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71화 (71/125)
  • # 71

    "따라오라는 거지? 씨발놈, 따로 분위기 잡고 싶은 거구나."

    은천협이 이 날벼락 같은 소리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바라만 보고 있을 때, 그 소리에 제일 처음 반응한 것은 송추였다. 그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아작 내다가 연신 히죽거렸다.

    "야, 니들 사귀냐? 크크, 야 그렇더라도 대회는 공정하게 해야 돼. 여자 치마폭에 휩쓸리면 안 된다. 그러다 패가망신 당한 새끼들 많이 봤거든."

    송추의 말은 곧바로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모두의 입술을 열어젖혔다.

    "년놈들, 아직 한창이구나. 좋~겠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저 때가 좋은 거야. 새끼들 아주 얼굴에 분홍빛이 폭발을 하는구만.

    "할망구, 허리 너무 돌리지마. 늙으면 뼈다귀가 약한 법이거든."

    "저년 아까 눈웃음 살살 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

    "개새끼들!"

    "재수없다, 재수없어. 늙어도 할 건 다 하는구만."

    이리되자, 은천협으로서는 황당함의 바다에 풍덩 빠져 버린 격이라 할 수 있었다. 살다 살다 이렇게 고약한 인간들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자신이 왜 만찬을 하자고 했는지 폭풍처럼 후회가 밀려들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는 것이오. 괜한 사람 잡지 마시오들."

    당장 욕쟁이 할매 민고랑이 편을 들고 나왔다. 은천협으로서는 결코 반갑지 않은 아군이었다.

    "야 이놈들아, 부럽다면 부럽다고 할 것이지. 왜 지랄들이냐? 아가야, 우리 어서 나가자."

    민고랑이 냅다 은천협의 손을 잡고 팔랑거리며 밖으로 나가자, 귀빈실에서는 조롱이 가득한 웃음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곁에는 민고랑이 빤히 쳐다보고, 안에서는 조롱 섞인 욕이 난무하니 은천협에게 이 밤은 아주 미쳐 버릴 것만 같은 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밤이 지나고 드디어 8강 대전의 날이 되었다.

    대회장 옆으로는 거대한 안내판이 만들어졌고, 거기엔 8강 대진표가 커다란 글씨로 적혀 있었다.

    < 민고랑 ― 손곤 >

    < 보요화 ― 문철귀 >

    < 서문기 ― 자충대사 >

    < 문추 ― 송추 >

    약속된 시간이 되자 관중들의 열기는 여느 때보다 훨씬 뜨겁게 달아올라 8강전이 얼마나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순서에 따라 심판관의 소개로 민고랑과 손곤이 무대에 오르자 열렬한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욕쟁이 할매가 최고다. 한방에 쓰러뜨려라."

    "어린놈의 새끼가 감히 할머니에게 대들다니 어서 용서를 빌고 물러가라. 썅!"

    "욕쟁이 할매한테 밥 한끼 얻어먹고 꺼져 버려라!"

    대다수는 이제까지 출중한 솜씨를 보여온 민고랑을 응원했다. 그러나 어쩌다 손곤을 응원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응원 소리로 보아 같은 하오문인 것처럼 보였다.

    "무림의 가장 밑바닥인 하오문을 감히 누가 대적할 소냐? 할망구는 자진하라!"

    "노망든 할망구 따위는 결코 두렵지 않다. 손곤, 욕의 제왕은 바로 너다!"

    상호 응원 소리가 잦아들고, 심판관이 시작을 알리자, 선공에 득을 얻은 손곤이 공격에 나섰다.

    "지랄 염병할 할망구야. 네년의 욕은 고작 음식점을 알리려고 하는 개수작이 아니더냐. 음식에선 곰팡이가 피고, 썩은 내가 진동하여 아무도 먹지 않으려 하니 그 더럽고 냄새나는 입으로 욕짓거리를 해대 돈을 벌어보겠다는 수작 말이다. 이 씨바야!"

    호통을 치듯 퍼져 나간 욕설은 민고랑의 자존심을 겨냥한 것이 틀림없었다. 즉, 욕하는 할망구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손님을 끄는 유치한 노파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그는 마지막을 씨바야, 로 장식하면서 멋지게 선방을 날렸다.

    그러나 민고랑은 그 정도에 감정을 상할 만큼 녹록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늙은 생강답게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씹새끼, 그래 배가 고팠던 게로구나. 조까튼 새꺄, 이리와서 이 할미의 젖이나 먹으렴. 잡종 같은 놈이 얼마나 그래 먹고 싶었누."

    그러면서 민고랑은 웃통을 들어올려 축 처지고 마른 젖통을 손곤에게 내밀었다.

    손곤은 순간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를 두 눈에 화급히 보냈지만 그의 눈이 한발 먼저 젖을 보고 말았다.

    "커억!"

    민고랑의 젖은 축 늘어지고 쭈글쭈글 할 뿐 아니라 이날을 위해 미리 준비했는지 거의 일년 넘게 씻지 않은 듯 거무스름한 때가 거대한 기미마냥 끼어 있어 손곤은 아침에 먹었던 만둣국은 물론이고 어젯밤 먹고 마신 화려한 음식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구멍을 타고 입에까지 차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푸웁!"

