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51화 (51/61)

제1장

황금만당!

운남성 상권에는 황금만당이라는 상단이 있었다.

상단의 단주 노린비가 제법 이재에 밝아 전도가 유망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오늘 단주 노린비는 상단의 창고에 들러 잔뜩 쌓여 있는 쌀, 콩, 수수 등의 곡식을 보며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가득해 있었다.

“단주! 어찌하여 이렇게나 많은 곡식을 사셨소? 이 정도의 물건이라면 상단이 감당할 수가 없지 않소?”

상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단주에게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자, 그리고 단주의 기쁨에 재를 뿌리는 자도 오직 한 명뿐이었다.

전 단주가 다른 곳에서 초빙해 온 상단의 고문인 철상인 고동이었다.

고동은 노린비의 평가에 의하면 고지식하고 안전하고 해봤자 별로 돈이 안 되는 그저 그런 상거래에 능한 자였다.

고동은 현 단주인 노린비와 균형을 맞추어 상단을 끌어줄 쌍두마차로 전 단주가 초빙한 인사였다.

“고 고문께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소이다.”

“허허! 무슨 소리요? 이렇게 많은 곡식을 사고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우리는 이미 천하 5대 상단에 들고도 남았을 것이오.”

“하하하하! 항상 하는 말이지만 고 고문께서 어떻게 아버님의 눈에 들었는지 참으로 의문스럽소.”

“으……! 그런 의문은 나중에 풀고 곡식의 이야기나 합시다. 이것의 셈을 어떻게 치를 셈이요? 소문에 듣자 하면 제 가격보다 두 배의 가격으로 이것들을 끌어 모았다고 하던데 말이오.”

이미 여러 번 의견충돌을 해와 서로 사이가 벌어져 버린 두 사람이었다.

고동의 급료는 이미 20년 치를 한꺼번에 계산해 준 전 단주였다. 그러나 전 단주는 고동이 12년간 일했을 때 이미 죽었다.

현 단주 노린비는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고동에게 급료와는 상관없이 상단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으나 고지식하게도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며 꾸준히 나오고 있는 고동이었다.

노린비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이미 상단에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모양으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자였다.

“흥! 고문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고문의 계산법은 이미 구닥다리란 말이오. 자고로 세상은 기회를 노리는 자의 것이오. 나의 앞길을 막지 마시오.”

“아니 되오. 너무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있소, 단주! 매점매석하면 돈을 벌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원성을 살 것이요. 원성을 사는 상단은 오래 갈 수 없소이다. 지금이라도 나머지 거래를 취소하고 규모를 줄여 보시는 게 어떻겠소?”

노린비는 코웃음을 쳐 웃더니 고동을 노려보았다.

“하하하하! 당신!”

단주는 고동에게 당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고동은 그 소리를 듣고는 눈을 감았다.

이제는 고동에게 존중의 표현조차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으니 자신의 쓸모가 다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착하고 순진하고 잘난 당신! 이제는 신물이 난다. 시대가 변했고 세상이 변했어. 시류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구닥다리 늙은이! 당신은 선친이 박아 놓은 옹이란 말이야. 이제는 더 이상 참아줄 수가 없다. 꺼져. 네놈은 내일부터 상단에 출입할 수 없다. 상단의 모든 자격을 박탈할 것이야. 꺼져 이 구닥다리 늙은이야! 내 눈에 또다시 띄면 도둑놈이라고 발고할 줄 알아!”

고동이 감겨진 눈을 다시 떴을 때, 고동의 눈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사사건건 부딪혀 가며 싸우는 도중 이미 여러 번 의가 난 사이였다.

그런데도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선친을 보아선지 존칭만은 사용해 왔었다.

오늘 그 존칭이 사라지자 더 이상 자신은 단주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어졌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나마 남들의 눈이 무서워 그런가 보다 라며 따라주던 것조차 사라진 것이었다.

“좋다! 이제는 상단에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네는 선친이 왜 나를 자네에게 붙여 놓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 마지막 진심이다. 그것을 느낄 자가 못 된다지만 선친을 보아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니 깊게 숙의하여 진의를 깨달아라! 그리고 나머지 급료는 계산해서 돌려보내마.”

