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56화 (56/61)

제5장

적염수호장과 진건곤의 대화가 오고가는 동안 멀리서 진건곤을 바라보며 이를 가는 자가 있었다.

바로 호산의 대장로 무장이었다.

수십여 개의 투석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진건곤의 신기를 보았으니 그 무공에 압도될 만도 했지만 이미 진건곤을 향한 미움에 가려진 터라 이상한 쪽으로 반발심이 일어나고 있었다.

‘네놈의 무공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하지만 네놈이 아무리 대단해도 안 되는 것이 있지. 바로 네놈이 마교의 종자라는 것 말이다. 세상이 네놈의 진면목을 알게 될 것이다. 하하하하!’

그의 주위로 눈에 힘을 주어 멀리서 전진자를 살피는 무인들이 제법 많았다.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군영의 본부에 일어난 소란을 보고 급히 달려가던 중이었는데 소란이 가라앉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대로 동태를 살피는 자들이었다.

“소동이 가라앉은 듯하외다.”

“허허, 이제 가본들 불청객이기만 하겠소.”

여러 말들이 돌자 모두가 발걸음을 돌려 무림맹이 자리한 곳으로 향했다.

적염수호장이 10만의 군사를 이끌었고 각대 문파를 이끌어가는 주력 중의 주력으로만 5천의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세간의 호사가들은 단박에 천지신교가 박살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천지신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보았다.

천지신교는 황제가 일으킨 거병에도 주눅 들지 않고 먼저 군사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와 도발하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종이 태어나고, 주인이 정해지는 세상이 살고 싶은가? 왕후장상의 씨앗이 따로 있는가? 그딴 세상은 가라! 천지신교는 신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위해 싸운다. 오라! 황제의 개들이여!”

천지신교의 진영 쪽에서 말을 타고 나온 자가 외치고 다니는 소리였다.

그자는 이미 싸움에 참전한 바가 있었던 독마군이었다.

물론 적염수호장의 군영의 본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보고가 들어가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쯧쯧쯧. 딱하기는……! 그렇다면 네놈들이 숭상이 되고 재상이 되어 바꿀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 게야?”

적염수호장의 한마디에 주위의 부장과 문관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이목이 집중되었다.

“말이 그렇잖아? 구구절절이 옳은 말만 하는 놈들이 왜 나라를 뒤집어엎을 생각만 하는 건가? 신이 아니라 황제를 모시고 제 생각을 펼쳐갈 마음은 없는 자들 아닌가? 모든 것은 핑계에 불과해. 황제를 모시고 새로운 세상을 열 능력이 없는 자들이지. 그래서 신을 들먹이는 거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다는 말 정도는 핑계에 불과해. 지금의 체계 안에서 세상에 자리 잡은 기득권과 싸울 능력이 없는 게지. 신을 찾고 세상을 뒤집어엎어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것은 자신들의 무능을 포장하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면 황제의 관리로, 장수로, 세상을 밝히는 협사로 살아가! 그렇게 자신이 믿는 일을 하라고! 연줄이 필요하면 나를 찾아오고! 하지만 단언컨대 지금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 나약한 심성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야. 나라고 해서 편한 줄 알아? 야금야금 듣기 좋은 소리로 황제를 병들게 하는 간신들과 싸워야지. 능력 있는 후진들에게 추월당하지 않도록 노력도 해야지. 나보다 더 노련한 노괴들과 수 싸움도 벌여야지. 무진장 힘들다고. 너희들은 그런 힘든 일을 피하고 살아가고 싶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적염수호장의 말에 술렁이기 시작한 무장들과 문관들이었다.

본디 파격적인 인물이라는 평이 있는 적염수호장이었지만 전장에 나와서 천지신교에게 자신을 찾아오라는 소리를 할 줄이야. 이럴 줄을 몰랐으리라.

“내 말을 저들에게 여과 없이 전해주게!”

뜬금없는 마지막 말에 모두들 두리번거릴 때, 광우가 머리를 작게 흔들며 되물었다.

“해도 되겠습니까?”

“상관없네. 내 본심이니까. 저 친구라면 저들이 모두 들을 수 있게 할 수 있겠지?”

“네, 폐하! 사부라면 가능할 겁니다. 사부, 부탁합니다.”

진건곤의 입에서 적염수호장이 했던 말이 그대로 토해져 나갔다.

“흥! 웃기는 소리! 우리의 목표는 사람 위에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 황제도 역시 사람에 불과하지. 오늘 우리는 승리를 하고 황제를 없앨 것이다. 진격!”