    그는 황급히 손을 들어 입을 막았으나 손가락 사이로 누런 국물들이 삐져 나오고 연신 뱃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탓에 더이상 그곳에 서 있지 못하고 무대 뒤편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러나 너무 당황한 나머지 달려가던 발이 꼬여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끝내 입안에 토사물들이 세상 구경을 위해 일제히 튀어나오고 말았다.

    "으아아악~"

    비참한 외침과 함께 손곤은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다 자신이 뱉어낸 토사물에 발이 미끄러져 뒹굴더니 간신히 무대 뒷편으로 빠져 나간 뒤 아예 그 길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러한 몰골을 보여놓고 꿋꿋이 버틸 만한 인간은 못 되었던 것이다.

    손곤이 처참한 몰골로 무너져 내리자, 심판관은 멍한 상태로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민고랑의 승리를 선언했다.

    "이번 대전의 승자는 욕쟁이 할매 민고랑입니… 푸웁~"

    심판관은 민고랑을 선언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민고랑의 가슴에 두게 되었는데 그 또한 결국 참지 못하고 아침 식사는 물론이고 지난밤 야식으로 먹었던 모든 것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해 버리고 말았다. 8강에 오른 손곤이 버티지 못했거늘 심판관인 그가 버텨내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재앙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앞 좌석에서 지켜보던 있던 관중들 또한 민고랑이 젖을 쥔 채로 전면을 보고 환호에 답례하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고 여기저기서 웩, 웩 하는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행히 민고랑이 다시 옷을 내린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 만약 계속 웃옷을 들고 있었다면 이날의 대회장은 오물들로 질퍽거리고 말았을 것이다.

    민고랑의 비장의 무기, '축 처진 젖가슴 드러내기'는 승리와 함께 관중석을 싸늘하게 만드는 이중 결과를 가져왔다.

    모두가 차마 입도 뻥긋 못하고 경악스럽게 민고랑을 바라볼 때 민고랑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들면서 무대 뒤로 사라졌다.

    "잡것들아, 이건 시작에 불과해. 아직 놀라긴 이르다구. 케케케케."

    엽기적인 공격으로 인해 무대 위는 물론이고 관중석에 쏟아진 오염 물질을 제거하느라 두 번째 대전은 잠시 지체되었다.

    대회장이 정리된 후, 다음 대전자인 보요화와 문철귀가 심판관의 소갯말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인상에서부터 일단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보요화는 제법 빼어난 용모였으나 오랜 부녀회장 이력으로 인해 앙칼지고 표독스러움이 얼굴 전반에 흘렀고, 문철귀 노인은 주름진 피부에 중풍환자들의 특유의 어눌함에 불만이 뒤섞인 인상이었다. 외모만으로 따진다면 보요화 쪽이 더 승산이 있을 법했다.

    욕쟁이들은 8강에 오르는 동안 대부분 자신의 특색을 보여준 터라 관중들은 이제까지의 경기 내용을 토대로 서로 이 대결의 승패를 예측하느라 바빴다.

    "누가 이길 것 같아?"

    "글쎄, 보요화도 대단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늙은 생강이 더 맵지 않을까?"

    "난 보요화 쪽에 걸겠네."

    "그래? 까닭은?"

    "생각해 보게. 이제껏 문철귀 노인이 보인 실력이란 게 고작 한탄과 연민이 아니었나? 물론 이제까지는 그게 먹혔지. 하지만 저기 보요화의 얼굴을 보게. 어디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나올 것 같은가 말이네."

    "음, 듣고보니 그런 면이 없지 않군. 저 늙다리는 자신이 중풍환자이니까 불쌍한 내가 올라가야 한다고 사정하는 꼴이었으니까."

    "그렇지. 비록 그 말이 심금을 울리긴 해도 분명 한계가 있다는 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으로 보요화가 이길 것이며, 또 결국에 가서는 결승에 오르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판관이 시작을 알리자, 첫 공격권을 가진 보요화가 거칠게 밀어붙였다.

    "야, 이 병신새끼야. 몸이 고달프면 집에서 잠이나 퍼잘 것이지, 뭐한다고 밖에 나와서 찌질거리냐? 늙었다고 유세하는 거냐? 장애가 자랑이야? 나 이렇게 병신되었으니 나 좀 봐주쇼? 정말 이러고 싶은 거냐! 쒸발아, 인생 그렇게 우울하게 살지 마라. 늙어서 뭔 지랄이냐 잡새끼야!"

    그녀의 공격은 이제껏 문철귀가 상대했던 그 어떤 이보다 잔인하고 강렬했다. 8강에 이르기까지 문철귀를 상대했던 이들은 욕을 하면서도 직접적으로 그의 장애를 문제 삼진 않았건만 보요화는 고의성이 다분하게도 장애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먼저의 대결자들은 사실 그렇게 하지 말자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대회 규정상 금지된 항목 또한 전혀 없었으나 터럭만큼의 인간적인 양심에 따라 최소한 예의를 지킨 것이다.

