키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꼬르륵.

밥을 달라는 소리였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육체의 요구와 달리 식욕은 전혀 당기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빈속임에도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쐐앵!

깨어나기만을 고대하던 굉운이 인기척을 듣고 날듯이 달려왔다.

“일어났구나. 자, 그럼 또 시작하자.”

“뭐야, 또냐? 개새끼야! 그만 작작 좀 하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라 뱉어낸 말이라 침이 당문의 최고의 절기라 불리는 만천화우마냥 튀어 굉운의 얼굴로 쏟아졌다.

그러나 침들은 굉운의 얼굴에 닫기 전에 수증기로 화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 와중에 열강의 기운을 뿜어내 증발시켜 버린 것이다.

“녀석, 단단히 삐친 게로구나. 하지만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훗날 두고두고 내게 감사할 것이니 고집 피우지 말고 내 말에 따르거라.”

“도대체 무슨 지랄이야! 이 씨바랄놈아, 날 좀 내버려두라니까!”

송추가 거의 울 듯이 외쳤다. 욕설 대회에서도 실실 쪼개가면서 상대에게 욕하던 그 여유는 지금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자, 어서 일어나거라.”

“싫다. 어쩔래? 차라리 날 죽여라. 이 씹탱아.”

송추가 침대 위에서 거의 발광하듯 날뛰면서 반항한 터라 침대가 출렁거리고 이불이 어지럽게 비산했다.

굉운의 눈이 흉폭하게 변했다.

“이런 쌍놈의 새끼! 욕은 너만할 줄 아는 줄 아냐? 이 호로상놈의 새끼가 사부의 말을 씹어 먹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것인 걸 정말 모르겠단 말이냐? 이 새꺄, 오냐 내가 죽여주마.”

굉운은 욕을 퍼부으면서 양손을 마구 휘저으면서 송추의 안면이며 복부 등 가리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맞는 송추도 비명과 욕을 섞어가면서 뒹구는 통에 그야말로 난리법석이 따로 없었다.

사부와 제자의 난동이 가까스로 진정된 것은 시끌벅적한 소리에 밖에서 화단을 돌보고 있던 화노가 달려와 만류한 뒤였다.

“어허, 그만 참으시게. 이러다 사람 잡겠어.”

그래도 안면이 있는 화노였기에 굉운은 씩씩거리면서 손을 멈췄고, 송추는 침상에 엎드린 채 억지로 추남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는 처녀마냥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서러운지 듣는 것만으로 애간장이 녹는 듯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언제 송추가 이처럼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억울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실실 쪼개면서 욕을 뱉는 것으로 대부분 해소했던 송추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눈물을 비치는 일은 없었으며, 오늘처럼 엎드려 통곡하는 일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잠시 동안 방 안은 송추의 구슬픈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이것은 깊은 침묵보다 더한 정적처럼 느껴졌고, 굉운과 화노는 시간이 멈추어진 공간에 놓인 사람들마냥 눈도 깜박이지 않고 서 있었다.

잠시가 억겁처럼 느껴지는 공간으로 굉운의 목소리가 잔잔히 파장을 일으켰다.

“미안하구나.”

굉운은 혼자만의 독백처럼 중얼거리고는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 송추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눈물을 참고 있어야 할 필요도, 꼭 욕을 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뒤쪽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화노는 괜히 눈시울이 젖어드는 것 같았다. 사부와 제자의 관계는 이런 것이리라.

‘그래, 이런 것이지. 이렇게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며 사부와 제자의 정이 쌓여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퍽!

툭!

슥슥…….

“컥!”

지그시 눈을 감고 따뜻한 마음을 느끼던 화노가 연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뜨다가 삽시간에 두꺼비마냥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굉운이 엎드려 울고 있던 송추의 발목을 붙잡고 그대로 질질 끌고 방을 나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송추는 엎드린 상태로 침대에서 머리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질질 끌려가다 문턱에서 투둥 하는 이중주를 발하면서 속절없이 딸려갔다.

송추의 울음소리는 더욱 더 커져만 갔고, 화노의 입에서는 ‘허허. 거참. 허허’ 라는 말만 연신 새어 나올 뿐이었다.

***(한 행 처리?)

2단계는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송추의 몸을 두르던 빛깔이 초록에서 진한 녹색으로 바뀌었고, 약간은 몽롱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에서 지끈거리는 두통이 송추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송추로서는 알 수 없는 문제였으나 실질적으로 대법이 적용되는 것은 지금 펼쳐지는 2단계부터라 할 수 있었다.

1단계는 대법의 시작을 몸에 알리고 준비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준비운동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2단계는 1단계와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내력이 소모되었다. 이에 이호와 심온은 속으로 은근히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력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운기행공의 기본도 모르는 송추가 엄청난 양의 내력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 염려되었던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적당함을 넘어서는 순간 독으로 바뀌는 것이 세상만물의 이치다.

