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70화 (70/125)

# 70

그것은 주최 측인 은하전장 사람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는데 이번 16강전에 든 이들 가운데 서문기와 화무화만이 무공을 익힌 자들이고, 그 실력 또한 절정에 이른 자들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옛 속담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했던가.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결투는 어이없게도 가장 짜증나는 대결의 양상으로 치달아갔다. 기대와 달리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서로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욕을 퍼부으면서 장장 세 시진(약 6시간)이 넘는 시점까지 결판을 내지 못한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던 관중들도 결국 한계를 넘어 급기야 소리를 지르고, 들고 있던 손수건이나 호리병을 던지는 자, 바닥에 돌을 집어 던지는 자, 심지어 의자까지 내던지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욕을 하고 자빠져 있을 셈이냐?”

“느그들 지금 사귀냐?”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백날 천날 이야기를 하든가!”

짜증을 내면서 관객 절반 가량이 빠져나갔다. 그래도 나머지 절반은 이제까지 버텨온 것이 아까워서 자리를 못 뜨겠는지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는 데도 이를 악물고 자리를 지켰다.

대회 진행 보조 요원들이 횃불을 적재 적소에 밝혀두고, 남은 관객들에게 앉은 자리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거기에서 다시 한 시진(2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은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로 여전히 욕설 공방을 이어가자, 그때까지 남아 있던 이들조차 투덜거리면서 모조리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아주 지긋지긋한 년놈들일세.”

“저것들 저러다 날 새겠는걸.”

“에잇, 모르겠어. 내가 다 피곤해져서 어서 가서 잠이나 자야겠어.”

그렇게 관중들이 빠져나가자 대회장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로지 타오르는 횃불과 대회 진행 요원 몇몇, 그리고 심판관만이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심판관이며 진행 요원들 또한 하품을 늘어놓으면서 따분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서문기와 화무화는 너무나도 성실히 욕을 주고 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새벽의 찬이슬이 머리와 양어깨에 내리앉고, 급기야 아침 해가 솟았다. 햇살은 눈부시게 대지를 비추며 맑은 기운을 온 천하에 뿌려댔으나 서문기와 화무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욕설 공방에 여념이 없었다.

오전이 되면서는 관중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저것들 여태까지 저러고 있었던 거야?”

“미치겠군. 허허허…….”

“힘도 좋지. 서서 반 시진만 떠들어도 입이 마르고 다리가 아플 텐 데도 아주 멀쩡해 보이는구먼.”

관중들이 하나둘 자리에 들어서 정오가 되기 전에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많아졌지만, 서문기와 화무화는 거의 무아지경에 이른 듯 욕을 뱉어낼 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 어느새 다시 해가 저물어가자, 사람들은 어제완 달리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단 일 합으로 상대를 거꾸러 뜨리는 능력도 대단한 것이지만, 속을 갉아대고 마음을 뒤집는 욕을 듣고도 아무 흔들림이 없이 맞선다는 것도 이미 보통 사람은 아니란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말이 많은 자 중에 살찐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듯 말은 은연중에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 일인데도 두 사람의 목소리가 처음 욕할 때와 다름이 없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둠이 찾아오고, 다시 해가 뜨고, 또다시 어둠이 찾아오고 다시 해가 떴다. 그러길 장장 칠 일에 걸친 엄청난 공방이 이어졌고, 그때쯤되자 두 사람은 다리를 후들대고, 목소리는 다 쉬어버렸다. 한마디의 욕을 하기 위해서 만 근의 무게를 들어올리는 듯 힘겨워하는 가운데 욕은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이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것도 마시거나 먹지 않았으며, 용변을 보러 이동하지도 않았고, 씻지도 않았다. 이것은 두 사람 모두 무공이 고강한 자들로서 생리적인 현상을 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강한 내공으로 먹고 마시지 않고도 견뎌낸 것이었다.

그러나 칠주야를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욕을 하는 중에 두 사람 모두 한계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관중들 중에는 아예 집에도 가지 않고 같이 밤을 새가면서 이 대결을 지켜보는 다수의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이들은 누가 승리할 것인지와 더불어 도대체 언제까지 이 피말리는 대결이 진행될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오래 끌면 끌수록 남자 쪽이 불리하지.”

“아무렴, 저토록 여자에게 욕을 퍼부었으니 이미 독을 품어버린 것이 아니겠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그땐 어떤 것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지.”

“그나저나 이런 모양새면 한 달을 넘길 수도 있겠는걸.”

“에이 설마……. 저 다리 후들거리는 것 안 보이나?”

“모르지, 몰라. 이건 정말 알 수가 없어.”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가던 대결은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칠 일 째의 석양 무렵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패배를 시인한 이는 면사녀 화무화였다.

