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흑문주 심온-43화 (43/125)
  • # 43

    “아까 나는 핏줄이 터져 버리는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이걸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린 거야?”

    “눈물 날라 그런다. 씨바.”

    모두는 서로의 손을 마주치고, 껴안고, 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쿠궁!

    바위가 바스러지면서 지축이 울렸다. 그것은 필사방인들에겐 축포처럼 들렸다.

    “허허, 그렇게도 좋더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방주 노제강도 솔직히 폴짝거리면서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연신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선언하듯 외쳤다.

    “좋다! 오늘 저녁은 특별 요리다!”

    그건 환호에 불을 지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야호!”

    “방주님 최곱니다!”

    “잔뜩 마셔도 되는 겁니까?”

    “하하, 이거 또 어디 이런 바위 없나요?”

    그 말에는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배를 움켜쥐고 웃는 이부터 서로 어깨를 치면서 웃기도 하고 심한 경우엔 주저앉아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문득 웃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누가 어떤 신호를 보내 ‘그만 웃자’거나 ‘이제 그만 산을 내려가자’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하나둘 저절로 웃음이 사라지고 안면이 뻣뻣해졌다.

    그들이 본 건 하나의 해골이었다. 그 아래 뼈다귀도 다 갖추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왜 나타난 것인지는 더욱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중앙에 서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점이었다.

    해골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도저히 입었다고는 볼 수 없었다. 누더기 단계를 지나 당장이라도 바스라져 버릴 것만 같이 앙상한 뼈에 그저 놓여 있는 형국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바위를 밀어내는 데 힘을 쓰지 않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변고란 말인가.

    필사방인들은 슬그머니 중앙에 놓인 해골로부터 뒷걸음질치며 곁을 돌아보았다. 혹여 일행 중 누군가가 삽시간에 뼈다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이 상황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수하들은 힘을 얻고자 방주에게 시선을 두었다가 재빨리 거두었다.

    방주는 눈이 이마까지 치켜떠진 상태였고, 입은 눈과 맞닿은 상태였다.

    그를 의지한다는 건 솜으로 만든 검을 의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저 놀랄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상황 속에서 필사방인들은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웃었다.’

    ‘웃었어.’

    ‘웃다니? 그게 가능해? 그럼 갑자기 해골과 뼈다귀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은 말이 되고?’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제발 그렇다고 말해 줘.’

    해골의 얼굴을 대하고 있는 쪽에 선 필사방인들은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 버렸고, 해골의 등 쪽에 선 필사방인들은 동료들의 모습이 급작스럽게 변하는 광경에 더불어 질려 버렸다.

    그러나 해골의 웃음이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뼈다귀가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너희들… 참… 재미난… 모양이구나.”

    뼈다귀는 말하는 것이 어색한 듯 천천히 읊조렸다. 온몸이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입을 여니 잘 안 된다는 것처럼 보였다.

    이 상황은 마치 밤에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고 있는데 흉악스러운 귀신이 옆자리에서 ‘나도 한잔 줘봐’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 필사방인들은 입과 발이 굳어버려 도망은커녕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흠, 맑은… 공기야. 얼마… 만이란… 말인가?”

    뼈다귀는 고개를 살짝 흔들면서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자 다시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실 이 뼈다귀는 완전한 뼈로 된 것은 아니었다. 살이 뼈 위에 얇은 껍질이 덮인 것처럼 붙어 있었는데 워낙 극미해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저 뼈다귀로만 보이는 형국이었다.

    한데 숨을 길게 들이쉬기를 서너 번 한 뒤에 기가 막히게도 뼈다귀에 두툼하게 살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방주 노제강을 비롯한 모든 필사방인들로서는 이런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한 터라 그들의 안색은 일제히 순백색을 넘어 광채가 날 지경으로 질려 버리고 말았다.

    “너희들이 나를 깨운 게로구나. 어떤 식으로 감사 표시를 해야 좋을까?”

    이번에 말할 때는 뼈다귀는 더 이상 뼈다귀가 아닌 바싹 마른 노인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아직도 앙상하긴 했지만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살이 올랐으며, 맨들거리던 머리는 드물게나마 흰 머리카락이 자라난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이 가실 정도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방주 노제강은 속으로 불행 중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떨어뜨린 바위와 연관이 있는 듯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자는 오직 자신뿐이라는 책임감을 느꼈다. 얼마나 지혜롭고 자신감있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수하들의 생사가 결정되는 일이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연습해 보았다.

