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69화 (69/125)

# 69

즉시 주최 측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 대결의 적합성을 검토했다. 과연 이 승부가 욕으로 결정된 것인지, 뇌물로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앞으로 공짜 술을 마시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희희낙락하고 있던 진요에게 민고랑이 차갑게 쏘아붙였기 때문이다.

“미친 쉐끼, 저렇게 순진하니까 폐인이 되었지.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 개쉑야.”

그 말에 진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덜덜거리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농담이지? 할매, 그냥 농담해 본 거지? 더 재밌으라고 그러는 거지?”

“쥐새끼 같은 놈, 나는 네놈과 같이 허접한 새끼하고 농담할 만치 한가롭지 못하다. 술주정뱅이 주제에 나 같은 천상의 미녀와 마주하고 대결을 펼쳤다는 것만으로 남은 평생 감사하고 살아라, 이 씨뱅아.”

결국 심판관은 지체없이 민고랑의 승리를 선언했고, 관중들은 환호했다. 이 대회는 욕설대회다. 욕이란 본시 참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온갖 추잡하고 억지스럽고, 혐오스러우며, 과장된 거짓을 퍼붓는 것이니만큼 공짜 술을 마음껏 주겠다는 말도 조롱성 욕으로서 민고랑의 수법은 정당한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주정뱅이 진요는 공짜 술과 승리가 날아가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구석탱이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머리를 처박았다. 그쪽은 그늘이 진 곳인데다 그의 지금 꼬라지가 형편없었기에 그 자리는 그야말로 음울한 기운이 가득 감도는 곳이 되고 말았다.

곧바로 속개된 개장수 만추와 약초꾼 도평의 두 번째 대결 또한 싱거움 자체였다. 만추는 이제껏 '개새끼'라는 욕으로 모든 상대를 고꾸러 뜨렸는데,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

“개새끼야, 물어라.”

언제 준비했는지 품에서 뼈다귀 하나를 불쑥 던지며 욕을 던졌다. 개새끼야, 물어라, 라니. 적을 무력화시키기보다는 적의 전투력을 더욱 상승시키는 역효과를 낼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뒤의 반응은 모두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약초꾼 도평이 당장 개가 된 듯 몸을 날려 뼈다귀를 움켜쥐고 한쪽 끝을 입 속으로 처넣었던 것이다.

“헉!”

“뭐지?”

“저 사람 왜 저래?”

“미친다, 미쳐.”

관중들은 저마다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건 심판관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선 채 도평을 경악스럽게 바라볼 따름이었다. 도평은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보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문득 자신의 현재 모습을 깨달았다.

“아악!”

그는 구린내가 진동하는 뼈다귀를 입에서 빼내 팽개친 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가 뱉어낸 말은 다시금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요? 내가 왜 뼈다귀를 물고 있는 것이오?”

그렇다. 그는 전혀 이 상황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사실 개장수 만추의 위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만추는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개장수로서 개에 관해서는 이미 절대적인 경지에 오른 자였다. 그렇기에 지금 그의 수준으로는 개뿐 아니라 다른 덩치 큰 동물은 물론이고,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심령이 강하거나 심지가 견고하고 깊은 자라면 만추의 기세 속에서도 유유자적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자라면 도평과 같이 순간적으로 자신이 개가 된 것으로 착각하여 뼈다귀를 입에 넣고 빠는 것도 서슴치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사술이나 술법이 아니었으며, 오직 오랜 기간 깊이 있게 개를 다룬 까닭에 얻게 된 특별한 능력이랄 수 있었다.

심판관이 만추의 승리를 선언하자 약초꾼 도평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씨파, 이건 인정 못해. 이럴 순 없어. 저놈이 요법을 부린 것이잖아. 뭐야, 이거 놔. 이것 놓지 못해! 이 새끼들, 너희들 다 한 패거리지? 짜고 이러는 거 내가 다 알어. 야~”

도평은 몸부림을 쳐봤지만 이미 대회 진행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무사들이 나와 붙드는 바람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관중들 중에는 도평과 같은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것은 비단 개장수 만추뿐만이 아니라 열 명 남짓한 정도가 그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의문을 품은 자와 해소해 주는 자의 대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정말 저 사람 말대로 어떤 사술이 부려진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한 인간이 뼈다귀를 입에 물 수 있겠어?”

“에끼, 이 사람아. 여태 보고도 모르겠나? 개장수가 대단한 것도 대단한 것이지만, 사실은 저 도평이란 자가 보잘것없는 게지. 저자는 틀림없이 고장에서는 욕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이 대회에서만큼은 평범한 사람이란 뜻이 아니겠나. 도평은 욕쟁이 할매나, 부녀회장 보요화와 상대했어도 틀림없이 저런 소리나 해댔을 거라는 말일세.”

