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대부분의 사람들은 송추가 무슨 재주를 부려 개장수를 꺾었는지 몰랐고, 또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서문기가 펼쳐낸 신기막측한 광경이 너무도 현란하고 놀라워 송추가 승리에 만족하는 소리를 지를 때도 그저 서문기가 사라진 쪽만 바라보면서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쁠 뿐이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건 마치 한낮의 태양빛 아래 있던 사람이 갑자기 달빛 아래 놓이게 된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칠흑같이 검은 세상에 있다가 달빛을 보게 되면 그 빛이 대단해 보이지만 환한 대낮에 있다가 달빛 아래 놓이면 도리어 크게 어둡고 답답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처럼 송추와 만추의 대결이 먼저였다면 뜨거운 관심을 받았겠지만 관중들은 서문기와 자충 대사, 그리고 은하칠객까지 가세한 신기막측한 대결로 인해 여전히 그 광경을 잊지 못하고 되새겨 보느라 이 순간까지는 그다지 흥미를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오직 한 사람은 송추의 승리를 눈여겨보았는데 그는 다름 아닌 장주 은천협이었다.
'어려운 승부가 될 것이라고 보았건만 문추가 이리도 맥없이 무너질 줄이야. 정녕 저 아이가 내 뜻을 받들게 된단 말인가. 그래, 나쁘진 않다. 도리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잘못본 것이 아니라면 이 대결에서 송추는 개장수 문추보다 더욱 개장수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결코 그러한 삶을 살아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건만 송추는 상대의 장기를 구사하여 상대를 무너뜨린 것이니 이 승리는 더욱 대단한 것이었다.
이제껏 문추는 일격필살의 수법과 같이 많은 말 대신에 '개새끼', '개자식', '개새끼야, 물어라' 등의 말로 상대를 압도했었다. 맞선 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개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 허둥대거나 실제로 뼈다귀를 무는 등 단번에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번에도 송추를 향한 문추의 공격은 그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정녕 가슴 절절이 우러나는 문추의 '개자식'이란 선공(先攻)이 이루어졌을 때 송추는 어떠했던가. 그저 한줄기 미풍이 스쳐 지나가는 듯 흐뭇한 미소를 머금지 않았던가. 그리고 받은 대로 그대로 돌려주었다.
'개자식.'
그런데 뜻밖에도 문추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던 것이다. 몇 번의 공방이 이어지다 문추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품에서 뼈다귀를 꺼내 던진 것이다. 예상대로라면 송추는 허겁지겁 뼈다귀를 향해 몸을 던져 입에 넣고 열렬히 빨아야 했다.
하지만 송추에겐 전혀 먹혀 들지 않았다. 도리어 송추는 바닥에 떨어진 뼈다귀를 느긋하게 집어들더니 똑같은 수법으로 문추를 향해 뼈다귀를 던졌고, 어이없게도 문추가 개처럼 달려들어 손도 아닌 입으로 뼈다귀를 핥은 것이다.
문추는 스스로도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지 연신 '어,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그것으로 승부는 결정지어졌다.
이런 까닭에 은천협으로서는 이젠 거의 확신에 가깝게 송추의 승리를 장담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신의 뜻을 받들 자는 송추가 될 터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다오……. 널, 기다리마.'
8강의 승부로 인해 4강에 합류한 이는 서문기와 자충 대사가 모두 실격처리된 까닭에 욕쟁이 할매와 송추, 그리고 문철귀, 이상 세 명이었다. 심판관과 운영회 측에서는 이 중 한 사람이 부전승으로 먼저 결승에 오르게끔 제비뽑기를 준비했다. 제비뽑기는 비록 뽑는 자는 사람이나 결과는 하늘이 내리는 것인지라 이 결과에 불복할 사람은 없었다.
행 처리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비뽑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뜻밖에도 문철귀 노인이 기권을 선언한 것이다.
문 노인이 밝힌 변은 이러했다.
"나는 칠 년 전 어느 새벽녘에 중풍을 맞았소이다. 그 후 재활 치료를 위해 힘을 기울였으나 고작 지팡이를 짚고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정도였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소. 하늘이 원망스럽고, 세상이 미워지더이다. 내가 무슨 천벌받을 짓을 했다고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차라리 죽고만 싶었소. 사람들은 날 더러 병신이라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그때부터 내 입에서는 욕이 달려 있지 않은 날이 없었다오. 그렇게 지금까지 칠 년을 살아온 것이오. 이번 욕설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욱, 하는 감정으로 참여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겠소이다. 대회를 개최한 은하전장에 감사드리고, 또 은장주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대회 속에서 난 마음껏 욕을 토해냈고, 그와 함께 내 가슴에 맺힌 응어리와 울분마저 털어내었소. 더불어 욕설대회에 참가했던 여러 사람들과 이것을 지켜보는 수많은 관중들을 보면서 인생이란 각기 형태만 다를 뿐, 여러 고통 중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소. 그중 나는 조금 몸이 불편한 것일뿐인데 자격지심에 빠져 나를 학대하고 주위를 원망했다는 것이 부끄럽더이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이 대회가 성황리에 마쳐지길 바라외다."