“흥! 그깟 푼돈 필요 없어. 이 창고에 가득 찬 곡식은 곧, 열 배가 되고 스무 배가 될 것이다. 전쟁 중에 곡식의 값이 올라간다는 것은 상식 중에 상식이 아닌가? 그 구닥다리 같은 면상을 들이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당장 꺼져!”

고동도 역시 더 이상 상단에 붙어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전임의 단주에게 인정을 받았고 신임을 받았다. 급료를 미리 계산해 주는 파격적인 조건에 아들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아 이제껏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돕고 싶어도 더 이상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노린비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더 이상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느낀 고동은 상단을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뒤돌아 상단을 나와 버렸다.

그런 고동이 나가거나 말거나, 노린비는 창고에 가득한 곡식들을 보며 다시금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이 많은 곡식들이 바로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이것들이 곧 황금이란 말이다. 하하하하하!”

“오호! 그렇소이까? 이것이 곧 황금이 된단 말이오?”

“…누구시오?”

단주는 불현듯이 나타나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자신의 곁에 서 있는 사내에게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하하하! 나로 말하자면 천지신교에서 나왔소이다. 황금만당 단주가 됩니까?”

“아, 그렇습니까? 하하하! 영광입니다. 하하하! 그간 뵙고 싶었습니다.”

천지신교라면 아직은 악명을 몰고 다니는 곳이 아니던가? 단주의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타고난 이재로 다시금 회전하고 있었다.

‘기회다. 천지신교도 역시 전쟁을 치르자면 돈이 필요할 터, 천지신교가 상단의 단주인 나를 찾은 이유가 그것 때문일 것이야. 지금 이순간이야말로 필생의 승부수다.’

“천지신교에서 나오신 분이라면 직함이라도 알려 주실 수…….”

“흐흠, 그런 한가한 소린 나중에 합시다. 내 눈에는 곡식으로 보이는데 이게 다 금덩어리란 말이죠?”

‘웃기는군. 분명 한가한 소리가 아닐 텐데 한가한 소리라고 한다. 제법 배짱을 튕기고 싶다는 것이군. 하지만 네놈이 까부는 만큼, 계약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놈아.’

노린비는 천지신교의 인물이 자신을 재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의 뜻에 따라주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 네 그렇습죠. 아시다시피 전쟁이 터지면 곡식이 부족하게 됩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렇고 곡식이 구하기 어려워지면 더더욱 그렇게 됩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적어도 스무 배로 가격이 오르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하지만 말입니다. 천지신교가 원한다면 그리 높지 않은 가격에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천지신교의 광영을 위하여…….”

단주는 천지신교에서 나온 자의 서릿발 같은 살기를 느꼈다.

온몸이 떨려오는 무서운 살기였지만 상인만의 특유의 끈질김으로 얼른 말을 이으며 눈치를 살폈다. 물론 꼬리를 살짝 더 말아서 말이다.

“원하신다면 원가로도 제공해 드릴 수가…….”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네?”

“열 배! 스무 배로 뛴다는 그 돈 말입니다.”

엄청난 살기와는 다르게 입에서 나오는 말이 돈이었다. 결국 돈을 벌고 싶다는 말인가?

‘그럼 그렇지! 난 돈 싫다는 놈은 본 적이 없다. 좋은 말로 같이 먹자고 하면 되는 걸 살기나 풀풀 풍겨대다니… 나쁜 놈들 완전히 강도나 다름없는 놈들. 쯧쯧쯧!’

단주는 돈이라는 말에 긴장이 이완되며 얼른 말을 받았다.

“물론 그 돈은 각 집안마다 꼬불쳐 둔 비상금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꽁꽁 숨겨놨어도 제 놈들이 굶어 죽기 싫으면 꺼내어 놓겠지요. 배고픔만큼 참기 어려운 고통이 없으니까요. 자식도 내다 파는 마당에 꼬불쳐 놓은 돈을 지킬 수 있을 리가 없지요. 틀림없이 다 꺼내 놓게 될 것입니다. 하하하하하!”

