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58화 (58/61)

제6장

“모두 물러서라!”

대공녀의 소리가 울리자 천지신교의 무인들은 모두가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대공녀가 번쩍번쩍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천지신교와 정파의 전선을 움직이자 싸움이 끊어져 버렸다.

그런 후에야 능쟁십고는 급하게 그녀를 뒤따라 쫓아가며 공격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녀의 신법은 너무나 신묘한 구석이 있어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그 순간에야 그녀의 종적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미리 앞질러 갈 수가 없었다.

“오늘은 이만 한다.”

대공녀가 선언을 하듯이 입을 열자 천지신교의 무인들은 모두가 물러섰다.

그런 그녀를 보며 능쟁십고는 아무도 그에 반하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대공녀는 분명 자신이 가진 힘을 다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능쟁십고는 십 성의 공력으로 대공녀를 상대하고도 우위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십 성의 공력을 사용한 탓에 안 그래도 내력의 고갈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제안을 반겨야 할 입장이었다.

“흥! 무슨 소리!”

정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능쟁십고의 안색이 구겨졌다. 꼭 돌아가는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나서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었는데 너무나 중요한 순간에 그런 자가 나선 것이었다.

번쩍!

백색의 섬광이 번쩍거렸다.

한순간 길게 늘어지더니 백색의 띠가 길게 놓인 것 같았다가 고무줄이 늘었다 줄어드는 것처럼 줄어들며 다시 한 개의 검의 길이로 줄어들었다.

그 검은 대공녀의 뜻에 반했던 자의 정수리 앞에 둥둥 떠 있었다.

그 검의 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먹이를 노리를 독사의 혓바닥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놀랍게도 대공녀가 펼쳐낸 이기어검!

무인들이 너무나 빠른 백광에 놀라기도 전에…….

퍼버버버벅!

그 한 수에 피가 튀었다. 그것도 아주 많은 피가!

대공녀가 뻗어낸 한 번의 초식은 여러 개의 피분수를 만들었는데 그 수효가 무려 스무 개!

가볍게 검을 날린 것만으로도 절정의 고수들만 모여 있는 곳에 일 검에 스무 개의 머리를 끊어낸 것이었다.

투두두두둑!

잘려진 머리는 그제야 땅바닥에 떨어지며 묵직한 소리를 내었다.

망연자실!

능쟁십고는 그 장면을 보면서 치를 떨어야만 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마녀를 처단하기 위해 나설 수는 없었다.

혼자 나선다면 그 누구라도 좀 전과 같은 장면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불만이 있는가?”

대공녀의 음성이 고요함을 깨고 나지막이 울렸다. 수천의 무인들이 모여 있는데도 고요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

그 차이를 만들어낸 대공녀의 신위!

사내는 겁에 질려 입을 열지 못하고 고개를 빠르게 흔드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을 뿐이었다.

“흥! 너희들을 없애는 것이 어려워 살려둔다고 생각하느냐?”

대공녀가 검결지를 지었다.

이미 대공녀는 검선보다 더 윗길의 이기어검을 펼치는지라 검결지를 지을 필요가 없었다.

특별히 검결지를 짓는 것은 검을 부리는데 있어 평소보다 더 힘을 잘 전달할 필요가 있을 때 펼치는 것이었다.

검결지가 하늘을 향하자 백색의 광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아!”

대공녀의 입에서 폭갈이 터져 나오자, 백색의 섬광이 퍼져 나왔다.

놀랍게도 백색광으로 만들어진 검이 수백여 개가 나타나 전광석화처럼 날아가 정파의 진영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치 수백 개의 벼락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양, 무서운 장면이 만들어졌다.

“커헉!”

“컥!”

“크아아악, 크악!”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벼락은 너무나 빨랐다. 일류고수 이상의 절정의 고수들이 모였는데도 그 수백 가닥의 검을 피할 자가 없었다.

한 번의 출수에 대략 오십여 명의 수명이 끊어지고 상처를 입고 쓰러지는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정파의 무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 대공녀가 보인 한 수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었다.

능쟁십고에게도 그랬지만 하수인 자들에게는 반항조차 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 처형에 불과했다.

“와와와와와와와!”

“무신출세! 천지신교! 강림여신!”

“무신출세! 천지신교! 강림여신!”

천지신교의 진영에서 엄청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반대로 정파의 진영은 더할 수 없는 공포와 고요함에 빠져들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피한다는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대공녀의 무공을 보니 벼락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내일 다시 싸운다. 누가 또 반대하겠느냐?”

