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47화 (47/61)

제6장

“아미타불……! 저들이 저런 무공을 숨기고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소이다.”

“저 무공이야말로 그들의 무공이 일률적으로 올랐다고 느꼈던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렇겠구려. 저런 무공을 새롭게 배웠다면 무공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본신의 무공이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오. 저들이 우위에 선 것도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것이외다. 그들이 더 이상 숨겨 놓은 것이 없는 이상 이 상황을 바꿀 순 없을 것이오.”

전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십대은거고수로 손꼽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주위에 자리한 정파 무인들의 목숨을 확실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정파 무인들은 보호하고 가까이 다가오는 마인들과 강시들을 제거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가면 승세를 확실히 잡은 것 같았다.

개중에도 더욱 눈에 띄는 자들이 있었는데 바로 검선과 검후였다.

검선의 이기어검은 검선이 움직이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며 주위를 정리하였고 검후의 검은 일렁이는 백광을 보였는데 그 주위에는 마인들도 강시도 힘을 잘 쓰지 못하는 듯하였다.

“과연 검선이십니다. 마인들이 맥을 못 추는군요.”

제갈 군사는 검선을 집어 말하며 맹주의 기분을 맞추었고 곤륜의 장문은 검후를 집어 말하였다.

“검후의 주위에는 강시와 마인들이 얼씬거리지 않고 있습니다. 무언가 꺼리는 바라도 있나 봅니다.”

그 말에 여타의 장문인들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느끼고 있던 바였던 것이다.

고루마군은 소군의 출현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또 그녀의 검에 서린 기운을 보며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검후! 살아 있었다니……! 이런! 저것이 어찌 영력을 쓴단 말이냐?”

고루마군은 깜짝 놀라 검후의 검을 살펴보았다.

“휴우! 다행히 영력이 서렸을 뿐이구나. 하지만 검후의 있다는 것은 전진자가 주위에 있다는 것과 같을 터인데……!”

고루마군은 진건곤이 주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진건곤을 찾을 수는 없었다.

“마군! 서둘러야 하지 않겠소? 광룡진천류라고 해도 저들을 막을 순 없어 보이오.”

고루마군이 소군과 진건곤을 찾느라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독마군이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말을 건네었다.

“그래야겠구려! 하마터면 벼르고 별러 왔던 기회를 놓칠 뻔했소. 나갑시다. 부탁드리오. 극사님들.”

고루마군은 출진에 앞서 그 뒤에 서 있던 둘에게 부탁을 하였다. 빙백신과 화령신, 대무와 백노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새로 영입한 극사들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나서자 그들의 제자들까지 모두가 나서서 전면에 섰으니 전에 없던 강력한 힘의 충돌이 예상되었다.

역시나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갈 군사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맹주님! 진열을 물러야 합니다. 마인들이라고 해서 은거고수들이 대거 나왔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터, 저들이 저리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제갈 군사의 말에 맹주도 역시 깨닫는 바가 있었다.

첫 전투부터 지금까지 마교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싸움이 아니었던가? 정파에 고수가 증원된 마당에 마교가 이 싸움에 이토록 적극적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항상 일은 돌발적인 일에 그르치게 마련.

“불가! 불가하오! 처음으로 기선을 잡은 싸움이 아니오? 아무런 위험도 없이 옮긴다는 것은 불가하오.”

좌오장군이었다.

이제껏 자신을 내세우는 바가 없었던 좌오장군이 갑자기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이었다.

“아니 됩니다. 이제껏 한 번도 마인들이 싸움의 주도권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마인들이 고수가 증원된 것을 모를 터가 없습니다. 아마도 마인들은 이번 싸움에 그분들을 상대할 함정을 준비해 놓았을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함정에 당한다면 앞으로 걷잡을 수 없는 일로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한 번만 뒤로 물러섰다 나선다면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갈 군사가 나서 말을 꺼냈지만 좌오장군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소이다. 이 싸움의 수장은 나이니 내가 책임지겠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관군의 수장이 왜 무인들의 싸움에 나서고 책임을 진단 말을 꺼낸단 말인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원시천존.”

보다 못한 맹주도 나서서 그럴 수 없다는 말을 꺼냈지만 좌오장군은 막무가내였다. 그동안 상황판단을 잘 해오던 자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실랑이가 전세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이미 고루마군과 독마군 등의 무리가 최전선으로 날아든 후였다.

