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아니, 저… 그게 아니라 저… 이것 놓고 이야기를 하시지요.”
그러나 담유설이 누구인가. 천하의 막무가내 지랄 맞은 족속이 아니던가. 그녀는 여전히 흥얼거리면서 춤을 출 따름이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장사치입니다. 고정들 하셔야 합니다. 컥.”
그 말까지 하고서 주인장은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또한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그건 담유설이 혈도를 제압해 버렸기 때문이다.
“호호호, 너무 춤 잘 추신다. 아주 멋진 분이셔. 호호호…….”
주인장의 표정은 마침 ‘잘 좀 부탁합니다’란 식의 얼굴을 한 채로 굳어버린 터였기에 그 표정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로 빙글빙글 돌며 담유설이 흔들어대는 대로 통통거리는 것이 여간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세 명의 점소이는 주인장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고서 춤을 추는 모습에 속으로 욕을 토해냈다.
‘저래서 늙으면 뒤져야 한다니까. 손님들을 말릴 생각은 않고 젊은 여자하고 손잡고 춤추니까 아주 신이 났구만.’
‘저 표정 봐라. 어이쿠, 정말 내가 못살어.’
‘마님에게 확 일러바칠까 보다. 으이그, 정말…….’
시골 주점의 점소이들은 견식이 부족하여 혈도를 제압당한 상태인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기에 주인장을 불쌍히 여기지 못하고 원망하기 바빴다.
그렇게 점점 분위기는 무르익어 갈 때 초절정에 이르게 한 것은 심온이었다.
심온은 탁자 위로 뛰어올라 가서는 호리병의 술을 머리에 부으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지랄 같은 세상, 무자식이 상팔자, 거지 팔자 그 다음 팔자, 덧없는 인생 무엇을 쫓으려는가. 아싸, 염병.”
그것이 하나의 신호라도 되는 듯 뒤이어 수하들도 모두 탁자 위로 올라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댔다.
그렇게 술과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며 긴 밤을 훑고 지나갔다.
다음날 늦은 아침, 주인장은 머리를 감싸 쥐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손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다 순간 현기증이 일어 얼른 다시 주저앉았다.
그는 하마터면 추락할 뻔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누워 있던 곳은 탁자 위였던 것이다.
지난밤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주점이 난장판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주인장으로선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점소이들마저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엉덩이로 이름을 쓰는 등 생지랄을 떨게 되자 그 또한 술을 퍼 마신 뒤 어떻게 탁자 위에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잔 거야. 오늘 장사는 다 했구먼. 제기랄! 어쩌면 내일까지 치워야 할지도 모르겠군. 쌍놈의 자식들!’
어지럽히는 것에도 급이 있게 마련이다. 그중 가장 개 같은 급이 바로 술을 퍼마시고 어지럽히는 경우였다. 어린아이들이 뛰놀고 난 뒤의 풍경이나, 사람과 사람이 싸워 어질러진 경우는 그에 비하면 양반이랄 수 있었다.
술은 사람을 아예 개로 만드는 성질 탓에 술 마시고 마구 토해낸 토사물과 깨진 술병, 거기에 바닥에 널브러진 안주 쪼가리들, 술과 땀에 쩌든 인간들의 고약한 냄새. 이 모든 것이 총집결하게 되니 어찌 짜증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인장은 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복구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뼈가 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짜증의 견적을 내기 위해 주점을 빙 둘러 살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저기 시체처럼 널브러진 몰골들, 고약한 냄새, 지난밤 먹고 마셨던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고스란히 토해놓은 토사물들 따위가 기괴하게도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고작 그나마 꼴사납게 보이는 것이라곤 점소이들이 바닥에 누워 있는 광경이었는데, 그것도 상당히 품격을 갖춘 드러누움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바닥에 누워 있긴 했지만 이불도 덮고 머리맡엔 베개까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로선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그때 그의 정신을 일깨우는 한 음성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이제 좀 정신이 드십니까?”
주인장이 소리난 곳을 보니 문 앞에 한 사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애써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주인장은 사내가 지난밤 무리의 지도자임을 깨달았다.
물론 무리의 수장은 심온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주인장이 판단하는 범주 내에서는 만추당주 진효가 지도자로 보였다.
“이게 어찌 된 거요?”
많은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본래의 질문이라면 상당히 길고 긴 질문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이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혹시 내가 꿈을 꾼 거요? 아니, 지난밤 온갖 지랄을 떨며 난리법석이더니 어떻게 이리도 깨끗하게 정돈될 수 있는 게요. 도대체 당신들 뭣 하는 사람들이오?’
