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정파인들과 사파인들은 각기 정의신검과 신마혈웅을 응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웅이 승리하여 정파를, 그리고 사파를 빛내주기를 바랐다. 또한 그 싸움의 승패 여부에 따라 한쪽의 몰락은 명약관화한 것이라 그들의 바람은 간절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쪽도 소망을 이루진 못했다.
정의신검과 신마혈웅 그 누구도 강호에 발을 딛지 못한 것이다.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 운명이 동시대에 태어나게 하여 어느 한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아 결국 동시에 참담한 최후를 맞고 만 것이다.
강호인들은 그 두 사람의 시신이라도 수습코자 하였으나 그들은 불타 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아 무림의 거대한 전설이 되었다.
‘그래, 이 두 영웅의 자취를 기록한다면 난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불타는 심정으로 다시금 길을 재촉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이야기를 해준 사람을 역추적하는 것!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에 가서는 처음 두 사람의 격전을 목격한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초반, 그의 계획은 순조로웠다.
가끔 황당하게도 쭉 돌고 도는 이야기의 속성상 거의 원위치에 가깝게 돌아오기도 했지만 그는 낙심치 않고 추적에 더욱 열성을 냈다.
거의 이 년여 천지 각처를 다니는 동안 가끔씩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긴 했지만 그때마다 응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 다시금 힘을 내어 걸음을 옮겼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단하셔요!”
심온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실 정의신검과 신마혈웅의 격돌은 무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동시대에 나지 않고 시대만 달리했더라도 강호는 정파의 위세와 사파의 위세가 한차례씩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다녔다.
심온은 감탄하는 중에 틀림없이 이 늙은이가 신마혈웅의 진전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무위를 보일 것이며, 여태 생명을 이어올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심온의 감탄 가운데서도 불사천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면서 끝을 향하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다시 이 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추적은 끈질지게 이어졌다. 가끔은 이야기를 건넨 이가 거주지를 옮겨 애를 태운 적도 있었지만 이제 포기하기엔 지나온 세월이 아까울 정도여서 뒤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 년 후.
그는 끝내 최종적인 결과에 당도하고 말았다.
그건 이제껏 상상했던 모든 것보다 더욱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목격자임이 틀림없는 이들은 두 노인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두 노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거의 여든이 다 되어가선지 노인들은 뒤로 접근하는 그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심심한데 놀이나 할까?”
“어째 손이 근질근질한가 보지?”
“케케케, 어제는 내가 신마혈웅했으니까 오늘은 내가 정의신검할 테야. 알겠어?”
“물론이지. 자, 그럼 받아라. 열화폭풍장!”
그러면서 왼쪽에 앉은 노인이 품속에서 인형 하나를 빼내서는 손으로 휙 장풍을 쏘는 시늉을 했다.
“흥, 그것쯤이야. 내 방화검에 대적할쏘냐!”
오른편에 앉은 노인이 꺼낸 인형에는 검이 들려 있었고, 검이 돌아가는 것을 입으로 소리 내면서 ‘슈슈슈슉’거렸다.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던 그는 흐뭇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역시 직접 목격한 이들답게 백발이 성성한 중에도 정의신검과 신마혈웅의 그림자를 떨쳐 내지 못한 것이다.
“신마혈웅 이놈! 오늘은 용서치 않겠다.”
“정의신마, 네가 그럴 만한 힘이 있을까? 가소롭구나.”
“누가 할 소리. 오늘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간다. 타앗~”
그렇게 두 노인은 한참 동안이나 각기 역할을 따라 좌웅을 겨루더니 크게 한바탕 웃고는 인형을 품에 갈무리했다.
“아무래도 신마혈웅이라는 별호는 별로 멋지지 않은 것 같아. 위압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단 말야. 그렇지 않아?”
순간 노인들 앞으로 나서려던 그의 발길이 얼어붙었다.
다른 노인이 말을 받았다.
“자네가 지었으니 지금이라도 그럼 바꾸면 되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크크, 그렇긴 한데 이미 천하 모든 사람들이 진짜 신마혈웅이 있다고 믿으니까 이거 참 바꾸기가 어렵단 말씀이야.”
“흐흐, 그러지 말고 이젠 새로운 전설을 구상해 보자구. 언제까지 신마혈웅하고 정의신검에 매달려 있어야 해? 이젠 좀 질릴 때도 되었잖아.”
“하긴 그렇긴 하지. 그럼 뭐가 좋을까?”
“음…….”
거기까지 들은 심온은 이 느닷없는 어이없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 아니, 정말 그 이야기가 그냥 두 노인네가 인형 가지고 장난하면서 만들어낸 것이었더란 말입니까?”
