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44화 (44/125)

# 44

그는 눈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다 취하며 인생의 쾌락을 향해 질주했다. 당연 그의 몽뚱아리는 비계가 붙고 살은 하얗기만 했다. 얼굴에도 살이 올라 그의 눈은 살집에 감춰져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헛갈릴 지경이었고 얼굴이 크다 보니 코와 입은 작게 붙어 있는 것만 같은 형상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궁금증이 생긴 것은 서른두 살이 되어서였다.

어느 날 문득 그는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보물, 위대한 보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막연히 떠오른 생각일 뿐이었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이 무엇일까 꼭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곁에 있는 이들로부터 시작하여 만나는 이들마다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보물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 대답들은 각기 달랐다.

어떤 이는 서역에서 나는 보물을, 또 어떤 이는 영약과 영초를, 또 다른 이는 무공이나 권력을 말했다.

하지만 당장 들을 때는 대단해 보여도 또 다른 이에게 물었을 때는 여지없이 대단해 보였던 것들이 보잘것없는 것으로 변했다. 진정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위대한 보물로 숭상될 수 있는 그런 것을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일 년여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틈틈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었으나 결국 답을 얻지 못하자 그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과거 태자의 스승을 지낸 바 있는 학사 운학천을 찾아가기로 했다.

“어르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은 무엇인지요?”

운학천은 그윽한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음, 어려운 질문이군. 이 늙은이의 머리로는 답하기가 쉽지 않은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르신이 모른다는 건 곧 이 세상이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닙니까?”

운학천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모름지기 참된 가르침을 전하여 깨닫게 하는 건 들을 준비가 된 자에게만 가능한 법이다. 나는 이 아이의 마음을 준비시킬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고, 잠시 후 답이 나왔다.

‘어렵지.’

‘그럼 방법은?’

‘없는 건 아니야.’

‘거기?’

‘그래, 이 친구야. 거기가 아니면 어디겠나?’

운학천이 눈을 떴다. 순간 그의 눈에서 광채가 휘돌다 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해답을 알고 있는 이를 가르쳐 주는 것뿐이겠구나.”

무환은 깜짝 놀랐다. 그의 작은 눈이 동그렇게 되었으니 어지간히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그로선 세상에 운학천을 뛰어넘는 자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으려고요?”

“있고말고. 세상엔 기인들이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다는 걸 잊지 말거라. 단지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따름이다.”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무환의 목소리엔 형식적인 느낌이 가득 배어 나왔다. 귀찮으니까 대충 둘러대서 떼어놓으려 하는구나라는 식이었다.

“허허, 녀석. 만일 그곳에서 네가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네게 형님이라고 열 번을 부르도록 하마.”

“네?”

커다란 바위에 작게 붙어 있는 닭똥집 같은 그의 입이 어마어마하게 찢어져 버렸다. 그가 아는 운학천은 이런 식의 농담을 베푸는 이가 아니었다. 그로서 무환은 결코 귀찮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제가 어디로 가야 합니까?”

“후흑애라고 들어봤느냐?”

“후흑애라뇨?”

“흔히 해결의 벼랑이라고 불리는 곳이니라. 삼십 년 전 이 늙은이도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지.”

“음, 어르신께서 그러셨다니 대단한 곳이로군요.”

“암, 대단하고말고.”

운학천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어렸다.

무환의 의문을 담은 서신이 후흑애의 백무(白霧)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접수당원 중 하나인 백비(白飛:흰독수리의 애칭)가 빛살처럼 낚아챘고, 보름 후 그것은 심온의 탁자 위에 펼쳐졌다.

…후흑문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들었소. 나는 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오. 내가 그대들에게 원하는 바는 한 가지 궁금증에 대한 것 때문이오. 여기에 대해서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였소. 나는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으니 후흑문은 속히 해답을 들려주길 바라오. 참고로 의뢰가 만족할 만한 결과로 나타난다면 막대한 황금을 받게 될 것이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 나는 그것을 보고 싶고 만지고 싶소.

―은하전장 주인 무환.

심온은 서신을 다 읽고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맞은편에 서 있던 총관 오교의 눈과 입술에도 미소가 걸렸다.

“옛 생각을 하신 거로군요.”

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느덧 기억 저편, 사 년 전의 그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자, 이제 어서 주십시오!”

심온은 당당히 외쳤다. 그건 약속이었다. 심온이 무공 수련을 마치게 되면 사부가 그에게 준다고 했던 것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이었다. 결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보물인 것이다.

“너는 그것이 그리 간단히 얻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사부가 던진 것은 호리병이었다.

“뭡니까, 이게?”

“일 년이다. 여기에 가득 채워 가지고 와라.”