그런 고수들이 전선에 나서기 전이라면 몰라도 이제 와서 그들을 등 뒤에 두고 후퇴를 한다면 그 피해가 만만치 않을지도 몰랐다.

피잉!

허공에 번쩍이는 검광이 울리는 순간 검선의 어검이 어느새 하늘을 가로질러 독마군의 목을 찔러 가고 있었다.

“헛!”

독마군은 경호성을 토하며 급하게 공력을 끌어올려 어검을 막아갔다.

손끝에 검은 기운이 서렸는데 그 빛깔이 진하기가 짝이 없었다. 아마도 강기였을 것이었다.

꽝!

순간적으로 불똥이 피어오르고 어검이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을 순회하며 되돌아 와 또다시 독마군의 목을 노리고 들어갔다.

꽈과과과과광! 꽝꽝!

짧은 순간에 몇 십 번의 부딪힘. 허공에 불똥이 피어올랐는데 워낙 맹렬하기 짝이 없어 그 사이에 끼어든다면 그저 휘말려 날아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극사라고 불리던 두 명의 신비인도 역시 그 사이에 끼어들 마음이 없는 듯하였다.

‘빌어먹을 흑묵독강으로 겨우 어검을 막는 게 고작이라니. 앞으로 몇 번이나 막을 수 있을는지…….’

“조금만 기다리시오.”

고루마군의 음성이 울리고 고루마군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뭉클 솟아올랐다.

하지만 정파의 무인들이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장면이 아니던가?

“사숙!”

“사조님!”

각파에서 최고수를 부르는 호칭이 쏟아져 나오고 은거고수로 분류되던 고수들이 앞으로 나서며 고루마군의 술법을 방해하려 들었다.

찌이이이잉!

바로 그 순간 고막을 찢어 버릴 듯한 소리가 울리고 극사라고 불리던 두 신비인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신비인의 손에서는 음양이 태어나 태극을 그렸다. 태극이 빙글빙글 돌아가더니 커다란 구가 되어 고루마군과 두 신비인의 몸을 감쌌다.

은거를 깨고 나온 고수들의 엄청난 위력의 무공이 그의 몸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검강과 검기 등은 마치 허깨비를 때린 듯이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고 그대로 스쳐 지나고 말았다.

“음양태극구!”

“어찌 저런 일이……!”

구체를 알아본 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려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그들의 수법을 알아보았으니 신비인의 정체도 역시 드러나고 말았다.

그들은 강호무림의 오지와 같았던 산서성의 전설과도 같았던 자들이었다. 공명정대하며 남을 상하지도 자신을 상하지도 않는 수법을 사용하였는데 그들의 절기 중의 절기가 바로 음양태극구였던 것이었다.

정파의 무공이며 무인으로 존경받던 자들이 마인의 주구로 함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음양이현이 어찌 마교의 편에 서고 말았단 말인가? 원시천존!”

“무량수불!”

“허허허허! 세상이 어찌되려고?”

하지만 그 순간에도 득의의 미소를 짓는 자는 있었다.

“크하하하하! 이미 늦었다. 크하하하하하!”

고루마군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뭉클 솟아나더니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검은 연기의 노림을 받은 자를 미리 점혈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사방으로 고르게 흩어지는 연기가 누구를 노릴지는 아무도 몰랐다.

허나! 그다음의 순간에 정파의 무인들은 눈을 부릅뜨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공을 떠돌던 그 검은 연기가 고루마군을 공격하던 고수들에게 흡수되었기 때문이었다.

은거고수 중의 곤륜과 산동악가의 은거고수 두 명, 그밖에도 각파의 장로들에게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문파의 최고 어른에 해당되는 자들이 고루마군의 술법에 당해 버려 주변의 정파인들을 해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크악!”

검은 연기가 스며든 자들은 이미 주변의 사형제와 사질 등에게 공세를 펴기 시작했고 그들의 무공이 높았던 만큼 순식간에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 사특한 검은 연기가 소군의 주위로는 오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았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아미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고 그런 아미를 중심으로 무인들이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소군은 고루마군의 주구가 되어버린 고수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제와 사형, 사질들을 학살하다시피 하자 그것을 보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소군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은 소군을 꺼리는 듯이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허공에 펼쳐진 그물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로 절검의 마지막 절기가 펼쳐져 퇴로를 차단한 것이었다.

