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61화 (61/61)

제9장

다음 날 아침에 해가 오르자마자 양 진영은 긴장감을 가지고 마주섰다.

소군이 다시 합류하고 나서는 대공녀가 다른 무인들을 돌보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서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정파의 무리에서 진건곤과 소군, 검선과 절검이 앞으로 나섰다. 역시나 천지신교의 쪽에서는 대공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뵙습니다.”

싸움에 앞서 검후는 대공녀를 보고 알은체를 하였다.

대공녀는 그녀를 보고는 안색이 무거워졌다.

“호호호! 전진자에 검후까지? 어려운 싸움이 되겠어. 하지만 승산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조심하게!”

대공녀는 검후에게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검선이 그 모양을 보고 소문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진건곤은 무림맹의 부탁이 아니라 자신의 싸움이라서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검후가 다시 돌아왔다. 그 영향은 작지 않았다.

진건곤이 없었다면 검선과 절검, 검후 정도는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진건곤이 있는 상태에서 검후까지 감당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기실 검선이나 절검보다 더 까다로운 검을 가진 것이 검후였기 때문이었다.

검강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뿐 검후가 쏘아낸 섬광에는 검강의 묘리까지도 포함이 된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른 고수들의 검강을 정면에서 받아내지 못하지 않았겠는가?

“오늘은 선공을 펴야겠어. 사람이 늘었으니 말일세. 그렇지 않은가? 감세!”

쐐액!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공녀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꽝! 꽈드드드등!

대공녀가 쏘아 보낸 백색의 섬광은 또 하나의 섬광에 부딪혀 튕겨져 나갔다.

그런데 그 위치가 문제, 검선의 얼굴 바로 한 뼘 앞에서 튕겨져 나갔다.

검선과 절검, 소군은 놀라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엄청난 백광의 목표가 되었던 검선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허허허! 이제는 검 때문에 놀라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거늘……!”

쐐액! 꽝!

또다시 짧은 호성과 굉음이 터지고는 절검이 뒤로 날아갔다. 절검의 최절초가 펼쳐졌는데도 대공녀의 검을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쐐액! 꽝!

또다시 날아온 백색광이 절검을 노리고 날아갔지만 이번에는 절검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튕겨져 나갔다.

진건곤의 백색광이 사전에 차단하고 나선 것이었다.

“역시! 자네가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나?”

대공녀의 몸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며 사방에 나타났다. 아주 짧은 순간에 그녀가 신법을 여러 번 사용하자 잔상이 남아 허공에 맺힌 것이었다.

진건곤의 이기어검이 백색광을 품고 전광석화처럼 날았다. 이번에는 소군의 귀밑을 지나 날아가 절검의 앞에 나타난 대공녀를 노렸다.

진건곤조차도 정상적인 방식으로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는 대공녀의 공격. 위험이고 뭐고 따질 게제가 아니었다. 막아내는 것조차도 신기할 정도였다.

대공녀의 잔상이 다시 사라지고!

후우우우웅!

진건곤의 몸도 역시 사라진 듯이 보였다.

두 사람이 너무나 빠르게 움직인 탓이었다.

꽝! 꽝! 꽝! 꽝!

연달아 굉음이 터져 나오고 허공에 불똥이 피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가 부딪힐 때마다 잠시 그 모습을 보이던 대공녀와 진건곤의 신형이 이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제껏 보여주던 무공과는 전혀 달랐다.

오늘은 검선과 절검, 소군조차도 세 명이 등을 맞대고 서로를 의지한 채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을 가까스로 막아낼 뿐이었다.

대공녀가 소군을 끼고는 장기전을 펼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끝에 십 성의 공력을 다해 무공을 펼친 탓이었고 진건곤도 역시 그동안 보여 오던 실력보다 더 높은 무공을 선보였다.

대공녀와 진건곤의 숨겨진 무공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 무인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오늘이야말로 끝을 볼 작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허공에 번쩍거리며 나타나는 대공녀와 밤하늘에 떨어지는 벼락만큼이나 빠르게 날아다니는 진건곤.

그리고 둘이 만났다 싶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불똥과 굉음.

두 사람의 싸움은 마치 용권풍이라도 되는 양 주위를 휘저으며 모든 것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이르는 곳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땅거죽이 뒤집히고 바위가 깨져 자갈로 변했다. 그들이 몇 합이라도 주고받으면 그곳에 저수지가 들어가고도 남을 공간이 생겼다.