“흠, 듣고보니 이해가 가는군. 그렇다면 진짜 대결다운 대결은 다음 회전에서부터겠구먼.”

“그렇지. 아마 대단할걸세.”

세 번째 대전자로 나선 이들은 최연소 욕쟁이 송추와 어부 유항소였다.

송추의 나이는 열다섯이고, 유항소는 오십삼 세이니 둘의 나이는 38년이라는 큰 차이를 보였다.

거의 아버지뻘에 해당하는 상대를 향해 욕설로 승부를 겨뤄야 하는 송추였지만, 얼굴 어디에도 긴장하는 빛은 찾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외모 또한 나이만큼이나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송추는 연신 실실거리며 웃는 것이 짓궂은 개구쟁이 같았고, 유항소는 어부답게 얼굴이 새까맣고 우락부락했다.

겉모습의 험악함만으로는 송추는 도무지 상대가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먼저 공격권을 가진 자는 유항소였다.

“어린 놈의 새끼가 얼마나 인생이 좆같으면 욕대회에 참가했단 말이냐, 이 호로새끼야. 어서 본좌 앞에 무릎을 꿇고 냉큼 사라지지 못하겠느냐.”

유항소는 마치 동네에서 아이들을 혼내기라도 하듯 송추를 꾸짖었다. 그는 송추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으며 자신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건 대부분의 관중들도 마찬가지여서 친한 사람들끼리 이번 대결에 대해 소곤거렸다.

“이번에도 빨리 끝나겠는걸.”

“어린 녀석이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그러게… 사실 여기까지 이른 것도 대단한 거지.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생강들 틈바구니에서 말이야.”

“대단하긴. 이제껏 만난 상대들이 허약했던 게지. 그러나 이번에는 운이 따르지 않은 것 같군. 크게 곤욕을 치르고 말겠어.”

어느 누구도 송추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은하전장의 주인 은협천만은 달랐다. 그는 지금 두 사람 중 하나에게 걸라고 한다면 송추 쪽에 자신의 전 재산을 걸 용의가 있었다.

'어떤 흔들림도 없다. 주눅이 들거나 기세가 꺽이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중에도 한 치의 쑥스러움도 없다. 유항소의 욕을 들었음에도 마치 봄바람이 지나간 듯 미소를 머금고 있지 않은가. 저 녀석은 타고났다.'

송추의 반격이 펼쳐졌다.

“야, 이 씨발놈아! 니 새끼 어릴 땐 기억 안 나지? 케케케케…….”

그러면서 배를 움켜쥐고 웃어버리는 송추였다.

순간 유항소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얼굴이 검게 그을린 탓에 그가 얼마나 당황하고 또 분노했는지는 노출되지 않았다.

관중들은 의외로 어린 송추가 잘 막아내면서 천연덕스럽게 욕하는 것을 보고 생각보다 재밌어질 것 같아 눈을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후후, 저 녀석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싸가지없는걸.”

“그러게. 설마하니 이렇게 가볍게 받아치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말이야.”

“잘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래 버티진 못할걸.”

유항소는 새파랗게 어린 녀석과 욕을 오랫동안 주고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최대한 빨리 이 대결을 마무리 짓고자 곧바로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으하하하, 개미 새끼만한 놈이 아주 겁을 상실했구나. 확 그냥 눈알을 뽑아서 먹물은 쪽 빨아먹고, 나머지는 깨물어 터뜨려 먹고, 항문에 손을 처넣어 창자를 꺼낸 다음에 줄넘기 백 번을 뛰고 다시 이단 뛰기로 이백 번을 뛴 후, 내장탕을 끓여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야. 어디서 감히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게냐.”

이번 유항소의 작전은 '두려움 가득'이었다. 그래서 험악한 인상과 함께 신체 이탈적인 욕을 퍼부어댄 것이다. 그의 욕으로서의 독문 무공이 바로 신체 이탈 욕이었다. 그는 신체를 거론하는 욕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터였다.

그의 이러한 의도는 대단히 놀라워 뒤쪽에 있던 심판관의 얼굴이 핼쓱해졌고, 관중들 또한 한기를 느끼며 자신의 눈과 항문, 그리고 배를 움켜쥐며 식은땀을 흘리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두려워해야 할 송추는 그 반응이 사뭇 남달랐다.

“훗!”

손을 얼른 입에 가져다 대면서 웃은 송추는 눈동자만을 올려 유항소를 바라보다가 점점 웃음의 강도가 더해졌다.

“키키키. 크크큭, 하하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웃던 송추는 느닷없이 한마디를 던졌다.

“야 새끼야, 재밌냐?”

그 말에 순간 유항소는 머리가 획 돌아버려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내뻗었다.

“죽여 버리고 말겠다.”