“가라! 원시천존!”

절검은 소군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서 그들을 한곳에 몰아넣는 일을 해주었다.

소군의 손에서 아미 검후의 전설의 무공이 펼쳐졌다. 바로 천수불영검.

검에서 솟구친 검기가 가닥가닥 수십 가닥으로 갈라져 사위를 점했는데 누구도 그 수법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소군의 한 수만으로 장내에 고루마군의 주구가 되어 버렸던 자들의 반이 움직이지 못하고 꼿꼿하게 굳어 버렸다.

그 또한 놀라운 일.

고루마군의 주구가 되어버린 자들은 마치 강시가 된 듯하여 그 피부가 강철같이 단단하였다. 혈을 짚고자 한다고 해서 짚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단지 한 수만으로 이지를 상실한 정파의 명숙들을 제압한 것이었다.

진건곤의 영력을 나누어 가진 소군은 강시에 대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장면을 본 고루마군은 소군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더 빨리 알아보았다.

“빌어먹을! 전진자의 힘이 이어졌구나. 하지만 아직은 모르지!”

고루마군이 진언을 외우자 곤륜과 산동악가의 은거고수가 소군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극사님들은 검후를 견제해 주십시오.”

태극이현은 음양태극구를 풀어내고 검을 뽑아 앞으로 나섰다.

“그대들이 왜……?”

절검이었다. 태극이현은 절검의 물음에 두 눈을 반짝였다.

“신교는 세상을 다시 열 것이요. 그 세상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소.”

절검의 눈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사숙이 사질을 베고 사형이 사제를 벤다. 제자가 스승에게 검을 겨누고 살을 베어야 하는 이 전장은 신교가 만든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원시천존! 어쩔 수 없는 일이요. 활선당은 세상에 좋은 일만 하고도 마교로 몰려 멸절되었소. 자신의 재산을 털어 아픈 사람을 돌보았소. 아무도 해치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법을 전했소. 누구도 활선당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소. 하지만 활선당에게 황게가 마교의 이름을 씌웠을 때, 가장 먼저 나서서 활선당을 찢어발긴 것은 바로 무림이요. 이번에는 무림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고 멸절될 차례요. 우리는 구원을 갚을 뿐이요.”

“활선당……!”

“그렇소. 우리가 무림을 멸절시키고 나면 다시는 도검으로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오.”

태극이현의 태도는 지극히 당당했다. 그리고 절검뿐만 아니라 그들의 대화를 들었던 자들은 활선당의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활선당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만 한 것은 사실이었다. 활선당이 무림의 공격을 받고 멸절된 이유는 오직 하나 황제의 명 때문이었으니까.

“후우……!”

절검은 한숨을 쉬더니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유구무언! 입은 있어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심정이 바로 그의 심정이었다.

소군과 절검에 맞서 청성과 곤륜, 태극이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태극이현은 놀랍게도 복숭아나무와 박달나무로 만들어진 검을 사용하였으나 절검과 소군 등의 검에 부딪혀도 부러지거나 이가 나가는 법이 없었다.

소군이 고수들의 싸움에 얽매이자 장내의 강시들이 더 날뛰기 시작하였다.

이제껏 강시들이 접근하지 않았었던 아미파도 역시 강시들의 틈에서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그 순간 고루마군은 그곳에서 물러서 수인을 맺고 진언을 외웠다. 그의 몸에서 붉은 운무가 나와 또다시 퍼져 나갔다.

그의 몸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술법인 것을 알고 모두가 피하려 했지만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붉은 운무의 술법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크르르르르!”

“으으으으흐!”

“크르르르르!”

붉은 운무가 스쳐 지나간 쪽에서는 무인들이 모두가 살기가 뻗쳐올랐다. 광룡진천류에 사로잡혀 있던 마인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정파의 무인들 중에서도 그 붉은 운무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싸움을 하던 무인들이 모두가 눈가에 핏발이 돋고 있었다. 정심이 충후한 불문의 고수들과 무당의 고수들만이 스스로의 의지를 붙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화산, 청성, 곤륜 등의 도가는 비록 도가라고는 하지만 그 선악을 판단하고 그것을 벌함에 엄정한 구석이 있었다. 애초부터 살기를 드러내는 도가였던 그곳의 고수들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새 두 눈에 붉은 살기를 두르고는 상대를 베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바로 다른 쪽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푹!