인간들의 싸움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그 모습, 무시무시한 모습에 그들의 격돌은 바로 광풍이요, 용권풍이요. 태풍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순식간에 둘이 어울려 싸운 무려 오십여 장에 이르는 곳에 제대로 마른 흙의 모습을 남긴 곳은 없었다.

그야말로 땅거죽이 뒤집히고 마른벼락이 치는 천재지변이 벌어진 것이었다.

“가요!”

소군의 목소리였다.

검선과 절검, 소군은 그대로 삼재진을 유지하며 진건곤의 곁으로 다가가려고 했으나 대공녀는 또다시 신법을 펼쳐 그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가요!”

싸움은 삼인이 진건곤의 곁에 서느냐 못 서느냐라는 것이 되어 버렸다.

소군의 소리에 검선과 절검이 깨닫는 것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진건곤의 전력으로 대공녀마저도 여유를 보이지 못하는 지금이라면 자신들의 일 검이 대세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꽈드드드등!

순간을 틈타 대공녀의 이기어검이 날아들고 그곳에 검선과 절검, 검후의 검이 일시에 모여들어 대공녀의 이기어검을 튕겨내었다.

삼인의 합작을 보이고 나서도 삼인이 뒤로 튕겨질 정도였으니 이기어검에 실린 역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진건곤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 일 검을 당당히 서서 받을 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순식간에 허공에 대공녀의 모습이 꽃잎이 날리듯이 많아졌다.

진건곤조차도 어느 쪽으로 쫓아야 할지 헛갈릴 정도였다.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는 신형에 쫓아가려면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몰아일여는 오늘날 진건곤을 있게 한 근원의 힘. 진건곤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는 대공녀를 쫓아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후우우웅!

대공녀는 그들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는 신법을 한꺼번에 수십 회 펼쳐 허공을 가득 메웠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즐길 자들은 싸우지 않는 자들의 권리일 뿐이었다.

대공녀와 진건곤은 상대방을 파악하고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을 느낄 순간도 없었다.

진건곤이 아무리 빨라도 대공녀가 움직이고 나면 그 뒤를 쫓아야 하는 법. 그녀보다 더 빠를 수는 없었다.

찰나!

수십 번의 신법이 만들어낸 찰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공녀에게 그 정도의 시간이면 마음먹은 대로 일을 꾸미기에 충분했다.

우우우웅!

대공녀의 검이 스스로 회전을 하며 검명을 터트렸다.

무시무시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져 마치 용처럼 꿈틀거리며 세 사람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꽈드드드등!

백색의 섬광이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다.

미처 대공녀의 검을 따라 잡지 못한 진건곤은 스스로의 몸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호신강기를 펼쳤다.

부욱!

순식간에 늘어난 진건곤의 몸에서 나온 구체가 삼인을 집어 삼키고는 대공녀의 이기어검마저 튕겨낸 것이었다.

모두가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들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새롭게 땅거죽이 뒤집힐 정도였다.

“대단해! 이기어검조차 튕겨내는 호신강기라니……!”

“아닙니다, 사부님. 대공녀가 신법을 펼치는데 힘을 집중하지 않았다면 호신강기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네는…….”

“막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잠시나마 시간을 벌면 세분께서 막아내는데 도움이 될까 한 것뿐입니다.”

절검과 검선은 그제야 또 한 번의 위기가 지나간 것임을 느꼈다.

“너무 강해요! 이대로 시간이 지나다가는 당해요, 상공.”

“아니! 이제야 승산이 보이는 겁니다. 아무리 대공녀라고 해도 이만한 힘을 계속 쓸 수는 없습니다. 조금만 더 막아내면 우리는 4명. 대공녀는 1명이 되는 겁니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조금만 더……!”

대공녀와 진건곤 일행의 싸움을 보면서 격동하지 않는다면 무인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무인이 아니라 인간으로 분한 승천지주조차도 그 장면을 보면서 흠칫거렸을 정도였다.

‘놀랍구나. 선인도 아니면서 저 정도라니……! 저들 둘이 합공을 한다면 승산을 장담하기 어렵다. 반드시 처음의 기습으로 둘 중 하나를 죽여야 한다.’

승천지주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이라고 불리는 작은 쇠막대를 보았다.

좀처럼 신뢰가 가지 않는 무기였는데 대공녀와 진건곤의 들고 휘두르는 것을 보니 엄청난 무기라는 것을 느꼈다.

문득 대공녀의 모습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말 그대로 선녀라도 되는 듯한 모습.

하늘을 가득 메우는 그녀의 신기에 승천지주는 자신의 목표를 잡았다.