“그러니까 결국 고통이 돈이 된다는 말이겠지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꼬불쳐 놓은 돈까지 다 꺼내다 바치겠다는 말이겠지요. 부모가 자식을 팔아서 만든 돈으로 이 금덩어리 같은 곡식을 사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단주는 갑자기 자신을 찍어 누르는 살기에 온몸이 찢어지는 공포를 느꼈다.

“뭐, 굳이… 그렇게… 말씀을… 하신다면… 하지만… 어차피 인생이란… 으악! 으아아악! 아아악!”

단주는 자신의 말을 끝맺음 할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가슴에서부터 올라와 온몸을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마근멸혼이라는 수법이다. 온몸의 근육이 꼬여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지.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파는 고통에 비하겠는가? 이 빌어먹을 놈아.”

천지신교에서 나온 자의 목소리에는 찌릿찌릿 울리는 분노한 살기가 담겨져 있었다.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전날의 가뭄에 내 부모가 그랬듯이 다른 자들도 자식을 팔아 목숨을 이어가겠지. 바로 네놈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매점매석으로 하늘 높이 올라간 금덩이 같은 곡식을 사기 위해서!”

스릉! 툭!

“으아아악! 으아아악!”

근육이 꼬이고 마비가 되어 바닥을 구르던 단주의 팔 하나가 잘려져 나갔다.

단주의 비명이 듣기 싫었는지 천지신교의 고수는 점혈을 짚어 그의 아혈을 막아 버렸다.

소리 없이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푸들거리며 떨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집은 아들이 여덟이나 되는 아들부자 집이었지. 워낙에 입이 많았던 터라 가뭄이 들자 먹을 것이 너무나 빨리 떨어져 버렸다. 장남이었던 나는 부모님께 나를 팔아 다른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라고 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하셨지만 굶주림이 계속되자 결국은 내 뜻을 따르셨지. 그런데 말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결국 식량이 떨어지고 또다시 굶주림이 찾아오고, 또 둘째를 팔아 나머지 아이들을 먹이고 또 셋째를 팔아 나머지 아이들을 먹이고 종내는 모두를 팔아버려 누구를 위해 무엇을 팔았는지도 모르게 되었지. 부모님은 그런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목숨을 끊어버리셨다. 나는 네놈 같은 놈들을 용서할 수 없어. 천지신교에 입교한 것이다.”

뿌드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천지신교의 고수의 손이 흔들렸다.

바닥을 기어 다니던 단주의 몸이 가로 세로로 네 조각으로 쪼개지며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피가 튀어 올라 천지신교 고수의 얼굴에도 튀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서늘한 미소만이 고여 있었다.

“네놈의 피를 본들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부모님의 원한이 풀리겠느냐? 하지만 나와 같은 자들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야.”

천지신교의 고수는 창고를 열어 곡식을 백성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주었고 아울러 노린비가 매점매석을 통해 배를 불리려 했다는 사실도 함께 공포했다.

백성들은 전부터 악명이 높았던 상단들이 사라지는 것을 기뻐하였다. 물론 그들이 공짜로 얻어간 재물에 비례해 천지신교에 호감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천지신교는 여러 곳에서 이런 악명이 높은 상단들을 정리하며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나른하게 늘어지는 따뜻한 날씨, 객점의 주인은 연방 파리를 쫓고 있었다.

객점은 운남성 성주의 거처와 문국공, 무국공의 처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곳에 있었다.

천지신교의 난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운남성 제일의 객점이었던 이곳에 손님이 끊긴 것이었다.

“아! 장사도 안 돼 죽겠는데. 이 빌어먹을 놈들은 왜 더 극성인지 몰라! 야! 이놈들아! 거기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파리나 좀 잡아!”

탕! 탕! 탕!

점소이는 주인의 목소리에 기민하게 움직여 파리를 잡기 시작했다.

여덟이나 되던 점소이의 수가 둘로 줄었다. 그만큼 장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항시 문을 열어 놓고 살아야 하는 더운 날씨였기에 몇 마리 더 잡는다고 없어질 파리는 아니었지만 어쨌건 주인에게 밉보이면 목구멍에 풀칠할 일거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파리라도 열심히 잡는 그들이었다.

“아! 빌어먹을. 시장통의 객점은 일손이 부족하다는데 그쪽이나 가볼까?”

