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이쯤 되자 심온 등은 더욱 호기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젠 나 몰라라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그들이 우르르 몰려갈 경우 쫓아내기는커녕 모조리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듣지 않아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지금 룰루랄라 이곳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덧 결말에 이르렀다.
“자, 이제 우리의 결의를 다졌으니 신께서 우리와 우리 마을을 보살펴 주실 것을 기원드리도록 하자.”
촌장의 말에 모두는 경건한 표정으로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최후의 결전을 앞둔 의기가 돋보이는 광경이었다.
잠시 후 예를 마친 마을 사람들이 올 때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나자, 심온은 턱을 괸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결전이 내일이랬지?”
현재는 정오가 되기 전이므로 잘하면 내일이 오기 전에 그 흉악한 놈을 정리정돈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좋았어. 가자. 진 당주를 중심으로 만추당의 절반은 동쪽에서부터, 나머지 절반은 나와 함께 서쪽에서부터 탐색한다. 해가 질 무렵에 만나도록 하고 그전에 놈을 발견하면 신호를 보내도록!”
“존명!”
진효가 충성되이 답하고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가자!”
그와 함께 진효의 모습이 일순 사라졌다.
심온은 그 모습을 보면서 이곳에 추적과 은신에 능한 만추당이 온 것은 매우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
4. 수줍어하는 괴물
당장에라도 찾아낼 것만 같던 수색 작업은 의외로 소득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결국 해가 저물어가면서 각기 동쪽과 서쪽에서 뒤져 가다 중앙에서 만난 무리는 서로 간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음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괜스레 허탈해진 심온이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으며 말했다.
“거참, 희한하네. 그놈의 자식이 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진효가 그 옆에 앉으면서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찾지 못할 정도면 솔직히 마을 사람들도 찾지 못할 텐데 그들은 어떻게 내쫓겠다고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진효의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었다.
만추당의 세밀한 수색을 벗어날 정도의 고수라면 어찌하여 그 근거지를 마을 사람들에게 들켰냐는 것이 첫 번째 의문이요, 또 그처럼 대단한 악당을 촌장 등이 무슨 힘으로 물리치겠다는 것인지가 두 번째 의문이었다.
“그럼 뭐 간단히 마을 촌장에게 물어보지요?”
담유설이 무슨 걱정이냔 식으로 내뱉는 말에 심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 방법이 있지만 그렇게 하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야. 마을 사람들은 무공의 무 자로 모르니까 괜히 끌어들이면 우리도 피곤해지고, 괜히 애꿎은 사람들만 피해를 당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고 원래 그런 흉악한 놈이 없었던 것처럼 하고 이곳을 떠나는 거야. 알겠어?”
심온은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좋다. 다시 한 번 뒤져 보자. 이번에는 그냥 찾기만 하지 말고 놈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자극하는 말을 하면서 찾자구.”
흉악스런 놈일수록 자존심도 그에 비례하여 클 터이니 슬슬 놀려대면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하하, 그것 좋군요.”
진효의 시원스런 말이었다. 하지만 담유설은 아예 벌러덩 드러눕고는 거의 배 째란 식이 되었다.
“아, 저는 좀 쉬어야겠군요. 다들 힘이 남아도는 것 같으니 부지런히 찾아보도록 해요. 그리고 일 마치는 대로 이곳으로 집결하시고.”
하극상도 이런 하극상이 없었지만 만추당주와 그 수하들은 한두 번 본 광경이 아닌지라 이젠 충격이랄 것도 없었다.
대천산에 오기까지 동행하면서 얼마나 난리법석을 떨었는지 모른다.
느닷없이 찹쌀떡이 먹고 싶다고 하질 않나, 산돼지를 잡아다 구워 먹으면 좋겠다 하고선 막상 잡으니 불쌍하다고 저걸 어떻게 먹냐고 눈물을 질질 흘리다가 정작 고기가 익어가자 옷에 기름이 묻든 말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그녀였다.
그러니 문주 앞에서 이렇듯 버릇없이 구는 것도 굉장히 자연스럽고 정녕 그녀다운 모습처럼 느껴질 뿐 괴이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무난하게 흐르지 않았다.
심온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눈빛을 형형히 빛내면서 내공을 끌어올린 것이다. 소맷자락에 바람이 찬 듯 부풀어 오르고 앞뒤로 옷자락이 마구 펄럭였다.
진효 등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배짱을 부리던 담유설도 슬며시 긴장하는 낯빛이 되고 말았다.
“용서하지 않겠다, 이 고약한 놈!”
심온의 외침에 산이 쩌렁하고 울렸다. 연이어,
“간다, 이 흉악한 놈아!”
라고 외친 심온은 신형을 날려 저만치 멀어져 갔다.