그러나 그의 몸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였고, 주먹을 막 뻗으려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발 아래로 작은 콩알 하나가 떼구르르 굴러갔다. 이것은 지켜보고 있던 은하전장의 고수가 탄지신통의 수법으로 콩알을 날려 유항소의 혈도를 제압한 것이었다.

혹여 욕을 듣고 발작할 시 손을 쓰도록 고수들이 무대의 사방에 배치된 터였다. 그것으로 결국 송추의 승리가 확정되었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송추는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환호에 답례하면서 욕쟁이 답게 한마디를 내갈겼다.

“새끼들, 계속 뜨거운 성원 부탁한다.”

그 말에 삽시간에 환호성이 잦아들고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이 난무했다.

“이 호로 새끼야. 어디다 대고 욕설이냐? 뒤질래?”

“저 새끼 완전히 미친놈 아니야.”

“야 임마, 너 일루와. 나랑 한판 붙자.”

송추는 퇴장하는 중에 끝없이 이어지는 욕설을 들으면서 웃음을 띠고 기쁜 듯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너희들도 욕 잘하는구나, 개쉑들아!”

그 광경을 바라보는 매서운 한 쌍의 눈매가 있었으니 그건 다름아닌 은천협이었다.

'지금까지는 내 직관에 따라 저 아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구나. 저건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그리고 즐기고 있는 데서 나오는 힘이다.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들 어렵고 힘들게 노력을 기울이지만, 저 녀석은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저 즐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성취가 아니던가.'

그는 인간의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즐길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것은 그를 어릴 적부터 가르쳤던 노학사이신 스승 운천자의 가르침이었다.

부녀회장 보요화와 건달 장소판의 대결은 모두의 예상대로 보요화의 승리로 끝났다. 장소판은 나름대로 버티려고 노력했지만 기혼 여성들을 대표하는 보요화의 거센 욕설 앞에 끝내 내상을 입고 들것에 실려가는 꼬라지가 되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펼쳐진 중풍 환자 문철귀 노인과 삼십삼 세의 노처녀 종혼약의 대결은 그야말로 이날의 가장 흥미진진한 대결이라 할 수 있었다.

둘 다 삶에 비참함을 겪고 있는 자로서 주로 욕설의 대부분은 자기 비하와 서러움에 대한 토로였다.

문철귀 노인은 왜 자신만이 중풍에 걸려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야 하는 지를 욕으로 풀어냈고, 종혼약은 왜 자신은 뛰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남자가 없는지, 결혼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애타는 마음을 욕으로 쏟아냈다.

물론 종혼약의 경우 사실 '빼어난 미모'와는 무관했으나 그녀는 매번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외모라는 말을 꼭 욕설 중간중간에 집어넣는 집요함을 과시했다.

두 사람은 내가 이렇게 불쌍하니 서로 상대에게 양보를 받아야겠다는 식으로 욕을 퍼붓고, 자신들이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왔는지, 그리하여 이 대회에서 승리하여서 남은 생애는 편안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두 사람의 사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애절해져 급기야 관중들 중 마음이 여린 자들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쳐야 했고, 심지어 꺼이꺼이 소리 높여 우는 자가 생겨날 정도였다.

그렇게 서로에게 욕을 퍼붓던 두 사람의 승부가 결정난 것은 거의 반 시진(1시간)이 지나서였다. 결국 그나마 몸이 성하고,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노처녀 종혼약이 눈물을 흘리면서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한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그래 늙다리야, 잘살아라. 그리고 꼭 우승해라, 내 몫까지. 알았냐, 이 염병할 놈아.”

오랫동안 욕을 퍼붓는다는 것은 많은 체력 소모를 가져오는 일이라 문철귀 노인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든 관중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자, 문 노인은 숨을 몰아쉬다 관중들에게 일갈했다.

“이 새끼들아, 끝까지 응원해 주어야 한다. 헉헉헉…….”

관중들도 기쁘게 화답했다.

“그래, 힘내시오, 영감탱이.”

“난 그대가 결국은 최고가 될 것이라고 믿소.”

“장애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이도록 합시다.”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문철귀가 무대를 벗어난 뒤로 계속해서 대전이 이어졌다.

하오문의 손곤과 낙양 거지패 두목 송장표의 격전은 송장표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온갖 추접스러운 욕을 동원하여 맞섰으나 하오문의 저력은 예상보다 막강하여, 결국 송장표는 손곤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다음으로 파계승 자충 대사는 박수무당 지란염의 온갖 지랄 염병을 호탕한 목소리로 물리쳐 8강에 합류했다.

이렇게 일곱 명이 확정되고, 16강전의 마지막 대결자로 복면인 서문기와 면사여인 화무화가 무대에 올랐다.

우연찮게도 한 사람은 복면을 쓰고, 또 한 사람은 면사를 쓴 까닭에 관중들은 모종의 신비스러움을 느끼면서 어쩌면 이번 16강전 중에서 가장 볼 만한 경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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