“천지신교! 천지신교!”

“천지신교! 천지신교!”

마교의 군사들이 전진하는 사이 천지신교를 외치는 소리가 거침없이 퍼져나갔다.

이미 많은 자들이 천지신교의 교리에 빠져들었는지 그들의 목소리에는 주술과도 같은 힘이 깃들어 있었다.

“첨군 소퇴! 중군 전진! 좌군 좌! 우군 우! 그대로 전진하며 천지신교를 감싸 요절낸다. 천랑대와 무림맹은 선봉에 선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명령이 떨어지자 천지가 울리는 듯한 대단한 함성이 일었다. 어마어마한 병력이 움직이자 그들의 전진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와와와와와! 와와와와!”

“와와와와와! 와와와와!”

함성과 함성이 만나고 부서지며 우레와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동안 두 군대의 거리는 점점 더 좁아졌다.

무릇 군대가 만나면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탐색하기 마련이었다.

부장들이 나와 싸움을 벌이거나 수백, 수천의 병사들을 따로 갈라 싸워 상대의 간을 보기 마련이었다.

아무도 이렇게 첫날부터 교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터인데 그들은 맹렬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승부를 지을 것처럼 대군의 충돌로 번져 버린 것이었다.

“하하하! 이런! 한 방 먹었습니다. 대공녀께서 수고해 주셔야겠습니다.”

귀제갈은 적염수호장이 한 번에 승부를 걸어올 것은 미처 몰랐다는 듯이 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받아들이는 대공녀 백이현은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귀제갈께서 이미 무인들과 강시들을 갈라 군사의 틈에 배치한 것은 이것을 미리 예견했기에 했던 일 아니겠습니까? 과연 귀제갈의 귀계는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반드시 버텨내겠으니 걱정 마십시오.”

귀제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삼 일만 버텨낸다면 무인들의 도움이 없어도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참아 주십시오.”

“적들의 수효는 작다. 각대의 선봉장은 첨진을 준비해라. 전진하던 힘으로 적진을 갈라버릴 것이다. 전진! 전진!”

“흑오대는 방추진을 짠다. 선봉에는 도부들이 나서라!”

황제군의 지휘관들은 각자 자신의 부대에 이로운 진형을 만들어가며 전진의 이점을 살린 전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황제의 군사들은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위에 처한 상황에 맞게 능숙하게 작전을 수행하며 기선제압을 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하아!”

“허어!”

황제군의 대주들은 사병 백 명을 지휘하는 자들로 싸움의 최전선에 선 병사들이자 지휘관으로서 싸우는 자들이었다.

백전노장이며 싸움으로 잔뼈를 굳힌 자들의 자리였다.

그중에도 중군의 충의단 일대, 흑표대의 대주인 능운은 그 기세가 남달라 그가 앞장서면 어떤 군세라도 갈라버릴 수 있다고 자부하던 자였다.

붕! 붕! 부우붕!

그의 삼십 근 대부가 춤을 추며 적진을 갈라버릴 힘을 모으고 있었다.

“흐랴얍!”

절묘하게 원을 그리며 적진과 부딪히는 그 시점에 맞추어 무시무시한 기세를 가지고 쏘아져 나갔다.

웬만한 간담으로는 그 대부에 맞서기조차 힘들었다. 틀림없이 피가 튀고 두려움이 일만한 장면이 일어나리라.

하지만 천지신교의 진영에서 갑자기 쏘아져 나온 흑색창이 그의 대부와 정면에서 부딪혀 가고 있었다.

떠엉!

놀랍게도 흑색 창은 무겁기도 하고 꾸준히 기세를 모아온 대부를 막아서는 것이 아닌가?

“이놈! 누구냐?”

“그런 건 승리한 후에 알려주마.”

능운은 자신의 대부가 막혔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상대를 물었지만 흑색 창을 사용하여 대부의 기세를 꺾은 자는 슬그머니 군사들 사이로 스며들고 말았다.

“흑표대는 방추진을 포기하고 평진으로 바꿔라! 고립되어선 안 된다. 일렬로 늘어서 싸운다! 이들에게 흑표대의 맹렬함을 보여주어라!”

능운은 자신의 쇄도가 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천지신교의 군사들을 높게 치고는 진법을 바꾸어 진격의 속도가 느린 작전을 구사했다.