대공녀의 말이 일방적으로 흘렀다.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이미 큰소리를 쳤던 자는 수백 개의 검 중에 일부에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무인의 수는 수천 명의 차이를 보이지만 대공녀 하나 만으로도 그 차이를 메우고도 남았다.

대공녀가 떠나고 나자 능쟁십고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허어! 노부가 꿈꿔오던 필생의 목표를 눈으로 보고 말았소. 저만한 검을 얻는다면 당장 죽어도 좋겠다고 빌었거늘… 그런 검이 저 마녀의 손에서 피어나다니……!”

검선이었다.

천하제일에 가장 가까웠다고 평가 받았던 검선이 꿈에 그리던 검이라니……!

대공녀가 보여준 일수는 너무나 무서워 정파의 무인들에게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오직 한 명. 소군만이 다른 상념에 빠져 있었다.

싸움에 나서기 전에 진건곤에게 대공녀의 무위를 물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공, 천지신교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대공녀의 무위가 생각보다 높았소.”

“그럼 상공께서도 대공녀를 막지 못한단 말입니까?”

“아니요. 아마도 막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소.”

“그게 무슨…….”

소군은 진건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어찌어찌 저치를 막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오. 하지만 생사를 걸고 승패를 보라고 한다면 그다지 자신은 없소.”

“하아! 상공이 그리 말할 정도라면 앞으로의 싸움은 지난한 것이 되겠군요.”

소군은 진건곤의 진정한 무위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진건곤이 승산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볼 때 대공녀의 무위가 얼마나 높은지를 상상해 보니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오. 각오해 두는 게 좋겠소.”

진건곤의 말을 통해 그녀가 누구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힘을 보일 줄이야.

“상공. 강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너무나 큰 힘의 차이에요. 두렵기조차 합니다.”

대공녀는 무인들을 모두 물려둔 후에 또다시 홀로 움직였다.

그녀가 향한 곳은 바로 황제의 군사와 천지신교의 군사가 싸우는 곳. 십만과 3만의 대병력이 싸우느라 그 끝도 보이지 않는 전장에 다가선 것이었다.

“갈!”

대공녀의 목소리가 사자후처럼 터져나갔다.

그녀의 사자후를 들은 자들은 모두가 정신이 나간 듯이 그 자리에 멈추게 되었다.

또다시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나타난 곳은 더 깊은 싸움터. 그곳에는 그녀의 사자후가 미치지 못했었는지 싸움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스슷!

전장의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솟아난 대공녀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주위의 사병들이 오히려 그녀의 평온함을 깨지 않으려고 주위에서 벗어날 정도였다.

그녀는 천천히 호흡을 들이 쉬더니 또다시 일갈을 터트렸다.

“갈!”

사자후가 또다시 터져 나가자 그녀의 음성이 미치는 곳의 병사들은 모두가 정신이 나간 듯이 멈춰 서고 말았다.

그렇게 몇 번을 사자후를 펼치자 천지신교와 황제의 군이 만나고 있던 전선에 더 이상 검을 휘두르는 자가 없었다.

“신교의 교인들은 물러서라!”

천지신교의 병사들은 모두가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사자후의 영향에 넋이 나간 자들까지 모두 이끌고서!

“무슨 일이더냐?”

뒤쪽에서 지휘를 하던 지휘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엄청난 소리가 들리더니 전선의 병사들이 모두 넋이 나간 듯이 멈춰 서는 것이 아닌가?

천지신교의 병사들이 뒤로 물러서는 데에도 아무런 공격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공격! 공격! 공격하라! 적이 물러설 때가 공을 세우기 가장 좋을 때니라! 공격! 공격!”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목소리에 반응을 했을까? 전선과 지휘관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던 사병들이 정신을 차린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전선에 병장기를 휘두르던 그 모습 그대로 굳어진 사병들은 여전히 움직일 줄을 모르고 있었다.

대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 날아왔다.

아니! 무언가 번쩍였다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툭!

세상이 한 바퀴를 돌아 허공에 부딪혔다.

그것이 그가 느낀 전부였다.

백색광이 번쩍였다고 느낀 순간 목이 떨어져 땅에 굴러 떨어진 것이었다.

대공녀는 천지신교의 병사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앞으로 내질러 신형을 달렸다.

그녀가 가는 곳은 황제군의 깊은 곳이었다.