‘저 여자! 놓치면 성가셔진다. 먼저 잡아야 해!’

승천지주는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공녀와 진건곤이 싸우는 도중 자신의 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그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대공녀를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해줄 준비를 했다.

사방이 불똥으로 가득하고 대공녀와 진건곤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신기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천지신교의 운명을 결정짓는 싸움에서 이토록 엄청난 싸움이 벌어질 줄이야.

대대로 마교가 등장할 때마다 천하는 마교의 막강함을 질리도록 느껴야 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오직 한 명의 여인이 나서서 보여주는 무공이었지만 천하가 모인 무림맹과 황제의 힘이 모인 군사를 대상으로 결단코 한 번도 주도권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마교의 비열함과 잔악함을 떠나 무공의 경이로움이 또다시 무인들의 가슴에 무서움을 남겨 놓고 있었다.

퍼버버벙!

천지신교의 진영에 불꽃이 쏘아져 올라갔다.

와와와와와와와!

일시에 천지신교의 진영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물론 그 소리가 퍼져나가듯이 일시에 쇄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늘 천지신교는 승리를 쟁취한다! 온몸을 불살라라!”

“조아로 신의 영광을 재현하라!”

“천지신교에 영광을!”

마찬가지로 무림맹의 진영에서도 투지가 불타올랐다.

“오늘 세상을 혼란시키는 마교를 없앤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전쟁은 오늘 끝이 날 것이오. 우리가 우리 손으로 그렇게 만들어야 하오. 세상을 구원할 것이오.”

맹주와 제갈 세가주의 목소리가 구석구석 퍼져 나갔다.

무림맹의 무인들도 역시 큰 파도처럼 쇄도하며 천지신교의 무리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천지신교와 무림맹이 충돌하는 그 순간에, 당황하는 자가 있었다. 바로 귀제갈.

“어찌 이런 일이……?”

귀제갈은 벌떡 일어서며 신호를 쏘아 보낸 자를 보았다.

고루마군의 수제자이며 고루마군의 이름을 이어받아 또다시 고루마군이 된 자였다.

“이십칠파결이 펼쳐진 후에 진격을 하도로 하였지 않더냐? 명령도 내리지 않았거늘! 어찌된……?”

말을 이어가던 귀제갈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신임 고루마군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시커멓게 죽은 듯한 피부, 눈동자에 초점이 없이 정면만을 향하는 눈. 무엇보다 두 손을 앞으로 치켜든 자세!

“강시……?”

신임 고루마군이 강시가 되어 있었다.

번뜩! 희미한 그림자가 그 앞을 스쳐 귀제갈의 앞에 우뚝 섰다.

청송의 신형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청송의 공명정대함이 아니라 노련한 자의 것이었다. 바로 일기장군!

“하하하하! 이 친구는 가일구층황금공을 익혔더군. 게다가 광룡진천류도 익혔고. 하하하! 아주 좋아! 딱 좋아! 완전히 내 식구야.”

“누… 누구냐? 청송일 리는 없을 테고!”

귀제갈이 어찌 청송을 모르겠는가?

갑작스럽게 떠오른 정파의 최고 고수 중에 하나로서 그 동태를 파악하고 있던 자. 바로 그자가 천지신교의 심장부에 나타난 것이었다.

“하하하! 청송이 아닐 것이라고 누가 그러더냐?”

“청송은 가만히 나두어도 정파 무림의 태두를 이룰 자. 이런 식으로 일을 치르지는 않겠지. 정체를 밝혀라!”

“하하하하! 말한다고 해서 네가 믿을까?”

“말해! 네놈이 감히 나를 능멸한단 말이냐?”

천지신교의 최고 지자인 귀제갈에게 말해도 모른다는 말은 그야말로 모독처럼 느껴졌다.

“하하하! 조아로교는 언제 광룡진천류와 가일구층황금공을 얻었더냐? 내가 그 무공을 전한 자라고 하면 이해가 가겠느냐?”

귀제갈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세… 상에……! 그건 이미 오백 년 전에 벌어진 일이거늘… 감히 누구를 속이려 하느냐?”

“하하하하! 멀쩡한 사람을 강시로 만드는 방법이 그리 쉬운 것이더냐? 멀쩡한 사람을 혈귀로 만들고 욕망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더냐? 그것이 진정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진정 어리석은 일이로고!”

“아…악마?”

“쯧쯧쯧! 조아로교를 믿고 있다고 생각까지 서역의 것이 되어 버렸느냐? 어찌 악마만이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비록 그 수단이 졸렬했지만 세상을 어질게 다스릴 생각이다.”