쌩, 하고 심온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기에 진효 등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심온의 뒤를 좇았고, 담유설은 긴장하던 낯빛을 풀고 다시 벌러덩 누워 실실거리고 웃었다.
“자식, 귀여운 데가 있다니까… 크크크크.”
담유설은 저물어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슬슬 눈이 감겨오자 한잠 때리고 있자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지난밤 술독에 파묻히고는 잠을 제대로 못 잔 터였다. 사실은 좀 자려고 하자마자 갑자기 청소 한다면서 난리법석을 떨면서 모두들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청소란 것도 실은 창고에 오물들을 모조리 처넣는 것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그 때문에 잠을 못 자 눈꺼풀이 무거웠던 것이다.
마음을 놓아서인지 순식간에 졸음이 쏟아졌다.
얼마나 잤을까.
부스럭.
아주 미세한 인기척이었지만 감각의 일부를 열어놓은 채 수면 중이던 담유설은 문득 잠에서 깨어냈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뜨거나 몸을 일으키진 않았다. 그녀의 감각이 인기척을 낸 것이 후흑문도들이나 짐승과는 다른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 흉악한 놈?’
그렇다면 언제까지 눈 감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감각을 최대한으로 개방하여 모든 정보를 수집함과 동시에 미세하게 실눈을 떠가면서 적을 살피려 했다.
‘읍!’
이제 대지에 완연히 어둠이 깔려가는 시간 속에서 지금 눈에 들어온 광경은 엄청난 공포였다. 다행히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그녀는 흘러내리는 식은땀만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십 보 정도 앞쪽에서 거미처럼 찰싹 엎드린 채로 그 흉악스런 존재는 서서히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는 마을 사람들의 말과 같이 정녕 사람인지 짐승인지 곤충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담유설은 즉시 온 감각으로 적의 정보를 취합하다가 이내 난감함에 빠지고 말았다.
어찌 된 일인지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전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락된 건 바로 살기(殺氣)와 기세(氣勢)였다.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 일명 ‘흉악한 놈’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살기등등과 기세충만이 되어야 마땅했건만 슬금슬금 다가오면서도 그런 기운은 전혀 뿜어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눈에 보이는 모습이 굉장히 혐오스럽고 공포감을 주는 면이 있을 뿐 냉정히 따져서 풍기는 기운으로만 보자면 그저 호기심에 의한 접근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괴이하구나. 인간의 가장 진실된 언어는 말이나 행동보다도 몸에서 무의식 중에 뿜어내는 기운이 아니던가. 기운을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라는 말에 비춰볼 때 이놈은 흉악한 놈이라고 할 순 없겠는걸.’
그녀는 아버지에게 무공을 배울 때, 고되고 험한 수련의 시간들을 보내며 무공뿐 아니라 사람의 도리나 근본, 만물의 이치 등에 대한 내용에 대한 가르침도 받았었다.
그중 특히 그녀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말은 ‘꽃은 각기 꽃마다 향을 지니고, 사람도 그 사람만의 향기가 있다. 사람은 여러 가지 말과 장식품으로 자신을 꾸미지만 향기만큼은 치장할 수가 없으니 향기를 통해서만 그 사람의 근본을 제대로 알게 되는 법이다’라는 말이었다.
그녀는 가문의 비전을 따라 특별히 역용과 변형에 대한 가르침을 주로 받았기에 ‘향기’에 대한 가르침은 더욱 각별히 그녀의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런데 지금 서서히 다가오는 ‘흉악한 놈’에게서는 독한 향기 대신 수줍음, 외로움, 두려움 등의 향기가 풍겨 나오고 있는 것이니 그녀로서는 고개가 절로 갸웃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 그럼 자연스럽게 이놈과 말을 섞어보도록 하자.’
어쩌면 이놈은 찾고 있던 ‘흉악한 놈’이 아니고, ‘흉악한 놈’에게 강제로 잡혀 있는 부하이거나 피해를 입은 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유설은 마치 이제 잠에서 깨어난 것마냥 하품을 하고 두 팔을 올려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떴다.
그때까지 아주 느리게 다가오던 놈은 일시 몸을 주춤거렸다.
담유설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을 걸었다.
“어? 그쪽은 뉘신지요? 이거 외로운 산야에서 사람을 보게 되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구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어딘가 어색함이 묻어났다.
‘이봐, 언니, 좀 더 잘할 순 없는 거야?’
담유설이 스스로를 다그칠 때 순간 놈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면서 담유설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담유설은 놈의 눈빛을 대하면서 놈이 결코 짐승이 아니며 사람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놈은 움찔함과 동시에 뒤로 몸을 날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놈은 양손을 마치 짐승의 앞발처럼 부지런히 놀렸다. 하지만 그 정도의 속도는 담유설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소리도 없이 뒤따랐다.