“막아! 막아! 마녀다. 마교의 마녀다.”

“마교의 마녀다.”

웅성거림이 퍼지고 도검 등의 병장기가 대공녀를 향했다.

파가가가가캉!

퍼버버벅! 퍼버버버벅!

대공녀를 향했던 병기들은 무엇 때문에 그리되었는지도 모르게 산산이 부서져 사병들에게 쏘아졌다.

암기의 고수가 뿌린 것처럼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터져나가는 병기들은 사병들의 머리와 가슴 등에 사정없이 박혀들었다.

단 한 번의 공격 시도로 주변의 사병들이 모두 중상자가 되어 바닥을 굴렀다.

“크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제발……!”

한순간에 만들어진 아수라장에 대공녀는 경공을 펼쳤다. 사병들이 보기에는 빠르게. 그녀의 본신의 능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간혹 대공녀를 보고 병기를 뽑은 자들이 있었지만 그런 자들이 나설 때마다 그들의 병기는 산산조각이나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다행히 그런 자들이 나서지 않을 때는 대공녀가 지나도 아무런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식경을 거쳐 대공녀가 달려든 곳은 바로 적염수호장이 군영을 펴고 있는 본진의 군영이었다.

“멈춰라! 마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수많은 부장들이 나서서 군영의 앞을 몸으로 틀어막았다.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검이나 도 등의 무기를 빼어 든 자는 없었다.

이미 그녀가 해온 일들이 전해진 탓이었다.

“흥! 적장이 있는 곳이 이곳인가?”

“그렇다. 마녀! 폐하는 마녀와 나누실 말이 없으시다. 돌아가라!”

부장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대공녀가 천천히 움직인 탓에 이미 적염수호장은 그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군영에 남아 있는 자는 적염수호장의 대역을 맞은 부장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흥! 나는 적장의 수급을 받기 위해 온 자. 너희들이 병기를 뽑지 않는다고 해도 다를 것은 없다.”

번쩍! 번쩍! 번쩍!

피웃! 피웃!

툭! 투두두두둑!

검광이 번쩍이자 대공녀의 십 장 안에 서 있던 부장들의 목이 일제히 떨어져 내렸다.

아무도 그녀의 검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하고 번쩍이는 검광만을 보았을 뿐인데 이미 그들의 생사가 갈리고 만 것이었다.

“청랑대는 나서라!”

무공을 배운 적이 있는 자들로만 구성된 청랑대를 호출하자 먼저 암기사 대공녀를 노리고 쏘아져 들어왔다.

가느다란 우모침과 삐쭉한 고리가 솟아 있는 독질려를 비롯해 쇠구슬과 표창 등이 어지럽게 날았다.

“흥!”

대공녀의 두 손이 움직이자 그녀의 주위에는 광풍이 일어났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광풍은 그녀의 두 손 사이에서 맴돌고 있었다.

두 손이 움직이자 광풍도 역시 따라 움직였다. 놀랍게도 청랑대가 날린 온갖 암기들이 모두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모여들었다.

바로 광풍을 조정하는 대공녀의 두 손 사이에 모여든 것이었다.

“갈!”

그녀의 사자후와 함께 암기가 사방으로 쏘아졌다.

퍼버버버벅! 퍼버버버버벅!

툭툭툭! 툭툭툭!

암기가 박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청랑대의 신형이 그대로 땅바닥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마녀! 죽어랏!”

청랑대의 인원 중 극히 일부의 자들은 그 암기를 피해 하늘로 치솟았는데 그들이 병기를 휘두르며 대공녀를 향해 쏘아져 갔다.

퍽! 퍽! 퍽!

허공에서 피분수가 터졌다.

삼인의 몸은 무언가에 의한 것인지도 모르게 허공에서 피를 흩뿌리며 그대로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세상의 고수만 모인다는 무림맹도 아니고 군사들로만 이루어진 이곳에는 대공녀의 수법을 알아볼 고수들이 전혀 없었다.

그야말로 무인지경.

모든 것은 대공녀의 뜻대로. 십만이 모인 군세에 그녀를 당할 자가 없었다. 대공녀와 맞서 싸운다면 대공녀라고 해도 언젠가는 그 힘이 떨어지겠지만 대공녀는 힘이 떨어지면 도망가면 그뿐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녀! 무슨 짓이냐?”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능쟁십고 모두가 경공을 펼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흥!”

대공녀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능쟁십고의 육인은 대공녀에게 그대로 달려들지 않고 그녀를 포위하고 나섰다.