청송의 몸에서 황금빛이 너울너울 피어 나왔다.

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 진한 황금빛이 퍼져 나왔기에 가일구층황금공이 8층에서 더욱 진보된 것이라고 느껴졌다. 바로 9층공의 황금공이었다.

청송의 몸 뒤로 서광이 비치는 듯하였다.

성스러운 서광이 비치나 그 빛에는 살기가 물들어 있었다.

귀제갈은 자신이 죽을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누구냐? 누구냔 말이다.”

“세상에 태어나 이인자로 끝이 난 사람. 하늘을 향해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것의 위에 올라서기로 결심을 한 사람. 선인이 되었으나 세상에 미련을 끊지 못하고 내려온 자. 나는 바로 하늘과 와룡을 한하며 죽어간 자다.”

“그… 럼 당신이 바로……?

퍼억!

골육이 산산조각이 되어 허공에 비산했다. 귀제갈의 마지막 말은 끝이 맺어지지 못하고 목을 잃은 시체만이 제자리에 쓰러졌다.

청송이 눈을 들어 바깥을 보니 천지신교의 무인들과 무림맹의 무인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대공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싸우고 있으니 무림맹의 전세가 더욱 좋았다. 현저하게 천지신교의 세력이 줄고 있었다.

애초에 이십칠파결로 무림맹의 힘을 반분하여 상대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귀제갈의 죽음으로 아무것도 시행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하하하! 이제 축제를 시작하지! 마교 네놈들이 가일구층황금공과 염정간옥의 검을 퍼트려 준 덕에 일이 더욱 쉬워졌지. 아니? 내 계획대로 움직여 준 덕인가? 하하하하! 하하하하!”

일기장군의 손이 인을 맺고 그의 입에서 진언이 흘러 나왔다.

일기장군의 몸에서는 검은 연기가 솟아 나왔는데 그 진하기가 전날의 고루마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가라! 분노와 광기. 증오와 분노가 승천지주의 힘을 강하게 해줄 것이다. 승천하라! 승천지주!”

검은 연기는 바람이라도 부는 듯이 무인들의 전장으로 향했다.

“또 하나가 남았지. 광룡진천류라 알려져 있지만 염정간옥의 검이라고도 하지. 무저간 지옥의 힘을 현세에 보이거라! 현세지옥!”

또다시 일기장군이 진언을 외우자 고루마군을 이었던 자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강시가 되었음에도 살육의 욕망과 색욕을 참지 못하고 나선 것이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승천지주가 오르고 나는 현세의 위대한 왕이 될 것이다. 하하하하! 이 모든 것은 마교의 짓이지. 나 일기장군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야. 하하하하하!”

한순간, 웃음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일기장군의 신형도 함께 사라졌다.

바닥에 머리 잃은 귀제갈의 시체만이 남아 금방 있었던 일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보일 뿐이었다.

현세지옥!

일기장군이 사용했던 말이 그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정파의 무인들 중에는 아직도 강시로 변할 자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일전의 패배를 딛고 다시 짰던 진용에 새롭게 추가된 고수들 중에 그런 자가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날 진건곤이 치료를 했던 사람들도 역시 발작하여 강시가 되어 버렸다.

염정간옥의 검은 그 피해가 더 심각했다.

오래전에 익힌 자들은 완전히 이지를 상실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베어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힘을 합하여 싸우던 동료의 등에 검을 박아 넣고 사제라 불리고 사형이라 불리고 사부, 제자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아끼던 자들의 머리를 베어내고 등을 잘라내었다.

“빌어먹을 마교의 주구들! 모조리 없애 버릴 것이다!”

“이 개자식들! 인간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한 단 말인가?”

여기저기서 단말마가 들려오고 마교를 저주하는 소리가 끓어올랐다.

마교는 말 그대로 마교!

인두겁을 쓴 마족들의 현신이었다.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을 해대는 종자들.

모두의 마음속에는 마교를 완전히 발본색원하여 뿌리까지 없애고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해졌다.

비교적 염정간옥의 검의 성취가 작은 자들도 모두가 자극받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모두가 살기에 젖어 찢어 죽일 적을 찾고 있었다.

강시가 속출하고 살기 젖은 눈을 번들거리며 먹이를 쫓고 그들의 싸움터는 바로 현세지옥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일대 혼란!

“마교를 용서치 마라! 형제들은 저 마족들을 그 뿌리 하나까지 찾아 없애라!”

이제는 천지신교의 사람들은 아예 마족이라고 불렀다.