이 말을 끝으로 절룩거리면서 퇴장하는 문철귀에게 대회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기립하여 박수를 보냈다.
대회장의 분위기는 한순간 욕설대회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만큼 훈훈한 감동으로 뒤덮였다. 하나 이런 따스한 분위기는 대회 진행에 있어서 만큼은 악영향을 끼쳤다.
문 노인과 보요화의 화합, 서문기의 놀라운 무위, 거기에 더해 다시 문 노인의 기권 선언 등으로 정작 결승전을 벌여야 할 지금에 있어서는 도무지 결승다운 분위기가 나지 않은 것이다.
운영위에서는 긴급히 회의를 열고, 이 사실을 장주 은천협에게 고하였다. 결승은 내일로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은천협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 역시 대회가 맥없이 종결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날짜 변경을 승인하였고, 곧바로 대회장에 발표되었다.
뭇 사람들은 왜 예정대로 결승을 치르지 않는지 의아해하면서도 하루에 수용할 만한 감정의 양을 다 써버린 탓에 굳이 항의하지 않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각기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자 기대했던 대로 대회장은 어제와는 달리 결승에 대한 기대로 충만해졌다. 하루라는 시간은 짧고도 긴 시간이라 어제의 감동이 조금 누그러진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사람들의 가슴 마다 차오른 것이다.
심판관의 안내에 따라 욕쟁이 할매 민고랑과 최연소자 송추가 무대 위에 오르자 장내는 열화와 같은 환호 속에 응원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응원은 일 대 구 정도의 일방적인 비율로 송추에게 쏠렸다. 8강에서 민고랑이 보인 가히 엽기적이랄 수 있는 '젖가슴 드러내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깊은 혐오에 빠뜨렸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기적을 원한다!"
"실력은 나이 순이 아니다. 참신한 욕으로 묵은 욕을 몰아내거라!"
"네가 어려도 얼마나 싸가지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어라!"
이렇듯 직접적으로 송추를 응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민고랑을 비난하는 말을 통해 송추에게 힘을 실어주는 이들도 있었다.
"엽기 할매, 나가 뒈져라!"
"만약 이번에도 혐오스런 짓을 한다면 내 그땐 가만두지 않겠다!"
"욕이 달리니까 몸으로 이기려는가 본데, 실력이 안 된다면 당장 포기해라!"
이러한 반응 속에서도 민고랑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도리어 고향의 내음을 간직한 할머니의 정겨운 미소로 모두를 바라보며 중얼거릴 따름이었다.
"잡새끼들, 그렇게 내가 좋아?"
심판관이 손을 들자, 함성이 차츰 줄어들었고, 곧바로 결승전의 시작을 알렸다.
초반, 두 사람은 서로 가벼운 욕을 주고 받으면서 탐색전을 펼쳤다. 부드럽게 찔러가는 욕설 속에서 한마디 한마디 신중함이 배어나는 것이 결승전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몇 합의 공방이 오고 간 후, 긴장이 풀렸다 싶을 즈음 가파른 변화 속에 비수 같은 공격을 가한 건 민고랑이었다. 손곤을 한방에 패퇴시켰던 쭈글거리는 젖가슴을 살기등등하게 드러낸 것이다.
"애새끼가 한참 자랄 나이인데 제대로 못 먹고 자랐는지 영 얼굴이 좋지 않구나. 잡놈의 새끼야 이리 오렴. 할미가 달고 맛좋은 젖을 네게 주마."
순간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나오면서 황급히 눈을 돌리는자부터 제 때 눈을 돌리지 못해 벌써 토를 하기 시작하는 사람까지 변고가 속출했다.
그때 심판관은 이미 한 번 경험을 했던 터라 민고랑이 윗옷을 들어 올리려는 동작을 취할 때 번개같이 눈을 돌려 송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비위에 맞서기 위해 지난밤부터 지금까지 어떤 음식도 먹지 않고 이 자리에 선 심판관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참아낼 확신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빈 속이라 넘어올 것이 없다해도 시큼한 신물만은 올라올 텐데 그건 더욱 사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는 필시 송추가 상대를 막아내기 위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건만 어이없게도 송추의 눈은 민고랑의 젖가슴에 정확히 고정된 채로 침을 연신 꿀꺽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런 미친 놈을 봤나. 이놈아, 군침까지 삼키는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이냐.'
그는 머리가 온통 복잡해질 뿐 도무지 다음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건 정녕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세계였고, 괴물들이었으며, 하늘 위의 하늘, 땅 아래 땅이었다.
