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원래대로라면 ‘푸하하, 너 아주 허풍이 점점 더 세지는 거 아니냐?’란 식의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이 인간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그게 말이 되는 일이야?’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정말 신기하죠?, 그래,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등의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 주제는 다시 바뀌어 심온이 마교 뇌옥에 갇혀 있다가 나온 이의 이야기와 흑막주의 고민 같지도 않은 고민에 대해 멋진 답장을 써주었다는 것에 이르자 희락동자는 미친 듯이 웃으면서 제대로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하고 바닥에서 의자를 붙들고 웃느라 제정신이 아닐 지경에 이르렀다.
듣는 사람의 반응이 이렇듯 열광적이다 보니 이야기를 하는 심온도 웃음 폭풍에 휩싸여 거침없이 웃다가 의자가 뒤로 넘어가 자빠지면서도 끝내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다 간신히 웃음을 진정해 가면서 이호가 물었다.
“키키키! 아니, 정말로 호랑이가 도끼를 주면서 찍으라고 한 이야기를 적어 보냈단 말이지? 푸하하하! 그 녀석, 엄청 열받았겠는걸. 그 뒤 아무 일도 없었냐? 전쟁이라도 벌어졌을 거 아냐?”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는걸요. 하하하하!”
“어이쿠, 배포도 없는 녀석이었군.”
“자기가 먼저 의뢰했고 나중에 알려지면 얼굴 들기도 힘드니까 나서긴 어려웠을 거예요.”
“키키키, 그게 좀 걸렸겠다.”
“하하하하하!”
두 사람의 웃고 떠드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담유설은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이 두 사람 사이가 훨씬 더 깊고 강한 정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칫, 아주 신이 나셨군 그래. 후후.’
그렇게 이야기는 계속되고, 어느새 심온의 이야기는 순심선행대전에 이르렀다.
진룡표국의 배후가 누굴까, 어떤 놈들일까, 왜 그런 대회를 열었을까 등등의 말을 읊조리면서 듣던 이호는 심온이 다시금 마지막 관문에서 탈락한 이들의 행태를 설명하면서부터 다시 웃음의 발작을 일으켰다.
“아니, 그놈이 진짜 옷을 벗고 혼자 그 짓을 막 했다는 거야? 그 많은 사람 앞에서? 푸하하하!”
“저도 진법에 갇혀 있는 덕분에 그걸 못 봐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니까요.”
“그러고 보니 너는 봤겠구나?”
이젠 두 사람의 대화에서 완전히 벗어나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담유설을 향해 이호가 물었다.
“네. 제가 봤는데요, 그 녀석 몸이 좀 부실하더라구요. 별 재미 없겠던걸요.”
무심히 던지는 말에 이호와 심온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두 사람은 멍하니 아무 말도 없이 담유설을 바라봤다.
등을 돌리고 있던 담유설은 갑자기 너무 조용하자 고개를 돌려 두사람을 보고는 눈을 빠르게 세 번 깜박이고 말했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건가요, 두 분? 뭘 원하세요?”
너무나 당당한 말에 두 사람은 도리어 겸연쩍은 상태가 되어 담유설의 눈길을 피해 목을 움츠렸다.
희락동자 이호가 전음을 발했다.
“야, 다음 이야기부터는 전음으로 하자.”
“뭐, 대충 할 이야기는 거의 했는걸요.??
“그래? 그럼 뭐 저녁이나 먹자.”
“그러죠.”
잠시 후,
정성이 담긴 요리가 탁자에 놓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음식 재료가 많지 않아 이호와 심온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담유설이 내놓은 음식들은 입 안에 군침이 돌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야, 이거 대단한걸.”
“담 당주, 이런 실력이 있을 줄은 몰랐군. 정말 의외일세.”
인생에 있어 먹는 재미가 없다면 거의 팔 할 정도의 재미를 잃는 것과 같으리라.