그러나 곧바로 담유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녀는 사실 괴인이 상위 계급의 존재에게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그저 작은 굴이었는데 그곳에 들어가 빠른 손놀림으로 짚단을 안에서 덧대어 밖에서 볼 때는 전혀 굴이 없고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담유설은 비로소 해답을 찾은 것만 같았다.
마을 사람들의 말과 산을 샅샅이 뒤져 가며 찾았으나 찾지 못했던 이유를 대조해 보니 정작 이 괴인이 맞는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괴인에게 공포를 느끼긴 했으나 왜 또한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겠는가. 그건 괴인이 외형이 그러할 뿐이고, 실제로는 피해를 줄 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담유설은 처음 장소로 이동했다. 거처를 알아놓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일행을 기다렸다가 이 사실을 알리고 후속 대책을 세워야 했다.
아무 소득도 없이 심온 등이 돌아오자, 담유설은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하, 굳이 그렇게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자신의 태만을 변명할 필요는 없는데 영 방종당주답지 않구먼.”
심온은 기특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한마디씩 중얼거리는 것이 모두들 믿지 않는다는 투였다.
담유설도 이렇게 되자 기가 막히면서도 웃겨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놈들이 내가 그동안 속을 썩였더니 귀까지 썩어버린 게로구나. 아무리 그래도 참말을 하면 알아듣기는 해야지.”
비록 웃으면서 하는 말이긴 했지만 심온을 비롯한 모두는 그야말로 퀭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심온이 손을 들어 입가에 대고 험험 하고는 진중하게 말했다.
“이봐, 문주는 나거든? 네가 아니라 나란 말이야. 많은 건 바라지 않아. 문도들 있는 데서는 적어도 존중은 해줘야지.”
말은 진중했지만 사실 내용은 거의 애원을 하는 것이었기에 곁에서 지켜보는 모두는 안쓰럽게 느낄 정도였다.
담유설은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예를 갖추며 머리를 숙였다.
“본 당주, 문주님께 무례한 점 용서하십시오…… 라고 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에요! 어쨌든 내 말은 사실이니 조용히 날 따라들 오세요.”
심온은 앞에 말이 나올 때는 흐뭇한 표정을 짓다가 뒤에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경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래도 존댓말을 썼다는 것에 작은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담유설의 인도를 따라 괴인의 거처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리곤 이내 괴인의 주위에 포진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은신에 능하지 않은 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존재하면서도 마치 아무도 없는 것과 같았다.
―저곳이에요.
담유설이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보니 미세하나마 인공적인 흐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심온은 입구 쪽을 향해 지풍을 날렸다.
푸석, 하는 소리와 함께 입구를 가로막던 짚들이 흩어지자 안쪽에서 손이 나오더니 다시 원상복귀시켰다.
담유설이 옆에서 전음을 보냈다.
―제 말이 맞죠?
심온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껏 샅샅이 뒤지고 격동시키려 소리를 지르면서 찾아내려고 해도 찾지 못하지 않았던가. 꼭 마을 사람들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충분히 겉모습만 보고도 지레짐작하여 두려워하고, 또 과장되게 소문이 퍼졌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심온이 명령을 내렸다.
―너구리 작전으로 밖으로 유인해.
그 말에 두 사람이 소리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두 사람은 굴 근처로 오면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여기가 맞긴 맞는 거야?”
“맞다니까 그러네.”
“오늘은 정말 허탕을 치면 곤란해. 너구리든 뭐든 좌우지간 한 마리는 잡아가야 한단 말이야.”
“아무렴, 너무 염려하지 말라구. 너구리를 잡는 건 시간문제니까.”
그러면서 괴인이 머물고 있는 굴 앞에 이르러 크게 외쳤다.
“봐, 여기야! 여기가 굴이라구!”
“흐흐, 그럼 불을 한번 피워볼까.”
즉시 불을 피우고 안쪽으로 연기가 들어가도록 신나게 부채질을 했다.
“흐흐, 이놈의 너구리야. 너무 오래 버티지는 말거라. 어차피 나올 것 고생할 필요 있겠냐?”
“그렇지. 그게 현명한 처사지. 흐흐흐.”
한참 동안이나 연기를 안쪽으로 밀어 넣던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외쳤다.
“아니, 저길 봐! 저거 사슴 아니야? 다친 모양이네. 다리를 절룩거리잖아.”
“어디? 이런 정말이네. 너구리 고기보다는 사슴이 낫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어서 가세.”
두 사람은 사슴 따윈 보이지도 않은 곳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하지만 피워놓은 연기는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기에 잠시 후 굴에서 괴인이 엉금엉금 기어 나오더니 거칠게 기침을 해댔다.
괴인은 어느 정도 숨을 돌리게 되자, 더 이상 연기가 나지 않도록 조치한 후에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완연히 어둠이 임해가는 터라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