만만치 않다는 것에 공을 세우는 것은 포기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총군의 지휘에 해당하는 감싸 안는 진법의 흐름에 거스르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능운은 그것마저도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흑색창 하나가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며 싸움을 조절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저건 무인이다. 사병들 사이에 무인이 섞여 있어! 저들이 군사들을 보호하고 있어!’

능운은 그 사실을 알았지만 사기가 꺾일 것을 저어하여 다른 사병들에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무인이라면 소위 신선으로 통하는 자들. 전쟁에 능숙한 전사인 흑표대라도 기가 꺾이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히랴압!”

텅!

온힘으로 대부를 휘둘러 찍어 들어갔지만 여러 개의 창날에 대부가 얽어들자 힘을 쓰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이놈들. 무언가 이상한 방법을 쓴다. 조심해야 해!’

능운은 사병들이 무공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일개 사병들이 장군가에나 전해지는 창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창법이 훌륭해서인지 전란은 쉽게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소소한 피해에 있어서는 황제군에게 더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능운! 어떠냐?”

능운은 자신의 등 뒤로 흐른 목소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직속상관인 기 단주의 목소리였다.

“여의치 않습니다. 흑자가 들어 있어 전진하기가 어렵습니다.”

흑자란 자신의 정체를 숨긴 고수를 부르는 암어.

기 단주는 신음처럼 목소리를 흘렸다.

“역시 모든 곳에 흑자가 있군! 능운 흑자는 모든 곳에 있다. 무언가 꾸미는 것이 있으니 조심하도록!”

“존명!”

기 단주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대주들을 독려하고 다녔는데 그들이 모두가 흑자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천지신교의 전략임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능운은 그야말로 단의 상징인 일대의 대주! 그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능운! 조금만 더 밀어붙여라! 좌각이 무너지면 작게 원을 그려 그들의 무리를 잘라낼 수 있다.”

“들었느냐? 단주님의 명령이다. 가자! 좌각을 잘라내자!”

능운의 목소리가 커지자 흑표대가 물결치듯이 움직였다.

흑표대는 그야말로 10만 군세의 선봉장이었다. 그들의 용맹함은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백여 명이 모두가 선봉인 능운이 되어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예봉을 꺾어주며 전세를 유지시키던 흑자들도 그것을 모두 감당하지는 못하였는지 좌각의 일부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고 말았다.

한식경이 지나자 흑표대와 상대하던 곳의 천지신교의 군사들은 고립되고 말아 포위공격을 당하더니 모두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지독한 자식들. 포위되고도 꽤나 버티다 죽는군요. 그런데 웃기는 건, 잘 싸우다가도 피를 보니 몸이 굳어 버리더군요. 이놈들 신참이에요. 이것만 잘 이용하면 뭔가 수가 나오지 않을까요?”

능운에게 다가서며 흑표대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얕잡아 보지 마라. 대단한 창법이었어. 창을 다루는 솜씨가 서툴러서 다행이었지, 조금만 더 익숙했다면 장기전이 될 뻔했다.”

능운은 스스로 말하면서 놀라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이럴 수가! 이놈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조형! 넌 뒤로 빠져 단주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라! 이놈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신참이지만 경험이 쌓여질수록 더 강해질 놈들이다. 어서 전해!”

평소 능운은 대부를 사용해 일격 필살의 맹렬함을 자랑으로 하고 있었다. 선봉에 가장 어울리는 싸움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싸움에서는 일격에 싸움이 끝나지 않고 묘하게 길게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부하와 말을 하다 보니 그게 바로 그들의 창법이 뛰어남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모두 모여라! 다시 선봉으로 나아간다.”

흑표대는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 새로운 천지신교의 군사들과 만났다.

역시나 그들은 뛰어난 창술로 흑표대와 싸우며 버텼지만 전장의 귀신같은 흑표대를 결국은 당하지 못하고 또다시 전선을 이탈하여 포위당하고는 죽고 말았다.

“이런! 과연 적의 주력이 자리한 곳은 강해. 저래서야 단련이고 뭐고 없겠어. 7대, 9대, 13대가 있는 곳에 이십칠파결을 펼치라고 전해라.”

“하오나 이십칠파결은 나중을 위한 작전이…….”

“시행해!”

귀제갈이 재차 명령하자 전령의 손에서 깃발이 춤을 추었다. 명령이 전달된 것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대규모의 군대와 군대의 싸움은 전술보다 사기가 중요해. 이런 식으로 사기를 올려주어서는 나중이 없어. 지금 틀어막지 않으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시행해!”