“아서라! 아서! 갑자기 변한 세상이라고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몰라, 그쪽도 점소이 쓸 일이 없단다. 힘들어도 지금 있는 인원으로 해본다던데.”

“뭐라고? 분명히 일손 딸린다는 말을 들었는데?”

“천양객잔에 점소이만 여섯이다. 갑자기 손님들이 몰려들어 점소이를 늘리긴 했지만 더 이상 뽑진 않는단다.”

“하긴… 천양객잔에 그 정도면 많긴 많은 거지. 그… 그런데, 뭐야? 너 왜 그렇게 잘 알아?”

“왜 그렇겠냐? 이미 다 알아봤으니까 그렇지. 내가 너 같은 미련퉁이인 줄 아냐?”

점소이의 말에 또 다른 점소이가 놀란 눈초리가 되었다.

“어? 너…넌 주인님이 총애하는 점소이잖아? 그런데 네가 다른 곳에 자리를 왜 알아봐?”

“보면 모르냐? 이곳은 이제 끝이 났어. 손님이 없잖아, 손님이.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주로 성주님이나 문국공, 무국공님께 청탁을 넣으러 오는 사람들이 머무르기 좋은 곳이 아니냐? 그런데 이제는 일절 청탁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까 말이야. 아무도 오지 않는 것 아니겠어? 천지신교가 망하지 않는 이상. 이 객잔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 그러냐?”

“참 나! 너는 그렇게 흐릿하게 살면서 어떻게 점소이를 해먹나?”

“뭐, 너야 알아서 움직이는 게 장점이니 그렇게 머리가 좋아야 하겠지만 나야 무식하고 힘만 센 것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게 장점이니까. 너랑은 다르지 않겠냐?”

“하긴……! 그럼 이제는 짜웅이나 아부보다는 열심히 일해야만 먹고사는 쪽인 게냐?”

“그런가 보다. 세상이 점점 바뀌고 있다.”

천지신교의 난이 벌어진 이후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천지신교가 운남성에 자리 잡은 그날 전까지는 상상도 못할 피보라가 일었다. 수많은 목이 떨어지고 광장에 효시가 되어 공포를 자아냈다.

사람들은 천지신교의 잔악한 행동에 공포를 느끼며 다가올 불행에 각오를 하였으나 그런 일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천지신교가 권력을 잡고 나서부터 관의 행정과 재판 등이 신속, 공정해지며 거들먹거리는 관리나 위세를 떠는 각다귀들이 사라졌다.

세금도 역시 서민들의 것은 줄이고 상점이나 상단이나 표국 등의 부유한 자들에게 더 많이 부과하여 서민들로서는 더 살기 편해졌을 뿐이었다.

천지신교가 만들어낸 세상의 일부라는 말이 떠돌았지만 사람들은 으레 그렇듯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지신교가 말했던 것은 몇 달이 지나도 바뀌지 않아 일반 백성들도 이제는 새로운 세상이 왔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다만 유일한 불만이라면 그것은 바로 병사를 뽑아가는 일이었다.

천지신교는 전시체계를 선포하고는 운남성 전역에 걸쳐 남자들을 징발하여 군사를 만들었기에 가족 중에 한 명꼴로 나서서 전쟁에 간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전과는 다르게 징발된 군사들의 가족에게 급료를 전해 주어 생활에는 지장이 없게 해주었으니 전처럼 전시라고 해도 생활이 어렵거나 비참한 지경까지 나락에 떨어지지는 않게 해주었다.

나중에는 집안을 꾸리기 힘든 어린 가장들이 앞 다투어 사병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럴 경우, 그들이 부양하고 있던 동생들은 관청에서 데려가 돌봐주었기 때문이었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을 시켜 주었다. 어린 가장들은 자신의 오히려 관청에 동생들을 맡기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하!”

쿵!

기합성에 이어 발 구르는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붉은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긴 창의 창끝이 하늘을 찔렀다.

쇳조각 하나도 없이 나무를 깎아 만들거나 죽(竹)을 잘라 만든 것이었는데 수천의 병사들이 일시에 찔러대니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대단하군요. 저들이 농사만 짓던 자들이라고 생각지 못하겠어요.”