“호호호! 다시 겨루어 보자는 것인가?”

대공녀의 검이 백광이 되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삐익!

공기를 찢어발기며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개중에 먼저 가장 약한 파검을 노리고 날아간 검인데 그 옆에 있던 검후와 절검의 검이 동시에 뻗어 나왔다.

파검의 검이 대공녀의 검을 비껴내었다.

하지만 비껴낸 검인데도 굉음이 울리고 땅거죽이 뒤집어졌다.

너무나 대단한 경력이 담겼던지라 비껴내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능쟁십고라고 불리는 자들만이 가능할 정도였다.

파검이 그 일초를 비껴내는 사이 절검과 소군의 검이 대공녀를 공격해 들어왔다.

대공녀는 검을 놀려 그들의 검을 차단하면서도 뒤쪽에 서 있는 검선 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전혀 공격해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공녀로서는 만에 하나 그들의 공격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공녀는 연달아 초식을 펼치지 못하고 초식을 접어야만 했다.

몇 번의 공방이 그런 식으로 흘렀다.

공방이 오고 갈수록 대공녀의 검은 답답해지고 능쟁십고의 공격이 살아났다.

진법을 펼친다면 능히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대공녀가 돌연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대단해! 대단해! 진식이라는 것이 이런 효과가 있었어. 이런 식이라면 어지간한 실력 차가 있다고 해도 버틸 수가 없겠군. 하지만 말이야. 난 여태껏 이런 것을 상대해 본 적이 없어. 바로 이런 이유지.”

또다시 대공녀가 사라지고는 다른 곳에 나타났다.

화령신에게서 얻은 신묘한 신법은 진식을 아무리 정교하게 유지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제집처럼 자유롭게 나갔다 들어왔다가 마음대로 될 뿐이었다.

“아아……!”

파검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미 대공녀의 신법이 신묘한 것을 알고 있었으나 진식으로 그녀를 압박하다 보니 그녀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만큼 그녀의 무공은 대단한 것이어서 파견 같은 늙은 고수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마저 잊어 먹을 정도의 압박감을 보이고 있었다.

어쨌건 그녀의 신법을 막지 못하는 이상. 능쟁십고의 연수합격이라도 그녀를 막을 방법이 되지 못했다.

“호호호! 오늘만 날이 아니지. 그대들의 얼굴을 보아 그냥 가도록 하지. 하지만 내일은 또 다를 거야. 목을 잘 닦고 있으라고, 적염수호장! 호호호호!”

대공녀는 길게 꼬리를 남기고는 허공으로 솟구쳐 사라져 버렸다. 10만 군세의 본영에는 대공녀가 뿌리고 간 무공의 흔적이 가득했다.

10만 군세의 최정예라는 천랑대는 부상자 몇몇만 남아 전멸이 되다시피 했고 그녀를 막아섰던 부장들의 목숨이 날아갔으며 대공녀는 유유히 사라졌다.

군영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마치 상갓집을 방불케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싸울 자가 어떤 자였는지 알게 된 것에 불과했는데도 이미 절망의 벽에 가려진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폐하, 피하셔야 합니다. 마녀가 이곳을 향하고 있답니다.”

“무엇이? 10만의 군사로 둘러싸인 나를 찾아오는 자가 있단 말이냐?”

“무인지경.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폐하!”

광우는 말을 하면서 슬그머니 진건곤을 바라보았다.

적염수호장이 그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바로 전진자가 한 번 보여주었던 모습을 뜻했으리라.

“국양! 네 입으로 전진자야말로 강호무림의 최고수라고 하지 않았더냐? 난 그런 자에게 호위를 맡겼다. 진정 전진자가 있는 대도 피해야 한단 말이더냐?”

“그… 건…….”

적염수호장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만 광우였다.

“대공녀라면 피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제껏 적염수호장을 둥근 구체에 넣어 놓고는 아무런 일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명상만을 하고 있었던 진건곤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런가?”

적염수호장은 호기심에 가득한 자처럼 되물었다.

“홀로 싸운다면 지지 않을 것이나 폐하를 옆에 끼고 그녀를 상대할 순 없습니다. 그녀는 적어도 저와 호각을 이루는 무인입니다. 혹덩이를 끼고 싸워서 이길 상대는 아니까요.”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러니까 지금 내가 혹 덩어리란 말이구나. 하하하하! 하하하!”