귀제갈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의 손에는 진땀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대군의 싸움은 그야말로 한순간의 붕괴로 끝이 난다.

한쪽이 사기가 충전하면 그것으로 기세를 몰아 막을 수 없는 거력이 만들어진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귀제갈은 나중을 위해 준비해 둔 비장의 수단마저 꺼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퍼억!

피가 튀었다. 육중한 대부에 찍힌 천지신교의 병사는 그대로 몸이 두 동강 나며 땅바닥에 몸을 누이고 말았다.

마지막 군사까지 끝장을 낸 능운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천지신교의 병사들과 황제군 쌍방의 군사들이 죽어나가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쌓여버린 주검들이 있었다.

언제나 전쟁이 있는 곳에는 이런 광경이 있었다. 이미 익숙해진 장면이지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마 흑표대만이 적들과의 싸움에서 연승을 거두고 있을 뿐, 다른 쪽에서는 팽팽한 싸움이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빌어먹을 이래서는 청랑대와 싸우는 것 같군.”

천지신교의 군사들은 경험은 없었지만 창술은 대단한 구석이 있었다.

무공을 배운 적이 있었던 자들로 구성된 청랑대가 떠올랐다. 천지신교의 군사들은 그들에 비하면 턱도 없이 약하지만 그래도 사병들에 비하면 놀라운 재간을 보였다.

“단기전! 그게 아니면 승산이 없어!”

능운은 또다시 천지신교의 군사들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끌어올려 외쳤다.

“돌격! 우리는 전군의 선봉 중에 선봉 흑표대다. 우리를 막을 자는 없다. 가자!”

“흑표! 흑표! 흑표!”

능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그 목소리에 흑표대의 대원들은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전진하였다.

또다시 먹잇감을 골라 천지신교의 군사들을 한참 몰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지신교의 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뒤쪽으로 신형을 빼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 흑표대의 대원들은 이상한 현상을 겪으며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불과한데 흑표대의 대원들은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파지지직!

작은 기음과 함께 파르스름한 불꽃이 번쩍이며 흑표대의 대원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대장!”

“대주!”

대원들은 능운을 불렀다. 변한 상황을 타개할 명령을 원했다.

“당황하지 마라! 아마도 진법일 것이야. 이렇게 싸우는 도중에 순식간에 펼칠 수 있는 진이라면 별로 대단할 것이 못된다. 우회하도록!”

“알았음.”

“접수!”

흑표대원들은 능운의 답에 놀라기는 했지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반 다경도 되지 않아 다시 능운을 불러야만 했다.

“대장!”

“대주!”

하지만 노련한 흑표대원들이 찾지 못하는 해법을 능운이라고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시 찾아! 분명히 너희들은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백전의 용사다. 너희들은 할 수 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독려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진법의 출구를 찾아 움직이던 대원들은 진법의 출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멀쩡히 밖이 보이는 그들은 나가지도 새로운 군사들이 들어오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에 빠진 것이다.

가끔씩 황제의 군사들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면 깜짝 놀라곤 했지만 천지신교의 군사들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로 보아 천지신교가 만들어낸 진법의 효과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장!”

“대주!”

대원들이 능운을 연이어 불렀지만 이번에는 능운도 딱히 대처를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독려가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용히 해봐. 이놈들아! 나도 진법 같은 건 모른단 말이다! 그런 걸 알면 장수해 먹지 무식하게 대부나 휘두르고 있겠냐? 빌어먹을 귀왕대가 거들먹거리는 꼴을 어떻게 보나? 에이, 퉤!”

능운은 흑표대와 항상 어깨를 견주던 귀왕대가 공을 세우고 거들먹거리는 꼴을 이미 보기라도 한 듯이 재수 없어 했다.

결국 흑표대원들은 그대로 묶여버린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바깥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발이 묶여 꼼짝도 못하고 있는 대는 흑표대뿐만이 아니었다.

황제의 군사 중에 가장 용맹하다는 흑표대와 귀왕대, 제천대, 우마대, 청홍대 등의 선봉들은 모두가 이상한 진법에 묶여 있어야 했다.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자 전황은 지루한 공방으로 바뀌며 또다시 힘겨루기를 하는 형국이 되었다.

무림맹과 천랑대는 천지신교의 사병이 아니라 천지신교의 본 무리들과 상대를 하고 있었다.

천지신교의 무인들은 고작 3천, 무림맹의 무인들은 7천에 이르렀다.