아니 가족을 잃고 사부를 잃고 제자를 잃은 그들에게는 마족보다 더한 추물로 보였으리라!

‘이런! 어찌 귀제갈이 이런 실수를? 그리고 강시와 광룡진천류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아! 하늘이 천지신교를 또 버리는구나.’

대공녀는 발아래 벌어진 싸움을 두고 마음이 산란하여 그 공세가 크게 줄었다.

진건곤과 삼인의 고수들도 그 덕에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았다.

“꼭 저런 일을 벌이셔야 했습니까?”

진건곤이 노골적으로 경멸의 뜻을 담아 말을 꺼냈다.

대공녀는 자신의 짓이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믿어줄 리가 없었다. 어쩌면 귀제갈의 머리에서 나온 짓일지도 몰랐으니까.

“승산 없는 싸움이 아닙니까? 이제 그만두시는 것이 어떨지요? 저들의 목숨은 최대한 살려보겠습니다.”

소군의 음성이었다.

하지만 대공녀의 눈은 소군이 아니라 진건곤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대는 왜 새로운 세상을 열지 않으려 하는가?”

“사람들이 그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누군가의 생각으로 세상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사모님의 생각이 퍼지고 퍼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날, 자연스럽게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소수의 선각자만이 그런 생각을 한다면 단지 제도만 바뀔 뿐 사람들의 삶은 똑같겠지요.”

“운남은 이미 바뀌었네. 새로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 남의 것을 빼앗지 않지. 단지 노력하는 것만큼 더 가져가는 것뿐이네. 세상은 이미 충분히 바뀔 수 있는 힘이 있네!”

“언제나 새로운 나라가 생길 때면 그런 꿈을 꿉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지요. 모두가 바뀌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순환하는 것이 고작이겠지요.”

“비겁하네. 다람쥐 쳇바퀴라고 해도 돌려야 하네. 그렇게 돌아간 바퀴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지 않는가? 자네는 그 원동력이 되고도 남을 사람이야. 그것을 외면하지 말게!”

대공녀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눈에는 진신이 가득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저 쳇바퀴에 불과하더라도, 그 원동력으로 남을지라도,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는 진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진건곤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의 손에 백광이 일렁였다.

“이런 힘을 가지고 세상에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겁니다. 이 힘은 세상을 보호하고 지켜주는데 쓰이는 힘이 아닙니까? 사모님이 그 힘을 다른 곳에 쓰셨기에 세상은 이미 요괴들이 판을 치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우리의 힘은 세상을 변하게 하는 힘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방관자일 뿐입니다.”

“흥! 비겁한 소리! 나는 자네를 꺾고 내 갈 길을 갈 것이야. 저것보다 더 험한 혈로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나는 내 길을 갈 것이네!”

대공녀가 가리킨 곳에는 수많은 무인들의 주검이 널려 있었다.

혈로(血路)!

가히 참상에 딱 맞는 이름.

대공녀는 그 혈로를 견뎌낼 힘이 있었던 것일까?

“사모!”

진건곤이 준엄한 목소리로 대공녀를 불렀으나 그 답은 바로 허공에 스스로 떠오른 검이 대신했다.

우우우우웅!

하늘에 떠오른 백광이 스스로 그 힘을 뽐내며 검명을 터트렸다.

제자리에 스스로 회전하며 힘을 모으는 대공녀의 검.

진건곤의 이기어검도 역시 공기를 말아 올리는 회전을 일으키며 그 힘을 모으고 있었다.

[준비하시지요. 이번의 격돌이 있고 나면 잠시 힘을 추스르지 못할 것입니다.]

전력 대 전력의 대결에 있어 진건곤은 그 삼인에게 뒤를 맡겼다.

자신은 오롯이 이번의 격돌에 힘을 쏟아 부을 작정이었다.

후우우우웅!

후우우우웅!

두 개의 회오리가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허공의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했다.

목숨을 건 싸움이 진행되는 무인들조차도 그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번쩍!

꽈드드드드등!

이제껏 있었던 충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땅거죽이 뒤집히고 바위가 산산이 부서진 적이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섬광이 일어나며 그 힘이 팽창하더니 그 힘에 휘말린 모든 것이 가루로 부서져 내렸다.

인간의 힘이 아닌 다른 존재의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인세에 구전으로도 전해지지 않았던 힘의 충돌이었다.

진건곤과 대공녀는 뒤로 튕겨져 날아갔는데, 대공녀가 더 강했을까?

진건곤의 입가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아 내상을 입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소군은 진건곤을 받아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삼인의 고수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발휘하며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린 대공녀를 쫓았다.