“그렇지요? 역시 세상에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나 봅니다. 저들에게 조가창법을 알려주고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직위를 달리 해줄 것을 약속하였더니 저렇게 변하더군요. 대단한 변화지요.”

과연 그러고 보니 내공은 없어도 날카로운 기세가 살아 있는 창법이었는데 그것이 장군가에서나 익히던 군문의 비전 무공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병사들을 지켜보는 것은 귀제갈과 대공녀였다.

“무림맹도 재정비를 하여야 할 터, 조정에서 거병하여 이곳에 찾아오려면 앞으로 적어도 석 달은 걸릴 겁니다. 그동안 저들이 성장해 주어 고루마군의 빈자리를 메우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공이 없지만 조가창법을 배웠으니 일반 사병들끼리의 싸움에서는 일당백의 정병이 될 것입니다. 무림인들이라고 해도 저들의 수가 많으면 버거워할 것이고요. 저들이 성장할 시간을 버는 것이 고루마군의 역할이었으니 마군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도 흡족할 것입니다.”

귀제갈의 시선이 다시 연병장을 향했다.

“하!”

수천 개의 창이 또다시 일시에 하늘을 찔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에 걸린 것인지 또다시 붉은 흙먼지가 하늘로 말려 올라가고 강군의 무서운 기세가 느껴졌다.

천지신교의 정병들은 고루마군이 강시들을 이끌고 목숨을 바쳐가며 시간을 벌어준 덕에 천천히 정예의 강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천지신교는 세상을 뒤집는 것조차도 교의 힘이 아니라 사병들의 힘으로 이루고 싶어 했다.

“어제 무기가 모두 다 만들어졌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앞으로 열흘 정도만 더 지나면 군량과 함께 도착할 것입니다. 서역에서 무기가 도착하고 나면 저들이 곧 세상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천지신교의 정병들이 사용할 무기와 군량은 서역에서 사들이고 있었다.

전쟁을 일으킬 만큼의 무기와 식량이 움직인다면 필시 의심을 받게 될 터, 그것을 피해 서역에서 물자를 모으고 있었으니 중원에서 그들의 준비를 눈치 챈 자가 드문 이유였다.

서역에서 가까운 운남에 천지신교가 자리 잡은 것은 비단 십만대산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역과의 통상을 통해 천지신교가 그들의 광영을 실현하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운남에 천지신교의 명성이 높아지고 세력의 뿌리를 다지는 동안 진건곤도 역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본디 뜻은 환자를 치료하며 얻은 지식으로 청명의 단전을 고치려는 것이었다.

아미산의 주위에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지식으로 환자들을 진맥하며 고쳐주며 인체에 관한 지식을 늘려가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일이 점점 커지고 말았다.

신의라는 소문이 퍼져 나가고 시간이 지나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아미산으로, 신의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건곤은 점점 더 본격적으로 환자들을 받으며 의술에 매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진건곤은 환자들을 살펴보며 몰아일여와 영력을 이용한 의술을 연구했지만 청명의 단전을 이어줄 단초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외의 것을 발견했다.

“이건?”

진건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맥을 짚이던 환자의 얼굴이 놀란 듯하였다.

“아이고, 신의. 왜 그러십니까? 전 죽을 병이라도 걸렸습니까?”

환자는 덜컥 겁을 먹고는 진건곤의 손을 부여잡고 매달렸다.

“나 좀 살려주시오. 마누라하고 자식들이 줄줄이 있소. 제발 그믐달까지만 살려 주시오. 막내 놈이 짝을 짓는 것만이라도 보고 죽읍시다.”

환자는 말을 줄줄이 꺼내어 가며 진건곤에게 매달렸다.

“동리에서 같이 오신 분이 있습니까? 모두 모이도록 하지요. 불러오세요.”

환자는 신의가 어찌 그것을 알았냐며 놀라는 체를 했다. 또한 진건곤이 나서서 남다르게 대처하는 것을 보며 걱정을 키웠다.

“혹시 전염병이라도……?”

작은 한마디였지만 그 위력은 대단했다.

진건곤이 진찰을 하는 곳에는 환자들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이 있었으나 그들은 삽시간에 뒤로 물러섰다.