뭇 사람들은 솔직히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독하기로 따지자면 마땅히 여자가 남자보다 수 배는 더 독하지 않던가. 옛부터 전해 오길 '남칠여구'라 하지 않던가. 즉, 이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남자는 칠 일을 버티고, 여자는 구 일을 버틸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화무화가 포기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엉덩방아를 찧듯 주저앉으면서 화무화가 선언한 기권의 말이 이것이었다.

“씨발 놈아, 내가 졌다.”

그제야 서문기도 긴장을 풀고 털썩 주저앉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잡년, 너도 아주 어지간하구나.”

그녀는 면사 너머로 한순간 쏘아보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무대 뒤로 걸음을 옮겼다. 긴 시간 그녀를 응원했던 이들은 자신의 영웅이 떠나는 쓸쓸한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정녕 이대로 가시는 겁니까?”

“왜 포기하신 겁니까? 당신은 아직 힘이 남지 않았나요?”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우상입니다.”

“이제 가면 언제 볼지 모르는데 얼굴을 보여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함성 같은 성원에 걸음을 옮기던 화무화가 멈춰 돌아섰다.

그녀가 쭈욱 둘러보더니 손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시발 새끼들아! 목욕 좀 하자. 우승도 좋지만 나 지금 아주 꿉꿉해서 뒤지겠거든. 배고픈 건 솔직히 참을 수 있겠더라. 근데 말이야. 복면을 뒤집어 쓴 새끼 몸에서 어찌나 냄새가 나는지 견딜 수가 있어야지. 생각해 보니 내 몸에서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아주 미치겠는 거야. 개새끼들, 니들이 내 심정을 알기나 하겠냐? 아가리 닥쳐라들. 다 패버리기 전에.”

그녀의 말투는 박력이 철철 넘쳐 결코 패한 자 같지 않았다. 그 모습에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화무화 최고!”

“면사녀가 제일이다!”

“화무화 그대는 나의 빛이요, 우리들의 광명이오.”

도리어 이긴 서문기 쪽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형국이라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서문기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며 조용히 무대에서 떠나갔다.

***

13. 특별한 만찬회

이렇게 초절정의 기량을 갖춘 팔 인의 욕쟁이가 선별되었고, 주최측에서는 더욱 활기찬 대결을 위해 이틀을 쉰 후 8강전을 속개한다고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8강에 합류한 복면인 서문기가 체력을 회복할 수 있게끔 배려한 것이었다.

은하전장에서는 8인의 욕쟁이들을 위해 편안히 쉴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해 주었으며, 또한 원하는 것이나 기타 요구 사항을 대부분 수용하여 안정을 취하도록 조치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가 되었을 때, 장주 은천협은 욕쟁이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이제 내일로 다가온 8강전에서 멋진 대결을 펼쳐 줄 것을 기원하고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호화롭기 짝이 없는 귀빈실의 맨 위쪽에 은천협이 자리하고, 긴 탁자의 좌우 측으로 여덟 명의 욕쟁이가 나이 순서대로 앉았다.

이미 식탁 위에는 오만 가지 음식이 가득한 데도 시녀들은 부지런히 왕래하면서 과일과 해물들을 내려놓았는데 보통 사람들은 한번도 구경조차 못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덟 명의 욕쟁이는 본시 개성이 뚜렷하여 이 화려한 광경 앞에서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은천협과 가장 가까이에 앉은 이는 중풍노인이었는데 그는 천성적으로 욕쟁이가 아니고 병든 후로 세상 모든 것에 불평하며 욕을 했던 자라 일단 푸짐한 식단을 보자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 앉은 욕쟁이 할매 민고랑은 중풍노인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음식점을 경영하고 또 직접 음식을 만들기도 하였던 터라 눈앞에 놓인 음식들이 성에 안차는지 연신 소리를 죽여가면서 '시발', '염병'을 중얼거렸다.

그 다음 자리에는 자충 대사와 하오문 출신 손곤이 앉았는데 두 사람은 연신 침을 삼켜가면서 어서 빨리 '자, 어서 듭시다'라는 말이 떨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었다.

욕쟁이들 중에서 가장 심난한 상태를 보인 건 최연소 욕쟁이 송추였다.

그는 주인의 '듭시다'란 말이 전혀 들린 적도 없었건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을 움직여 가면서 우적우적 먹어치우고 있었던 것이다.

송추가 동작을 멈춘 것은 총관이 급히 달려와 자제를 요청한 뒤였는데 이미 그 앞쪽은 거의 초토화가 된 터라 시녀들은 급히 음식을 새로 내놓아야만 했다.

