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74화 (74/125)

# 74

외전 1. 초절정 주방장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제왕성주(帝王城主) 엽지학(燁地鶴)은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무림의 태양 같은 존재였다.

그는 무공에 있어서 신적인 존재였으며 그의 말 한마디는 곧 법이요 진리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불가능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겼다.

하나 그런 그에게도 이룰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식에 관한 것이었다.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제왕성주마저도 옭아맨 것이다.

그에겐 세 아들과 두 딸이 있었다. 자녀들은 하나같이 겸손한 마음과 지혜를 겸비한 자녀들이었다. 그런 그가 늘그막에 막내아들을 보게 되어 애지중지하며 키우게 되는 바람에 그만 버릇없이 자라고 말았다.

그는 험난한 강호를 평정하고 제왕성을 세웠지만 막내아들에 대해서만큼은 그저 사랑스러움으로 인해 온전히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제왕성주 엽지학의 막내아들 엽동(燁憧)은 나이 16세가 되면서 식탐(食貪)에 빠져들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다 얻을 수 있는 자리인지라 어릴 적부터 가지고 싶은 것은 하루를 넘기는 일이 없이 다 손에 쥐어야 성이 찼다.

이제 식탐에 빠지게 되자 세상에서 맛 좋은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먹고 싶은 욕심이 끝이 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끊임없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고급 요리들을 먹다보니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입맛이 너무 고급화 되어 도무지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엽동이 한창 식탐에 치우칠 때는 배불리 먹은 음식을 토해낸 후 입을 헹구고 다시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정도였는데 이젠 그런 망나니 같은 짓을 하고 싶어도 그런 충동을 일으킬 만한 음식이 없었다.

무언가 변화를 물색하던 엽동은 어느 날 기막힌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바로 그거야.'

그것은 바로 중원에 방을 붙여 '중원제일의 요리사'를 모집하는 일이었다. 큰 상금이 걸린 것은 당연했다.

세상에 내노라하는 요리사들의 마음이 뒤흔들렸다. 만약 중원제일의 요리사로 선택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대대의 복락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당대의 영광은 물론이거니와 후손들까지 영화를 누릴 것이다.

소문은 빠르게 이어졌고 전국 각지에서 유능한 요리사들이 속속들이 제왕성에 당도했다.

모인 인원은 거의 오천 명에 육박했는데 그들 면면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연령 별로 보자면 이제 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이들부터 허리가 꾸부정한 팔십대 노파까지 이르렀고, 각기 자신만의 특별요리에 자부심이 대단한 듯 모두들 확신에 찬 표정들이었다.

제왕성에서는 모두를 일단 그들을 분류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고급 요리 실력을 갖춘 자들을 선별하여 본격적인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만 했다.

대대적인 시험이 치러졌다. 여기저기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지글지글 음식을 만드는 소리가 요란하기 그지없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 중에는 전혀 실력도 없으면서 오로지 행운만을 바라고 온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애초에 밥을 지을 줄도 몰라 삼층밥을 만들어놓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짜고 매운 것이 도저히 음식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개중에 더욱 어이가 없는 일은 음식을 만들어 시험을 통과하는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만들어진 음식을 집어먹느라 정신이 팔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험악스럽게 다루어 밖으로 쫓아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가려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들어진 음식들은 나이 어린 소년이 만든 만둣국에서부터 산채십향단(山菜十香段)까지 수천가지 요리로 나타났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절정의 기량을 갖춘 요리사로 선별된 인원은 오천여 명 중 정확히 백이십 명이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하는 일이었다. 순서를 가르는 일은 요리사들 모두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만일 소성주 엽동이 중도에 '이것이 최고다'라고 선언해 버린다면 그것으로 끝이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디 조금이라도 앞쪽에 뽑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은 순서를 정하게 되었고 첫 순서부터 백이십 번째까지 하루 한 끼씩을 맡기로 했다.

다음날부터 특급 요리사들의 요리가 준비되었다.

예비심사가 이루어지면서부터 누구보다 큰 기대를 가졌던 엽동은 흐뭇한 기분으로 첫 번째 요리를 맞아들였다.

요리에 대한 첫인상은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요리의 이름이 무엇이오?"

원래 말이 거칠기로 이름난 엽동으로서는 상당히 배려한 말투였다. 첫 번째로 배정되어 행운이 따른 것이 분명하다고 자부하던 산동성에서 온 요리사 소후가 정중히 답했다.

"오연절편향이라고 합니다."

"아름답고 화려하면 정갈해 보이지 않건만 이 요리는 정갈함까지 묻어나니 실로 놀라운 재주가 아닐 수 없구려."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자, 그럼 한번 먹어볼까."