푹!

푹!

여러 곳에서 검이 몸에 박히는 소리가 났다.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전장에서 그 소리만 선명하게 들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소리들은 선명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그 소리가 무당의 검선과 소림의 료굉, 해남의 파검의 몸에 박힌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르! 크르르르!”

그들에게 검을 꼽은 자들은 바로 지척에 서 있던 장로급의 고수들이었다. 이미 눈이 시뻘건 혈광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을 봐서는 제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검선과 료굉, 파검 등은 평시라면 그런 암습에 당할 자들이 아니었지만 전장의 혼란함과 이미 강시로 변해버린 자들이 있었으니 더 이상은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으로 생겨버린 빈틈에 당해 버린 것이었다.

이미 실력이 실력인지라 암습을 당했다 해도 죽을 만큼의 치명상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어깨와 옆구리 등의 곳에 커다란 검상을 입었으니 당장 기대만큼의 실력을 발휘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크르르르!”

붉은 눈을 한 자들은 한동안은 피에 굶주린 것처럼 주위의 인물들에게 병장기를 들이밀고 싸움을 벌였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이 광룡진천류를 펼치는 자들도 역시 구분하지 못하였고 그저 닥치는 대로 베고 죽이고 베고 죽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휴우!”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던 인형이 숨통이 트였다는 듯이 한숨을 내리쉬었다.

그 한숨에 미치는 곳에 있던 무인들은 모두가 싸움을 하다말고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이미 지독한 난전이었기에 땅에 쓰러지기도 전에 상대에게 목이 날아간 자들도 상당수가 있었다.

피칠갑을 하고 있던 자는 바로 검선의 이기어검에 완전히 묶여 있었던 독마군이었다.

검선이 암습을 받고 스스로를 살펴야 할 지경이 되자 자유롭게 된 것이었다.

기실 독마군 같은 대량살상을 할 수 있는 자들이 설치기 시작하면 전장은 그 끝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여 무공이 가장 높았던 검선이 독마군을 죽이기로 한 것이었는데 불의의 암습으로 그럴 수가 없어진 것이었다.

바야흐로 독마군이 검선의 견제에서 풀어난 것은 전장에 새로운 바람이 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고루마군의 두 가지 술법에 의해 급격하게 마교에게 승세가 넘어가 버린 상황이었다. 독마군의 가세는 신교의 필승을 보장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소군과 절검의 능력은 가히 천하제일을 다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태극이현의 능력도 그에 못지않았다.

“허허 그대들이 이런 고수라고는 생각도 못했소.”

“흥! 활선당의 고인들 중에는 우리를 넘어선 분들도 있었다. 그분들은 오직 세상에 피를 부르지 않고 싶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신 분들이다. 그 억울함을 그대들은 모를 것이다.”

말을 꺼낼수록 점입가경의 일이다. 절검은 이십여 년 전에 활선당이라는 선한 무리들에게 검을 겨눈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황제의 명으로 그들을 해쳤던 일에서 당당할 수 없었다.

“오늘의 일은 우리만의 공명을 위한 일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통로에 불과한 것. 우리는 우리의 행사에 당당하다.”

태극이현의 검이 기묘한 곡선과 날카로운 선을 그리며 절검에게 쏟아졌다.

절검의 검에서 그물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들에게 그 그물은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태극이현의 두 개의 검이 한곳을 향하자 그들의 두 검이 가리키는 곳에 태극이 일어났다.

꽈드드등!

엄청난 굉음이 울리고 그물에 한곳에 빈틈이 생겨났다. 태극이현의 신형은 신속하게 그곳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번쩍!

소군의 검이 백광을 토해 내었다. 천수불영검의 모든 초식이 한 번의 초수에 담겨 쏘아진 것이었다.

태극이현의 검은 또다시 하나가 되어 쏘아졌다. 태극 모양의 방패가 허공에 분연히 생겨나 백광과 부딪혔다.

꽈드드드드등! 꽈드드등.

두 개의 경력이 부딪히자 폭발이 일어나 주위를 휩쓸었다. 땅거죽이 일어나고 흙먼지가 운무처럼 피어올랐다.