두 사람은 들뜬 기분에 오두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자자, 어서 앉아. 빨리 먹고 싶단 말이다.”
“얼른 앉아. 조금만 더 지체했다간 내 위장이 스스로 배를 가르고 나와 음식을 집어먹을지도 모를 지경일세.”
담유설은 싫지 않은 표정으로 환히 웃었다.
“호호호, 다 되었어요. 자자, 갑니다.”
담유설이 음식을 모두 진열하고 자리에 앉았다.
심온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면서 속으로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이 여자, 정말 의외인걸. 이제까지의 행실로 봐서는 요리나 기타 여자들의 일하고는 정반대편에 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그때 이호가 식사 개시를 선언했다.
“자, 먹고 죽자!”
이호와 심온은 수저를 들고 봄 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탕국을 퍼 입 안 가득 음미했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거의 동시에 경악에 물들었다.
수저를 물고 있는 입술은 지독한 원수를 만난 사람처럼 바르르 떨렸고, 콧구멍은 성난 황소처럼 쉴 새 없이 벌렁거렸다. 당장 탁자가 뒤집어지고 음식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뭐, 뭐지?’
위기를 느낀 담유설은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곤 자리에서 일어나 주춤주춤 문가로 향했다.
시간이 정지하고 모든 사물이 정지된 가운데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담유설의 느린 뒷걸음질뿐이었다.
이윽고,
“이야야야!!”
“크아아아악!!”
담유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두 다리에 힘이 쫙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너무 맛있다! 최고야!”
“아, 씨바! 미치겠네!”
“근데 욕은 왜 하냐?”
“너무 좋아서요.”
“하긴 너무 좋아도 욕이 나오지. 이런 니미럴.”
“푸하하하!!”
이호와 심온은 그렇게 말을 주고받더니 그 뒤로는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걸신 들린 사람들마냥 음식을 거덜내기 시작했다.
채 일각(약 15분)이 되기도 전에 국물 하나 남김없이 해치워 버린 두 사람은 그제야 아직도 주저앉은 채로 바라보고 있던 담유설을 돌아 볼 여유가 생겼다.
“담 당주, 거기서 뭐 해? 식사해야지.”
“애야, 배고프지 않냐? 어서 앉아서 뭐라도 좀 먹…….”
이호는 거기까지 말한 뒤 탁자 위에 밥 알갱이 하나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배시시 웃었다.
“흐흐흐, 없네.”
“저, 저는 괜찮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희락동자 이호는 두 사람을 원두막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그가 직접 갖가지 작물을 재배하는 곳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여름에는 거의 이곳에서 그는 잠을 청했다.
이제 계절은 여름과 가을의 경계선상에 놓인 터라 밤공기는 운치를 즐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자, 먹으려무나. 내가 좀 먹어보니 맛있긴 하더구나.”
이호가 원두막 가장자리에 놓인 바구니를 가운데로 옮기면서 쫑알거리자 심온과 담유설이 환한 표정으로 다가와 과일을 집어 들었다.
“와, 이거 정말 참외 맞아요? 참외라면 왕이 틀림없겠는걸요.”
“자두가 너무 고와요.”
“그래, 많이들 먹어라. 하하하!”
이호는 그렇게 말하곤 자신도 자두 하나를 집어 한 입 베어 문 후 말을 이었다.
“너희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구나. 한 번 들어보겠느냐?”
“캬아, 기대되는 걸요?”
“저도요. 흐흐.”
두 사람이 눈까지 반짝거리며 들을 준비를 갖추자 이호는 ‘흠흠’ 하고 목청을 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어제 점심 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문을 두드리는 거야.”
“몇 살 정도였는데요?”
심온이 참외를 꿀꺽 삼키면서 물었다.
“글쎄, 한 오십 세 정도? 그보다 한두 살 더 빠지려나?”