엽동이 음식을 입에 가져가 눈을 꼭 감은 채로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요리사 소후는 긴장한 탓인지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그는 이제까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요리가 맛없었노라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과연 무슨 말이 나올 것인가.'

엽동이 눈을 뜨고 아무 말 없이 소후를 손짓으로 불렀다.

요리사 소후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그 앞에 이르렀고 여동은 사랑스럽다는 듯 요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후의 가슴은 벅찬 감동으로 쿵쾅거렸다.

'내가 제비를 뽑아 첫 순서가 될 때부터 행운이 내게 온 것인 줄 알았다. 하늘이 도우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가 감탄에 겨워 숨조차 쉬지 힘들 정도로 심장을 벌렁이고 있을 때였다. 엽동이 머리를 쓰다듬던 손에 갑자기 힘이 주더니 그대로 뒷덜미를 움켜쥐고는 음식 접시에 머리를 처박아 버렸다. 성주는 입에 물고 있던 음식을 소후의 뒤통수를 향해 뱉어내면서 고함 쳤다.

"어디서 이런 쓰레기 같은 것을 들이민단 말이냐. 도대체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겨난 거냐. 나를 아주 죽일 셈인 게냐. 네가 한번 먹어보아라. 이것이 음식인지 사료인지 말이다."

첫 번째 요리사 소후가 참혹한 결과로 나가떨어지자 그 뒤를 이을 요리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에 떨었다.

솔직히 그들이 보기에도 소후가 만든 음식은 대단히 훌륭했고 부러움을 살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두 번째부터 백이십 번째까지의 모든 요리사는 음식을 갖다 바치고 욕을 한 대박씩 얻어먹고 분분히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디를 가든 백 리 밖의 사람들까지 불러 모은다는 신기에 가까운 요리 실력을 갖춘 이들이 모두 탈락하고 만 것이다.

큰 대회를 열어 극상의 요리를 맛보겠노라고 했던 엽동의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고 주변에서 보필하는 이들은 송구스러움에 몸둘 바를 몰랐다.

엽동은 원하는 것이 성취되지 않았을 때는 더욱 심한 횡포를 부리는 못된 습성이 있는 바라 그때로부터 약 두 달 동안 제왕성은 소란스럽지 않은 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넘어갈 무렵, 엽동을 보필하던 총관에게 초라한 노인 하나가 찾아왔다.

"이 늙은이가 신의 재주를 가지고 있어 소성주님의 입맛을 살려낼 수 있소이다만."

하루하루 실의에 빠져 있던 총관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였다.

"고마운 일이오. 그럼 일단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보여주시구려."

"그건 아니 될 말이외다. 요리는 신성한 것일진대 어찌 함부로 만들 수 있겠소이까. 차라리 그럴 바에는 그냥 돌아가겠소이다."

총관은 너무 단호히 말하는 노인의 태도가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얼른 붙들었다.

"좋소이다. 하지만 반드시 큰 소리를 친 만큼의 성과를 보여야 하오."

총관의 눈에는 만일 일이 어긋나면 뒤에 그만한 보복을 당할 줄 알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저를 따라올 자는 없을 거외다."

"좋소. 그대를 믿어보겠소. 그대는 어떤 요리에 재주를 가지고 있소이까. 원하는 재료를 말하면 무엇이든 구해주겠소."

"나야 못 만들 음식이 없지요. 그리고 뛰어난 요리사는 재료가 중상급 이상이면 될 뿐 무언가 특별한 재료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가장 근본이 되는 음식 맛은 바로 손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중년인은 손을 들어보였다. 그의 손은 쭈글쭈글했고 그다지 깨끗하다고 볼 수 없었다. 총관의 안색에 불안이 어렸다. 노인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허허… 손이야 씻으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그 손맛은 손을 깨끗하게 관리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겠소이까."

"음. 듣고보니 지당한 말씀이오. 그럼 그대를 주방으로 안내하겠소이다."

"아니오. 나는 일단 소성주님을 뵙고 싶소이다. 먼저 말씀을 꼭 드려야 할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총관은 잠시 생각하다가 미리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좋소."

소성주 앞에 이른 노인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소성주님이 하늘이 내린 신기한 요리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뒤늦게 들어 이제야 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허명만을 날리는 요리사들로 인해 얼마나 상심이 크셨습니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정이 느껴지는 지라 엽동은 의외로 기쁘게 맞아주었다.

"음. 행색은 초라해도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믿음직스러운 것이 크게 기대가 되는 바이오."

"그리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앞으로 삼 일 후에 하늘이 내린 신비한 요리를 바칠 것입니다."

