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그 외 특이한 인물은 없나?”
금량은 한 손으로는 수염을 매만지며 다른 한손으로는 서류를 뒤적이더니 한순간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이 더 있긴 합니다. 열다섯인 송추라는 거지입니다. 현재 본선에 오른 예순다섯 명 중 최연소자이기도 합니다. 두 차례의 예선을 가볍게 통과하긴 했으나 가공할 만한 기세를 보여주긴 못했습니다. 이 아이는 천애고아로 보육원에서 열세 살 때까지 지냈는데, 무슨 일인지 그 후 도망 나와서는 거지가 되어 떠돌다가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순간 은천협의 두 눈이 빛을 발했다.
그는 칠십을 향하고 있는 나이에 왜소한 체구를 지녔으나, 이 순간 그의 눈만큼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욕이란 본시 살아온 날들이 많고 인생의 단맛 쓴맛을 겪으면서 진화되어 가건만, 이제 고작 열다섯으로 예선 두 관문을 가볍게 통과했다는 것은 그리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음… 그 아이를 주목해 봐야겠군. 송추… 송추라…….”
***
12. 치열한 본선
예선전과 달리 본선에서는 큰 무대가 만들어졌다.
그건 마치 무술대회를 연상케 했는데, 관람석은 무대 앞 쪽으로 부채꼴 형태로 만들어져 시선이 무대에 집중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본선이 무술대회와 비슷해 보이는 건 비단 무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술대회가 일 대 일의 비무를 통해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것처럼 욕설대회 또한 욕으로 비무를 하여 승패를 결정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본선에 오른 숫자가 예순다섯 명이었기에 한 명은 부전승으로 오르는 내용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그 문제는 본선이 시작되기 전에 해결되었다.
윤망이라는 이름의 삼십대 후반의 참가자의 가족들이 일시에 들이닥쳐서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면서 윤망의 머리채를 끄집고 가버렸던 것이다.
가족들 중 윤망의 아내는 남편을 보자마자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고 이로 물어뜯으면서 광분했는데, 그 광경이 어찌나 살벌하던지 다른 참가자는 물론이고, 관람자들과 심지어 주최 측 경비 책임자들까지 모두들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입만 벌린 채 지켜볼 따름이었다.
한바탕 소동이 정리된 후 어쨌든 예순네 명으로 정확한 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고, 진행자의 안내를 따라 무대 왼편에서 서른두 명이 제비뽑기를 통해 상대를 정하였다.
대결의 규칙은 간단했다. 욕설 비무로서 한쪽에서 먼저 욕을 하고, 끝나면 다른 편에서 욕을 하는 식으로, 상대를 격동시키거나 기를 죽이면 승자로 결정되는 방식이었다.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이 길게 울려 퍼지고 오색찬란한 색종이들이 무대 위 하늘을 수놓자, 관람인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쉬파, 이겨라! 이긴 편이 우리 편이다!”
“개쉑들 잘해야 해!”
“화끈하게 한번 놀아보자!”
“오오~ 어서 시작해라, 시발넘들아!”
아무래도 욕설대회이다 보니 관중들 또한 환호성의 대부분이 욕이었다.
64강전의 대격돌!
숫자가 많은 까닭에 이날 승리자 서른두 명이 가려지게 된 때는 거의 해가 저물어갈 때쯤이었다.
이날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이들은 총관 금량이 장주 은천협에게 보고했던 욕쟁이들이었다.
다시 그중에서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선사한 이들은 '욕쟁이 할매' 민고랑과, '개장수' 문추, 그리고 '부녀회장' 보요화였다.
이 세 명은 모두들 첫 번째 공격에서 상대를 패퇴시켰는데, 민고랑의 경우는 한바탕의 장렬한 욕 세례를 퍼부어 상대를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리고 눈물을 쏟게 했다.
당시 민고랑의 욕설은 이것이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이 씹새끼야!”
분명 그녀는 욕을 내뱉은 것이었으나 그 어조는 자상한 친할머니의 내음으로 가득하였다. 도리어 자상함 속에 욕이 첨부되어 더욱더 강력한 따스함을 발휘한 탓에 상대는 순간 감정이 복받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은하전장의 석학들은 민고랑의 욕설을 분석하기를,
“밥은 먹고 다니냐? 란 말이 욕쟁이 할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면 그다지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나, 욕쟁이 할매는 아주 오랜 기간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어온 사람인지라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감성적인 언어와 더없이 가까운 사람에게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욕이 결합하여 가공할 만한 파괴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감동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심판관이 민고랑의 승리를 선언하자, 그녀는 엎드려 울고 있는 상대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씨발놈아, 마음껏 울어라. 개 같은 새끼야. 네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울으렴.”