적염수호장은 크게 웃고 나서는 눈을 번뜩였다.

“과연! 이래서 관과 무림은 연관을 끊고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군. 무림을 지배하고자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갈 수가 있으니까 말이야.”

“폐… 폐하!”

광우가 깜짝 놀라며 입을 열려고 했으나 적염수호장이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아니다. 현실이 그런 것을… 이 처지가 되어 보니 깨달아지는 것도 있네. 과연 무림은 참으로 기인이 많은 곳이야.”

적염수호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자, 가세! 혹 덩어리를 이끌고 어디로든 가세나.”

광우는 아직도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적염수호장을 모시는 일을 잊지는 않았다.

군영의 천막을 걷어내며 뒤로 빠져나갈 길을 열었다.

대공녀의 출현으로 적염수호장이 움직이자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같이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은형술을 쓰고 움직였는데 은밀하기 짝이 없어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회위하는 것이 일인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진건곤에게는 그들의 움직임이 훤히 다 보이는 것들이었다.

[형님. 수호위들에 대해서 알아 보셨습니까?]

[아……! 아직일세. 너무 빨리 전쟁이 일어나는 통에 물어보지 못하였네.]

[30여 명이 우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너무 많지 않은가 싶습니다. 저들만이라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대공녀라고 만난다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허허험! 아직도 대공녀라니. 이제는 마녀라고 불러야 하네.]

[알겠습니다.]

뒤쪽에 따로 마련된 군영에 머물러 있던 적염수호장이었다. 물론 진건곤은 구체를 풀은 적이 없어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마침 적염수호장은 도망치듯이 뒤로 물러나 있는 자신을 보며 자신의 수호위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수호위들은 신형을 드러내라!”

적염수호장의 말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 정체를 드러내는 자는 오직 한 명에 불과했다.

“폐하. 부르셨습니까?”

“지 대인 오랜만일세. 가까이 두고도 얼굴을 보는 일이 참으로 적구먼 그러네. 미안하이. 내 평소 자네들을 생각하지 못했네만. 오늘과 같이 쫓기고 나니 고마움을 새롭게 느끼네. 자네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지네. 모습을 드러내 주게.”

“네, 폐하!”

수호위들의 수장이 명령을 내리자 그들이 은형술을 풀고 나타났다. 그들의 수효가 모두 서른 명. 진건곤이 헤아렸던 수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다행이네. 위험한 자는 없군.]

[글쎄요. 어쩌면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슨 말인가? 더 위험하다니?]

진건곤의 뜻밖의 말에 광우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기운이 칙칙한 자들이 제법 섞여 있습니다.]

[당장 골라내야 하지 않겠나?]

[글쎄요. 좀 쉽지 않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얼굴을 보였던 자부터 수호위와는 전혀 맞지 않는 기운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폐하는 저 사람을 신용하는 듯하니,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뭐. 하지만 그런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용하는 사람이 다르게 사용한다면 별개의 일이니 그것을 이유로 사람을 골라낼 수도 없습니다.]

[지 대인이?]

당장 광우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진건곤이 당장 언급한 자는 지 대인이라고 불렸다.

적염수호장의 수호를 책임진 자로서 그를 모셔온 것이 이미 몇 해를 넘겨 꽤나 신임을 얻고 있는 인물이었다.

광우와 진건곤이 전음을 주고받는 사이, 적염수호장은 그들에게 일일이 격려와 감사의 말을 전하고는 이 일이 끝나고 나면 후한 상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런 장면을 보는 광우의 눈빛은 복잡해졌다.

“허어! 마녀를 잡아둘 방법이 전혀 없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보법이 문제요. 그리 신출귀몰한 보법이 있으니 진법을 짜도 소용이 없소. 어찌 하늘은 그런 마녀에게 그런 보법을 주었는지……!”

“답답한지고! 정말 답답한지고!”

무림맹으로 돌아온 능쟁십고는 회의를 거듭할수록 답답함을 느꼈다.

시간을 두고 논의에 논의를 하여도 결론은 한 가지.

마녀를 잡아두기 위해서는 홀로 능히 그녀와 맞설 수 있는 호각의 무인이 있어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타의 고수라면 수효의 이득을 빌어 진법으로 윽박지르면 끝이 날 터였지만 그녀 신법은 신묘하기 짝이 없어 진법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다수의 하수가 소수의 고수를 상대하는데 최상의 방법이 진법이었거늘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니 더 이상의 방도가 나오지 못했다.