    한데 보요화는 안하무인격으로 '병신'을 들먹이며 장애를 정면으로 파고든 것이니 관중들은 일순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냐?"

    "좀 심하긴 해도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것이지."

    "역시 8강은 다르군. 봐주기는 여기까지라는 건가?"

    "늙다리가 오래 버티긴 힘들겠어."

    대다수의 관중들은 심정적으로 문철귀 노인을 염려했지만 그래도 승부란 강자가 우뚝 서야 하는 것이란 생각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문철귀 노인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는 모르나 상당히 힘든 승부가 될 것이 분명했다.

    역시 우려하던 일은 현실로 나타났다.

    "잡년!"

    문철귀는 몸을 떨지는 않았으나 그저 짧게 한마디를 뱉어내는 것을 끝으로 욕을 마쳤다. 이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만큼 커다란 심적 타격을 입었는지 미루어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이런 모습에 보요화는 속으로 고소를 금치 못했다.

    '흥, 작전이 들어맞았군.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고 있다. 비록 예상한 대로 피를 토하지는 않았으나 그것도 시간 문제이지.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끝내주는 것이 그나마 노인을 위하는 길이겠지.'

    보요화가 더욱 자신감이 충만한 건 자신의 욕설 속에는 상대의 피를 끓게 하는 기세가 넘쳐나 어지간한 자는 피를 토해낼 수 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제껏 상대했던 자들이 모두 통증을 호소하고 선혈을 흘리며 무릎을 꿇지 않았던가. 이것은 내공의 힘이 아니라 순수하게 욕설의 기세때문이었기에 모두를 놀라게 했던 점이기도 했다.

    이어지는 보요화의 공격은 더욱 거칠고 강해졌다. 병신이라는 단어와 장애자 새끼라는 말이 계속해서 강조되어 지고, 조롱과 비웃음 섞인 욕설이 퍼부어졌다. 그때마다 문철귀는 완벽히 기세에 눌린 듯 오로지 '잡년'이라는 말만 짧게 내뱉을 뿐이어서 거의 공격의 의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보요화의 집요하기 이를 데 없는 공격이 약 이십여 회를 넘어서는 가운데 문철귀는 여전히 잡년으로 버텨냈다. 그러나 잡년이라는 말조차 점점 목소리의 힘이 작아졌기에 보요화는 물론이고 모든 이들 또한 문철귀의 패배가 눈앞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변화가 찾아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보요화가 승리를 확신하고 지켜보는 모든 이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이 4강에 합류할 이로 보요화를 꼽고 있을 바로 그때, 문철귀의 벼락같은 호통이 대회장을 뒤흔든 것이다.

    "네 이년! 노부의 말을 잘 새겨들어라. 모름지기 사람이란 나 자신이 귀한 만큼 다른 사람도 귀한 줄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네 몸이 건강하다고 하여 네가 일평생 아프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불치병에 걸려 신음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그럼에도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장애를 문제 삼고, 병신을 들먹이니 네가 어찌 부녀회장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내일 일어날 일을 알 수 없고, 당장 한 시진 뒤를 알 수 없거늘 네 어찌 교만한 마음으로 연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이냐! 이 모든 교만을 하늘이 보고 너를 벌한다면 너는 당장에 나보다 더 처참한 지경에 내몰릴 수도 있는 것이니 지금부터라도 교만함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편견없이 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문노인의 이 말은 워낙 돌발적인 까닭에 대회장은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감돌았다.

    정면에 서 있던 보요화와 심판장, 그리고 모든 관중들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에 휩싸여 멍해지고 말았다. 이것은 문철귀가 이제껏 '잡년'으로 일관하였기에 이번에도 고작 잡년이라는 말을 힘없이 뱉어낼 줄 알았다가 호통을 듣게 되니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고 만 것이었다.

    게다가 문 노인의 말은 욕이 아니라 진정 가슴을 울리는 교훈적인 말인 까닭에 예상밖의 충격이 머리와 몸을 강타했다.

    잠시 후, 보요화의 두 눈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더니 끝내 두 줄기 눈물을 쏟아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는 게 아닌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관중들도 이 광경에 순간 가슴 뭉클한 감동에 빠져 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더불어 자신들의 마음을 돌아보고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욕설대회라지만 자신들도 병든 몸을 지닌 자가 욕을 들을 때 은근히 즐기고 있지 않았던가. 내 몸은 건강하니까, 아픈 것은 다른 사람의 문제일 뿐이니까 하면서.

    대회장은 일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뒤덮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본 심판관은 마냥 감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급히 본부석 쪽으로 달려가 문철귀의 일격을 과연 욕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닌지를 의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교훈으로서 욕을 물리친 것은 능히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지금은 욕설대회이니만큼 정당성 여부를 판가름해야만 했다.

    심판관은 석학들과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고는 다시 무대로 돌아와 망설이지 않고 문철귀의 승리를 선언했다. 전반적으로 교훈적이었으나 초반에 '이년아'라고 외친 것은 분명히 욕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 탓이었다.

    곧바로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를 보냈고, 문철귀는 감격에 겨운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그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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