    ‘저기… 제가 이 무리의 수장입니다. 하하하, 본의 아니게 저희의 힘이 도움이 되셨다니 기쁠 따름입니다. 저희는 어떤 보상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었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노인장의 앞길에도 광영이 임하길 빌겠습니다.’

    이 정도면 손색이 없었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면서 말했다.

    “저저저… 키기기기… 퉤뒈체카가…….”

    생각과 달리 막상 괴노인을 보며 입을 열자니 입이 제멋대로 굳어버리는 통에 온갖 꼴값을 다 떨다 숨을 헉헉거렸다.

    “이런 실없는 놈 같으니. 너, 어디 아프냐?”

    괴노인은 별 미친 놈 다 보겠다는 듯 말했지만 필사방인들은 방주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도리어 그들은 그나마 말을 꺼내기라도 하는 방주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자, 먼저 누가 이 상황을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괴노인은 그 자리에 앉더니 필사방인들을 빙 둘러보았다.

    말을 꺼내려던 방주 노제강은 아직까지 숨을 몰아쉬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그는 제외된 상태에서 괴노인의 눈길을 받게 될라 치면 필사방인들은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어이, 거기, 네가 말해 봐라.”

    괴노인이 지목한 곳엔 수정당주 묵해영이 앉아 있었다.

    쏴아악!

    그 곁에 서 있던 필사방인들이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듯 묵해영으로부터 간격을 벌리고 떨어졌다.

    외로운 섬처럼 혼자 남게 된 묵해영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부들거리더니 급기야 눈물을 질질 흘려대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흐흑흑’으로 시작된 말은 두서도 없이 불쑥 이 말이 튀어나왔다가 저 말이 튀어나오고, 엉뚱한 곳으로 샜다가 느닷없이 살려달라고 외치기도 하면서 꾸역꾸역 이어졌다.

    “아니, 왜 울고 지랄이야? 그러니까 바위를 왜 밀었냐니까?”

    이젠 완연히 노인의 모습으로 회복된 상태에서 귀를 후비며 하는 말에 묵해영은 엉엉 울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답했다.

    어쨌든 이래저래 대충 이해를 했는지 괴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기연 따윈 없다는 것을 알리고 있고, 이 바위가 기연을 얻으려는 놈들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어서 바위를 밀었다? 흠, 아주 특이하구나. 허허허.”

    그러면서 괴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켜보는 필사방인들의 머리 속은 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떠오르는 바가 없었으나 괴노인은 지금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불사천마(不死天魔)여, 너는 드디어 다시 강호를 보게 되었구나.’

    괴노인 그는 이백여 년 전 불사천마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있어 ‘걸어다니는 공포(恐怖)’였고, ‘지옥(地獄)에서 이탈한 마귀(魔鬼)’였다.

    그의 몸에서는 피 냄새가 지워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이 살인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를 지배한 것은 사악한 마성(魔性)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문득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사방이 꽉 막힌 흑암뿐인 동혈이었다.

    그는 처음에 자신이 왜 이곳에 갇히게 된 것인지, 그동안 무슨 일을 자행했는지, 자신이 왜 늙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진 힘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동혈은 기이한 힘으로 막혀 있어 벽을 모래처럼 부서뜨릴 만한 그의 장력도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별의별 수를 다 써도 소용이 없자 그는 어쩔 수 없이 탈출을 포기했다. 석실에는 소량의 양식과 물이 있었지만 석 달 정도가 지나자 바닥을 드러냈고, 그 다음 양식으로 삼은 건은 각종 벌레들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쏟아 부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십오 세까지였다. 그에겐 적어도 삼십 년의 세월이 사라져 버린 셈이었다.

    그는 육 개월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냈다. 그것은 끔찍한 공포였다. 자신이 이제껏 저지른 포악한 만행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울부짖음이 생생히 들려왔다.

    그로선 자신이 극악무도한 마인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계속해서 기억이 복원되면서 급기야 어떻게 이곳에 갇히게 된 것인지도 생각났다.

    함헌거사. 신선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하고 나타난 이는 자신을 함헌거사라고 말하였다.

    치열한 격전이 펼쳐졌고, 함헌거사에 의하여 제압당한 그는 이곳에 갇히게 된 것이다.

    함헌거사는 동혈 바깥 지점에 결계를 걸어놓았고, 결계의 핵심 자리에 큰 바위를 올려놓아 그가 결코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한 터였다.

    ‘죽이지 않는 이유는 죽음이 네게 지나친 자비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내면을 들여다보아 스스로를 돌이키고 극악한 고통을 너 또한 받도록 하여라. 네가 그 과정을 넘는다면 도리어 선계로 통하는 길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함헌거사의 마지막 말이었다.