보통의 경우라면 머리를 쳐들고 왜 욕하고 지랄이냐고 할 상황이었지만 상대는 더욱더 서럽게 울어댔고, 심지어 많은 관중들 또한 눈시울을 붉히면서 손수건을 바쁘게 움직여 댈 지경이 되었으니 진정 놀라운 욕의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으로 개장수 문추 또한 욕쟁이 할매에 상응하는 놀라움을 안겼는데, 그는 짧고도 강렬히 상대를 무너뜨리는 위세를 과시했다.
그의 상대는 이제껏 삼만여 마리의 소와 돼지를 죽였다는 백정 자붕이었다. 말이 좋아 삼만 마리이지 거의 십 년에 걸쳐 매일 열 마리씩 쉬지 않고 도살을 해야만 하는 숫자였으니, 그의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자붕에게 개장수 문추가 건넨 욕은 너무나도 간단한 것이었다.
“개새끼!”
이미 예선 2차 관문에서 고양이를 향해 '개새끼'라는 한마디로 고양이의 두 다리의 힘을 빼버린 그가 이제 본선 첫 회전에서도 개새끼를 들고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갸우뚱했고, 지정석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던 총관 금량과 여러 석학들도 이상하다는 듯 턱을 어루만졌다. 혹시 갑작스레 욕설대회에 흥미를 잃어 자포자기한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염려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정면에서 '개새끼'라는 욕을 들은 자붕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을 덜덜 떨면서 '저, 저는 자붕입니다. 개, 개가 아닙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백정 자붕이 저토록 두려워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지 못해 순간 장내는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묻는 사람에, 저거 혹시 서로 짜고 저러는 것은 아니냐고 콧방귀를 뀌는 사람 등 갑작스레 혼란스러워졌다.
심판관 또한 대결이 너무나 간단히 끝나자 비무 종료를 선언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일 지경이었다.
그때 이 혼란한 상황을 잠재운 것은 의외로 욕쟁이 할매 민고랑이었다.
그녀는 한 걸음 나서더니,
“미친 새끼들, 전혀 사태 파악을 못하고 있구먼. 저 백정 놈은 개새끼라는 말에 자신이 진짜 개가 되버릴 듯한 충격에 사로잡힌 것이여.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다. 씨바랄.”
앞서의 비무에서 경이로운 승리를 이룬 민고랑이었기에 그제서야 사람들은 감탄사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또 박수갈채를 보냈다.
“대단하다, 대단해.”
“정녕 저것이 바로 혼이 실린 욕이란 말이로군.”
“기가 막힐 노릇이군.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들에겐 평범하게 들렸을까?”
거기에 대한 해답을 들려준 것도 역시 민고랑이었다.
“미련한 새끼들, 욕의 촛점이 정확히 상대방만을 조준하여 주변에 어떤 파동도 일으키지 않게 한 것이 아니더냐. 너 이 새끼, 정말 심판관 맞아?”
그제야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사람들이 더욱더 놀라며 하나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백정이라면 어지간히 많은 피를 봐온 터라 담력이 대단할 텐데, 말 한마디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니 개장수 문추와 백정 자붕 사이에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수준 차이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그 다음으로 위세를 떨친 이는 부녀회장 부요화였다.
앞서 민고랑은 욕으로 상대를 감동시켰고, 개장수 문추는 두려움에 떨게 한 반면 부요화는 전혀 다른 수법으로 대회장을 경악에 빠뜨렸다.
그녀의 상대는 늘름한 체구에 근육이 잘 발달된 삼십대 초반의 무인인 홍군표였다. 그가 입고 온 상의는 몸에 착 달라붙는 것이어서 근육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났고, 얼굴 또한 호남형이라 대회장을 찾은 젊은 여인들은 흠모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비록 욕설대회에 나오긴 했어도 그가 뱉어낸 욕이라면 박력의 다른 표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심판관이 시작을 알렸고, 부녀회장 부요화가 선공을 퍼부었다.
“이 호로 상놈의 잡새끼야, 허우대는 멀쩡하다만 씨발, 걱정스럽기 짝이 없구나. 그게 근육이냐? 네놈의 고추도 근육질이냐? 사내새끼면 한번 까봐라. 씨바라. 쿄쿄쿄쿄쿄…….”
신랄하기 그지없는 욕설에 이어 기괴하기 짝이없는 웃음소리에 순간 홍군표의 몸이 흔들거렸다. 그 뿐 아니라 뒤쪽에 서 있던 심판관은 물론이고, 관중들 또한 귀가 찢어지는 듯해 모두 급히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이미 직접적인 표적이 된 홍군표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울컥, 하고 한 사발의 피를 토하고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즉시 응급대가 투입되어 그의 상세를 살피는 한편, 대회의 금지사항인 무공 사용 여부에 대한 조사가 들어갔다. 욕을 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강한 내력을 바탕으로 음공을 펼쳐 내상을 입힌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명백한 반칙이었다.
그러나 은하전장에 속한 절정의 고수들이 면밀히 보요화를 살폈으나 놀랍게도 보요화의 결백만이 더 크게 증명되었을 따름이다. 그녀는 일체 내공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심판관이 그러한 조사 결과를 관중들에게 발표하자, 좌중은 크게 웅성거렸다.