물과 불이 이로우나 또한 그 도가 넘으면 홍수와 화재로 모든 것을 쓸어버릴 수 있으며, 술은 약주가 되기도 하나 지나치면 간을 녹이는 독주가 되는 것이다.

수로(水路)에 적당한 물이 흐른다면야 문제가 없겠으나 기준을 초과하는 물이라면, 넘쳐 둑을 무너뜨려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내공이 흐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는 혈도가 빈약한 자에게 막대한 내력이 쏟아지면 내력의 범람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거 정말 괜찮은지 모르겠네.’

‘제길, 까닥 잘못하면 송장 치우게 생겼구만.’

이호와 심온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내력의 공급을 늦추었다.

“안 돼!”

굉운의 전음이었다.

이호와 심온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는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내력을 원래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입했다.

그로부터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서 대법의 2단계가 마쳐졌다.

“애를 죽일 참이냐?”

이호는 굉운을 믿고 내력을 불어넣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황급히 송추에게 달려가 맥을 짚어보았다. 이때 송추는 이미 혼절한 상태라 반듯하게 눕혀 있었다.

“어라?”

이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숙, 왜 그러세요?”

“없어.”

“없다뇨? 죽어버린 건가요?”

심온도 황급히 달려가 살피니 숨은 쉬고 있었다. 한데 문제는 내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거의 두 시진에 가깝게 쏟아 부었던 내력이었다.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범람한 내력이 제멋대로 온몸을 휘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아예 내력이 들어간 적이 없는 것 같았던 것이다.

순간 이호와 심온은 얼굴을 마주하고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굉운!”

“형님!”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빠져나갔는지 통증왕 굉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고래고래 욕을 퍼부으면서 신형을 날려 굉운을 찾아 나섰다.

“굉운, 이 새끼 넌 잡히면 아주 죽는다.”

“내공 도둑놈이다~”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없었다.

제자를 거둔다는 것은 속임수가 틀림없었다. 송추는 속이기 위한 것일 뿐 정작 자신이 중간에 선 척 하면서 내력을 흡수하고 만 것이다.

이호와 심온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 견딜 수가 없었다.

“너 어디 숨었어? 곱게 나와라. 내가 찾으면 진짜 너 죽는다.”

“형님, 어서 나오십쇼. 저는 싸대기 한 대로 정리할랍니다.”

여기저기를 들쑤시면서 눈을 부라리고 찾았지만 굉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안 되겠다. 애들 풀어라.”

부지런히 놀리던 걸음을 멈춘 이호가 씩씩거리면서 심온에게 소리쳤다.

“그래야겠죠?”

이곳이 어디던가. 바로 후흑문의 본거지가 아닌가. 아무리 숨어봤자 새장 안의 새 신세일 뿐인 것이다.

“문도들은 들어라! 비상이다! 모두 힘을 모아 통증왕 굉운을 잡아라!”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까닭에 후흑문도들은 우렁찬 문주의 외침에 저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그들은 빤히 이호와 심온을 바라보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냐 싶게 느릿하게 처소로 들어가거나 자기 일을 보러 몸을 돌렸다.

“뭐, 뭐냐?”

이호가 휙, 고개를 틀어 심온을 바라봤고,

“아, 아하하하. 아하하하. 글쎄요.”

심온은 멎적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었다.

좋게 생각하자면 희락동자 이호가 함께 있는데 굳이 뭐 하러 비상을 거는가 정도가 될 터였고, 나쁘게 보자면 후흑문도들은 기본적으로 문주를 엿으로 안다는 것이며, 더불어 문주의 사숙 또한 엿이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희락동자 이호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비상소집이 물거품이 난 뒤, 이호와 심온은 다시금 굉운을 찾는데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끝내 결실을 맺었다. 해질 무렵, 동쪽 창고 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굉운을 발견한 것이다.

“흐흐흐, 고작 도망간 것이 창고더냐?”

“크크크, 형님 각오하십시오!”

이호와 심온은 와락 굉운을 향해 달려들어 각기 팔과 다리를 깨물기 위해 이를 허옇게 드러내면서 달려들었다.

***

2. 고통을 아는 자가 고통을 줄 수 있다

마음이 통하는 이들끼리의 여유만만한 놀이는 창고에서 끝을 맺었다.

내력을 훔치거나 실제로 분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궁금하다는 완곡한 표현이고, 말해 주기 싫다는 거친 반항일 뿐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정말 씹어 삼켜 버릴 것 같아 통증왕 굉운은 입을 열었다.

“이를테면 열쇠를 채우는 중이랄까요.”

이호와 심온이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열쇠?”

“어디에요?”

“여기에.”

굉운은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쳤다.

이호와 심온이 그제야 이해가 되는지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가 되는 것과 믿어지는 것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만큼의 간격이 있었다. 두 사람은 현재 이해가 되는 것이라는 땅에서 저 멀리 있는 믿어지는 것의 땅을 바라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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