“지난밤엔 실례가 많았소이다.”
진효의 행색과 말투는 정갈하기 그지없었다.
주인장의 기억으로는 그 또한 술을 머리에 부어대면서 괴성을 지르며 주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뛰어다녔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을 봐서는 정말 그 기억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진효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조직의 어른께서는 언제나 이렇게 가르침을 주셨답니다. ‘시작은 난장판이어도 나중은 깔끔하리라’는 말씀이셨죠. 저희는 한시도 그 말씀을 마음에서 잊어본 적이 없답니다. 그렇기에 지난밤 비록 술과 흥겨운 놀이에 절어 있었다고 해도 그 순간에서조차 반드시 이 상황을 말끔히 정리정돈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지요. 곁에서 보기엔 망나니처럼 보여도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답니다.”
주인장은 은근히 감탄해 마지않았다. 강호무림인들 중엔 괴팍한 이들이 많고 다양한 성질의 문파들이 존재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막상 겪어보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즐길 때는 확실히 즐기고 또 뒤처리는 이처럼 깔끔하니 그대들이야말로 진정한 강호인이라 할 수 있겠구려.”
“하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단지 무림인도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니 마땅히 도리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진효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잠들어 있던 점소이들도 깨어 주인장 곁에 이르렀다. 그들의 소감 또한 주인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사방을 돌아보며 눈에 힘을 주고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꿈의 연장인지 분간하려 애썼다.
“자, 그럼 이제 가봐야겠군요. 다시 한 번 폐를 끼친 점 용서를 구합니다. 아, 그리고 돈은 저기 탁자 위에 넉넉히 올려놓았습니다. 그럼 전 이만.”
진효는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를 건넸고, 그에 따라 주인장과 점소이도 황급히 마주 절했다. 그리고 다시 주인장과 점소이들이 머리를 들었을 때는 진효의 종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무슨 귀신에게라도 홀린 것마냥 멍하니 진효가 서 있던 곳을 바라보다가 문득 돈에 생각이 미치자 얼른 몸을 돌려 확인해 보았다.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지난밤의 술과 음식 값을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 놓여 있자, 주인장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게야. 강호의 무림인들은 피 흘리길 좋아하고, 각박하고 여유없는 인생들이라고 생각했건만 저토록 열정과 낭만을 간직한 무림인들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정말 멋지지 않느냔 말이다.”
점소이들도 거기에 장단을 맞췄다.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저렇게 멋진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하루하루가 즐거울까요?”
“무림인들이라면 제멋대로인 줄로만 알았건만 역시 사람 나름인가 봅니다.”
“하하, 이거 기분이 좋아지니까 힘이 절로 솟는데요. 힘차게 청소하면서 하루를 열어가죠!”
점소이들까지 모두 활력이 넘치자 주인장이 오른손을 높이 들며 외쳤다.
“좋다! 그럼 눈이 부실 정도로 청소를 해보자!”
점소이들이 일제히 호응하여 소리를 지르면서 청소 도구가 있는 창고 쪽으로 달려가 힘차게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와르르르…….
뭔가가 엄청나고도 과감하게 쏟아졌고, 이 느닷없는 변고에 점소이들과 주인장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들 중 누구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는데 까닭인즉, 쏟아져 나온 것들이 바로 지난밤 어질러졌던 깨진 술병이며, 썩은 내가 나는 토사물과 음식 찌꺼기, 술에 쩌든 옷가지 등이 지랄범벅이 된 채로 드러나 버렸기 때문이다.
주인장과 점소이들은 잠시 멍해진 상태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방금 전까지 멋진 무림인들이라며 온갖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이었기에 충격은 장난이 아니었다. 앞으로 인생을 잘 살아나갈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주인장과 점소이들은 서로 어떤 의견 교환도 없이 자연스럽게 빈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그중 하나가 넋이 나간 듯 주방으로 들어가 술병을 가득 들고 왔다.
주인장이 술병을 받아 들고 입을 열었다.
“마시자.”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나발을 불며 마시다가 주점의 문 바깥쪽을 하염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러다 눈을 붕어처럼 느리게 끔뻑끔뻑대다가 또 술병을 들어 나발을 불었다.
“좀 늦었네.”
심온이 다가오는 만추당주 진효를 맞았다.
“하하, 아름다운 작별을 위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어떻게 마무리는 잘 하고 온 거야?”
“하하, 아주 흡족해하던걸요.”
“아무렴, 누가 처리하는 일인데 흡족하지 않을 수 있겠어.”
“하하하하, 그렇게 봐주시니 기쁠 따름입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무슨 겸손의 말을.”