“어찌 무공도 없이 욕만으로 상대를 상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욕을 퍼부어 접시를 깨뜨릴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게로군.”
“이렇게 멀리 떨어진 나조차 아직까지 귀가 멍멍하고 가슴이 아릿한 통증이 남아 있는데 직접 당한 홍씨는 얼마나 위중할까.”
“이렇게 되면 보요화야말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겠는걸.”
그날 밤은 승리가 확정된 서른두 명 중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렸고, 벌써부터 세 사람 중 누가 우승할 것인지 서로 내기를 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장주 은천협 또한 은하전장의 여러 석학들과 함께 다과를 놓고 과연 누가 욕의 제왕으로 등극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 석학들은 나름의 분석을 곁들이긴 했지만, 역시 세 사람에게 거의 집중되다시피 했다. 대개의 결론은 백중지세이므로 누가 먼저 선공을 하느냐에 승패가 정해지지 않겠냐는 쪽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은천협은 물끄러미 석학들을 둘러보며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난 송추라는 어린 친구가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보네.”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지요?”
은천협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그냥 느낌이 그렇군. 후후, 일단은 두고 보세들.”
석학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그저 속으로 자신들이 송추라는 어린애의 어떤 모습을 놓쳤는지를 점검해 보았다.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보아도 최연소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은천협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은천협은 이제까지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직관력을 지닌 자임을 곁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일 32강전부터는 송추를 좀 더 세밀하게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32강에서도 크게 이변은 나타나지 않았다.
절대 강자로 구별된 욕쟁이 할매 민고랑과 개장수 만추, 부녀회장 보요화 등은 이번에도 역시 힘들이지 않고 상대를 제압했다.
특기할 만한 일이라면 보요화의 경우였는데, 심판관이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막 보요화가 욕을 쏟아내려고 할 때 그때까지 식은땀을 흘리던 상대가 기권을 선언한 것 정도였다.
이로써 보요화는 관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으며, 역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서의 면면을 과시했다.
여러 석학들은 이번 32강에서 송추를 면밀히 살피는 데 주력했다. 장주는 보았으나 자신들은 보지 못한 그 무엇을 찾으려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끝내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볼 때 송추는 아무리 봐도 그저 욕 잘하고 싸가지없는 어린 녀석에 불과했고, 어쩐지 약한 상대만을 만나는 것이 그저 대진운이 유난히 좋은 녀석이라는 생각만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다시 지나면서 열여섯 명의 욕쟁이가 정해졌다.
절정의 욕설 실력을 갖춘 열여섯 명이 남게 되었을 때, 장주 은천협은 은밀히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민고랑, 만추, 송추, 보요화, 손곤, 복면인, 문철귀, 자충대사, 이상 여덟 명이 16강에서 서로 격돌하는 일이 없도록 손을 쓰게.”
그로선 뛰어난 욕쟁이들끼리 먼저 맞서다 탈락하고, 그 빈자리로 보잘것없는 욕쟁이가 올라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로인해 16강 전의 대결은 아래와 같이 정해졌다.
<욕쟁이 할매 민고랑 대 술주정뱅이 진요>
<개장수 만추 대 약초꾼 도평>
<최연소 참가자 송추 대 어부 유항소>
<부녀회장 보요화 대 건달 장소판>
<중풍인 문철귀 대 삼십삼 세의 노처녀 종혼약>
<하오문의 손곤 대 낙양 거지패 두목 송장표>
<파계승 자충 대사 대 박수무당 지란염>
<복면인 서문기 대 면사여인 화무화>
32강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긴장감이 대회장을 휘감았다. 관중들은 숨을 죽인 채 결투를 기다렸고, 욕쟁이들 또한 욕을 중얼거리며 애써 여유로운 표정이었지만 언뜻언뜻 굳은 표정을 드러내 보여 은연중에 긴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막상 대전이 시작되자 역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절정의 욕쟁이들로 평가된 여덟 명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모두 승리를 쟁취했다. 그중 복면인 서문기와 면사녀 화무화의 대결만이 처절했을 뿐 나머지는 거의 일방적인 경기들이었다.
이번에도 최강의 대열은 민고랑과 만추, 보요화였고 그 다음 강자 대열에는 문철귀와 자충대사, 손곤. 그나마 강자 중에서 약한 대열에는 송추와 복면인 서문기 정도로 분류되었다.
첫 번째 대전자인 민고랑과 진요의 대결은 역시 우승 후보답게 민고랑이 승부를 압도한 한 판이었다.
특히 진요는 술주정뱅이였던터라 역학 관계상 근본적으로 민고랑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민고랑은 언제든지 자신이 운영하는 객점에 오면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을 훈훈한 욕설과 섞어가며 퍼붓자, 술주정뱅이 진요는 두말하지 않고 심판관을 향해 기권을 선언해 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