“하하! 걱정 마십시오. 전염병이 아니라 풍토병입니다. 같은 곳에 사는 분들이니 같은 병에 걸렸을까 싶어 모이게 했지요.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좋은 병이라서 말입니다. 마침, 제게 이것에 딱 맞는 약이 있으니 이것을 사용하면 될 겁니다.”

환자는 좋은 약이 있다는 말에 손을 쥔 채로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과연 신의요. 나 신의를 믿소. 죽든지, 살든지 원망하지 않을 테니 마음대로 해주시오.”

“그런 소릴랑 마시고 동리 분들을 모아 주십시오.”

진건곤은 환자의 손을 떼어 놓고는 시비에게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했다. 시비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진건곤의 심부름을 하였다.

잠시 후, 시비가 가져온 것은 놀랍게도 은은한 향이 나는 천리향이었다.

“이 약은 참으로 신묘한 약입니다. 이것을 발라 줄 터이니 어른이 사는 곳을 적어 놓고 가십시오. 글을 몰라도 시비가 받아 적을 테니 걱정 마시고요.”

진건곤은 가장 작은 붓을 골라 아주 조금씩 그들의 얼굴에 천리향을 찍어 주었다.

진건곤이 천리향을 가져오라고 한 것은 바로 환자의 몸에서 요괴의 요사함이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 요괴가 가까이 살며 정기를 뽑아 먹었기에 몸이 아프고 진하게 그 요기가 묻어나는 것이었다.

진건곤이 일시적으로 영력을 돌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으니 천리향을 바르고 돌려보낸 것이었다.

바로 환자가 사는 곳을 쫓아가 직접 요괴를 없애 버릴 요량이었던 것이다.

“헤헤헤! 고맙소. 다른 의원들은 원인을 알 수 없다고만 하더니만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아픈 것을 맞추다니 과연 신의가 틀림없소이다.”

환자 중에 한 명은 이미 여러 의원을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용한 곳은 처음이라며 소리를 높여 진건곤을 숭앙하는 말을 질러대었다.

“아미에 신의가 있다. 이분이야말로 신의로다.”

“암요. 공짜로 치료해 주시는 분이 흔한가요?”

“그렇지요. 신의여! 신의!”

분명 진건곤의 의원으로서의 능력은 짧았다.

몰아일여를 이용해 어디가 아픈지를 살피고 가벼운 병은 치료할 수 있었으나 깊은 병은 손대기 곤란해 아미의 다른 의원에게 넘긴 적도 많았다.

하지만 가난한 자들에게는 공짜로 치료해 준다면 아무나 신의로 추켜세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 우리 같은 가난뱅이 치료해 주는 사람이 그리 흔한감?”

중인들의 함성이 물결처럼 번졌다.

밤이 깊어지자 진건곤은 검을 옆에 차고 길을 나섰다.

예의 구체가 몸에서부터 나와 둥그렇게 진건곤을 감쌌다. 후웅!

공기가 크게 흔들리며 동물의 울음 같은 음향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듯이 달려가자 어느새 달이 사라지고 별빛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들이 방명록에 적은 지명을 찾아 달렸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대개 요괴의 노림을 받고 있는 자들이 있는 곳은 아주 작은 마을이며 화전촌이 대부분이었다.

방명록에 적힌 곳에 도착하고 나서도 그들을 찾으려면 시간이 많이 드는 편이었다.

하여 천리향을 발라 놓은 것이었다.

“천리향이 진하게 느껴지는구나.”

후웅!

또다시 진건곤의 경공이 펼쳐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리향이 느껴지는 곳을 찾은 것이었다.

경공을 펼친 지 일다경쯤, 천리향이 흘러나오는 곳을 찾았다. 관도에서 산을 3개나 넘어 들어간 깊은 산중에 초가집이 여덟 개가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진건곤은 그들의 집이 보이자 곧장 멈춰 서서는 몰아일여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무와 돌, 곡식과 집. 주위의 모든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한 손에 잡혀들었다. 그리고 있어서는 안 될 것들도.

진건곤의 감은 눈에는 잠든 사람들의 입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가느다란 관을 그들의 코에 집어넣고 그들의 생기를 뽑아내고 있는 작은 요괴들이 보였다.