“안타깝게도 그렇단다.”
불사천마가 씁쓸히 웃었다.
설마, 그래도 농담이겠지 했던 심온은 불사천마의 표정을 보고 이 모두가 사실임을 확신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란 것이 사람과 사람을 거치면서 많은 확대 재생산을 거치게 된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지극히 심한 경우랄 수 있었다.
“난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돌로 두 사람을 쳐죽이고는 피가 범벅이 된 채로 마냥 길을 걸었지. 내 비록 그들의 생명을 취했지만 그들은 내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으니 죽어도 원망은 못할 것이다.”
심온은 불사천마나 두 노인이나 다 미치긴 매한가지라 생각했다.
“후후, 하지만 사람의 앞날은 알 수가 없는 것이더구나. 나는 눈앞이 흐려진 상태로 계속 길을 걷다가 어느 산비탈에서 구르게 되었는데 그것을 통해 기연을 만나게 된 것이니 아니겠느냐.”
“정말 파란만장하시군요.”
“하지만 이젠 그것도 끝이다. 난 어서 속히 이곳을 떠나고 싶다.”
“어르신께서는 반드시 이룰 수 있으실 겁니다.”
***
2. 반로환동을 통해…….
그날 밤, 두 사람은 대충 동혈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혈 깊숙한 곳에는 벽곡단을 비롯, 간단한 생필품이 있었기에 몇 개월이든 생활하기에는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었다.
불사천마는 어제와는 달리 서둘러 심온을 채근했다.
“자, 어서 문서를 해독해 보거라.”
심온 또한 승천을 하든 뭘 하든 조속히 마무리 짓기를 바라는 마음인지라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흠흠, 그럼 이제부터 읽어보겠습니다.”
그 말에 불사천마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두루마리의 내용은 ‘들으시게’로 시작되었다.
―들으시게. 사람이라면 한 번쯤 ‘나는 과연 누구일까?’에 대한 생각을 할 걸세. 하지만 누구도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남은 인생이나 열심히 살자, 라고 체념하고 만다네. 그러나 난 삶의 비밀을 풀고 전혀 다른 세상, 선계로 진입하고 싶었지.
여러 방법을 모색했네. 하지만 길을 찾을 수 없더군. 그러다 문득 나는 반로환동(返老還童)을 떠올렸네. 반로환동을 계속 거듭하게 되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결론은 과연 무엇일까에 내 모든 정신이 집중된 거네.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무엇이라 하는가? 죽었다, 뒤졌다, 갔다, 잘 갔다 씨발, 등등의 말도 하지만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네.
참으로 이상하지 않나? 사람의 시신은 그대로인데 도대체 뭘 보고 돌아갔다고 한단 말인가. 게다가 괴이한 것은 돌아갔다는 말은 원래 왔던 곳으로 다시 간다는 말이 아닌가. 그럼 사람은 이 땅에 오기 전에 다른 세계에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돌아가셨다, 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것이라네. 아, 물론 확 뒈졌다, 라고 하기도 하네만 아까도 말했듯이 그런 표현이야 워낙 다양하고 큰 의미가 없으니 신경 쓸 필요는 없다네.
다시 돌아가셨다, 라는 표현으로 돌아가 보세. 내가 여기에서 집중한 부분은 모든 사람들은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 돌아감이 반드시 죽은 후에야 가능하다는 점이었네.
난 생각했지. 그럼 살아서 돌아갈 순 없을까?
고심하고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보니 답이 나오더군. 살아서 갔을 때에야말로 선계로의 진입이고, 특별한 자가 된다는 것을 말일세.
그래서 나는 그 방법으로 반로환동을 택했네. 반로환동을 계속 거듭하여 점점 어려지다가 결국에 가서 태어나기 전의 세계, 즉 우리 인생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생각한 걸세.
하하하, 대단하지 않나?
심온은 그 내용을 읽으면서는 실제로 하하하, 하고 웃어 실감을 더했다.
―자, 이제부터 반로환동을 통한 선계로의 진입에 대한 구결을 말하도록 하겠네. 이미 경지에 이른 터라 충분히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네.
반로환동이라함은 육신에 집착함이 아니라…….
이 부분부터는 구결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모든 설명이 마쳐지게 되었을 때, 불사천마는 서서히 눈을 떴는데 그의 두 눈에는 진한 감동이 서려 있었다.
“그렇구나! 바로 이것이었어. 이 길이 있었던 게야.”
심온으로서는 구결의 뜻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지만 불사천마의 입장에서는 이론적인 완벽함을 갖춘 것으로 확고부동하게 믿게 되었다.