요리를 만드는데 삼 일이나 걸린다는 말에 소성주 엽동의 눈이 빛났다.

"오호, 삼 일씩이나? 도대체 어떤 요리이기에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요리의 이름을 들을 수 있겠는가."

노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하늘이 내린 요리의 이름은 '천의심요(天意心饒) 고진감래(苦盡甘來) 천희만만(天喜滿滿)'이라고 합니다."

"이름 역시 간단치 않군. 그 뜻을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

"뜻은 이러합니다. ‘하늘의 뜻이 담긴 요리는 고난을 겪은 후 기쁨으로 누릴 것이고 그때의 기쁨은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 차고 또 가득할 것이다’ 입니다."

"좋아, 좋아. 특히 고진감래가 중간에 들어간 것이 왠지 그 맛이 처절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 점이 매우 중요한 것입지요. 하늘의 요리는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엽동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도대체 어떤 고난이란 말인가?"

"그건 따로 조용히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노인이 입에 손을 가져다대며 귓속말을 하는 시늉을 하자 엽동이 손짓을 보내며 말했다.

"자, 이리 가까이 와서 그 비밀을 알려주시구려."

노인은 옆에 바짝 붙어 조용히 속삭였다. 그 음성을 듣고 엽동은 크게 감동을 받은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로구먼. 물론 그 정도는 참아야겠지. 좋네. 내 약속은 반드시 지키도록 하지. 삼 일 뒤에 보도록 하세."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만복(萬福)이 하늘과 땅을 왕래하나 뜻이 맞는 사람에게만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 부디 소성주께서는 큰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최고의 요리에 대한 계약이 체결되고 노인은 최고급 시설과 극상의 재료가 준비된 주방으로 안내되어 요리를 준비하게 되었고, 소성주 엽동은 간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하루가 지나게 되었을 때 엽동의 배에서는 먹을 것을 달라는 소리로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심지어 물조차 입에 대지 않은 상태였다.

보필하는 이들이 무엇을 좀 드셔야 되지 않겠냐고 했지만 엽동은 손을 저어 사양했다. 삼 일 간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최고의 요리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것은 곧 노인이 엽동에게 내건 조건이기도 했다. 삼 일 후에 나올 요리를 위해 삼 일 동안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필하는 이들은 노인을 닦달했지만 그때마다 노인은 손을 가로저으며,

"최고의 요리는 다그치지 않는 법이오. 최적의 화기와 요리하는 이의 최적의 마음,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비로소 하늘의 요리가 만들어지게 되니까요."

이틀째가 되자 엽동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마른 입술을 혀로 닦아내며 바닥에 모로 누워 어서 시간만 가기를 기다렸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하늘이 내린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조금만 참자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는 이제껏 굶어본 적이 없었던 지라 그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었다. 단 반 시진(한 시간)이 지나는 것도 천 년이 지나는 것처럼 길게 느껴질 지경이었고 배고픔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실감했다.

드디어 약속한 삼 일이 지났다. 이미 이때 엽동은 모든 사물이 먹을 것으로 보이는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참아왔는데 이제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천의심요(天意心饒) 고진감래(苦盡甘來) 천희만만(天喜滿滿)를 나는 반드시 먹고 말겠다. 그 하늘의 진귀한 맛을 보고야 말겠다.'

두둥.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요리를 이동하는 수레에 비단포로 요리를 감싸고 나타났다. 저만치 들어서는 순간부터 엽동은 이미 환상 속에 빠져들었다.

"그래. 바로 이 냄새야. 내가 그토록 바랐던 그런 냄새라구."

"그동안 기다리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번 요리에는 팔천오백스무 번의 손의 움직임이 있었으며 특별한 재료로 중원 팔방에서 모은 진귀한 물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말씀드리기 어려운 수많은 재료들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노인이 드디어 요리 쟁반의 뚜껑을 들어올리자 하늘의 요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리의 색상은 순백색이었고 언뜻 보기에 흰죽같았다.

보필하는 이들은 순간 불안에 휘말렸다. 그들은 요리의 비밀을 안 것이다. 특히 총관은 이를 갈며 노인을 죽여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엽동은 달랐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한 수저를 떠서 입으로 가져가더니 눈을 감고 음미했다. 그러다가 별안간 눈을 떴다.

총관을 비롯한 보필하는 이들의 눈에 걱정이 어렸다. 이러다 다 죽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온 마음을 지배했다.

그때 엽동의 입에서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악~~ 최~ 고~ 야~"

그 말을 시작으로 엽동은 멀건 흰죽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저로 떠먹던 것이 그것도 성에 차지 않은 지 급기야 양손을 쑤셔넣고 마구 퍼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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