물론 송추가 총관의 말을 순순히 따른 것은 아니었다. 명색이 천하의 여덟 욕쟁이에 속한 자로서 바람처럼 욕을 퍼부어준 것이다.

"흐흐, 알았어, 새끼야. 아깝냐? 아까워? 이거 대체 얼마냐? 니 봉급에서 까지는 거냐? 시발새끼, 아주 쫀쫀하긴."

총관은 순간 열이 확 끌어올라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그때 마침 은천협이 헛기침을 하며 제지하자,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물러섰다. 그는 이제껏 송추가 여기까지 온 것은 운이 좋았다라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당하고보니 역시 장주가 눈여겨본 이유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욕쟁이들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들은 부녀회장 보요화와 복면인 서문기였다. 두 사람은 마치 귀한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진중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마치 그 모습만으로는 욕설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을 사람들처럼 보였다.

또한 이들 중에서 가장 지저분한 행태를 보인 존재도 있었는데 그는 다름아닌 개장수 만추였다. 중간 위치에 앉은 그는 음식을 보자마자 침을 질질거리더니, 급기야 송추가 가차없이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고는 침을 아예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역시 개장수다운 면모라 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은 이제껏 개와 함께해 온 나날이었다. 그는 물론 개를 통치하는 자며, 기분에 따라 패기도 하고 먹어 치우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폭군이었다. 그러나 옛말에 이르길 '욕하면서 배운다' 하지 않던가.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의 특성을 습득하게 되었고, 지금 군침을 흘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개였다.

이처럼 다양한 군상들을 지켜보던 은천협은 음식 준비가 다 된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향해 말했다.

"본인은 오늘 이날을 잊지 못할 것 같군요. 저는 이제껏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권력자, 재산가, 시인, 문필가, 저마다 세상에서 내노라하는 인물들이었지요. 그들은 여러가지 능력으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승부를 결정짓게 됩니다. 과연 누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까 저는 몹시 궁금해집니다. 여러분도 궁금하십니까? 혹시 떨리십니까?"

여기에서 잠시 말이 중단되자 팔 인의 욕쟁이가 저마다 호응을 보내주었다.

"떨리긴, 시발새뀌!"

"씨바, 이제 그만 하고 밥 좀 먹지."

"음식이 앞에 있는데 너같으면 말이 귀에 들어오겠냐? 시파!"

"염~ 병을 해라."

"어째 오기 싫더라니. 호로새끼."

"……."

"말도 아주 뒤지게 많구나. 시팔."

"새끼, 진짜 궁금한가 보네. 흐흐흐."

오직 한사람 서문기를 제외하고 욕을 퍼부어준 이들은 다음에 이어질 은천협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은천협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원래 계속 이어갈 말이 많았지만 이미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그는 기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말을 맺어버렸다.

"제 말은 이상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얼핏 이 상황은 욕을 먹은 은천협이 더 말 할 맛이 안나서 주저앉은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욕쟁이들의 욕의 위력이 여실히 발휘된 상황이었다. 그저 툭 내뱉은 욕이었으나 그들은 이미 욕에 있어서는 노화순청, 오기조원의 경지에 들어선 자들이었기에 은천협은 가공할 압박에 짓눌려 더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은천협으로부터 식사 시작의 말이 떨어진 까닭에 절정의 욕쟁이들은 손과 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식탁 위의 음식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친 입만큼이나 먹는 것도 개걸스럽기 짝이 없어, 천지사방으로 음식이 튀고, 먼저 먹으려고 다투는 통에 귀빈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그중 오직 한 사람 욕쟁이 할매 민고랑만은 음식에 손 하나 대지 않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은천협은 바로 앞에 민고랑이 앉아 있었기에 따뜻한 말로 식사를 권했다.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소이까?"

은천협은 아무래도 음식이 성에 안 차는 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듣기로 욕쟁이 할매는 객점을 운영하면서 음식도 직접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민고랑이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들어 은천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새끼, 너 나한테 관심있구나. 사귀고 잡냐? 키키킥, 새끼, 사람 볼 줄은 아네. 그래도 안 돼 잡놈아. 난 연하는 싫어."

그렇게 말하고는 슬며시 얼굴을 붉히는 민고랑이었다.

'허거걱!'

은천협은 한 달 전에 먹었던 것까지 모조리 기어 나올 것만 같이 쏠려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여기 더 앉아 있다가는 큰 실수를 할 것만 같아 바깥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 마시고 올 참이었다.

그가 걸음을 막 열 걸음째를 옮겼을까.

문득 의자가 밀쳐지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민고랑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민고랑은 은천협과 눈이 마주치자 귓속말을 하듯 속삭였다. 하지만 그것은 속삭이는 시늉만 비슷했을 뿐 소리는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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