두 사람은 마주 보고 한참을 웃다가 어느 순간엔가부터는 서서히 웃음을 지워가더니 곧이어 딱딱한 얼굴이 되어 정색을 하고는 허공을 응시했다. 이런 현상은 아무리 그래도 둘 다 인간은 인간인지라 양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만추당의 수하들은 어느새 그림자가 되어 은신한 뒤였고, 담유설은 곁에서 이 광경을 보며 작게 끌끌거리며 혀를 찼다.
그런 적막함이 깨진 것은 이곳 마을 사람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우르르 몰려들면서였다.
이곳은 큰 공터를 끼고 있는 사당 근처였기에 혹여 분향하러 오는 것일 수도 있었으나 일단의 무리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차분하고 경건한 분향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도리어 모두의 얼굴엔 분노가 가득해 사당을 부수러 온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근처 바윗돌에 걸터앉은 채로 심온 등은 무심한 시선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척하면서 혹여라도 사당을 부수려 한다면 당장에 달려가 막을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당 바로 앞에서 멈추어서는 동그랗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두의 얼굴은 하나같이 심각했다. 그들 중 하나가 손으로 심온 일당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사람들 괜찮을까요?”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 설마 우리 말을 들을 수 있겠느냐. 또 사실 들어도 상관없다. 이 일은 마을을 위한 것이니 말이다.”
대답을 한 건 이 마을의 촌장인 모동추였다. 그는 향년 오십팔 세로 이곳 마을의 촌장이 된 지 칠 년째였고,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마을의 무리와 심온 일당과는 대략 십오 장(약 5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던 까닭에 모동추는 어지간히 큰 소리를 내지 않는 한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꼭 저렇게 말하면 더 궁금해지더라. 떠나려고 해도 갈 수가 없어요.”
심온의 말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건 뭐 꼭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는 말과 다를 바가 없잖습니까?”
진효가 맞장구를 쳤고,
“자자, 닥치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여 봅시다.”
담유설이 거칠게 마무리를 지었다.
심온과 진효는 인상을 찡그리며 담유설을 노려봤지만 담유설은 얼른 검지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대며, ‘잡것들아, 조용!’이라는 시늉을 했다. 어느새 마을 사람들의 대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끄응.”
심온과 진효는 가슴에 응어리가 맺힌 신음을 발하며 귀를 기울였다.
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제껏 타지에서 온 사람들을 한 번도 박대한 적이 없었다. 또한 몸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바보라고 해도 그들이 정상인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고, 그저 약간 불편할 따름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 마을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이까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자비를 베풀어야 할 대상과 응징해야 할 자를 혼돈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촌장은 턱수염을 부르르 떨며 말했는데 뒷말은 거의 외침에 가까웠다.
“맞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없이 맞서야 합니다!”
“맡겨주십시오. 반드시 쫓아내고 말겠습니다!”
“우리 마을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이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의 나이 대를 이룬 이십 명가량의 마을 장정들은 저마다 소리를 높여 촌장의 말에 동의했다.
“너희들을 보니 우리 마을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대천산의 악당은 내일이면 꽁지를 빼고 달아나고 말 것이다.”
심온은 문득 촌장의 말 중에서 대천산의 악당이란 부분을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불사천마 그 양반을 말하는 건가? 괴이한 일이네.’
심온이 불사천마를 떠올렸지만 이내 그 생각은 지워졌다. 불사천마가 대천산으로 온 것은 자신이 데려오고 난 뒤였고, 온 뒤로도 결코 마을에 해를 끼칠 만한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유체 이탈을 통해 몸은 반로환동 수련을 하면서 혼은 마을을 다니면서 깽판을 친 것이라면 모를까 그 외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대체 누굴까?’
대천산은 과거 심온 자신이 수련했던 곳이기도 하여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 당시만 해도 사부를 위시하여 후흑문의 고수들이 산에 쫙 깔리다시피 하였기에 악당이라면 발을 붙일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다면 필시 근자에 새롭게 나타난 악당임에 틀림없었다.
그 뒤로 촌장과 마을 장정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는데 그들의 대화 내용에 드러난 흉악스런 놈의 대강은 이러했다.
흉악한 놈은 산에 산다.
솔직히 그게 사람인지도 확실치 않다.
반인반수(半人半獸) 같기도 하고, 아예 짐승일지도 모른다.
거처가 명확치 않다.
한 번 몸을 날리면 큰 나무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다.
두더지처럼 땅에서 솟아오르기도 한다.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
이 외에도 냄새가 지독하다든지 괴상한 소리를 낸다든지 하는 말들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