이호의 말에 담유설은 ‘푸헛’ 하고 씹고 있던 자두를 뿜어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고, 심온은 ‘새파랗게 젊은 놈이었군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응수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그 녀석이 얼굴에 떠오른 앙심을 숨기지 않고 대뜸 사형을 찾는 것이 아니겠냐?”
“네? 그런 자가 어떻게 사숙에게까지 올라올 수 있었죠?”
심온은 먹던 참외를 반쯤 흘리면서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건 사숙이 거하는 곳 아래쪽으로 희락팔선(喜樂八仙)이라 불리는 수하들이 버티고 있어 악심을 품은 이는 그들에게 걸러져 오를 수조차 없는 것이다.
담유설도 심온이 놀란 뒤에야 희락동자의 사형이 바로 후흑문의 전대 문주를 뜻한다는 것을 이해하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아, 그 녀석은 산 아래서 온 게 아니라 산 위에서 내려온 놈이었던 게야. 그 내용은 뒤에 설명하기로 하고. 어디까지 말했더라? 어, 그래, 사형. 근데 그 녀석은 사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더구나. 정작 사형의 이름은 물론이고 별호조차 모르는 녀석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녀석이 칭하는 사형의 존재란 십오 년 전 저기 위쪽에서 밭을 갈던 노인네였거든.”
“그럼 그 작자가 아는 것이라곤 십오 년 전에 밭을 갈고 있던 것뿐이라는 건가요?”
“그래, 그렇다니까. 그래서 난 처음에는 그냥 정신이 나간 놈이려니 생각했단다. 사실 그때는 그게 사형을 뜻하는 것인지 어쩐지 생각도 못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놈이 대뜸 시비를 거는 거야.”
“아니, 뭣 때문에요?”
이번에 물은 건 담유설이었다.
“내가 그랬지. ‘그만 꺼져 임마’라고. 크크크, 그랬더니 막 펄펄 뛰는 거야. 지가 왜 펄펄 뛰냔 말이야. 지가 무슨 눈[雪]이야, 펄펄거리게?”
담유설은 그 상황이 머리에 확연히 영상으로 떠오르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확 패버렸어. 근데 마구 패다가 보니까 이건 좀 뭔가 이상한 거야.”
“뭐가요?”
심온과 담유설이 동시에 물었다.
“제법 수련의 흔적이 있더란 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단지 내게 힘없이 얻어맞은 건 애초에 내 외모를 보고 방심했기 때문인 거야. 그 녀석이 좀 더 주의했다면 난 아마 칠백 초 정도까지는 제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녀석이 반격을 하기엔 초반에 받은 타격이 너무 커서 이미 늦어도 한참 늦고 만 것이었지.”
“와, 대단하긴 했군요.”
“그렇지. 그래서 난 그 녀석이 절뚝거리면서 돌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대체 저놈은 어디서 불쑥 튀어나온 걸까?’ 흘러나오는 내력만으론 도무지 사문을 짐작하기 어려웠거든. 그래서 몰래 따라가 봤지. 네가 아까 물었던 희락팔마(喜樂八魔:희락동자는 장난 삼아 수하들인 희락팔선을 희락팔마라고 부르기를 즐겨했다) 녀석들이 왜 아무 연락이 없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으니까.”
“하아, 그럼 설마……?”
심온이 짐작되는 바가 있다는 듯 감탄사를 발했다.
“뭔지 알겠어요?”
“감 잡은 거냐?”
두 사람의 물음에 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산을 올라온 적이 없었던 거죠. 산 위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희락팔선을 만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죠.”
“녀석, 네 말이 맞다.”
이호의 말에 심온은 우쭐했다. 그러나 곧바로,
“역시 잔머리 굴리는 데는 아무도 못 따라간다니까.”
라는 말에 얼굴은 흉악스럽게 일그러졌다.
이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쫓아가 보니 녀석은 험한 산세를 따라 작은 동굴로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난 비로소 녀석의 정체를 파악했다.”