원래부터 천지신교의 무인들이 적기도 했지만 수효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사병들을 돕기 위해 흑자로 빠져나간 자들의 수가 제법 되었기에 일방적인 수효의 차가 나고 말았다.

하지만 귀제갈의 계산에는 그런 차이쯤은 대공녀의 무시무시한 무공이 메우고도 남는다는 것이었다.

“그대의 무공에 경의를 표하겠소. 원시천존!”

“과연 그럴 일인지…….”

정파의 쪽에서 노인이 한 명 앞으로 나서며 대공녀의 무공을 치하했다.

하지만 대공녀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마치 어린 제자들을 대하는 듯한 태도.

“부족함을 알지만 나 홀로 나섰소이다. 최선을 다하겠소.”

바로 검선이었다.

무당은 화산의 행사에 불만을 느끼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남게 되었다.

중소문파라면 몰라도 무당쯤 되는 명문거파라면 황제의 눈치를 보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떠나겠다는 선언을 했으니 말과는 다르게 시원하게 떠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데 마침 소림이 찾아와 무당을 말렸다.

또한 무림맹도 역시 무당의 힘이 필요했던지라 제갈 세가주가 나서서 무당을 회유했다.

무당은 그제야 그 말을 못이기는 척 받아들여 무림맹의 일부로 남게 되었다.

“아미타불!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선께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저도 나서겠습니다. 이를테면 협공을 하되 시작만 검선께서 한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대공녀의 시선이 소군에게 닿았다.

“그대가 검후로군요.”

적의를 풍기던 눈빛이 아니었다.

소군도 역시 그녀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빛을 누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천지신교인 이상 싸워야 할 사람이지요.”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가르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대공녀는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협공으로 받아들이지.”

“원시천존! 빈도도 마찬가지요. 미안하게 생각하오.”

소군에 이어 절검도 나섰다.

“어차피 싸움인 것. 이런들 저런들 어쩌겠소? 어차피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대공녀의 말에 일순 미안함을 느끼는 삼인이었으나 이어지는 소리에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정파는 항상 그렇지 않았습니까. 실력이 부족하면 숫자로 채우고 명분이 부족하면 문파를 위해라고 했으니까요. 애초에 당신들이 지키는 협의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지 않소? 마음대로 하시오. 다만 너무 늦으면 아까운 무인이 사라질지 모르니 서둘러 나서시오. 나로서도 너무나 싱거운 싸움이 되지 않기 바랄 뿐이오. 그래서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복수가 너무 쉽지 않겠소?”

“흥! 온전히 활선당의 후예라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대야말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기에는 이미 늦지 않았는가? 그동안 써온 역천의 술법들이 부끄럽지 않느냐 말이다.”

강시를 부리고 사람을 현혹시켜 자제와 스승을 베게 한 것은 누구의 입장에서 보아도 용서하기 어려운 역천의 술법이라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었다.

검선이 말을 꺼내자 그녀는 더욱 기가 막힌 듯이 입을 열었다.

“흥! 그렇소. 나는 복수를 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할 것이오. 그러니 지금 그대들은 그에 상응하는 짓을 하면 되는 게요. 체면 같은 알량한 소리는 집어치우고 말이오.”

검선이 소군과 절검에게 눈짓을 보냈다. 일단은 자신이 나서겠다는 신호.

“조심.”

삐익!

검선의 경고가 있자 검선의 검이 청광이 되어 공기를 찢으며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고 대공녀를 신형을 갈랐다.

“와와와와와!”

정파의 무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가 가시기도 전에 대공녀의 신형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의당 남아 있어야 할 무너진 신형이 남아 있지 않아 그 모습이 그녀가 남긴 잔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지신교와의 대결에는 절정 이상의 무인들만 모인 자리였음에도 불과하고 그녀의 실체와 잔상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긴장을 풀었다 다시 조여 대공녀의 행방을 찾았으나 검선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잔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긴장한 표정으로 검결지를 잽싸게 놀려 동북방을 향했다.

피익!

청광은 또다시 공기를 찢어내며 날아갔고 그곳에서 전과 다르게 불똥이 튀고 굉음이 터져 나왔다.

쩡! 쩌저저저저정!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수시로 종잡을 수 없는 방향에서 불똥이 튀어 오르고 굉음이 터져 나왔다.

청광이 쉴 사이 움직이며 오직 한곳을 공략하자 그곳에 이기어검을 받아내는 대공녀의 신형이 드러났다.

쩌저저저정!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