[자네는 가보게!]

절검의 전음이 소군의 귓가에 울렸다.

광룡진천류에 취해 흠뻑 피를 본 자들이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바로 아미파였다.

비구니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여인. 살욕을 풀만큼 많은 살인을 한 자들은 광룡진천류의 봉인을 풀어버렸다.

살욕으로 위장되었던 또 다른 욕구가 눈을 떴다. 그들은 다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아미파를 찾아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강시들이 피했기에 아미파를 중심으로 많은 무인들이 모여 전세를 이끌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소군이 그곳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소군이 없는 지금은 강시들이 달라 들어 처음의 기세를 이어가는 것조차 힘이 들 지경이었다.

하물며 눈이 붉게 충혈된 무인들까지 가세하자 금세 무너질 것 같은 방어선을 사력을 다해 유지할 뿐이었다.

“이런……!”

소군은 급박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커다란 흐름을 못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절검의 전음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서 가보래도!”

절검은 입을 열어 소군을 재촉하였다. 무인들이 당할 수치보다 여인들이 당할 수모는 더 참고 보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은거를 깨고 나온 고수들을 앞세워 승기를 자신했던 싸움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제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목숨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변해 버렸다.

각파의 고수들은 모두가 자파로 돌아가 자신의 문파와 친인들을 지키는 데에 급급해졌다.

“크하하하하! 가라! 오늘 이곳에서 무인들의 씨를 말릴 것이다. 가라!”

고루마군의 광소가 울려 퍼지고 독마군의 손에서는 알 수 없는 분말가루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저… 저런!”

“어떻게 이런 일이……!”

본영에 남아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장문인들과 가주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검선이 독마군을 묶은 상태에서 여러 고수들이 일거에 나서 손쉽게 이기는 듯하였으나 고루마군이 술법을 펼치면서부터 상황이 변해 버렸다.

곤륜과 산동악가의 설검과 묵권이 오히려 고루마군의 주구가 되어 설치기 시작하고 각파의 장로들 중에 주구가 되어 은거를 깨고 나온 고수들을 급습하면서 상황이 전혀 다른 것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좌오장군은 심각한 표정으로 변해 버린 전황을 보면서 이미 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작은 미소와 같은 것이 스쳐갔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가야겠습니다. 장군. 당부컨대, 사병들은 뒤로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쓸데없는 희생은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원시천존……!”

“나무아미타불. 오천여 생불들이 장군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오명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들을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맹주와 소림 장문이 입을 떼며 앞으로 나서자 각 파의 장문과 가주들도 경공을 펼치며 앞으로 나섰다.

“사병들을 모두 물러 뒤로 물러서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 버텨보겠지만 안 된다고 판단하는 순간 모두가 흩어질 것입니다. 그전에 물러나야만 할 것입니다.”

제갈세가의 가주는 좌오장군에게 일을 일러주고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세가를 찾아 돌아갔다.

각파의 수장들이 전장에 나서고 지시를 내리고 나자 상황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다. 무공으로는 은거를 깨고 나온 고수들만 못하였지만 장문의 권위는 혼란을 수습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되는 듯하였다.

무인들이 모두 떠난 빈 천막에 부장 둘과 좌오장군만이 남아 있었다.

“크흐흐흐흐! 작전은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습니다. 과연 귀제갈님의 지모는 신기에 가깝습니다.”

무인들이 모두 떠나 버린 군영에서 나온 부장의 목소리였다.

“하하하하! 아무리 뛰어난 무인들이라고 해도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서는 당해낼 도리가 없지. 이 싸움은 신교가 천하에 이름을 떨칠 그 초석인 게야.”

좌오장군의 목소리에는 감격스러운 떨림이 스며들어 있었다. 놀랍게도 좌오장군과 부장들은 이미 천지신교의 일원이었던 것이었다.

첨병으로 보낸 군사들의 수장마저 천지신교의 주구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는 것은 관부에 마저도 그들의 힘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사병들만 희생시킨다면 신교의 대승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진군을 명할까요?”

“저들의 희생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다면 그리해야지. 명령을 내리게!”