“좋다. 나는 곧바로 수련에 들어갈 테니 호위를 부탁하마.”
“염려 마십시오.”
“물론 염려하진 않는다.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너 또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네게 먹게 한 독은 나의 해독 기법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해독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심온의 얼굴이 퀭해지든 말든 불사천마는 동혈 안으로 들어가서는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구결을 따라 진기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심온은 맥없이 혼자가 되어 따분한 시간들을 보냈다.
처음에는 진법 밖으로 나가보려고도 했지만 좀체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리되자 심온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잠자는 것과 뒹구는 것, 낙서하기 등등일 뿐이었다. 어찌나 심심한지 무공 연습을 할 정도였다.
불사천마의 열심은 대단했다. 그는 하루 중 고작 일각 정도만 운기를 해제하고 잠시 바깥바람을 쐴 뿐 오직 수련에 정진했다.
그러다 칠 일이 지나면서는 삼 일 동안 아예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그가 동굴에서 나왔을 때 심온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모습은 믿어지지 않게도 사십대 초반 정도의 모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불사천마는 스스로의 성취에 고무된 것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바로 이것이었군요.”
“그래, 나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심온이 놀란 건 시일이 매우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매우 급박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한 달도 채 안 돼 우화등선하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하하! 그럴 리 있겠느냐.”
불사천마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다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 그럼 다음 과정을 듣고 싶구나.”
심온은 다음 단계에 대한 설명을 읽어나갔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마도 자네가 사십대 초반 정도의 모습으로 변하였다면 어느새 세월은 일 년여가 흘렀겠군.
그 내용을 들으면서 불사천마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일 년? 한 달은커녕 고작 열흘 만에 이루어냈다.
심온이 계속 읽어나갔다.
―내 이제 다음 구결을 설명할 터이니 잘 듣게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되네. 인간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욕심이라네. 욕심으로 말미암아 패망과 죽음이 시작되거든. 이건 만고의 진리이니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음일세. 이 설명을 하는 것은 꼭 그 단계의 구결 이상의 것을 아는 것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네. 매 단계마다에는 각기 다른 방향과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으니 미리 아는 것이 도리어 화를 부를 수 있다는 말이지. 난 자네가 조금 늦더라도 선계에 이르는 것을 바라지. 서두르다 그만 실족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길 바라지 않는다네. 말이 길어졌군. 그럼 다음 단계의 구결을 설명함세.
그렇게 이어져 가는 구결에 불사천마는 진중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마음에 새겨 넣었다.
심온의 낭독이 끝난 뒤 불사천마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동혈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일 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를 것이라고 하였기에 그의 마음이 바빠진 것이다.
다시 혼자가 된 심온은 나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구름을 보며 온갖 형상을 떠올리며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다시 보름이 지났다.
동혈 앞쪽에서 팔을 베고 뒹굴거리던 심온의 눈에 낯선 사람이 잡혔다. 명백히 그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디서 본 것도 같았다.
“뉘신지…….”
낯선 사내는 삼십대 초반이나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동혈에서 나올 사람은 불사천마밖에 없다고 해도 이건 아무리 봐도 정도가 심한 것이라 심온은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허허허, 녀석 누구긴 누구겠느냐.”
“컥! 저, 정말입니까?”
불사천마는 비단 젊어졌다라는 수준이 아닌 피부까지 탄력이 돌아오고 매끈해진 상태여서 심온으로서는 자기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얼마나 지났느냐?”
“보름입니다.”
“음, 그 정도면 나쁘지 않구나.”
사실 이건 나쁘지 않다가 아니라 경이적이라 할 수 있었다. 정녕 이런 추세라고 한다면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뜻을 이룰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뒤 심온은 다음 단계의 구결을 읽어주었다. 불사천마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다시금 동혈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심온은 문득 이것이 장난이 아니라 실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로부터 칠 일 뒤, 심온은 이십 세가량의 불사천마와 마주해야 했다. 이젠 목소리조차 청년의 그것과 다름없어서 심온이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데다, 그 나타남이 너무 현실적이라서 심온은 덜컥 겁이 나버렸다. 만약 갑자기 성취가 빨라져서 느닷없이 선계로 가버리면 해독은 물론이고 진법에서 벗어나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안 되겠습니다. 먼저 해독법을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진법에서 벗어나는 방법도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내 지금까지 느낀 바로는 아직 서너 단계가 더 남아 있는 것으로 안다. 네 사부가 남긴 구결에도 그러하고 말이다. 두 번의 변화가 더 일어난 다음 내 너에게 해독약과 진의 파해법을 전하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