이 광경은 비단 심판관만이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관중들도 지켜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인간의 몸과 마음으로 저렇듯 간절히 염원하는 눈동자로 쭈글거리고 새까만 젖가슴을 바라볼 수 있는지 짙은 의구심과 놀라움이 커져만 갈 뿐이었다.
'과연 어떻게 맞설까?'
'이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 무엇일까?'
'저놈은 괴물 같은 놈이로구나.'
그때 군침을 삼키던 송추가 뽀로록 심판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심판관은 이마를 한껏 찡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한 거야?'
'설마 포기한 건가?'
'뭘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대회장에 떠도는 수많은 물음표에 한순간 송추가 응답했다.
그 즉시 대회장은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기가 막히게도 송추가 쪼르르 달려가 민고랑의 젖가슴을 물어버린 것이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하오문의 손곤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을 송추는 민고랑의 말을 받아 직접 실천에 옮겨 버린 것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송추가 심판관에게 속삭였던 것이 과연 이 행동이 합법한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고, 심판관이 정당하다고 인정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경악스러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충격과 혼돈 속에 쥐죽은 듯이 고요해진 대회장에 한줄기 음향이 퍼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쭉, 쭉, 쭉…….
젖을 빠는 소리였다. 대게 남자가 여자의 젖을 빠는 행위는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상당한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어야 마땅했으나 이 경우는 일말의 흥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도리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혐오와 분노와 허탈, 그리고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들 따름이었다.
더불어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워했고,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뱃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끄집어내느라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열과 성을 다하여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가슴을 붙들고 늘어지던 송추는 일순 입을 떼더니 환한 미소진 얼굴로 민고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할매, 근데 말이야. 어째 맛이 쓸까? 난 시팔 좀 짤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근데 이건 완전히 새로운 맛이야. 어쩌면 난 생이 마쳐지는 날까지 이 맛을 잊지 못할 것 같아."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회장은 다시 한 번 폭풍이 휩쓸린 듯 비틀거렸다. 이미 제일 근접한 자리에 있던 심판관은 입과 배를 움켜쥐고 바닥을 뒹굴며 신음을 뱉어내고 있었고, 관중들은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대면서 나 오늘 죽는다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송추는 그 말을 끝내고 태연히 걸음을 옮겨 본래 자기 자리로 가서 태산처럼 우뚝 섰다. 그건 마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세상은 오직 평화롭고 태평할 뿐이다, 라는 자세여서 도무지 이 세상 사람같지가 않았다.
반대로 이때 민고랑의 얼굴엔 검은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어 그녀가 받은 심적 타격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옷을 똑바로 입고 송추의 얼굴을 집어삼킬 듯이 바라보며 일갈했다.
"잡놈의 새끼, 오늘은 내가 졌다. 그러나 결코 오늘의 패배를 잊지 않을 것이다. 싸가지없는 놈의 새끼."
그녀는 분을 이기지 못하겠는지 어깨를 들썩이면서 무대 뒤로 사라져 버렸다. 이로써 천하욕설대회의 우승은 송추의 몫이 되었으나 대회장의 상황은 전쟁터에 가까워, 승리를 선언해 줄 심판관은 물론이고, 환호해야 할 관중들 또한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까닭에 당황스런 결말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송추가 누구인가! 하늘만한 비위와 뻔뻔함으로 전신 갑옷을 입은 그가 아니던가. 송추는 누가 환호를 해주든 말든, 손을 마구 흔들어대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내가 이겼다. 모조리 물리치고 내가 승리한 것이다. 으하하하하… 세상에 그 누가 나를 대적할쏘냐!"
사람들은 송추가 길길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듣고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갔다. 송추의 자축 환호는 계속 이어졌다.
"앞으론 내 앞에서 욕하는 놈들은 가만 안 놔둔다. 쓰벌, 내가 지존인데 누가 감히 깝죽대. 뒤질라고! 푸하하하… 컥, 근데 이건 뭐야. 커억…. 카아아악……!"
그렇게 한참이나 기고만장하며 떠들던 송추가 불쑥 바닥에 침을 뱉어내자, 사람들의 관심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다.
"카아아악… 아이, 뭐야. 이거 할망구의 때잖아. 쌉쏘롬해도 먹긴 좀 그렇구만."
얼마나 열심히 쪽쪽거렸는지 민고랑의 몸에 있던 때가 입안을 껄끄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설명과 광경에 간신히 마음에 안정을 찾아가던 사람들은 다시금 속이 뒤집어지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이어이, 왜들 그래? 그렇게 썩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니까 그러네. 다들 진정들 하라구."
그러나 그 상황에서 진정할 수 있는 건 땅 위에 숨을 쉬고 있는 사람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