오천의 군사는 오직 신교의 기세를 올릴 희생양으로 쓴다는 생각이라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작전의 이름은 무인들을 구출하는 것일세……! 하하하하! 우리가 무인들과 함께 싸웠다는 핑곗거리가 필요하니까 말이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옳으신 말씀입니다. 장군님.”

“천지신교에 영광을! 조아로!”

“조아로!”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둥둥둥둥! 둥둥둥둥!

뿌우우우우우우우!

북과 뿔피리 소리가 울리자 무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군영에도 큰 소란이 일었다.

“전군 진군 준비!”

“전군 진군 준비!”

명령은 복명복창을 통해 전군에 퍼져 나갔다.

사병들의 얼굴에는 일시에 어둠이 깃들었다.

강시의 공포가 들어 있었고 신선이라고 부르던 무인들도 싸움에 패하는 마당에 그들을 구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사병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어차피 싸우지도 못하는 우리는 왜?”

도끼도 통하지 않고 기마대의 기마일체의 창으로도 뚫리지 않는 몸을 가진 강시들과 싸운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공포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가 겁에 질려 있을 때, 관 소호장은 왠지 모르게 진건곤을 찾았다. 머리로는 몰랐지만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몸이 느끼고 있었나 보았다.

진건곤을 찾고서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따지고 보니 그 사건 이후로 진건곤의 근처로 온 것은 처음이었다.

“하하하! 장난 한 번 쳐본 것 가지고 뭘 그리 겁내나? 이제는 걱정 말게. 강시 따위는 말끔히 청소할 테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진건곤의 검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일렁이는 백광이 하늘을 찌를 듯이 날아갔는데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진건곤의 몸에서 구체가 나와 진건곤의 몸을 감싸자 천천히 진건곤은 하늘로 떠올랐다. 그리고는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주위의 사병들이 놀라서 소리를 쳤다.

그런 소란 속에도 마음이 평온한 자가 있었다. 바로 관 소호장이었다.

진건곤의 말을 듣자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건곤의 말이 그토록 믿음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강시에 혼비백산해 백발이 되어 버린 그는 모두가 강시를 두려워할 때 혼자만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역시 그날. 사실이었던가 봐……!”

전황은 이미 기울어 무인들에게는 이미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나은 것은 소군이 돌아와 선두에 선 아미파뿐이었다.

다른 문파는 고루마군의 술법에 당해버려 얼굴이 빨갛게 물든 자와 무릎조차 굽히지 못하고 펄떡거리는 자들을 처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사형이요, 사제요, 사질이요, 사숙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패색이 진해 보이던 순간 북소리가 울리고 뿔피리소리가 울렸다.

“이런! 안 될 일이라지 않았나? 나무아미타불!”

“원시천존! 그들에게는 능력이 없거늘......!”

사병들의 진군소리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주들은 쓸데없는 희생자가 늘어날 것을 염려하였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백광이 있었다. 일렁이는 백광을 뿌리며 날아다니며 전장을 지배했다.

퍼버버버벅! 퍼버버벅!

백광이 번쩍이며 강시의 몸을 뚫고 나오면 강시들은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변해 흩어지고 말았다.

백광의 빠르기는 그야말로 전광석화!

검선의 이기어검과는 전혀 다른 검속을 보이며 날아든 백광은 아미파 주위로 모여드는 강시들을 꼬치를 꿰듯이 뚫고 지나갔다.

실로 놀라운 경지여서 눈을 뜨고 보아도 번쩍거리는 것을 볼 뿐,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먼지로 변해 흩어지는 강시들의 시신을 보면서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일렁이는 백광은 강시들에게 뿐만 아니라 광룡진천류를 익힌 자들에게도 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그들도 역시 일렁이는 빛의 덩어리의 출현에 숨을 죽이고는 움츠러들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미파는 뒤로 물러서시오.”

낮은 목소리였지만 소란스러운 전장에 또렷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진건곤의 목소리.

아미파를 쫓던 강시들을 순식간에 먼지로 만들어 버린 백색광이 아미파의 허공에 떠올라 멈춰 섰다.

그 빛이 강렬하기 짝이 없어 마치 머리 위에 보름달이 떠오른 것과도 같았다.

신기하게도 그 빛은 아미파가 서 있는 곳을 향해 강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마치 이곳은 내 영역이니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우우우우우웅……!

정적 속에서 일렁이는 빛의 덩어리는 검명을 토해내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었다.