그 작은 요괴들은 흡요충이라고 불리고 그 크기는 손톱의 반도 되지 않았지만 본인도 모르게 사람의 영력을 빨아내는 능력이 있어 요괴들이 부리는 요괴충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종류의 요괴였다. 도를 닦거나 불심으로 가득한 영력자들에게만 보이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현천기공으로 영력을 길러낸 진건곤의 눈에는 그것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진건곤이 한참을 그대로 기다리자 흡요충들이 사람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한곳을 향해가기 시작했다.

서른 개가 넘는 흡요충들이 일제히 한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멀리서 그것들을 지켜보니 모두가 한곳의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저기로군.’

진건곤이 몰아일여로 동굴의 내부를 살피자 그곳에 자리 잡은 거대한 요괴가 확연히 느껴졌다.

돼지의 몸을 하였으나 사지의 끝에는 1척이나 되는 뾰족한 발톱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들창코 대신 돌돌돌 말린 코가 달려 있었다.

‘흑추철저! 세상에 저런 요괴가 실존하고 있었다니.’

진건곤은 그 요괴의 정체를 떠올렸다.

전날 요괴와의 싸움이 있고 나서 관심을 두고 기경을 찾아보았던지라 그 요괴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쇠로 만든 갈고리보다 더 단단하고 예리한 긴 손톱으로 상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것을 즐기는 요괴였다.

‘흡요충을 부리며 화전민들의 생기를 뽑아내고 있다니.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는 게로구나. 네놈이 무엇을 꾸민다고 해도 오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저벅저벅!

진건곤은 다리에 힘을 주어 소리를 내며 동굴로 걸어 들어갔다.

진건곤의 손에서 백광이 피어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백광은 작은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푸확!

작은 알갱이들이 백광으로 일렁이며 수십여 개가 되어 동시에 동굴로 쏘아져 들어갔다.

틱! 티디디딕!

콩을 볶는 듯한 소리가 이리저리 흘러나오고 괴성이 흘러나왔다.

“구우! 구워워.”

- 어떤 놈이 나의 흡요충을 죽였는가? -

두두 두두두!

흑추철저의 육중한 몸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가히 절정의 무인이 펼치는 경공과 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진건곤은 어둠 속에서 전광석화처럼 달려 나오는 흑추철저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진건곤의 두 손에 백광이 일렁이고 그대로 육합장권의 초식으로 흑추철저의 정수리를 때려갔다.

텅! 터더더덩!

푸스스! 푸슥!

흑추철저가 이곳저곳에 여러 번 튕겨나가니 동굴 벽이 이겨내지 못하고 푸스스하게 흙먼지를 토해내며 흔들렸다.

“쿠어어엉! 쿠엉!”

- 도대체 어떤 놈이냐? -

바닥에 떨어져 몇 번이고 굴렀던 흑추철저는 재빨리 일어나며 표호를 질렀다.

하지만 내심으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내 질주를 막아내는 인간이 있다니?’

흑추철저의 최대 무기인 질주였다.

흑추철저의 몸은 마치 쇠와 같이 단단하고 무게가 나갔다. 그 무게를 한곳에 모아 부딪히는 질주는 대단한 비장의 무기였는데 그것이 통하지 않은 것이었다.

“흥! 내 일격을 버텨내다니, 천 년은 지난 요괴인 게로구나. 하지만 오늘이 네가 인간세상을 떠나는 날이다.”

진건곤의 두 손에서 백색광이 또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눈이 부실 정도로 그 빛이 한결 강해졌다는 것은 흑추철저도 알 수 있었다.

스캉!

흑추철저의 손발에서 일척이나 되는 발톱이 나왔다.

과연 기경의 내용대로!

하지만 기경의 내용에 빠진 것이 있었다.

흑추철저가 자유로이 꺼냈다 넣었다 하는 것은 발톱뿐이 아니었다.

흑추철저의 온몸에는 뾰족한 발톱과 같은 것들이 솟아나 가히 고슴도치를 연상케 했다.

그 발톱 하나하나가 모두 예리하게 갈려 있는 검과 같았다. 겉모습만 보면 단지 검에 비유할 만하지만 그 단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었다.