“뭘요?”

“어머니의 눈물, 이 세상 어머니들의 눈물을 채워오면 네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을 주겠다.”

“네에에?”

심온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악을 바락바락 썼지만 몇 대 얻어 터지고 나서는 어머니의 눈물을 모으기 위해 온 강호를 헤맸다.

처음에는 그까짓 것이 대수겠느냐고 생각했다. 마을 어귀에 모여 있는 아낙네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눈물을 좀 담자고 했을 때 이런 미친놈이 별스럽게 수작을 부린다고 할퀴려는 통에 도망치느라 급급하게 되었다.

그 다음 계획으로는 웃겨서 눈물을 얻어내기였다.

그러나 그런 웃는 상황에서의 눈물은 찔끔거리는 수준일 뿐이어서 한 방울도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심온은 펑펑 우는 상황을 찾아나섰다.

야밤중에 우는 소리가 나면 귀를 기울였다가 몰래 잠입하여 베개에 젖은 눈물을 꾹 짜서 담기도 하고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며 흘린 눈물을 천으로 닦아내며 그것을 짜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고스란히 그들의 사연을 다 들어야 했기에 심온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어머니들의 눈물의 의미엔 각별한 것들이 많았다.

남편과 시부모, 그리고 친정,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들을 향한 눈물.

아기가 아파서 울면 달래면서 자신들이 더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세상 모든 자식들의 아픔에 어머니들은 항상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여의 세월이 지나 심온은 어렵사리 어머니의 눈물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음, 대단한걸. 하하하, 녀석. 가득 채워 왔구나. 이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을 줘도 되겠는걸.”

“이미 받았습니다.”

심온의 표정은 떠날 때와는 달리 진지했다.

“하하하, 그렇다면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로구나. 난 하마터면 네놈에게 그걸 주게 될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신경성 위장병이 걸렸거든. 그게 얼마나 심했으면 차라리 다 모으기도 전에 강호에서 네놈이 확 뒈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냐.”

꽤나 열받을 수 있는 말이었으나 심온은 여전히 진지할 뿐이었다.

“자, 그럼 건배가 빠질 수 없지.”

사부는 큰 사발을 내오더니 호리병에 담긴 어머니의 눈물을 가득 따랐다.

“자, 들자.”

심온은 사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부를 바라보았다.

사부는 활짝 웃고 있었다. 심온은 그 표정 속에서 ‘네가 대견하구나’라는 말을 읽을 수 있었다. 사부는 분명 지금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부가 벌컥거리며 마시고 사발을 내려놓을 때 심온은 짠맛이 나는 눈물을 마시다가 울컥하는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제까지 이 한 방울 한 방울 모았던 눈물들의 사연이 짧은 순간에 한꺼번에 떠올랐다.

하늘 위에 하늘이라도 덮을 만큼의 사랑이 담긴 눈물들 속에서 심온은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진정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은 어머니였다.

심온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자, 그럼 준비해 볼까?”

총관 오교가 손바닥을 비벼대면서 흥분된 어조로 답했다.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무환이 낙양 서쪽 외곽에 자리잡은 낡은 사당에 이른 것은 달과 별이 짙은 구름 뒤로 숨어버린 어두운 밤이었다. 그는 후흑문과의 약속에 따라 이곳에 오기는 했지만 이 우중충한 분위기는 썩 내키지가 않았다.

비록 그의 곁에는 가장 신뢰하는 총관 독태가 있고, 주위 칠십여 장 밖에는 이곳을 암암리에 호위하고 있는 백여 명의 고수들이 있었지만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당 안에 들자 기분은 더욱 나빠졌다. 거미줄은 모서리에만 그치지 않고 사방팔방에 가득했으며 발을 뗄 때마다 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것이 호롱불에 비춰졌던 것이다.

“어서 오시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나자 무환은 덜컥 겁이 나 총관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살에 파묻힌 그의 작은 눈이 동전만큼 커졌다. 근 일 년의 삶 중 가장 눈을 크게 뜬 순간이었다.

“누, 누구요?”

“걱정 마시오. 그대는 후흑문과의 약속 때문에 온 것이 아니오?”

“맞소.”

“그럼 아무 염려 할 것이 없소이다.”

“그런데 어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는 게요? 이런 말은 없지 않았소이까?”

“계획이 바뀌었소. 우리 문주는 성격이 괴팍하여 의뢰인이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다오. 그래서 그대는 그 대가로 적당히 그에 견줄 만큼의 것들을 손해 봐야만 하는 것이오.”

“내가 무슨 약속을 지키지 않았단 거요?”

“그대는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고수들을 우리가 모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게요? 분명히 약속하기론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한 명만을 대동하라고 하였지 않소?”