“전진자다!”

“전진자!”

혼란한 전장 속에서도 진건곤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자들도 있었고 전날에 보였던 일렁이는 백광을 기억하던 자도 있었다.

이미 진건곤은 강호에 파란을 불러일으킨 풍운아였다. 젊은 무인들을 중심으로 진건곤을 숭배하는 모임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들 중에 몇몇이 전진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외치는 것이었다.

후웅!

사병들이 있는 군영의 한가운데에서 사람보다 더 큰 모양의 구체가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공기를 찢어내는 소리를 내고는 움직였다.

그 안에는 진건곤이 있었는데 무릎조차 굽히지 않고 허공을 날아가는 그의 경공에 군사들이 소리를 질렀다.

“고 조장이다.”

“바보냐? 고 신선이겠지.”

“신선. 신선이 내려오신 게야.”

짧은 기간 진건곤을 곁에서 보았던 사병들이지만 그들에게 진건곤은 다른 무인들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신선이었다.

사병들은 진건곤의 비행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지만 무인들은 그저 기가 질렸을 뿐이었다.

육지비행술. 어기비행, 어기충소 등으로 들어만 보았지 눈으로 보기에는 처음인 장면 이었다.

“후퇴! 후퇴!”

고루마군의 다급한 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모두들 진건곤의 검과 경공이 만들어낸 신기지경에 너무 놀라 정적이 이어졌지만 고루마군은 그럴 수가 없었다.

대의를 품고 영력을 기른 진건곤은 사이한 대법을 익힌 자신의 천척이었다. 먹이사슬처럼 철저하게 일방적인 관계.

진건곤의 등장은 곳 자신의 몰락이었던 것이다.

고루마군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고루마군의 태도를 보고는 마인들도 뒤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두머리인 고루마군이 물러선다면 더 이상 이 싸움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삐융!

아미파를 지키듯이 빛을 비추던 백광이 번쩍이며 사라지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만이 길게 남았다.

어느새 백여 장 밖의 곳에 나타나 고루마군의 정수리를 노리고는 허공에 멈춰 섰다.

이글이글 일렁이는 백광에 고루마군은 괴로운 듯이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강호 무림에 관여하지 않기로 한 바. 싸움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으나 역천의 술법은 너무나 비열하구나. 네놈을 용서할 수가 없어.”

진건곤의 말에 희비가 엇갈렸다.

정파의 무인들은 그토록 애를 먹이던 강시를 너무나 쉽게 처리하며 나타난 진건곤이 모든 상황을 정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이라니?

“아미타불!”

“원시천존!”

불호와 도호가 연방 나오고 그들의 시선은 화산의 장문인 운령에게로 향했다. 그들 사이에 무언가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눈빛들…….

당장의 위급함은 가라앉았으나 좌불안석이 되어버린 화산의 장문이었다.

“네 맘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태극이현이 움직여 고루마군의 곁으로 돌아갔다. 둘은 검을 놀려 또다시 태극의 구체를 만들어내었다.

모든 공격을 허깨비처럼 스쳐 지나가게 만들었던 바로 그 수법이었다.

하지만 진건곤은 그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각파는 지인들을 챙기시오. 이지를 회복시켜 보겠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백광은 지체 없이 전광석화처럼 전장을 누볐다.

퍼버버버벅! 퍼버버버벅!

진건곤의 어검은 스스로 생명을 가진 양 강시만을 찾아 그들을 한 줌의 흙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너무나 간단히 강시를 파괴하는 것을 보고 이제껏 생명을 걸고 싸우던 무인들이 허탈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또한 백색광이 일렁이던 순간부터 광룡진천류에 휘둘렸던 자들도 그 기세가 약해져 있었다.

각파는 자신들의 사제와 사형, 사숙과 사질들을 제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만독존과 태극이현은 진건곤의 안하무인격의 태도에 불만이 많았지만 그의 검이 만들어내는 장면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자신들보다 서너 수 위의 고수라는 생각이 미치자 진건곤과의 충돌을 바라지는 않았다.

태극이현은 그대로 구체를 유지하며 고루마군을 데리고 뒤로 쏜살같이 날아가 버렸다.

순식간에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는데 진건곤은 말과는 다르게 그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듯 강시를 처리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태극이현은 진건곤과 고루마군 사이의 구원을 몰라 그가 쫓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놓았는데 그건 그들만의 오해였다.