진건곤의 장력이라면 집채만 한 바위라도 부수고 남았다. 그런 장법을 맞고도 멀쩡한 요괴가 꺼내 든 무기라면 그 단단함은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진건곤은 검을 빼어 들지 않고 그저 두 손을 앞으로 빼어 들었을 뿐이었다.

“쿠어어엉! 쿠엉!”

- 네놈! 죽어라! -

아까와는 다른 질주!

흑추철저의 몸이 흑빛으로 감싸이고 그 빠름조차도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진건곤에게는 우스울 지경.

천년 묵은 요괴라 할지라도 초식조차 사용하지 않아도 될 지경이었다.

아무런 초식도 사용하지 않은 두 손이 머리에 뿔처럼 솟아난 두 개의 뿔을 잡아갔다.

그 순간 진건곤의 두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흑추철저의 눈에 이채가 보였다.

팟!

흑추철저의 코가 갑자기 빳빳하게 일어나 창처럼 진건곤을 찔러 들어갔다.

그 창이 거의 진건곤의 몸을 꿰뚫려 할 때, 진건곤의 몸에서 백광이 피어났다.

그리고 그 백광은 흑추철저의 코가 만들어낸 창과 맞부딪혔다.

꽝! 투두두두둥!

달려든 것은 흑추철저였지만 튕겨져 날아간 것도 흑추철저였다.

터더더더덩!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연속으로 벽에 튀기며 날아간 흑추철저가 멈추었을 때는 이미 그 모양이 많이 망가져 있었다.

온몸에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뽑아냈던 손톱들은 이곳저곳이 부러지고 짓뭉개져 있었고 진건곤의 몸을 뚫을 것만 같았던 코는 완전히 떨어져 나가 있었다.

전력으로 달려 들어갔던 충격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 듯이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누워 있었다.

“쿠어어엉! 쿠엉! 쿠어어엉! 쿠엉!”

- 호신강기란 말인가? 그것도 무공이 아닌 영력으로? 당신이 바로 다음 대의 선인 고천사란 말인가? -

다음 대의 선인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진건곤은 그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듯이 고개를 저어버리고는 차갑게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네놈에게 말해 줄 필요가 없지.”

등 뒤에 있던 검이 스스로 떠올라 백색의 광을 발휘하였다.

스앗!

검이 스스로 움직여 흑추철저를 반으로 갈라내자 흑추철저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져 갔다.

“네놈들이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이 아니다.”

진건곤은 몸을 날려 화전민촌으로 돌아가 커다란 바위를 여기저기로 던져두었다.

그것들은 결계를 이루어 진주가 될 것들이었는데 진건곤의 영력을 불어 넣어 웬만한 요괴라면 그 결계를 뚫지 못할 것이었다.

“벌써 이런 것들만 셋이라니. 천 년을 넘겨 귀기를 얻은 것들이 이렇게 많다니. 어찌 돌아가는 세상이려는지.”

영력을 지닌 자들이 모산파에 들지 못하니 요괴의 천적인 모산파의 기세가 줄었다.

그 틈을 타고 전성기를 구가하는 요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아직도 전운이 끝나지 않아 커다란 전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비록 천기를 읽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커다란 사건의 기운인지라 느낄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강호를 떠돌며 요괴를 없애야겠구나!”

환자들의 몸에 스민 요괴의 기운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추적하여 요괴나 귀신 등을 퇴치하면서 진건곤은 그 일이 자신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지닌 능력은 역천의 존재에게 더 잘 통했다. 강시나 염정간옥의 검처럼 지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에 더욱더 파괴적인 능력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지닌 능력은 그런 것들을 상대하라고 생긴 능력이 아니었을까?

‘하긴, 이런 능력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불공평하지. 가히 절대의 능력이 아닌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막을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곧 시대의 흐름이 될 터. 내 의지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인 게야.’

진건곤은 갑자기 자신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어야 할 존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백노신을 만나 본 뒤, 그에 대해서 알아본 적이 있었다.

해동의 절대자.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단체도 없었다.

하물며 해동에서는 그가 어느 곳에 있는지조차도 모른다고 했다.

세외삼신이라 불리는 절대자지만 해동에서는 그는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도 찾지 못하는 선인에 불과했다.

진건곤은 전쟁이 끝나면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겠노라고 생각하며 밤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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