    물론 당시의 불사천마로서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마성에서 벗어난 불사천마는 함헌거사의 말이 뼈에 사무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불사천마는 지난날을 돌이키며 도를 수행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의 목표는 선계로 가는 것이었다. 깨달음의 극에 이르러 우화등선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의미였다.

    그렇게 이백여 년이 지났다.

    그는 오랜 수련의 날을 보냈지만 도무지 도를 깨우치지 못하고 이제껏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세상의 일에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내가 이제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어쩌면 안에서 이루지 못한 승천의 방법을 밖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불사천마는 지난날의 상념에서 벗어나 눈을 떴다.

    그때까지도 필사방인들은 새하얗게 질린 안색을 유지하기에 바빴다.

    “너희에게 보답을 아니 할 수 없구나. 자, 각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소원을 말하도록 해라.”

    불사천마는 바위가 결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 땅에 떨어진 진동으로 어떤 변화가 발생할 순 없는 것이다.

    한편 소원을 말하라는 말을 들은 필사방인들은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머뭇거리는 건 나쁜 습관이지.”

    그러면서 불사천마가 살짝 앙상한 손을 드는 모습을 취하자 필사방인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소원을 쏟아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십시오!”

    “살고 싶습니다!”

    “죽도록 살고 싶습니다!”

    오로지 소원은 살려달라는 것뿐이었다.

    “하하하하! 그게 소원이더란 말이냐? 이렇게 사내놈들이 싱거울 수가. 하지만 똑똑하긴 하구나. 난 네놈들이 미녀나 보물, 권력을 원한다면 다 죽여 버릴 참이었거든.”

    필사방인들이 다시금 격렬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오직 우리의 소원은 살아나는 것뿐입니다!”

    “통촉하소서!”

    불사천마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그렇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지. 제 목숨을 잃고 미녀를 얻고 보물과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을 눈앞에 두고 죽어간다면 더욱 애통할 뿐이겠지. 너희의 현명함이 너희를 구하였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동혈 속에서 우화등선을 꿈꿨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다시금 마성이 준동하였는데 각고의 노력 속에서 지금의 심령은 마성에 심취한 상태와 정상적인 상태의 중간 지점 정도에 놓여 있었다.

    그렇기에 아직 이성적인 사고는 가능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생명을 빼앗는 일도 개의치 않을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자, 소원은 들어주었고,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구나.”

    필사방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무엇이든 물어보시라고 외쳐 댔다.

    “좋은 자세다. 오늘날 강호에서 강호의 모든 사정을 꿰뚫고 있는 자는 누구이냐?”

    대답을 한 건 방주 노제강이었다. 그는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게 된 터였다.

    “크크그, 그건 마마마마, 만박퀴괴자 호호호호, 홍추입죠. 마마마마, 만박괴자 호호호호, 홍추가 체체체체, 최고입니다.”

    “허허허허, 잘 들었나 모르겠구나. 만박괴자 홍추?”

    “네네네네, 마마마마, 맞습니다.”

    “그의 거처는?”

    “그그그그그, 그를 차차차, 찾는 이이가 너무 마마마마, 많아서 자자자, 잘 모모모모모, 모릅니다요.”

    “음, 그래. 그럴 만도 하군. 너희들의 역량으론 힘들겠지. 좋아, 너희는 너희의 일을 하거라. 나는 나의 길을 가야겠구나.”

    그와 함께 불사천마는 성큼 신형을 띄우더니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필사방인들은 이 무슨 변고인가 싶어 절벽 가까이 다가가 아래를 보니 그는 한 마리의 새처럼 허공을 가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지상에 거대한 폭음 소리가 울리면서 불사천마의 몸이 서서히 내려서자 저런 인간과 마주하여 자신들이 살아난 것은 천운이었음과 도대체 저 괴노인이 강호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닐지 모르는지라 저마다 근심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

    9.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

    무환. 그의 이름이다. 그는 원래 유소각이란 멋진 이름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는 스스로 스무 살이 되던 날 무환(無患:근심이 없다)이라고 칭했다.

    이건 곧 그의 삶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이미 스물다섯의 나이에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터였다.

    그의 아버지 유만호는 은하전장(銀河錢莊)의 주인이자 덕이 높은 자로서 그 밑에 능력있고 성실한 일꾼들을 두고 있었는데 그들은 새로운 주인을 잘 보필하여 전혀 불편이 없이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의 유일한 걱정거리란 바로 걱정이 전혀 없다는 것이 걱정이랄 수 있는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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