몰아일여를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는 진건곤이였기에 보지 않아도 그들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시각보다 더 세세한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미리 움직여 피할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강시를 처치하기 위해 집중했던 것이었다.

강시 퇴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져 몇 호흡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장내에 남아 있는 강시가 없게 되었다.

후웅!

진건곤은 지체 없이 움직였다.

바람이 일렁이고 진건곤이 있던 자리에는 회오리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회오리를 보았지만 진건곤의 실체는 어느새 쭉 뻗어나간 천처럼 길게 뻗어나가 있었다.

강시를 처리한 백광도 역시 진건곤을 쫓아 따라갔는데 그 속도 너무나 무시무시하여 수천의 무인들이 모여 있는 대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날아가던 그대로 진건곤의 검결지가 앞을 가리켰다.

번쩍!

섬광이 일어나 앞으로 쏘아졌다.

일렁이던 백광이 일시간에 밝아지며 만들어진 섬광이었다.

쩌저저정!

태극의 구와 섬광이 만나자 엄청난 굉음과 섬광이 치솟아 올랐다.

엄청난 양의 화약이 터진 것처럼 바람이 폭풍이 되어 올랐고 땅거죽이 둥그렇게 파여 태극구를 중심으로 동심원이 몇 겹으로 그려져 있었다.

쩌저적!

하지만 이미 태극구는 백광과 부딪힌 곳을 중심으로 깨어지고 있었다.

“커… 억!”

태극이현은 내상을 참지 못하고 피를 토해내었다.

“어찌 이런… 일이!”

“어찌 대공녀와 같은 능력을……!”

진건곤은 그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다가가 고루마군의 뒷덜미를 잡았는데 태극이현은 감히 손을 쓰지 못하였다.

더욱이 이상했던 점은 고루마군이었는데 고루마군은 진건곤이 혈을 짚지 않아도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홀로 안절부절못하고 두려워하며 떨고 있을 따름이었다.

태극이현은 그의 모습을 보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상극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두 분. 깨달음을 얻은 분인 듯합니다. 진모[某]는 깨달음이 없어 두 분의 뜻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자는 놓고 가십시오. 아시다시피 이자는 천리를 거스르는 역천자일 뿐이오.”

태극이현은 진건곤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을 뿐이었다. 그들도 고루마군이 역천의 술법을 익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자를 보호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들의 사이로 쏜살같이 달려드는 인영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좋아서 익힌 것이라고는 생각지 마라. 그는 세상의 개벽을 위해 역천의 길을 걷는 것뿐이다.”

갑자기 나타난 독마군은 그 말만을 남겨놓고는 다짜고짜 두 손에 독강을 일으켰다.

독마군의 마지막 절초인 세상에 아무것도 녹이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파멸독강이 진건곤을 향해 쏘아졌다.

강기를 쏘아 내다니……! 과연 검선의 이기어검에도 견뎌낼 만한 무위! 그 강맹함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지직!

독마군이 쏘아낸 검은 강기는 스스로 그 힘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기이한 음색을 흘려내었다.

까드등!

진건곤의 몸에서 솟아난 구체가 있어 독강을 막아내었다. 종전과는 다른 호신강기였다.

쩌저적!

놀랍게도 파멸독강은 진건곤의 호신강기마저도 녹였는지 두 개의 구멍을 만들어내며 그 속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하지만 백광이 일렁이고 번뜩거리는 백광이 스쳐가자…….

꽈드드등!

진건곤의 등 뒤로 두 갈래로 폭발이 터져나갔다. 독마군의 강기탄은 이기어검에 휩쓸려 뒤쪽으로 날아가고 만 것이었다.

독마군은 그것이 자신의 최고의 수법이었는지 더 이상의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뜻이 거룩하다고 해도 수단이 옳지 못하면 또 다른 비극을 낳을 뿐이오.”

진건곤은 고루마군의 옷깃을 잡은 채로 경공을 일으켜 다시금 전장을 향해 움직였다.

태극이현도 독마군도 마교의 고수들은 눈을 부릅떴을 뿐, 아무도 진건곤을 막아서는 자가 없었다.

“네놈! 대공녀 앞에서도 그리 여유를 부릴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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