그녀가 힘을 추스르기 전에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십 성의 힘을 넘어 진원지기의 힘까지 끌어올려 대공녀를 쫓았다.

소군과 검선, 절검의 섬광과 이기어검. 강기로 만들어진 그물이 대공녀를 쫓았다.

쐐액! 번쩍!

한순간에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울리고 무언가가 나타나 검광과 이기어검, 강기를 뚫고 지나가 버렸다. 모든 것이 순간적인 일이었다.

퍼억!

그리고는 그 무언가는 대공녀의 몸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그냥 보기에도 대공녀의 상반신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그 무언가가 광소를 터트리자 시선이 절로 모여들었다.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 하찮은 것들끼리 싸움을 하고 있구나. 고맙다. 내 악선이 되어 다시 나타나면 너희들에게 더한 고통과 분노를 안겨주마! 하하하하하! -

바로 승천지주였다.

어느새 인간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의 발은 대공녀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 있었고 그 끝에는 대공녀의 심장이 잡혀 있었다.

태연하게 심장을 잡아 입으로 옮기더니 심장을 오도독 씹어 먹었다.

오도독!

전장의 소리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는데 오직 그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들려 모든 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염정간옥의 검에 이지를 상실한 자들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환희를 맛보는 표정을 지었다.

“이노옴!”

쐐액!

엄청난 호통소리가 들리고 백색광이 사위에 가득해져 날아들었다.

바로 힘을 추스른 진건곤의 반격이었다.

이기어검은 날아가며 그 그림자를 낳고 또 낳아 수십, 수백 개에 달하는 듯하였다. 마치 눈이 내리는 듯이 허공을 가득 메운 검들이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바로 승천지주!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 어림없다. 이 정도로는! -

승천지주의 입에서 하얀색 실이 쏟아져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곧장 그물 모양이 되어 진건곤의 이기어검을 모조리 쓸어 담아버렸다.

진건곤의 검마저 그물에 갇히고 말았는데 승천지주는 그 물을 돌돌 말아 입에 넣고는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어 버렸다.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 이제는 못다 한 승부를 해볼까? 아니. 이제는 사냥 시간이구나. -

승천지주는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콰아아앙!

섬광과 이기어검, 강기의 그물이 승천지주를 때린 소리였다.

하지만 승천지주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듯이 태연하게 서 있었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삼인의 고수를 보았다.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하하하! 목숨을 재촉하는구나! -

승천지주의 입에서 가느다란 백색의 실이 쏟아져 나왔다.

후우우웅!

공기가 일렁이고 어느새 진건곤이 그들의 앞에 서서 둥근 구체를 만들어 내었다.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너는 나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

하얀색 실이 진건곤의 구체를 감싸고 엄청난 힘으로 조여 오고 있었다.

찌지지지지! 찌지지지지!

집채만 한 바위에 격중되어도 모양 하나 변하지 않던 진건곤의 구체가 일그러져 버렸다.

그 얇은 실에 어떻게 그런 힘이 실릴 수 있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어서 피하시오. 얼마 막지 못하오!”

진건곤의 두 손이 허리춤의 뒤로 향해지고는 손바닥을 활짝 벌렸다.

삼인의 고수가 그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소군의 검과 절검의 검이 진건곤의 두 손에 잡혔다.

진건곤의 구체가 한순간 그 형체를 잃고 사라지자 하얀색의 실은 엄청난 속도로 오그라들었다.

터덩텅!

진건곤의 검이 하얀색의 실을 절묘하게 쳐내자 삼인의 고수들은 상처 하나 없이 그 틈을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진건곤도 함께 그 틈을 빠져나왔다.

우우우우웅!

진건곤의 두 손 위에서 두 개의 검이 스스로 몸을 회전시키며 돌기 시작했다.

돌개바람이 일고 그것이 광풍이 되기까지는 순식간에 불과했다.

지상의 흙과 잘게 쪼개진 바위들이 휘말려 올라오더니 급기야는 피가 묻은 시신들까지 말려 올라왔다.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 끝까지 가보자는구나. -

승천지주는 더 사납게 울음을 내고는 백색의 실을 뽑아내 그물을 만들어 내었다. 그물의 크기는 삼십 장에 달해 진건곤의 신형마저 그 품에 담아 버렸다.

두 개의 검과 그물의 싸움.

검이 그물을 찢느냐 찢지 못하느냐가 그 싸움을 결정지을 것이었다.

“하아아아아아!”