방법을 찾지 못하자 시간이 지날수록 장문인들과 능쟁십고의 눈은 소군과 맹주에게 쏠렸다. 그 눈은 바로 전진자를 부르라는 압박이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상공의 뜻은 이미 오래전에 밝혔습니다. 상공은 이미 무림의 명리에 관심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소군은 단호하게 전진자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곳에 와 있지 않소? 전혀 관심이 없지는 않은 것 같소만…….”

곤륜의 장문이 말을 꺼냈다.

“지금 이곳에 오신 것은 관에 있는 지인의 부탁 때문입니다. 여러 번 도움을 받았던지라 거절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허허! 사문의 부름은 거절하고 지인의 부름은 받아들인다? 허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로군.”

무당의 신임 장문이 혼잣말처럼 한 말이지만 이번 사안에 가장 민감한 부분이 아니던가?

화산의 입장을 생각하여 아무도 뱉어내지 않았던 말이었다.

“상공께서는 더 이상 화산의 문하가 아니시니 그 말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소군의 말에 장문인들과 능쟁십고의 눈이 화산의 장문에게 쏠렸다.

“전진자를 부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갈 세가주가 단도적입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맹주는 은연중에 절검을 통해 전진자를 부를 수 있다는 듯 해오지 않았던가? 기실 이 회의는 제갈 세가주가 전진자를 부르기 위해 마련한 자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화산과 연이 끊어졌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놀랄 수밖에!

“흐흠! 부를 수 있소. 비록 전진자가 명리를 초월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있다지만 화산에는 전진자를 부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요. 바로 절검 사숙께서 나서면 쉽게 해결될 일이라오.”

맹주의 말에 절검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지금의 분위기를 보아 전진자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고 또 그러자니 전진자에게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절검이 확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떨어뜨리자, 또다시 눈길이 향한 곳은 소군.

소군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맹주를 쳐다보았지만 맹주도 역시 하늘만 보기는 마찬가지.

사람들은 세 사람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오고가는 것을 보았지만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소군뿐이었다.

소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절검 사부님의 명이라면 나설 것입니다. 사부님이 아니라면 천하의 누구도 상공에게 나서라 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요. 아미타불!”

소군은 그 말을 하고서는 그렇게밖에는 말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속이 상해 천막을 열고 밖으로 나서고 말았다.

묘한 기류가 오고 갔으나 실질적으로 전진자를 부를 수 있다는 말에 제갈 세가주가 한숨을 내쉬며 숨을 돌렸다.

“다행입니다. 어찌되었거나 전진자가 나선다면 사정은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자자 새로운 작전을 짜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갈 세가주는 더 이상의 무거운 분위기를 원하지 않았는지 서둘러 새로운 안건으로 몰고 나갔다.

별이 떠 있는 깊은 밤.

소군은 잠에 들지 못하고 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다.

사박! 사박!

고개를 돌려 보니 절검이 걸음을 옮겨오고 있었다.

절검 같은 고수가 종적을 숨기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표시이려니.

“원시천존……!”

“아미타불……!”

서로가 도호와 불호를 외우며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절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하늘만 보았다.

답답할 정도로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더니 일다경이 지나자 또다시 도호를 외우고는 발걸음을 떼었다.

“원시천존……!”

절검은 가만히 발걸음을 옮겨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갈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군은 안타까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부님!”

절검의 발걸음은 멈추었으나 고개를 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바로 미안함이었을 것이다.

“걱정 마세요. 제가 말을 전할게요. 상공이 사부님의 말씀은 들어 줄 것이에요. 틀림없어요.”

“…고맙네!”

절검의 말에는 참으로 덧없는 마음이 서린 듯했다.

소군은 절검이 그 짧은 말을 뱉어내는 동안에 순식간에 늙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절검은 절검대로 사문을 내세우기에는 진건곤을 세 번이나 내치려 했던 화산이 너무나 파렴치하게 느껴졌고 모른 척하기에는 당금의 실정이 너무나 아팠다.

화산이 어느새 강호제일의 문파라는 명리에 관심을 가져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인 양 하는 짓까지 서슴지 않은 것이다.

진건곤과 화산이 병기를 맞대고 싸우며 완전히 결별한 것을 안다면 여타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화산을 얼마나 비웃을 것인가?

게다가 그렇게 나간 제자를 또다시 화산을 위해 또다시 부리려 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제는 죽을 때가 된 것이겠지…….”

절검은 죽을 때까지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을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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