심온과 담유설이 정체라는 말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머리를 내밀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녀석은 산(山)사람이었던 거야. 거기에 대인기피증도 좀 있는. 아무튼 좀 불쌍해 보이더라.”
“에이, 그럴 리가요.”
“정말이라니까. 자주 나다녔으면 내가 봤겠지. 만약 그랬다면 이웃사촌지간으로 꽤 가깝게 지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리하여 십오 년의 무공 수련 후 강호를 종횡하려던 천암은 희락동자 이호에 의해 ‘산사람’이자 ‘대인기피증 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는 그 길로 혼자 내려오다가 문득 십오 년 전에 밭 갈던 노인이 누굴까에 생각이 미치더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사형이었더란 말이다. 게다가 사형이 꽤 오래전에 지나가는 말로 들려준 이야기도 생각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냐?”
이호는 바구니에 하나 남은 참외를 꺼내 심온에게 건네면서 말을 이었다.
“사형의 말은 이랬다. ‘이호야, 오늘 낮에 말이다, 이상한 놈을 하나 만났지 뭐냐?’ 난 ‘누구요?’라고 물었다. 사형이 말을 잇기를 ??응, 젊은 놈인데 밭을 아무 말도 없이 가로질러 가려는 것이 아니겠냐? 그래서 난 마구 지랄을 떨었지. ‘야, 임마. 내 밭을 밟으면 어떡해? 어서 나가지 못하겠느냐?’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여기는 원래 길이었지 밭이 아니라고 하면서 연신 꼬장거리면서 계속 걸어가겠다는 거야. 화가 안 날 수가 있냐? 확 달려가서 패버렸지. 요즘 젊은것들은 왜 그렇게 이치에 밝고 똑 부러지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어찌 되려는지 원?? 그러는 거야. 그런데 당시 사형의 말을 떠올리고 십오 년 전의 이야기란 말을 대입해 보니 딱 맞아떨어지지 않겠냐. 그놈이 아주 독한 놈이었던 거야. 장장 십오 년이 지난 뒤에 당시의 복수를 하려고 나타난 걸 보면 말이다.”
“이런, 알고 보니 엄청 불쌍한 사람인걸요.”
담유설의 소감이었다. 강호의 내로라하는 이들이라도 후흑문의 전대 문주와 희락동자를 상대로 하면 그냥 두들겨 맞는 것이 정석인데 그 사람은 목표가 너무 높게 잡혀 있어서 고달픈 인생이 되고 만 것이라 생각하니 여간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심온도 고개를 사정없이 끄덕였다.
“불쌍하다 뿐이겠어. 재수가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이호가 대뜸 반발했다.
“너희들 지금 무슨 소리냐? 그 녀석은 재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산사람이라니까. 사람들하고 어울리길 선천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거야. 괜히 그런 사람들을 세상으로 이끌어낸답시고 접근하면 도리어 한 인간 망가뜨리는 것이 되는 거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야. 혹시 만나볼 생각 같은 건 일체 하지 말거라.”
이호가 못을 박으며 하는 말로 천암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완전한 외톨이가 되었다. 그는 눈물로 동혈 생활을 하며 또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지옥 같은 수련의 날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천암이 머무는 동굴.
천암은 피를 토하면서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흑흑흑, 하늘이시여! 도대체 무공의 끝은 어디인 것입니까? 제가 아무리 열심히 수련을 해도 세상은 저보다 더욱 노력하여 어린아이까지 무공이 고강하니 도무지 세상에 나가기가 두렵습니다! 저는 어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정녕 자신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만난 이들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천하제일을 다투는 고수들임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의 답답한 절규였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부터 희락팔선이 올라왔다.
그들 중 웅선(熊仙)이 큼지막한 멧돼지를 잡아 숯불에 구워주어 모두는 배가 산처럼 솟을 정도로 포식하며 흥겨운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