진건곤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제껏 가지고 있던 모든 힘을 담아서 두 개의 이기어검을 승천지주에게 쏘아 보냈다.

그리고는 진건곤은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허공에 떠 있을 힘마저 모두 담아 이기어검에 쏘아낸 탓이었다.

그렇게 진건곤의 모든 것을 담은 두 힘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쏘아져 나갔다.

엄청난 힘이 하얀색 그물과 부딪히고 그곳에서 엄청난 소리와 함께 끝없는 불똥이 튀어 올랐다.

불똥은 세상을 모두 밝히기라도 할 듯이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가가가가앙! 가가가가강!

두 개의 검은 무서운 기세로 쏘아져 나갔지만 하얀색의 실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기음만을 토해내며 회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승천지주의 얼굴이 이상하게 움직였다.

아마도 기쁨의 웃음이었으리라!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 이제 끝이구나! 지상에서의 이천오백 년도 이제는 끝이야. -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또 한 번 승천지주의 울부짖음이 들려 나오고 서서히 하얀색의 실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땅에 떨어진 진건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두 개의 이기어검이 승천지주의 힘을 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 순간, 승천지주의 뒤쪽에서 홀연히 백색의 섬광이 피어올랐다.

그곳은 대공녀의 시신이 떨어진 곳이었다.

백광의 중심에서 바로 대공녀의 신형이 일어나고 있었다. 승천지주에게 관통을 당한 가슴에는 일렁이는 백광이 가득해 있었다.

바로 전날 즉사하고도 남을 상처를 입고도 일렁이는 백광으로 몸이 되살아난 진건곤처럼 그녀도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었다.

핏! 핏! 핏! 핏!

대공녀의 신형이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진건곤의 곁에 나타났다.

모든 힘을 잃고 쓰러진 진건곤이었는데 대공녀의 손이 진건곤의 가슴을 향해 뻗어 나왔다.

“상공!”

“건곤아!”

소군과 절검의 소리가 하늘을 찢어 울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하지만 진건곤은 손을 들어 그녀의 공세를 막거나 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 모든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몰아일여의 능력으로 그녀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려 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대공녀의 손에서 일순간에 백광이 일렁이고 한순간 폭발이 일어나듯이 눈부시게 퍼져 나갔다.

그야말로 섬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백색광이 흘러나와 진건곤에게 흘러 들어갔다.

“청… 명… 을… 잘…….”

희미하고 작은 소리가 울리고 대공녀의 몸은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대공녀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그 뜻은 알 수 있었다. 바로 청명을 부탁하는 말이리라!

승천지주는 아직도 진건곤이 쏘아낸 이기어검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진건곤의 신형이 또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진건곤의 두 손이 검결지를 만들자 두 개의 이기어검에는 백색의 빛이 더욱 강해졌다.

대공녀와 진건곤의 힘은 똑같은 깨달음의 영력. 진건곤에게 그 힘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것이다.

서서히 강해지는 두 개의 빛은 섬광처럼 밝아졌다.

전날 백노신이 승천지주를 잡고자 보였던 그 힘에 육박해 있었다.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 말도 안 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이더냐? 어떻게 죽은 자들이 되살아난단 말이냐? -

“네놈도 알다시피 우리는 너희들을 없애기 위해 태어난 존재. 인간의 힘만으로는 너희들을 상대할 수가 없지. 이게 바로 네놈들을 상대하기 위한 힘이다. 이제야 온전히 하나가 되었으니 네놈 같은 요괴는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야. 이제는 끝이다. 가라!”

진건곤의 검결지가 앞으로 내뻗어졌다.

후아악!

두 개의 검은 너무나 쉽게 승천지주의 그물을 뚫고 승천지주의 몸을 뚫고 나갔다.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 말도 안 돼! 이천오백 년을 기다려온 순간이거늘! 이럴 순 없다. -

“가아아아아! 가아아아!”

승천지주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또 질렀지만 두 개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또다시 돌아와 승천지주의 몸을 뚫고 또 뚫어내었다.

승천지주의 목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으나 마지막 그 한 조각까지도 박살을 내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겠다는 식이었다.

버버버버버벅! 버버버버벅! 버버버벅!

벼락이 몰아치듯이 섬광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진건곤의 이기어검이 멈추었다.

그것이 모든 것의 끝이었다.

두 개의 검은 허공에서 갈라져 비행을 하더니 주인의 두 손으로 돌아가 버렸다.

엄청남 광경에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무림인들은 넋이 나가고 말았다.

“저건 인간의 무공이 아니구나…….”

“하아…….”

“이런…….”