“하지만 그들은 내 개인 호위일 뿐이오. 언제나 나를 지키는 일이 그들의 사명이니 내가 떨쳐 내고 싶다고 해도 그게 쉬운 일은 아니라오.”

“그런 사정까지 일일이 들어줘야 할 까닭은 없소. 어쨌든 이런 연유로 나 또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니 굳이 탓할 필요는 없겠구려.”

“흠, 맘대로 하시구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이라……. 그것을 얻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소. 나는 그대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냥 돌아가길 바랄 뿐이오.”

“나는 준비되었소.”

“좋소. 그럼 계약을 맺도록 합시다. 금액과 기타 약정 내용이 적혀 있으니 서명토록 하시오.”

종이 한 장이 어둠을 뚫고 불쑥 무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았지만 도무지 사람의 그림자라곤 발견할 수가 없었다.

종이에는 큰 글씨로 이 의뢰에 대한 금액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로는 작은 글씨들이 적혀 있었다.

무환은 그다지 신중히 생각지 않고 그저 금액에 대한 확정이려니 생각하고―그는 돈에 관해선 걱정하지 않았으므로―서명했다.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총관 독태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그가 인장을 찍자마자 계약서는 그의 손을 벗어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음, 좋군.”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총관이 날카롭게 외쳤다.

“엉뚱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엉뚱한 짓? 글쎄, 이미 정해진 것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법이지. 자, 그럼 천천히 읽어주겠소이다. 제일 먼저 계약 기간은 일 년으로 한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오?”

총관의 말에 목소리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흠, 이거 꽤나 시끄럽군.”

그 말과 함께 미세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무환과 독태는 뭔가 몸 한구석이 아릿한 느낌과 함께 더 이상 말하지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불안이 스멀거리며 피어났지만 이 상태로는 도움도 청할 수가 없었으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끝까지 들어보고 나서 입을 열어도 늦진 않을 것이오. 의뢰자 무환은 일 년간 은하전장의 주인의 권리를 포기한다.”

무환과 총관의 눈동자가 커졌다.

“무환은 일 년간 강호를 다니며 호리병에 어머니들의 눈물을 담아야 한다. 일 년을 넘길 시 그는 그 대가로 팔 하나를 잃고 다시 새로운 일 년을 맞아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다시 일 년 동안 아무 소득이 없을 때는 다른 쪽 팔을 잃게 될 것이고, 계약은 자동적으로 일 년 연장된다. 그렇게 계속해서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시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게 될 것이다.”

무환과 총관의 눈은 이젠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다지 걱정할 건 없다. 후흑문에서는 은하전장이 이상없이 잘 돌아가도록 보조할 테니까 말이다. 또한 무환의 안위도 후흑문에서 한 명의 호위를 파견하여 전담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는 감시자의 역할도 할 것이고.”

총관은 수없이 많은 말들을 외치고 있었지만 도무지 입을 벌릴 수조차 없어 답답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순간 입이 열렸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이 개 같은 놈들을 당장 죽여라!”

그러나 돌아온 건 어둠 속의 여유 넘치는 목소리였다.

“하하, 무슨 농담을 그리 심하게 하시나? 밖으로는 소리가 전혀 나가지 않소이다.”

“정녕 후흑문이 강호에서 멸문을 당하고 싶은 게로구나!”

“멸문? 누가 멸문시킨다는 것이냐? 그대가?”

그와 함께 뭔가가 번쩍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환은 온몸을 떨었다.

“어? 초, 총관……?”

총관 독태의 목이 어깨와 생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피분수가 솟구친 후 잘려 나간 목에서 피가 울컥거리면서 연신 새어나오고 있었다.

무환은 이제껏 태어나서 사람이 죽는 것을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 첫 번째 죽음의 목격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총관이라는 점과 끔찍스럽게도 목이 잘린 것이라는 상황에 오줌을 질질거리면서 이윽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괜찮겠지요?”

총관 독태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방금 전 틀림없이 목이 잘려 나갔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싶을 정도로 멀쩡했다.

“염려 마십시오. 기혈을 안정시키는 구옥환을 복용시켰으니 곧 아무 일 없이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총관은 살아 있었다.

단지 무환이 본 것은 환사(幻士)가 만들어낸 환영(幻影)일 따름이었다. 그는 사당 안에 들어서면서 깊은 최면에 걸린 상태였다.

이 모든 상황은 먼저 후흑문에서 제안했고, 고심 끝에 총관 독태가 동의했다.

그가 고민 끝에 동의한 데는 주인의 마지막 당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훌륭하게 보필해 주게. 그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그는 주인의 당부 중 하나는 이루고 또 하나는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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