“무량수불!”

“원시천존!”

“나무아미타불!”

너무나 엄청난 장면에 진건곤이 보인 위력은 무공으로 이룰 수 없는 것임을 자연히 깨달았다. 누군가가 설명하지 않아도 인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절망처럼 한숨과 도호, 불호 등을 탄식하듯이 뱉어냈다.

우우우우웅!

구체가 커지며 진건곤의 신형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의 몸 주위에는 백광이 가득해 실로 인간이 아닌 듯하였다.

모두의 눈이 한곳에 모이자 진건곤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후 아무도 가일구층황금공과 광룡진천류를 익히지 말라! 난 전진자가 그것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또다시 진건곤의 손에서 백광이 일어나고 백광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갔다.

하늘 높이 올라간 백광은 섬광이 되었다.

수천 가닥으로 갈라진 백광이 허공을 가득 메우고 쏘아져 나갔다.

퍼버버버벅! 퍼버버버벅! 퍼버버버벅!

비가 오듯 한 소리가 이어지고 백광은 정확하게 무인들의 단전에 틀어 박혔다.

“가일구층황금공과 광룡진천류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봉인하였으니 마음 놓고 살아가라. 그것을 운용하는 자에게 관용은 없다. 오직 죽음만이 있을 것이다.”

진건곤은 그 말만을 남겨 놓고는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전쟁도 천지신교도 모두가 인간들의 일이라는 듯이.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양.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누님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진건곤은 세상의 일에서 잊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일기장군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자신이 몇 백 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탓에 아무도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간다면 필시 성공할 것이오. 실패한다고 해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진건곤이 뿌려 놓은 백광의 한 줄기가 자신의 단전에 박힐 줄이야.

자신의 공력은 모두가 가일구층황금공으로 얻은 것이었다. 그런데 진건곤의 영력이 자신의 단전에도 스며들어 그것을 막아 놓았다.

만일 그것을 운용한다면 언제든지 처단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미 선인의 경지에 올라 버린 진건곤이었으니 자신이 심어놓은 기운의 변화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는 것이었다.

낙담한 표정을 지은 일기장군이었는데 문득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 자가 있었다.

뒤로 돌아보니 바로 백노신이었다.

일기장군은 혼비백산으로 놀라 황급히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 하였다. 바로 청송으로 돌아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등 뒤에 무언가가 있어 자신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야말로 요지부동. 전신이 꼭 잡혀 손가락조차도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허허허! 이제는 돌아가십시다. 자신이 한 일의 죗값을 피하실 분은 아니지 않소? 이미 선계는 당신의 행적을 모두 알고 있소. 내 멀리 해동에서 이곳까지 들락거렸을 이유가 무엇이겠소? 모두가 선계의 결정이오. 부적을 붙였으니 도망가지 못할 것이오. 자, 이곳으로 오시오.”

청송의 몸에서 희끗한 안개 같은 것이 뽑아져 나와 백노신의 손바닥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안돼! 아아 안 돼……!”

마지막 그 순간까지 도망을 치기 위해 온 힘을 다 쓰는 일기장군이었다.

이미 백노신의 도포데 들어가 부적이 들썩거리며 살아 있는 듯이 소매를 흔들어 대었다.

“허허허! 한순간의 욕심인 것을 이렇게 모질게 세상을 휘저어 놓아야 하겠소? 선계에 들고서도 그 한을 잊지 못하다니……. 쯧쯧쯧!”

백노신의 한숨 속에는 덧없음과 허무함이 담겨 있었다.

진건곤이 선인의 능력을 보이고 사라진 후, 천지신교는 지리멸렬(支離滅裂)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잔당들은 모두가 물러나 십만대산으로 물러났다.

천지신교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그들은 스스로를 마교라고 불리며 강호인으로 남기를 자처했다.

관과 무인들의 토벌이 있을 때마다 악독한 수단을 부려가며 생명을 지켜냈기에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집단으로 변해 버렸다.

또한 아미에 남았던 운현과 청명, 진려경은 속세로 나와 소군의 아비가 있는 곳에 터전을 잡았다.

그곳에는 낭인들의 본부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나 그들은 아무런 텃새도 받지 않았다.

진건곤이 보여주었던 신위(神位)는 모두의 가슴에 남아 누구도 감히 그들을 가벼이 여길 수가 없었다.

진건곤이 전혀 보이지 않자 등선하여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이 떠돌았지만 소군은 아들 둘에 딸 셋을 낳아 자손을 퍼트렸다.

그런데도 전진자의 모습을 본 자는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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